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신문 사진을 싸이월드 사진처럼 바꾸고 싶다’ 20년 전 신문사에 입사하며 했던 다짐이었다. 대학생이 보기에 신문 사진은 늘 딱딱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이용자가 3천만 명이 넘었던 소셜미디어 ‘싸이월드’에 유행하던 감성적인 사진과 글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에 반해 신문 사진은 차갑게 느껴졌다. 신문사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며 왜 신문 사진이 그렇게 보였는지 깨닫게 됐다. 보도사진의 첫 번째 목적은 독자들에게 현장을 전달하는 것인데, 한 컷으로 현장을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사진에 설명적 요소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현장에서 기자의 시선은 이성적이고 냉정해야 한다. 사진기자를 하며 그렇게 나도 ‘딱딱한 사진’을 찍는 데 익숙해져갔다.
대학교 동아리에서 수동 카메라에 흑백 필름을 끼우고 처음 셔터를 눌러봤다. 서강대학교 사진동아리 ‘서광회’는 신입생 때 사람 사진을 찍는 것부터 시작하는 전통이 있었다. 피사체로서 사람과 마주하는 방법부터 익히는 것이다. 내 카메라 너머에 있는 사람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내면까지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방법을 그때 배웠다. 대학 생활 내내 학교를 다니며 마주친 순간과 사람들을 촬영하고 글을 써서 싸이월드에 포토에세이를 연재하는 게 작은 낙이었다. 지금 보면 지나칠 정도로 감성적인 포토에세이였지만, 당시 싸이월드 감성에는 딱 어울렸던 모양이다. 포토에세이가 유명세를 타면서 싸이월드에서 하루에 한 명씩 선정하는 ‘투데이 멤버’에 선정되기도 했다. 글 쓰는 게 좋아서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떠올려보면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글로 풀어내는 걸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사진기자는 현장에 갈 때마다 수백 장의 사진을 찍는다. 어떤 사진이 지금 이 현장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을지 정답을 찾을 때까지 구도와 렌즈를 쉴 새 없이 바꿔가며 셔터를 누른다. 그중에 신문에 게재되는 건 단 한 장뿐. 선택된 사진 ‘A컷’만 신문에 실리지만, 신문에 게재되지 않은 ‘B컷’들에도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기록하지 않으면 잊힐 사진들. 그래서 B컷들을 소셜미디어에 글과 함께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말뉴스부에 있던 김미리 선배가 찾아와 따뜻한 커피를 사주며 제안했다. “신문에 나가는 사진보다 페이스북의 말랑말랑한 사진과 글이 더 좋은데, 그거 신문에 매주 연재하면 어떨까?” 순간, 처음 사진기자를 시작했을 때 했던 다짐이 생각났다. 싸이월드 같은 사진. 그래서 고민 없이 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김 선배의 제안으로 토요일자 조선일보 지면에 사진 칼럼 코너가 생겼고 당시 주말뉴스부장을 맡았던 어수웅 선배가 ‘오종찬 기자의 Oh!컷’이라는 명패를 달아줬다. 환희와 고통이 교차하는 길고 긴 고난의 행군이 될 거라는 걸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사진 칼럼을 쓴다는 건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글과 사진 모두 완성돼야 하나의 사진 칼럼이 탄생한다. 평소에는 한없이 ‘친절한 오기자’지만 일을 할 때만큼은 완벽주의자로 돌변. 글은 좋은데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사진은 좋은데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취재를 했음에도 버려진 칼럼이 하나 둘 쌓여갔다.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아 해남 땅끝마을까지 장장 8시간 차를 몰고 찾아갔다가, 사진이 안 돼서 포기하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새로운 아이템을 찾기 위해 매주 피 말리는 고민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Oh!컷’ 연재 횟수가 늘어날수록 내공이 쌓여갔다. 남들이 보지 못했던 순간들이 눈에 띄었고, 따스한 시선으로 담을 수 있는 소재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다양한 분야를 ‘Oh!컷’에 다루고 싶었다. 사람을 비롯해서 사회, 문화, 예술, 자연 등 분야를 바꿔가며 주제를 찾았다. 새로운 시선의 사진을 보여주고 싶어서 자주 드론을 활용해 하늘에서 세상을 내려다봤다.
놀라운 변화도 생겼다. 연재한 지 몇 해가 지나자 든든한 지원군이 생기기 시작했다. ‘Oh!컷’을 눈여겨보던 독자들이 아이템을 제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국을 다니며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다닌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 지자체에서 연락해와 숨은 명소들을 알려줬다. 여러 기업에서는 산업 현장의 ‘포토제닉’한 소재와 그에 얽힌 이야기가 생길 때마다 ‘Oh!컷’ 아이템으로 추천했다. 취재하며 알게 된 많은 취재원들도 ‘Oh!컷’으로 좋은 소재가 있다며 수시로 제보를 했다. 특히 타 언론사 기자 동료들의 제보는 뜻깊게 느껴졌다. 경쟁 언론사임에도 불구하고 ‘Oh!컷’에 적합하다며 아이템을 추천해 주는 모습들. 같은 사진기자로서 진심으로 응원해 주고 있다는 생각에 뭉클한 적도 많았다.
2018년 시작했던 ‘Oh!컷’은 5년 8개월간 총 265회 연재를 끝으로 사진부장을 맡게 된 2024년 막을 내렸다. 하루 종일 신문사 안에서 데스킹을 하는 역할을 맡다 보니, 현장을 돌아다닐 기회를 만들기 어려웠다. 부서장 승진 축하 인사보다 ‘Oh!컷’을 더 이상 못 보게 돼 아쉽다는 말을 더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마지막 연재를 마치고 지난 5년 8개월을 되돌아봤다. 연재의 압박에서 해방됐다는 후련한 마음과 아쉬운 마음이 교차했다. 그동안 취재하며 마주한 순간들과 많은 사람들을 떠올리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Oh!컷’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동료 선후배들에게 그리고 소중한 주말과 휴일에도 ‘Oh!컷’을 하러 떠나는 먼 길에 기꺼이 동행해 준 아들과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Oh!컷’은 꼭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 내 이름을 걸고 오랜 기간 연재했던 결과물에 대한 기록과 함께 다채로운 콘텐츠가 담긴 ‘잘 만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대학생 때 친구에게 선물 받았는데 지금도 내 서재에 꽂아두고 꺼내보는 책들이 있다. 이 책이 두고두고 소장하고 싶은 책,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 되길 바라며.
대학교 동아리에서 수동 카메라에 흑백 필름을 끼우고 처음 셔터를 눌러봤다. 서강대학교 사진동아리 ‘서광회’는 신입생 때 사람 사진을 찍는 것부터 시작하는 전통이 있었다. 피사체로서 사람과 마주하는 방법부터 익히는 것이다. 내 카메라 너머에 있는 사람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내면까지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방법을 그때 배웠다. 대학 생활 내내 학교를 다니며 마주친 순간과 사람들을 촬영하고 글을 써서 싸이월드에 포토에세이를 연재하는 게 작은 낙이었다. 지금 보면 지나칠 정도로 감성적인 포토에세이였지만, 당시 싸이월드 감성에는 딱 어울렸던 모양이다. 포토에세이가 유명세를 타면서 싸이월드에서 하루에 한 명씩 선정하는 ‘투데이 멤버’에 선정되기도 했다. 글 쓰는 게 좋아서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떠올려보면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글로 풀어내는 걸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사진기자는 현장에 갈 때마다 수백 장의 사진을 찍는다. 어떤 사진이 지금 이 현장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을지 정답을 찾을 때까지 구도와 렌즈를 쉴 새 없이 바꿔가며 셔터를 누른다. 그중에 신문에 게재되는 건 단 한 장뿐. 선택된 사진 ‘A컷’만 신문에 실리지만, 신문에 게재되지 않은 ‘B컷’들에도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기록하지 않으면 잊힐 사진들. 그래서 B컷들을 소셜미디어에 글과 함께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말뉴스부에 있던 김미리 선배가 찾아와 따뜻한 커피를 사주며 제안했다. “신문에 나가는 사진보다 페이스북의 말랑말랑한 사진과 글이 더 좋은데, 그거 신문에 매주 연재하면 어떨까?” 순간, 처음 사진기자를 시작했을 때 했던 다짐이 생각났다. 싸이월드 같은 사진. 그래서 고민 없이 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김 선배의 제안으로 토요일자 조선일보 지면에 사진 칼럼 코너가 생겼고 당시 주말뉴스부장을 맡았던 어수웅 선배가 ‘오종찬 기자의 Oh!컷’이라는 명패를 달아줬다. 환희와 고통이 교차하는 길고 긴 고난의 행군이 될 거라는 걸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사진 칼럼을 쓴다는 건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글과 사진 모두 완성돼야 하나의 사진 칼럼이 탄생한다. 평소에는 한없이 ‘친절한 오기자’지만 일을 할 때만큼은 완벽주의자로 돌변. 글은 좋은데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사진은 좋은데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취재를 했음에도 버려진 칼럼이 하나 둘 쌓여갔다.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아 해남 땅끝마을까지 장장 8시간 차를 몰고 찾아갔다가, 사진이 안 돼서 포기하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새로운 아이템을 찾기 위해 매주 피 말리는 고민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Oh!컷’ 연재 횟수가 늘어날수록 내공이 쌓여갔다. 남들이 보지 못했던 순간들이 눈에 띄었고, 따스한 시선으로 담을 수 있는 소재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다양한 분야를 ‘Oh!컷’에 다루고 싶었다. 사람을 비롯해서 사회, 문화, 예술, 자연 등 분야를 바꿔가며 주제를 찾았다. 새로운 시선의 사진을 보여주고 싶어서 자주 드론을 활용해 하늘에서 세상을 내려다봤다.
놀라운 변화도 생겼다. 연재한 지 몇 해가 지나자 든든한 지원군이 생기기 시작했다. ‘Oh!컷’을 눈여겨보던 독자들이 아이템을 제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국을 다니며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다닌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 지자체에서 연락해와 숨은 명소들을 알려줬다. 여러 기업에서는 산업 현장의 ‘포토제닉’한 소재와 그에 얽힌 이야기가 생길 때마다 ‘Oh!컷’ 아이템으로 추천했다. 취재하며 알게 된 많은 취재원들도 ‘Oh!컷’으로 좋은 소재가 있다며 수시로 제보를 했다. 특히 타 언론사 기자 동료들의 제보는 뜻깊게 느껴졌다. 경쟁 언론사임에도 불구하고 ‘Oh!컷’에 적합하다며 아이템을 추천해 주는 모습들. 같은 사진기자로서 진심으로 응원해 주고 있다는 생각에 뭉클한 적도 많았다.
2018년 시작했던 ‘Oh!컷’은 5년 8개월간 총 265회 연재를 끝으로 사진부장을 맡게 된 2024년 막을 내렸다. 하루 종일 신문사 안에서 데스킹을 하는 역할을 맡다 보니, 현장을 돌아다닐 기회를 만들기 어려웠다. 부서장 승진 축하 인사보다 ‘Oh!컷’을 더 이상 못 보게 돼 아쉽다는 말을 더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마지막 연재를 마치고 지난 5년 8개월을 되돌아봤다. 연재의 압박에서 해방됐다는 후련한 마음과 아쉬운 마음이 교차했다. 그동안 취재하며 마주한 순간들과 많은 사람들을 떠올리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Oh!컷’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동료 선후배들에게 그리고 소중한 주말과 휴일에도 ‘Oh!컷’을 하러 떠나는 먼 길에 기꺼이 동행해 준 아들과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Oh!컷’은 꼭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 내 이름을 걸고 오랜 기간 연재했던 결과물에 대한 기록과 함께 다채로운 콘텐츠가 담긴 ‘잘 만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대학생 때 친구에게 선물 받았는데 지금도 내 서재에 꽂아두고 꺼내보는 책들이 있다. 이 책이 두고두고 소장하고 싶은 책,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 되길 바라며.

오종찬 기자의 Oh!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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