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으로
벌컥!
문을열고들어선나는얼른바닥부터만져보았다.차가웠다.그래,시멘트바닥이따뜻할리가없겠지…아무래도이대로는겨울한철나기도힘들듯싶었다.어떻게한다…한참을머리를굴리던난,문득건물뒤편에낡은거적떼기같은것들이잔뜩쌓여있는걸본생각이났다.
“저기,미안한데,일단나랑같이들좀나가봅시다.”
난일행들을앞세워건물뒤편으로돌아나갔다.내가봤던거적떼기같은것들이어둠속에서희멀겋게빛을내고있었는데가까이다가가보니가마니였다.그랬다.볏짚으로만든가마니.나도모르게탄성이터져나왔다.
“야,이거제대로인데…”
“뭐가제대로라는겁니까,선생님?하기야대충봐도가마니를제대로만들긴했네요.이게왜여기있는진모르겠지만요.”
“하하,자지금부터이걸둘이서한개씩들고날라볼까요.제대로쓸수있겠어.”
뭔지도모르고덩달아신들이난직원들과자원한여대생선생님들의깔깔거리는웃음소리까지싣고우리는부지런히가마니를날라댔다.
이것이우리가그추운겨울,이문동낡은목조건물2층에서시작한일이다.가마니부터깔고시작한일…야학이다.1976년,내나이28살때일이다.당시난,공무원에막취직해1년을채우지못한햇병아리시절이었다.
그렇게바닥이마무리되어갈무렵,한선생님이소리쳤다.
“그런데선생님,우리이름은뭐예요?”
“우리…이름?”
“네,학교이름이요.학교맞죠,우리?”
“아,맞다.그럼,학교맞지.학교맞아.음,이름은…”
난사실진작에지어둔이름이있었다.애당초우리젊은이들의푸른꿈과소망이언제까지나이어지고실현되기를바라는마음에서시작한일.그래서더욱기회가없을지도모를,아니주어지지조차않을젊은이들에게희망을주고싶었다.그들은언제나푸르러야만했기때문이다.실제그시절,칠판앞에처음섰을때내마음을가장크게채웠던건‘미안함’과‘조바심’이었던것같다.나와같은시대를살아가면서도단지형편이어렵다는이유만으로배움의기회조차얻지못하는그뒷모습들을보며,기성세대의한사람으로서미안한마음이정말컸었다.
“아이들은이름그대로늘푸르러야하는데,왜벌써세상의짐을지고시들어가야할까.”
그래서한시라도빨리그들에게‘내일은오늘보다나을수있다’는희망의증거를만들어주고싶다는조바심에밤잠을설치기도했다.거창한교육철학보다는,당장등불하나가급한아이들에게내가가진작은지식이라도나누어그들의앞길을비추는‘작은불빛’이되고싶다는마음하나로시작했던것이다.그렇게그들은늘푸르러야만하니까.
“학교이름은…‘등불’로할까하다가‘상록’이야!상,록,야,학!어때?”
“우와,그럴듯한데요.심훈작가님의‘상록수’의그‘상록’이죠?”
“그렇지.늘푸르라고말이지.”
“와,그럼내일은아예교실도칠하죠,뭐.푸른색으로요.”
“뭐라구?하하하!”
서울시공무원으로첫발을내딛던1975년,당시내근무지였던개천가이문1동동사무소건물2층에서그렇게늘푸른교실이시작됐다.
---본문중에서
추천사
사랑으로세상을밝힌공직자,최대천
사람냄새나는사람을만나는것도귀한일이지만,가슴깊이감동을주는사람을만난다는것은인생의축복이다.
大天.그냥하늘도아니고‘큰하늘’이라니,이름부터가예사롭지않다.그와내가특별히가까운사이는아니었지만,거의같은세월을서울시공직사회에서함께살아왔다.나는비교적간부의길에서출발했고,그는동사무소현장에서시민들과호흡하며공직의첫걸음을시작했다.나는정책을다루는위치에있었고,그는삶의현장에서어려운이웃들의눈물을닦아주며살아왔다.겉으로보면내가더드러나는자리에있었을지모른다.그러나그의삶의깊이만큼은감히따라갈수없었다.
그가살아온발자취를읽으며나는여러번가슴이먹먹해졌고,한편으로는부끄러움마저느꼈다.자신을태워어둠을밝히는촛불처럼,그는평생을남을위해살아왔다.이해관계와경쟁,그리고각박한현실속에서사람에대한온기가점점메말라가는시대에,그는소외된이웃의손을붙잡고묵묵히희망의길을걸어왔다.
특히공직자로서바쁜삶을살아가면서도30년넘게상록학교를통해배움의기회를놓친청소년들과어려운이웃들에게희망의꽃을피워준헌신은오늘을살아가는우리모두에게깊은질문을던진다.
“나는과연누구를위해어떻게살아왔는가.”
인생의가치는얼마나높은자리에올랐는가로결정되지않는다.얼마나많은재산을이루었는가보다,어떤마음으로,어떤가치관으로,누구를위해살아왔는가가한사람의삶을평가하는진정한기준이라생각한다.
『늘푸르게,더푸르게』는단순한자서전이아니다.한사람의성공담을넘어,사랑으로세상을밝힌한공직자의기록이며,헌신과나눔으로사람을살려낸감동의역사다.또한,이책은성공만을좇으며방향을잃어가는젊은세대에게는삶의의미와희망을일깨워주고,미래사회를고민하는지도자들에게는공직과리더십의본질이무엇인지를다시생각하게만드는귀한울림이될것이다.미국의시인에머슨은진정한성공을이렇게말했다.
“자기가태어나기전보다세상을조금이라도더살기좋은곳으로만들어놓고떠나는것.자신이한때이곳에살았음으로해서단한사람의인생이라도더행복해지는것.이것이진정한성공이다.”
최대천.그는진정성공한사람이다.이귀한기록이오래도록많은사람들의마음속에희망의씨앗으로남기를진심으로기원한다.
-이원종(전서울특별시장,전충청북도지사)
사람을품어세상을밝힌큰스승
요즘나는최대천선생님을‘할배’라고부른다.그러면선생님은웃으며나를‘미친놈’이라고부르신다.남들이들으면깜짝놀랄호칭이지만,우리에게는수십년세월이만들어낸가장다정한인사말이다.『늘푸르게,더푸르게』를읽으며나는그호칭속에담긴선생님의삶을다시만났다.책속에담긴이야기는한사람의자서전이었지만,내게는스승과함께했던소중한시간들의기록이었기때문이다.
돌이켜보면나는야학시절선생님의사랑을누구보다많이받은학생이었다.당시선생님은동사무소에서근무하고계셨다.나는어려운형편속에서도책읽는일만큼은포기하지않았지만,책을구하는것이늘고민이었다.책한권사는돈조차아까웠기때문이다.그럴때마다선생님은신기할만큼쉽게책을구해주셨다.선생님이근무하시던동사무소에서는매주수요일재활용품을수거했는데,그때마다내가읽을만한책들을하나하나챙겨두셨다.일요일이면선생님과탁구를치고함께자전거를타고동사무소로향했다.나란히페달을밟으며달리던그길은일주일의피로를모두씻어내주는행복한시간이었다.그렇게선생님을통해얻은책들이차곡차곡쌓여어느새공장기숙사한쪽벽면을가득채웠다.그덕분에나는더넓은세상을책으로만날수있었다.그시절받은책들가운데몇권은지금도소중히간직하고있다.
그뿐만이아니었다.이문동에사시던누님이선생님을위해정성껏끓여놓은삼계탕도,선생님의저녁식사로준비된딸기도결국내몫이되곤했다.아니,정확히말하면내가다먹어버렸다.이런이야기들을하나하나꺼내기시작하면끝이없다.그래서야학친구들의부러움도늘내차지였다.
야학수업이끝나면선생님과함께집으로돌아가는것이일상이었다.새벽에는신문배달을하고,낮에는봉제공장에서일하고,저녁이면야학으로향하는고된생활의반복이었다.하지만그시간들을버틸수있었던것은선생님이늘챙겨주시던따뜻한관심과사랑덕분이었다.지금생각해보면선생님은하늘이내게보내준또한분의아버지였는지도모르겠다.
또하나잊을수없는선물이있다.어린시절떼를써서겨우얻어낸윤동주의「서시」액자다.선생님께서무척아끼시던액자인데,내가알기로는세개뿐이다.하나는선생님댁에,하나는야학학교에,그리고하나는우리집에있다.그액자는미국에거주하시던오래전야학교사분께서선생님께선물한것이었다.선생님은그분께여러번부탁한끝에나의졸업선물로하나를더만들어주셨다.그만큼귀하고의미있는선물이었다.
우연인지필연인지모르겠지만,지금나는윤동주시인이공부했던학교에서대학원과정을밟고있다.학교백양누리동문회관입구에는윤동주의「서시」가새겨진동판이있다.그런데나는그글귀를볼때마다윤동주시인보다먼저선생님이떠오른다.어쩌면이것마저선생님의놀라운예지력이아니었을까하는생각이든다.
이책을읽다보면독자들은자연스럽게깨닫게될것이다.왜수많은사람들이지금도최대천선생님을잊지못하는지,왜선생님이걸어온길이한사람의인생을넘어우리사회의소중한자산인지를말이다.선생님은가르침을직업으로삼은분이아니라,사람을희망으로키워낸분이다.가난과어려움속에서도배움을포기하지않았던학생들에게선생님은학교였고,가족이었고,삶의등불이었다.저역시그수많은제자중한사람이다.이책은한사람의이야기가아니라배움의힘이사람의인생을어떻게바꾸는지,그리고진심어린한사람의사랑이얼마나먼미래까지영향을미칠수있는지를보여주는기록이다.많은독자들이이책을통해최대천선생님의따뜻한삶과교육의가치를함께만나보길바란다.
나의영원한모슈쿠라최대빵,쌤.사랑합니다.감사합니다.선생님께서가르쳐주신침착함과여유,그리고끈기를가슴에새기며살아가겠습니다.그리고나자신만을위해사는사람이아니라,다른사람과사회를위해무엇인가할수있는사람이되도록더욱노력하겠습니다.
권세종졸업생(상록야학)
현재삼성SDS에서26년째IT전문가로근무하고있으며,연세대학교대학원석사과정에재학중이다.저서로는『봉제공장시다,삼성입성기』(05.열림원)가있다.
-권세종(상록야학졸업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