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책 - 교유서가 시집 4

소설책 - 교유서가 시집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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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기혁

저자:기혁
한국예술종합학교서사창작과를졸업하고동국대학교국어국문학과대학원에서박사과정을수료했다.2010년시인이된이후,2013년문학평론가로도이름을올렸다.첫시집『모스크바예술극장의기립박수』로2014년제33회김수영문학상을받았으며,2018년두번째시집『소피아로렌의시간』을출간했다.라임(lime)처럼상큼한책을파는1인출판사[리메로북스(limerobooks)]에서노조위원장을맡고있다.LP음반과진공관앰프를좋아하고,스토리가공과신상막걸리에관심이많다.

목차

시인의말

1부│비소설(非小說)

꽃무늬를새기다
현대시작법
물고기가아니다
천렵
투명
신파소설
7월이야기
내일여름,두번째천변에서
숨은신
상견례
민음사세계문학전집
바벨아파트
의미가변하지않는문장들
내면에사막을들인자의은유위로EC002가떨어질때
천사가입던옷팝니다
디자이너
유실된여름으로만든전집
일기예보
테디베어
밝은방
치킨런

2부│조리부조리비조리간편조리

장르
작가주의
소설책
비소설
모던소설타임스
연연(戀戀)
비소설(非小說)적망상의보관함이멸망한인류의마지막유품으로습득될때
혀의아포리아
연행(演行)
부당거래
소설책의쓰임

3부│미소설(未小說)

시인은독사의머리를밟고
소설적얼음
에스키모
문학연구자
액자식구성
경종
생년월일
점화(點火)
밤의징조와유령들
멜로드라마
북토크
지우개를잃고소설가는쓰네
소설가코스프레
탈고
소설가
독자와목차
서평가
우리모두는비상시국이었다

해설
레이어드모노포니-조강석(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현실을초과하는비상(非常)한세계,
“사실시는사기가아니라겹치기야”

시집의중심을관통하는핵심기제인‘레이어드(layered)’의감각은이시집을‘경험하는지층’으로변모시킨다.여기서겹침은현실에접근하는방식이자시집전체를지탱하는구조다.서로다른시간,서로다른언어,서로다른발화의층위가하나의장면에포개지며,단일한진실로는포착할수없는세계의무게를드러낸다.

1부‘비소설(非小說)’에서시인은소설이되지못한세계의파편들을정밀하게관찰한다.「현대시작법」에서짐승의뼈를갈아물고기를잡으려는인디언의행위와“대책없는소설가의미끼”를대조하며언어의진실을탐구하고,「바벨아파트」에서는“상상력이있던자리에자본이라는이름이내걸”린풍경을통해소설적근거를잃어가는현대의공간을포착한다.또한「투명」에서묘사되는“금이간세계속/금이간사람들”은부서진채로현재를버텨내는존재들을가시화한다.

장기가뼈를입고뼈가피부를입고피부가옷을입고옷이나를입고
그러니까나
레이어드룩(layeredlook)으로완성됐지
_「비소설(非小說)적망상의보관함이멸망한인류의마지막유품으로습득될때」

2부‘조리부조리비조리간편조리’는자본의시스템과속도가시의형식을어떻게변주하는지보여준다.시집의핵심인장시「비소설(非小說)적망상의보관함이멸망한인류의마지막유품으로습득될때」는이지점에배치되어현실의파열음을쏟아낸다.시인은인간을“장기가뼈를입고뼈가피부를입고피부가옷을입고옷이나를입”은존재,즉“레이어드룩(layeredlook)으로완성”된존재로명명한다.이거대한보관함속에는신문기사의헤드라인,계엄령의기억,당근마켓사기꾼의사연등이층층이쌓여있다.이어지는「소설책의쓰임」은소설책이‘방탄복’이나‘벌레잡기’처럼세속적이고실용적인도구로사용되는목록을나열하면서,고정된예술의권위를무너뜨리고소설의물성이지닌뜻밖의활력과아이러니를보여준다.

3부‘미소설(未小說)’은결말에도달하지못한감정들즉“아직소설이되지못한”날것의상태를집요하게추적한다.「소설적얼음」과「에스키모」에서시인은아직이야기로굳지않은정동,말이되기직전의감각을붙든다.“당신이사랑대신얼음을주었더라면”이라는가정은감정을완결하기보다차가움과열기가동시에존재하는긴장을유지하게한다.특히「우리모두는비상시국이었다」는2024년12월의역사적사건을직접호명하며우리가딛고선현실이결코계엄을푼적없는팽팽한긴장상태임을상기시킨다.

비상시국을통과하는‘레이어드모노포니’,
다성적혼란을견지하는발화의조건

여름의초록이검정이될때까지
검정의내부가한없는투명의겹침이될때까지
젖음의모노포니는내일에만들리는신청곡같은것

가능성이라는말,이따금슬픔으로향하는강가에서
당신의어깨를만진다
수북하게쌓인우주의먼지를툭툭
떨어보는것이다
_「내일여름,두번째천변에서」

해설에서조강석평론가는기혁의시가보여주는이복잡한층위를‘레이어드모노포니’라는개념으로포착해냈다.수많은현실의잡음과이질적인정보들이겹겹이쌓여있음에도불구하고그것이시인의치열한언어적조율을거쳐결국하나의명료한선율로수렴된다는것이다.

이모든겹침의끝에서『소설책』이도달하는지점은다성적인혼란을그대로끌어안으면서도그혼란에함몰되지않는발화의상태다.소설보다더기묘한현실,매일같이업데이트되는비정한뉴스들속에서시인은“우리모두는비상시국이었다”라고선언한다.『소설책』이라는반어적인제목아래에서소설과비소설과미소설은선택지라기보다동시에작동하는조건이된다.우리가발딛고선세계는하나의양식으로환원되지않고,투명한거울대신불투명한층위를겹쳐입은상태로만지속된다.이시집은그러한조건을해소하기보다끝까지견지한다.결론을향해나아가기보다는체류의상태를유지하며,완결된해답대신우리가딛고선현실의지층이얼마나위태롭고복합적인지드러낸다.겹겹이쌓인아이러니와슬픔속에서솟아나는시집의문장들은우리가애써외면해온현실의국면들을다시가시화한다.픽션의형식을경유하지만현실을해석하거나봉합하고,불안정한상태는끝내정리되지않은채로남는다.그불안정성자체가이시집이끝까지포기하지않는발화의조건이다.


소설속시인처럼
분열의안락에취해본다

“술이든,시든,덕이든,당신마음대로”

결말을상실한분리기(分離器)로서의세계가
보들레르의두눈을후려칠때

진실은거대한숙취의쓰임새이다
-「시인의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