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만큼 성실하게

이자만큼 성실하게

$16.00
Description
“여기, 세상을 24조각으로 나누어 살다 간 천재 잠들다”

실소와 냉소의 변주, 그리고 지적 통쾌함까지
이소호 첫 장편소설 『이자만큼 성실하게』
“내가 당한 사기는 내 인격의 결함이 아니라,
시인이 가져야 할 숙명적인 예민함이 치른 대가였다.”

2014년에 등단하여, 2018년에 제37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고, 2022년 PEN America 문학상 번역 시 부문 롱리스트(tr. soje), 2025년 스톡홀름 국제시 페스티벌에 초청받았다. SF·근미래 노벨라를 써오던 이소호가 첫 오토픽션 장편으로 돌아왔다. 한 해에 시집·산문집·소설을 모두 내는 다장르 작가의, 가장 초현실적인 디스토피아. 이번 무대는 미래가 아니라 빚이다.

이 작품은 빚이라는 현실을 맞닥뜨린 한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며 통과하는지를 보여준다. SF가 사라진 자리에 빚이 들어왔고, 디스토피아 대신 현실이 등장했는데, 오히려 더 기괴하고 더 웃기다. 화자는 동정받는 인물이 아니다. 죽음마저 수금으로 쓰고, 가족에게 내미는 구조 요청을 119·112로 환산하며, 명품 매입을 잠입 미션으로 게임화하는 뻔뻔한 또라이다. 심지어 자신의 지독한 소비와 구질구질한 현실을 합리화하기 위해 온 세상의 철학자와 논문까지 싹 끌고 와 궤변을 늘어놓는다. 사전에 미리 읽은 다수의 독자가 주인공 수진을 불쌍해하는 대신 웃었다. 이번 작품은 삶이 우리를 궁지로 몰 때 언어와 유머가 얼마나 강력한 무기가 되는지 보여주는 블랙코미디 소설이다.
저자

이소호

2014년〈현대시〉를통해등단했으며,제37회김수영문학상을수상했다.쓴책으로는시집『캣콜링』『불온하고불완전한편지』『홈스위트홈』,영어번역본『Catcalling』,소설『나의미치광이이웃』『세평짜리숲』,산문집『시키는대로제멋대로』『나를사랑하지않는사람에게』『서른다섯,늙는기분』『쓰는생각사는핑계』등이있다.

목차

프롤로그
1부빚지기
2부빚치기
에필로그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신용카드는내인생의화려한개막을알리는또다른신호탄이었다.흰노트북을가방에넣고퇴근하는길,나는드디어광고주에게서내조사를되찾아온개선장군이자,세상에서가장세련된승리자였다.

와,나진짜개똑똑하네.
앞으로나눠서사면되겠다.

집으로돌아와우아하게노트북의자판위에내비극을또박또박타이핑하기시작했다.나는다른시인들이랑은다르게살거야.
그노트북으로쓴첫줄은문학의주춧돌이아니었다.
내무덤위에세울화려한비석의첫장이었다.

“여기,세상을24조각으로나누어살다간천재잠들다.”(본문42-43쪽)

“쇠금(金),해칠잔(戔).돈(錢)은무기다.”
‘돈’으로환원되어숫자로정의되는가치들

조부는알래스카에서연어배를갈라번목숨값으로가족의평수(상가건물과집)를지어주었고,그의딸미경은그성의벽돌을뽑아학교에서왕따를당하는딸수진(주인공)을위해백화점에서카드를긁는다.그리고대학졸업후광고회사를다니던수진은“누구의검열도받지않는문장,내마음대로‘은’을쓰고‘를’을갖다붙여도아무도지랄하지않는나만의완벽한영토”를만들어줄노트북을사기위해생애처음으로카드를만든다.두번째결제는광고주가그녀의카피에긋던색깔과같은빨간립스틱이다.이제카드는엄마의마법이아닌수진의자부심이되고미래를꿈꿀발판이자스스로를위로하기위해택시를타고명품을사고,스스로를“구원”할수있는또다른“마법”이된다.

내가빚을진것도,정민에게털린것도사실은내가너무순수했기때문이었다.사람을믿지않고서는시를쓸수없으니까.세상을사랑하지않고서는문장을지을수없으니까.프라다백을사면서도나는순수했다.일하는여성의혁신,나일론을놓칠순없으니까.디올구두를신으면서도나는고결했다.뉴룩이여성해방의역사라는걸아는사람만아니까.내가당한사기는내인격의결함이아니라,시인이가져야할숙명적인예민함이치른대가였다.(본문121쪽)

그렇게해서매월14일,어김없이성실하게돌아오는결제일을위해빚과맞짱뜨는수진의이야기가이어진다.수진은“매일손가락을묶고숨을참으며”또다른소비참사를간신히막아내고,“이자만큼성실하게”시를쓰고,성실하게아르바이트를하고,성실하게잔고를체크하고,앱테크를통해1원,10원,100원을끌어모으고,자체승인으로미래의유산까지미리가불해빚을갚는다.10년우정의배신이나할아버지의죽음앞에서도14일은한치의오차도없이도착하니까.피해갈수없는그시간과맞짱을뜨는동안수진의말발은더욱현란해지고,문장은점점더날카로워진다.

가족은여러번수진의구조요청을도왔다.119처럼.112처럼.아낌없이출동했다.
수진아이번엔내가죽는다내가,하고아빠도엄마도동생도울었다.
수진도알겠어하고울었다.
진심이었다.그순간만큼은.

반복됐다.

알겠어.울음.입금.알겠어.울음.입금.알겠어.울음.입금.

악어도이정도로울면탈수로죽는다.(본문167쪽)

실소를날리고냉소를가두는,
기존블랙코미디문법에대한전복

주인공은매달조금의배려도없이찾아오는결제일하루를위해바치는“이자만큼성실”한한달동안,세상을관찰하고,사물에의미를부여하고,자신에게닥친곤란마저엉뚱한논리와상상력으로변주해낸다.소설속에서‘빚’은주인공의사유를움직이는하나의계기이며,세상을다른각도에서바라보게만드는렌즈에가깝다.카드사와의관계,영수증한장,통장잔고의숫자같은지극히현실적인소재들은시인의손을거치며예상밖의웃음을만들어낸다.주인공의‘당당한삐딱함’이만들어내는이웃음은이번소설의가장큰매력이다.냉소와자조를넘어서삶을끝까지관찰하려는태도에서비롯되는웃음말이다.

주인공은끊임없이생각하고,상상하고,우회하며현실을통과해나간다.인세가스쳐지나갈뿐인통장잔고를들여다보며그현실을기어코언어로비틀고,철학으로합리화하고,유머로폭파한다.물기없는시선으로무심하게비트는저자의상상력은웃음과함께단한번도경험하지못한페이소스를전한다.그과정에서탄생하는문장들은때로는날카롭고,때로는황당하며,때로는뜻밖의통찰을선사한다.이소설은언어와유머가우리삶에서얼마나강력한무기가될수있는지를보여주는블랙코미디다.그리고그무기는예상보다훨씬웃기고,통렬하고,강력하다.연신웃음을터뜨리며읽다보면어느새주인공의세계에깊이발을들이게된다.그리고마지막페이지를덮고나면,세상을바라보는시선이아주조금달라져있음을발견하게될것이다.

서사만큼파격적인시각적실험,독보적인북디자인과본문
표지그림:미술가임아진의시선으로구현한화자의‘당당한삐딱함’
퀴어성과신체성을주제로회화,사진,조형,퍼포먼스를넘나들며예술계에서주목받는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RISD)출신의미술가임아진이직접표지화를그렸다.
거친질감속에담긴붉은얼굴과짙은선글라스의대비가주인공‘수진’의삐딱함을그대로옮긴듯표현했다.
본문디자인:활자를넘어입체적인파격을선사하는인쇄형식
단순한텍스트배치를넘어,화자의심리적압박과소설의블랙코미디적요소를극대화하기위해가짜논문과거지단톡방,탄원서등위트있는양식을시각적으로배치했다.

이자보다성실하게가슴을파고드는문장들
·잘나가면서돈없는게가능해.언니가증명이야.살아있는증거.
·초판1쇄는영원했다.나보다오래살것같았다.
·악플보다무서운무플을경험했다.까이지도못하는시인.안티도없는시인.나는무의경지에도달했다.
·명예는보이스톡으로선불제처럼날아오는데,현금은지독하게후불제다.
·영광이30만원이면좋겠다.
·순수예술이널보니까밥을먹여주지는않겠네.
·“한편당8,000원,치킨한마리가2만3,000원인데.언니가50편읽고치킨열일곱마리값을벌었어.”
·“치료에는쇼핑만큼돈이든다.(…)나는의사와상담사에게묻는다.이것도중독이잖아요.”
·구글맵과베를린의진실:“구글에의심을거두지못한나는결국소설을다완성하고도베를린으로갔다.·(…)구글맵이다맞았다.(…)아.돈지랄만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