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는오래전부터알려진문명이아니라
최근에야읽히기시작한문명이다
우리가이집트를떠올릴때마주하는피라미드,미라,투탕카멘,클레오파트라같은강렬한이미지들은대개고대문명에집중되어있다.그러나이집트의역사는클레오파트라의죽음으로끝나지않았다.오히려그이후이집트는로마제국의지배,기독교의확산,이슬람세계로의편입,오스만제국과영국의영향,그리고현대이집트공화국의성립에이르기까지수많은변화를겪으며계속이어졌다.
흥미로운점은우리가익숙하게떠올리는고대이집트문명조차오랫동안‘보이는유적’에머물러있었다는사실이다.신전과피라미드는남아있었지만그안에새겨진상형문자는수세기동안해독되지못한채침묵속에묻혀있었다.1799년나폴레옹의이집트원정과정에서로제타석이발견되고1822년프랑스학자장프랑수아샹폴리옹이상형문자해독에성공하고나서야비로소이집트는잃어버린언어를되찾기시작했다.『아주짧은이집트사』는바로이지점에서출발한다.‘보이는문자’가‘읽히는문자’로해독된순간파라오와사제들의세계속에가려져있던평범한사람들의삶과제도가복원되었다.저자들은이극적인부활의서사를시작으로복잡하게얽힌이집트5,000년사의대동맥을5가지나침반을통해마스터할수있도록안내한다.
나일강의축복에서현대중동의핵심국가까지
이집트사를관통하는5가지나침반
첫번째나침반은‘통일과파라오의개창’이다.기원전3100년경상이집트와하이집트의오랜분열을끝낸초대왕나르메르의이야기부터출발한다.‘나르메르팔레트’에새겨진통일의정체성이어떻게고왕국의절대왕권으로이어졌는지,그리고노예의강제노역이아닌농한기농민들의조직적봉헌으로세워진기자대피라미드건축의과학적비밀과행정체계의진실을현대고고학적근거를바탕으로명쾌하게추적한다.
두번째나침반은‘천년의침묵과해독’이다.클레오파트라7세의죽음으로프톨레마이오스왕조가멸망하고로마의속주가된이집트가외세의지배속에서어떻게정체성을잃고침묵속에잠겨갔는지살펴본다.헤로도토스와마네토가세워둔역사적뼈대위에나폴레옹의원정단이남긴학문적기록과로제타석의기적이어떻게고대이집트를‘연구가능한역사’로끌어올렸는지그짜릿한해독의과정을펼쳐보인다.
세번째나침반은‘이슬람제국의보루’이다.로마와비잔틴제국의지독한교리갈등속에서박해받던독자적전통의콥트기독교시대를지나7세기아라비아반도에서진입한이슬람세력과의만남을다룬다.시아파파티마왕조가세운승리의도시‘카이로(알카히라)’의탄생,십자군을무너뜨리고예루살렘을탈환한수니파의영웅살라딘,그리고몽골의불패신화를멈춰세우며이슬람문명을수호한전쟁노예출신의군주‘맘루크’의잔혹하고도찬란한연대기가입체적으로그려진다.
네번째나침반은‘수에즈운하와자주독립의꿈’이다.19세기초오스만제국의지배세력이던맘루크를학살하고권력을장악한‘근대화의아버지’무함마드알리파샤의야망을다룬다.고대유물인오벨리스크를외교카드로활용하며유럽열강과대등한근대국가를건설하려했던그의기틀위에서수만명이집트농민들의강제노역과피땀으로건설된수에즈운하의비극을파헤친다.화려한개통식뒤편에서거대한채무의늪에빠져영국의지배라는가혹한부메랑으로돌아온이집트잔혹사는자주독립의꿈이어떻게좌절되었는지생생하게증언한다.
다섯번째나침반은‘현대공화국의도전과혁명’이다.1952년부패한왕정을무너뜨린자유장교단의혁명과가말압델나세르의등장을다룬다.냉전의틈새를공략해수에즈운하국유화를단행하고‘현대판피라미드’인아스완하이댐을건설한나세르의빛과그늘,아랍의금기를깨고이스라엘과평화협정을맺었다가암살당한사다트,그리고안정이가져온침체속에서권력세습을시도하다가2011년타흐리르광장의거대한함성앞에무너진호스니무바라크의30년독재종말까지현대이집트의격동을완벽하게마스터할수있다
스토리텔러와언론인의만남,
가장완벽하고유쾌한문명사가이드
이책의가장큰매력은저자들의독보적인전문성과현장감에있다.단돈40만원을들고이집트로향해다합과카이로에서수년간현장을발로뛰며기독교성지순례,고대사,현대문화에능통한베테랑가이드로자리잡은양보미의생생한현장경험이글곳곳에녹아있다.여기에한국을사랑하는중동전문가이자날카로운국제정세분석가인언론인알파고시나씨의통찰이더해졌다.
특히저자들은아스완하이댐의건설이단순한토목공사가아니라댐한곳이타격을받으면국가전체가마비될수있다는‘단일취약점’의공포를해소하기위한고도의안보적리스크분산전략(토슈카프로젝트)이었다는거시적분석을제시하며역사적인과관계를매끄럽게연결해낸다.또한중동전쟁의소용돌이속에서피로맺어졌던이집트와북한의기묘한혈맹관계등기존역사서에서쉽게볼수없었던흥미진진한비화까지거침없이풀어낸다.
왜지금이집트를읽어야하는가
한나라의흥망성쇠가세계사의흐름을보여준다
이집트를읽는다는것은오래된문명의유적을살펴보는일에그치지않는다.이집트의역사는한사회가어떻게힘을얻고,왜흔들리며,어떤조건에서다시자신을재구성하는지를보여준다.자연환경의축복이언제까지나번영을보장하지는않으며중요한위치에있다는사실도스스로를지킬힘이없을때는오히려위기가될수있다.
이집트는세계사의여러질문이반복해서지나간자리다.강한중앙권력은어떻게만들어지는가.제국은왜특정지역을차지하려하는가.종교와언어가바뀌면한사회의정체성도완전히사라지는가.근대화는언제발전이되고,언제외세의존과부채의통로가되는가.혁명은한사회를어디까지바꿀수있는가.
『아주짧은이집트사』는이런질문들을이집트라는한나라의긴시간을통해따라가되사건의순서를알려주는데서멈추지않는다.한문명이어떻게제도를만들고,외부질서속에서흔들리며,종교와권력의변화속에서도새로운국가로재편되는지를보여준다.
강대국사이에서생존과발전을고민해온한국독자에게도이집트는중요한비교의시선을제공한다.『아주짧은이집트사』는이집트를통해국가의운명,문명의생명력,그리고시대변화에대응하는힘을다시생각하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