러시아 군대의 역사 (나폴레옹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러시아 군대의 역사 (나폴레옹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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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제정 러시아, 소련 그리고 현대 러시아까지
세 시기의 단절을 가로지르며
러시아 군사적 전통의 연속성을 밝힌 최초의 책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볼 때, 블라디미르 푸틴이 이끄는 러시아는 마치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정복과 팽창이라는 제국 시대로 회귀한 듯하다. 하지만 로저 리스(미 텍사스A&M대학교 역사학과) 교수가 이 책에서 지적하듯이 러시아의 전쟁 방식은 한 세기가 지나고 정권이 바뀌어도, 차르의 군대에서 오늘날의 군대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러시아 군대의 역사_나폴레옹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침공까지』는 제정 러시아군과 그 후신인 소련군 그리고 현재의 러시아연방군이 어떻게 국가의 대외정책 과제 -국력 투사와 제국 방어-와 민족주의, 상충하는 민족적·종교적 정체성, 정치적 불만이 야기한 내부 불안 진압이라는 국내 과제에 맞서왔는지를 밝힌다. 러시아 군사사의 특정 시기만을 다루는 대부분의 저작들과 달리, 리스의 이 책은 제정 러시아, 소련 그리고 현대 러시아까지 200여 년에 걸친 세 시기의 단절을 가로지르며, 러시아 군사적 전통의 연속성을 밝힌 최초의 책이다.
19세기 초부터 러시아 군대의 발전은 프랑스혁명 이후, 유럽의 세력 균형 변화와 세계적 외교, 정치, 경제, 사회의 변화에 의해 주도되었다. 러시아가 세계에서 가장 큰 대국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군대가 국가 주권을 수호하는 핵심 기둥으로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러시아 군대의 정확한 본질이 무엇인지를 탐구한 저자는, 러시아 군사사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를 제시한다. 첫째, 서부에서는 방어적 자세를, 발칸반도와 캅카스에서는 공세적 전략을, 중앙아시아와 극동에서는 팽창주의 정책을 채택하는 지역별 전략 차이, 둘째는 대규모 상비군의 무리한 유지, 셋째가 군대와 비러시아계 소수민족의 충성심에 관한 지도부의 불안감이다. 마지막 네 번째는 평화와 전쟁 시기를 막론하고, 국가 통치자들이 민·군 관계를 관리하면서 작전 및 전략적 군사 결정을 하는 관행이다. 이는 짜르 시대부터 소련의 붕괴 시기 그리고 푸틴이 권위주의 통치와 구소련 국가들에 대한 패권을 회복하려 한 현재까지 이어진다. 『러시아 군대의 역사』는 세 가지 뚜렷한 시대를 아우르며 군사사를 연결하고 구체적인 작전, 병력 충원 및 유지, 군대와 사회의 관계까지 균형 잡힌 시각으로 쉽고 명료하게 다루고 있다. KBS의 「이슈 Pick, 샘과 함께」, 「역사저널 그날」, tvN의 「벌거벗은 세계사」 등에 출연하는 류한수(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가 옮겼다.
저자

로저리스

RogerR.Reese
미텍사스대학교에서박사학위를받은후,지금은텍사스A&M대학교역사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사회사의시각에서러시아제국및소비에트연방군을연구하고있다.2019년,미국제1차세계대전역사협회의톰린슨저작상을받았다.대표저서로『소비에트군사경험:소비에트군대의역사,1917~1991년』(TheSovietMilitaryExperience:AHistoryoftheSovietArmy,1917-1991)(2000),『붉은지휘관들:소비에트군대장교단의사회사,1918~1991년』(RedCommanders:ASocialHistoryoftheSovietArmyOfficerCorps,1918-1991)(2005),『스탈린의군인들은왜싸웠는가:제2차세계대전시기붉은군대의군사적효율』(WhyStalin’sSoldiersFought:TheRedArmy’sMilitaryEffectivenessinWorldWarII)(2011),『평화기,전쟁기,혁명기의러시아제국군대,1856~1917년』(TheImperialRussianArmyinPeace,War,andRevolution,1856-1917)(2019)등이있다.

목차

서문ㆍ7

도입ㆍ19

제1장 알렉산드르1세와니콜라이1세의통치기,1801~1855년ㆍ37
알렉산드르1세와니콜라이1세 통치기의군대ㆍ42|장교ㆍ47
알렉산드르1세의전쟁ㆍ52|1812년조국전쟁ㆍ56
데카브리스트봉기ㆍ67|둔전촌ㆍ70
니콜라이1세의 전쟁ㆍ73
러시아-튀르크전쟁,1828~1829년ㆍ74
1830년 폴란드봉기ㆍ81|인원문제와개혁,1831~1849년ㆍ85
헝가리독립전쟁ㆍ87|크림전쟁ㆍ91
다뉴브전역ㆍ95|크림전역ㆍ97

제2장알렉산드르2세와알렉산드르3세통치기의러시아군대,1856~1894년
ㆍ105
미래전에관한생각ㆍ109|밀류틴개혁,1861~1874년ㆍ111
조련된 예비군의창설ㆍ116|장교충원ㆍ119
장교의교육과훈련ㆍ121|밀류틴재임기의다른변화ㆍ125
1863년 폴란드봉기ㆍ127|전쟁계획ㆍ130
러시아-튀르크전쟁,1877~1878년ㆍ132
대공주의와전쟁ㆍ145|전후의군사사상ㆍ149
군대와사회ㆍ154

제3장 니콜라이2세통치기의러시아군대,1894~1917년ㆍ161
전쟁계획ㆍ165|러시아-일본전쟁,1904~1905년ㆍ168
1905년 혁명ㆍ179|새로운전쟁 계획ㆍ184|개혁실패ㆍ189
교리재론ㆍ193|전문화열망ㆍ197
전쟁발발,1914년ㆍ202|제1차세계대전의경과ㆍ206
1915년ㆍ209|1916년ㆍ212
1917년ㆍ215|2월혁명ㆍ216

제4장 붉은군대형성기,1917~1945년ㆍ221
볼셰비키의군대 개념ㆍ224
붉은군대의창설과러시아내전ㆍ227
폴란드와의전쟁ㆍ236|전간기초기,1921~1928년ㆍ239
군대와사회ㆍ248|군대의팽창, 1928~1941년ㆍ250
프룬제이후의전간기군사사상ㆍ253
위협의평가,1928~1939년ㆍ257|대숙청과군대의팽창ㆍ258
폴란드및핀란드와의전쟁,1939~1940년ㆍ260
전쟁계획,1939~1941년ㆍ264
변화의촉매노릇을한독일의 침공ㆍ269
초기의재앙,1941년ㆍ271|1942~1945년ㆍ276
전쟁이군대에미친영향ㆍ284

제5장 냉전,1946~1991년ㆍ287
전후의스탈린통치기ㆍ292
흐루쇼프집권기의군대, 1956~1964년ㆍ294
브레즈네프시대,1965~1982년ㆍ303
중국의위협ㆍ312|아프가니스탄전쟁ㆍ314
고르바초프시대,1985~1991년ㆍ321
고르바초프의교리개혁ㆍ324
“합리적 충분성” 실행하기ㆍ328|군대와사회ㆍ332
군대를대하는사람들의태도변화ㆍ336|8월쿠데타ㆍ341

제6장 소비에트이후시대,1992~2022년8월ㆍ345
새로운주제와도전ㆍ351|군대와사회ㆍ359
러시아연방의전쟁ㆍ363
제1차체치냐전쟁ㆍ364|제2차체치냐전쟁ㆍ367
러시아-조지아전쟁ㆍ369
러시아의우크라이나공격,2014~2021년ㆍ370
2022년 우크라이나침공(2월~8월)ㆍ370

맺음말ㆍ393

미주ㆍ401
참고문헌ㆍ424
옮긴이의말ㆍ433
찾아보기ㆍ440

출판사 서평

서부에서는방어를,발칸과캅카스에서는공세를
그리고중앙아시아와극동에서는팽창을

『러시아군대의역사』가19세기초부터시작하는이유는세번에걸친폴란드분할로인해1800년경러시아의서부국경이오스트리아및프로이센(나중에는독일)과맞닿아그어졌기때문이다.서부국경이고착됨에따라러시아는발칸반도에서오스만제국을밀어내고,남쪽으로는캅카스,남동쪽으로는중앙아시아,극동에서는태평양과만주접경까지영토를확장했다.정복으로인해다양한민족이제국으로편입되었고,이들을통제해야했으며,방어해야할국경선이역사상유례없이길어짐에따라군대는큰부담을안게되었다.
1801년부터2022년까지러시아는유럽,유럽러시아,발칸반도,캅카스,중앙아시아,극동지역에서무수한전쟁을치렀다.이전쟁의연대기는러시아군사사전체를관통하는강력한‘국가주권수호자’신화가탄생한나폴레옹전쟁(1801~1815)에서시작한다.1806년~1812년에는오스만제국과,1808년에는핀란드를침공하며스웨덴과전쟁을시작했다,그리고1829년에다시오스만제국과의전쟁을시작하며동시에캅카스정복에나섰고,오스만에영국과프랑스가가세한크림전쟁(1853~1856)까지30여년동안전쟁을지속했다.군대전체가한데모여싸울수는없었다.다른곳에서방어가유지되어야했기때문이다.
대외적인전쟁뿐만아니라내부적으로농노나정복된비(非)러시아계소수민족들의불만과반란을억제하기위한싸움도계속되었다.1831년과1863년에폴란드봉기를잠재웠으며,발칸반도에서패권을확립하기위해1877년오스만제국에전쟁을걸었다.1904~1905년러일전쟁당시,러시아군은극동에서싸우면서도독일및오스트리아-헝가리와맞닿은긴국경을지키는동시에발트3국의반란을무자비하게억눌렀다.제1차세계대전동안러시아군은유럽접경에서,발칸반도에서,캅카스에서동시에싸웠고,우크라이나와중앙아시아에서일어난대규모반란도진압했다.내전(1918~1921)과폴란드와의전쟁(1920)을치른군대는1920년대와1930년대에(그리고훗날1980년대에)캅카스의반소련분리주의운동진압에투입되었다.스탈린은1939년폴란드및핀란드와전쟁을했고,이듬해에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베사라비아,부코비나를무력으로점령해서모조리흡수했다.제2차세계대전에서독일과처참한전쟁을벌인소비에트군대의마지막싸움은1979년~1989년의아프가니스탄군사개입이었다.옐친과푸틴의집권기에는러시아패권을복원하려는열망이군사공격을밀어붙이는동력이었다.이공격은에스토니아에가한사이버공격부터체치냐,조지아,우크라이나침공으로이어졌다.
저자는알렉산드르1세부터이후20세기까지한결같이드러나는러시아전쟁사의핵심주제의하나로,서부국경은고정된것으로간주하여방어태세를취했다는것,이와대조적으로,발칸반도부터캅카스,중앙아시아,극동지역에이르는자국의나머지주변부에서하는전쟁에는노골적이고공세적인태도를보였다고제기한다.그곳에서러시아는막대한인적,물적희생을감수하더라도이길때까지주도권을놓치지않으려고으레싸움을걸고적의영토안으로먼저치고들어갔다.로저리스는이모든전쟁에서러시아군대는비효율적인지휘체계와막대한사상자를내는등의고질적인문제를안고있었으며,이문제는지금의러시아-우크라니아전장에서도드러난다고꼬집는다.전쟁에서패했을때는물론이고승리하거나체제를유지할수있었던까닭은전멸에가까운피해를입더라도그결함을메우는새로운병력을현장에투입할수있는거대한상비군과동원시스템을유지했다는구조적특징을반복해왔다고지적한다.


대규모상비군의무리한유지와러시아군대의이정표

『러시아군대의역사』는러시아의군사사를단순히전략과전술,전투중심의서술에그치지않고,군대의병력충원방식,군대의유지비용그리고군대와사회와의관계에비중을두어서술한다.러시아는역사적으로유례를찾기힘들정도로큰군대를유지했다.2022년에1백만명이넘은러시아군대는인구에견주어여전히크다.강대국이고싶은열망,역사의타성,겉보기와달리기반이허약한지배층으로말미암아군대는국민의경제적복지를희생해서지나치게큰규모와비용으로유지되었다.저자가제기하는두번째핵심주제는‘대규모상비군의무리한유지’이다.
농노제는대규모상비군을낳았는데,이는알렉산드르1세나니콜라이1세가원했던바보다더큰규모였다.1860년대농노해방이되기전까지남자는징집되면더는사회로돌아갈수없었다.젊은병사가풀려나민간인으로살게되면생존기술이없이말썽꾼이되기십상이라우려했기때문이다.만약징집되기전에결혼이라도했다면그의처자식도마을을떠나야했다.농노제가만든사회의풍경이었다.표트르1세때종신이었던군복무기간은후에25년으로줄기는했지만,이는전시는물론평시에도큰규모의상비군이유지되었던이유가되었다.건강이거의망가질때까지병사를군대에붙잡아둠으로써러시아는더작은규모의상비군을뒷받침해줄훈련된대규모예비군을가질수없었다.문제는더꼬였다.예비군이모자라니,조련에시간이드는풋내기신병을징집해야상비군을증원할수있었고따라서상비군규모가평시에도지나치게커야했던것이다.
1850년대크림전쟁의패배로,영국·프랑스연합군에비해농노제기반의러시아군이얼마나취약한지가드러났을때,알렉산드르2세는결국군대개혁을위해지주귀족을제어하여농노해방(1861)을단행했다.농노해방은큰예비군을확보할능력을처음으로만들어내서군대의인력충당방식을근본적으로바꾸었다.25년이던복무기간을6년으로줄였고,복무를마친병사는40세까지재소집될수있었다.그결과,상비군의크기가줄었으며,온갖우발적동원사태를다룰전쟁및동원계획이작성되었다.이밀류틴개혁은러시아의전쟁준비방식을바꾼첫이정표였다.『러시아군대의역사』는이후,볼세비키혁명과붉은군대,스탈린의제병협동전그리고1950년대핵무기까지러시아군대발전의주요이정표를추적한다.


군대의충성심에대한수반들의불안감,장교와병사의사회사

『러시아군대의역사』는2세기에걸쳐러시아군대가공유해온군사전략,교리그리고구조적특징을추적한다.그군사사중에서도장교와병사의부대생활까지러시아군대의내부작동을샅샅이살펴본다.정복당한비러시아계민족의반란과함께군대장교들의충성심에대한지도부의불안감은저자가이책에서지적하는세번째주제다.
‘붉은군대’의저명한역사학자인로저리스는제1차세계대전과1917년2월혁명이장교단의권위를약화시키고병사들의반란을촉발했다는통념에이의를제기한다.그는반란과붕괴의뿌리는농노해방기까지거슬러올라가며,밀류틴개혁이후에도장교단이사회적변화와변화된전문적요구에적응하지못했다고지적한다.장교들은보편적징집이라는새로운모델의군대앞에지도력의기준과관행을향상시키기보다는,고귀한신분과특권에집착했다.장교는부하를군복입은농노로보았고그렇게다루었다.‘가르친다’는말과‘때린다’는말은같은말로쓰였다.장교와병사의관계에서장교는언제나‘바린(지주)’으로남아있었고,병사는언제나‘무지크(농민)’였던것으로,병사는시민이아니라기계적인복종을요구받는존재였다.그대가가1917년에찾아왔다고본다.
소비에트군대에서장교는귀족출신을배제하고모든계급에게장교단의일원이될자격을열어놓았다.장교의사회적지위가높았지만충원에는어려움을겪었다.짜르시대나소비에트시대지도부는장교들의충성심을우려했고그만큼숙청도잦았다.장교단이스스로를제도적정체성과이해관계를지닌단체로여기는인식을키워가는만큼국가에대한장교들의충성도위태로워졌던것이다.한편보리스엘친과블라디미르푸틴은부패를눈감아줌으로써고위장성을부자로만들어군부의충성을확보했다.스탈린처럼푸틴도보안부대와밀착해서군부를틀어쥐었다.


국가수반이최고사령관으로실질적인통수권을행사했다

이러한이유와관행이모여1801년부터2022년대까지러시아의수반들은전근대시기군주가야전에나가는오랜전통을버리지않았다.작전의기획과감독을비롯한군사문제에개입함으로써총사령관의통수권행사를고집했다.
예를들면,2022년우크라이나를침공한러시아군에블라디미르푸틴이도네츠크주마리우폴의아조우스탈공장을철저히봉쇄해서공장안에서버티는우크라이나군의최정예아조우부대를제압하라고명령한것이그예다.이런전통은20세기들어2월혁명으로로마노프왕조가끝날때까지지속되었다.니콜라이2세는제1차세계대전중,1915년에군통수권을주장하며근대를지휘했고스탑카(전선의사령부)에자신이함께있다면병사들과후방의사기를북돋아더큰노력을이끌어낼수있을것이라고생각했다.내전기블라디미르레닌은이따금군사자문관과야전사령관의말을듣지않고인력을배정하고전장의우선순위를정했다.스탈린은권력을행사해서장교단을1927~1928년,1930년,1937~1938년에세차례숙청했고,소련의마지막지도자인미하일고르바초프는합리적충분성’이라는자신의방위교리를채택하도록만들었다.러시아는최고권력자가구체적인군사작전의수립과실행에깊숙이개입하는전통의연장선상에있다는것이리스의분석에서나오는결론이다.
나폴레옹전쟁에서시작한『러시아군대의역사』는러시아의패권을서쪽으로확장하고러시아에서자신의권위주의적통치를굳히려블라디미르푸틴이선택한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에서되풀이되어나타나는러시아군사사의중요한추세를추적할수있게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