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림 회고록 (중국 대륙을 누빈 한 여성 독립 운동가의 일대기)

이화림 회고록 (중국 대륙을 누빈 한 여성 독립 운동가의 일대기)

$20.00
Description
가려진 이름, 불꽃 같은 생애 : 『이화림 회고록』

1. 역사가 잊은 여전사, 이화림을 불러내다
우리는 백범 김구와 윤봉길 의사를 기억한다. 하지만 그들의 위대한 거사 뒤에서 비수를 품고 함께 사선(死線)을 넘나들었던 한 여성의 이름은 오랫동안 역사의 그늘 속에 가려져 있었다. 조선의용군이자 한인애국단의 숨은 주역, 이화림. 이 회고록은 박제된 영웅담이 아니라,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던 한 여성 혁명가의 뜨거운 숨결을 복원해낸 기록이다.

2. 한인애국단의 살림꾼이자 최전선의 감시자
이화림은 단순히 거사를 돕는 조력자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홍구공원 거사 당시, 부부로 위장하여 현장을 사전에 답사하고 삼엄한 일본군의 감시망을 뚫어낸 전략가였다. 폭탄을 품은 동지들의 도시락을 챙기고, 거사가 성공하기까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죽음을 응시했던 그의 증언은 아찔한 긴장감과 함께 독립운동사의 빈틈을 메워준다.

3. 총을 든 의사, 조선의용군의 붉은 별
그의 투쟁은 상하이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화림은 이후 태항산 줄기를 누비며 조선의용군의 일원으로 전장을 누볐다. 의학을 공부하여 전우들의 상처를 치료하는 의사로, 때로는 일제에 맞서 총을 드는 전사로 살았던 그의 삶은 독립운동이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음을 웅변한다. 이 회고록은 여성 독립운동가가 겪어야 했던 이중, 삼중의 고통과 이를 극복해낸 강인한 의지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4. 경계를 넘는 유랑, 끝내 포기하지 않은 조국
해방 이후에도 그에게 안식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분단된 조국의 현실 속에서 그는 경계에 선 국외 유랑자로 살아야 했지만, 단 한 순간도 자신이 조선의 딸임을 잊지 않았다. 평양과 베이징을 거쳐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조국을 그리워했던 그의 회고는 독자들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5. 결론: 이제 우리가 그의 이름을 불러줄 차례
『이화림 회고록』은 슬프지만 아름다운 승리의 기록이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사라진다. 그가 남긴 한 자 한 자의 문장은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얼마나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희생 위에 세워졌는지를 깨닫게 한다. 이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이화림이라는 이름을 우리 역사의 중심부로 모셔와야 한다.
저자

이화림

(李華林)
1905년평양에서태어났다.본명은이춘실(李春實)로숭현소학교를나와숭의여자중학교에서유아교육을공부하였고1919년14세의나이로3·1운동에참여하였다.항일운동에열심이었던오빠들이지하실에서비밀리에전단을만드는것을도왔다.평양의학생조직인역사문학연구회에참가하여사회주의사상을접하게되었다.청진의유아원에근무하면서1927년조선공산당에가입하였다.오빠들은일제의탄압을피해만주로건너가독립군으로무장항일투쟁에참여하였으나이후소식을알수없다.이화림도25살이던1930년상하이로건너가독립운동에참여할길을찾다가김두봉의소개로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일하게되었다.
이화림은한인애국단에들어가이봉창,윤봉길등과활동하였다.김구의비서역할을하면서일제의밀정을색출하는일에도관여하였다.임시정부시절이화림은‘동해’라는가명으로불렸다.중·일전쟁발발후충칭(重慶)에서활동하다가1939년3월구이린(桂林)으로가조선의용대여자복무단(朝鮮義勇隊婦女服務團)의부대장으로임명되어활동하였다.이후타이항산(太行山)항일근거지와옌안(延安)에서활동했다.옌안시기에중국의과대학에입학해학습하던중해방을맞았고학업을마친후에는옌볜으로가의료활동과공직활동으로조선족권익향상을위해노력했다.한국전쟁시기에는북한군으로파견되어의료지원활동을했다.북한군으로의활동은이화림의독립유공자서훈에결정적장애요인이되었다.중국문화대혁명때에는반동분자로낙인찍혀10년간고초를겪기도했다.말년의여생은중국의다롄에서보냈다.1999년2월,모든재산을조선족사회에기부하고소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