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책

소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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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소설이 삶을 비추는 거울이라면
잔뜩 멋을 부리고 화장부터 해야겠지”

‘비소설’과 ‘미소설’이 포개지는 세계,
그 금이 간 현실의 표면을 더듬는 시적 발화
일상에 신선한 감각을!
교유서가, ‘새로움’에 ‘시’를 더하다!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인 기혁의 신작 시집

“이 레이어드 모노포니는 수평적 확장 대신 수직적 중층을 획득한다. 기혁의 시가 들끓으며 고요하고 우글거리며 명료한 까닭이다.”
_조강석(문학평론가)

제33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기혁 시인의 새 시집 『소설책』이 ‘교유서가 시집’ 시리즈 4번으로 출간된다. 시집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 『소피아 로렌의 시간』 『다음 창문에 가장 알맞은 말을 고르시오』로 시, 비평, 현실 감각을 가로지르는 독자적인 언어를 구축해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소설’이라는 양식을 정면으로 호출한다. 이 시집은 1부 ‘비소설(非小說)’, 2부 ‘조리 부조리 비조리 간편 조리’, 3부 ‘미소설(未小說)’이라는 구성으로 소설과 시, 허구와 현실, 작가와 독자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느슨하게 만든다. 이 독특한 목차는 우리가 발 디딘 현실이 이미 양식의 문법을 이탈해버린 비상시국임을 선언한다. 시인은 “소설이 삶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통념을 호출하면서도 그 거울 앞에 있는 그대로 서는 대신 “잔뜩 멋을 부리고 화장”한 얼굴로 등장한다. 그는 문장을 고치기보다 “문장의 나사를 연기”하는 배우가 되기를 택한다. 이는 상상력이 현실을 앞지르던 시대가 끝난 자리에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세계를 견디기 위한 시인의 서늘한 태도다.
저자

기혁

1979년경남진주출생.2010년〈시인세계〉신인상시부문,2013년〈세계일보〉신춘문예평론부문으로등단했다.
시집으로『모스크바예술극장의기립박수』『소피아로렌의시간』『다음창문에가장알맞은말을고르시오』가있다.
제33회김수영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비소설(非小說)
꽃무늬를새기다
현대시작법
물고기가아니다
천렵
투명
신파소설
7월이야기
내일여름,두번째천변에서
숨은신
상견례
민음사세계문학전집
바벨아파트
의미가변하지않는문장들
내면에사막을들인자의은유위로EC002가떨어질때
천사가입던옷팝니다
디자이너
유실된여름으로만든전집
일기예보
테디베어
밝은방
치킨런

2부│조리부조리비조리간편조리
장르
작가주의
소설책
비소설
모던소설타임스
연연(戀戀)
비소설(非小說)적망상의보관함이멸망한인류의마지막유품으로습득될때
혀의아포리아
연행(演行)
부당거래
소설책의쓰임

3부│미소설(未小說)
시인은독사의머리를밟고
소설적얼음
에스키모
문학연구자
액자식구성
경종
생년월일
점화(點火)
밤의징조와유령들
멜로드라마
북토크
지우개를잃고소설가는쓰네
소설가코스프레
탈고
소설가
독자와목차
서평가
우리모두는비상시국이었다

해설│레이어드모노포니│조강석(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시를쓰는나는이쯤에서소설책의제목을지우기로한다.
출판사명과출간일자도.무엇보다

도무지소설로서존재할수없는주인공과그의투명한의자를그만돌려주려한다.
_「소설책」

표제작「소설책」에서백지위에덩그러니앉은주인공은자신을지켜보는독자의시선을의식한다.시인은“금이간현실에덧칠한형형색색/환대”를응시하고,비극을희극의태도로견뎌내는역설의윤리를제시한다.주인공이백지위에가만히앉아있듯시인은리얼리즘의거울이산산조각난이기묘한무대위에서진실해지기위해거짓말즉소설을연기한다.이때시는삶을재현하는도구라기보다는삶이라는무대를다시꾸미는장치가된다.이것은감당할수없는현실의비정함을견뎌내기위한시인만의위악이자투쟁이다.시속의화자들은소설속인물처럼의자에앉아있고,46억년전의운석을기억하며,겹겹이옷을입은채환멸과환대사이를유령처럼오간다.이들에게허구는도피처가아니라어느알수없는진실에접근할수있는하나의통로가된다.

현실을초과하는비상(非常)한세계,
“사실시는사기가아니라겹치기야”
시집의중심을관통하는핵심기제인‘레이어드(layered)’의감각은이시집을‘경험하는지층’으로변모시킨다.여기서겹침은현실에접근하는방식이자시집전체를지탱하는구조다.서로다른시간,서로다른언어,서로다른발화의층위가하나의장면에포개지며,단일한진실로는포착할수없는세계의무게를드러낸다.
1부‘비소설(非小說)’에서시인은소설이되지못한세계의파편들을정밀하게관찰한다.「현대시작법」에서짐승의뼈를갈아물고기를잡으려는인디언의행위와“대책없는소설가의미끼”를대조하며언어의진실을탐구하고,「바벨아파트」에서는“상상력이있던자리에자본이라는이름이내걸”린풍경을통해소설적근거를잃어가는현대의공간을포착한다.또한「투명」에서묘사되는“금이간세계속/금이간사람들”은부서진채로현재를버텨내는존재들을가시화한다.

장기가뼈를입고뼈가피부를입고피부가옷을입고옷이나를입고
그러니까나
레이어드룩(layeredlook)으로완성됐지
_「비소설(非小說)적망상의보관함이멸망한인류의마지막유품으로습득될때」

2부‘조리부조리비조리간편조리’는자본의시스템과속도가시의형식을어떻게변주하는지보여준다.시집의핵심인장시「비소설(非小說)적망상의보관함이멸망한인류의마지막유품으로습득될때」는이지점에배치되어현실의파열음을쏟아낸다.시인은인간을“장기가뼈를입고뼈가피부를입고피부가옷을입고옷이나를입”은존재,즉“레이어드룩(layeredlook)으로완성”된존재로명명한다.이거대한보관함속에는신문기사의헤드라인,계엄령의기억,당근마켓사기꾼의사연등이층층이쌓여있다.이어지는「소설책의쓰임」은소설책이‘방탄복’이나‘벌레잡기’처럼세속적이고실용적인도구로사용되는목록을나열하면서,고정된예술의권위를무너뜨리고소설의물성이지닌뜻밖의활력과아이러니를보여준다.
3부‘미소설(未小說)’은결말에도달하지못한감정들즉“아직소설이되지못한”날것의상태를집요하게추적한다.「소설적얼음」과「에스키모」에서시인은아직이야기로굳지않은정동,말이되기직전의감각을붙든다.“당신이사랑대신얼음을주었더라면”이라는가정은감정을완결하기보다차가움과열기가동시에존재하는긴장을유지하게한다.특히「우리모두는비상시국이었다」는2024년12월의역사적사건을직접호명하며우리가딛고선현실이결코계엄을푼적없는팽팽한긴장상태임을상기시킨다.

비상시국을통과하는‘레이어드모노포니’,
다성적혼란을견지하는발화의조건

여름의초록이검정이될때까지
검정의내부가한없는투명의겹침이될때까지
젖음의모노포니는내일에만들리는신청곡같은것

가능성이라는말,이따금슬픔으로향하는강가에서
당신의어깨를만진다
수북하게쌓인우주의먼지를툭툭
떨어보는것이다
_「내일여름,두번째천변에서」

해설에서조강석평론가는기혁의시가보여주는이복잡한층위를‘레이어드모노포니’라는개념으로포착해냈다.수많은현실의잡음과이질적인정보들이겹겹이쌓여있음에도불구하고그것이시인의치열한언어적조율을거쳐결국하나의명료한선율로수렴된다는것이다.
이모든겹침의끝에서『소설책』이도달하는지점은다성적인혼란을그대로끌어안으면서도그혼란에함몰되지않는발화의상태다.소설보다더기묘한현실,매일같이업데이트되는비정한뉴스들속에서시인은“우리모두는비상시국이었다”라고선언한다.『소설책』이라는반어적인제목아래에서소설과비소설과미소설은선택지라기보다동시에작동하는조건이된다.우리가발딛고선세계는하나의양식으로환원되지않고,투명한거울대신불투명한층위를겹쳐입은상태로만지속된다.이시집은그러한조건을해소하기보다끝까지견지한다.결론을향해나아가기보다는체류의상태를유지하며,완결된해답대신우리가딛고선현실의지층이얼마나위태롭고복합적인지드러낸다.겹겹이쌓인아이러니와슬픔속에서솟아나는시집의문장들은우리가애써외면해온현실의국면들을다시가시화한다.픽션의형식을경유하지만현실을해석하거나봉합하고,불안정한상태는끝내정리되지않은채로남는다.그불안정성자체가이시집이끝까지포기하지않는발화의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