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늦게닿은연고
어머니의손을잡고떠난지스무해만에‘나’는다시수원으로돌아간다.아버지로추정되는무연고시신을확인하기위해서다.어릴적마지막으로보았던때와너무도달라진얼굴.변하지않은건입술의모양뿐이다.그모양이내입술에도있다.그걸깨닫는순간시신이말한다.‘내가네아버지다.’빈소도없고장례도없다.서류위의한줄주소를따라찾아간곳은아버지가마지막으로머문한평남짓한방.잘정돈된짐들과그렇지못한과거의흔적들.이제는어디서도쓸수없는내이름으로된주택은행통장과‘패’라고적힌낙첨로또용지들.그리고냉장고문에붙여놓은빈로또종이한장.거기에쓰인단정한글씨체의유언.“꼭,무연고처리해주세요.”
방안의것들을모조리종량제봉투에쓸어담아폐기물수거업체에넘긴나는장례식장으로돌아와아버지의관을운구차에실어화장터로향한다.세사람이겨우들어옮긴관은단몇시간만에혼자서도충분히들수있는유골함이되어내품에안긴다.나는유골함을안고청주공항을통해제주로향한다.아이들과아내와어머니가있는곳.연고없는대전에서겨우옮겨앉은곳.아내가간절히원하던마당딸린집이있는곳.15평,두아이에앞으로태어날두아이까지,여섯식구가살아갈집이있는곳.그리고……결코내게먼저등을보이는법이없는어머니,아버지의주먹을피해맨발로도망쳤다가도다시돌아와나를안아준어머니,아버지와헤어진후홀로짊어진삶을감당하기위해아침부터늦은밤까지일을해야했던어머니,언제나내등뒤에버티고서있는어머니,그어머니가계신곳.제주에도착한나는곧장택시를잡아타고땅의높이를그대로닮은집으로간다.
그때는알지못했다.애도는짧았지만아버지의죽음이,차가운시신이,‘무연고’의유언이긴잔상으로남아나를떠나지않을것임을.아버지가세상에서모습을감춘동안살에살이붙어거대해진아버지의빚이나를찾아올거라는사실도.
어느날도착한우편물
칼이되어돌아온연고
어느날내앞으로봉투하나가도착한다.보낸사람은서울중앙지방법원.봉투안에는아버지가남긴빚이들어있다.상속인으로서내가그빚을떠안았고,채권자가강제집행을할수있다는내용이다.상속포기를신청할수있는기한은이미지났다.내가원하는것은하나다.아버지가남긴문장끝에내가마침표를찍는일.다른이에게또다시칼이되지않도록.잘해결될거라는아내의위로도소용없다.나는고민끝에법률사무소를찾는다.변호사를선임하면큰돈이든다는걸알지만내게날아온칼을,법의언어를아는손에맡기기로결정한다.문제는그게끝이아니라는것이다.내가모르는사이준비된또다른칼이내목을겨누고있다.
그뿐만이아니다.수원에다녀온이후나는좀많이달라졌다.좁은곳에들어서면숨이먼저탁해졌다.엘리베이터,좁은복도,창문없는방,연기로자욱한화재현장등에서가슴이조여들고목이막히고손끝이저렸다.벗으면죽는다는걸알면서도공기호흡기면체를벗어던지고싶어하는마음과격렬하게싸워야했다.아버지얼굴을본뒤부터였다.정확히는시신을,아버지의유언을.머릿속에점처럼박혀있던조짐들이아버지를만나러간수원의안치실에서탁,풀렸다.공황이처음왔을때내가가장먼저한생각은‘이상하다’였다.나는입을닫고문밖에서혼자버텼다.
어느날밤,아내에게‘좁은곳’이야기를꺼냈다.목소리가떨렸고,떨림이멈추지않았다.그때자다깬아이가울면서거실로나왔다.아내가아이를달래며,아이에게하듯말했다.
“괜찮아.여긴불안나.아무도안다쳐.내손잡고있으면안전해.”
“아버지가남긴말은끊음이었다.나의연고는붙듦이었다.”
우리의연고가되어준마당
연고없는대전에서역시연고없는제주로가기로한결정은어쩌면연고를만들고싶어서였는지도모른다.발소리를낼때마다가슴졸여야했던대전의임대아파트에서마당있는제주의집으로옮겨앉았다.마당가장자리에현무암을층층이쌓아담을올린집.담을따라소나무가서있고바람이불면잎들이서로몸을섞는집.마침내가진진짜내집이었다.
그집에서두아이가더태어나네아이가되고,네아이는마당에서여름이면물놀이를하고,아빠가출근할때면일렬로쭉늘어서서잘갔다오라고목청껏소리치고,개구리를잡았다놓치며다같이까르르웃음을터뜨리고,엄마아빠를따라줄넘기를하고,빨래를널고,누군가넘어지면달려가일으키고,그리고하늘을올려다본다.아이들은학교에다니지않는다.아내와내가선택한것은홈스쿨링이다.배움은집에서이뤄진다.굳이방학을기다릴이유도없다.틈날때마다여섯식구는서귀포의리조트로,신흥리의바닷가로,서우봉언덕으로놀러다닌다.서귀포의냇가에서물고기를잡고,신흥리의바닷가에서그림을그리고,서우봉의하얀메밀꽃사이를꿈속인듯걷는다.그러나가장많은시간을보내는곳은역시마당이다.굳이밖으로나가지않아도,멀리가지않아도마당에다있다.
아내와내가아이들을학교에보내지않는것은아이들이제몸의속도로자랄수있게끔우물을지켜주고싶기때문이다.왜학교에보내지않느냐고,돌담너머에서날아드는말들,돌멩이처럼날아와가슴을때리는말들앞에서아내와나는늘긴장하고자주흔들리지만그때마다아이들의행복해하는웃음을보며마음을다잡는다.그래서우물안개구리로계속키울거냐고?우리가우물안에있는거라면,우리는거기서같은하늘을함께올려다보는거다.우물은세상을막는벽이기도하지만서로의얼굴을가까이비추는물이기도하다.좁다는것이꼭적다는뜻은아니다.
마당은아이들을키우고,엄마가되는게꿈이라던아내의어릴적소망을이뤄주고,어머니가어지럼증약을끊도록도와준곳이다.그리고그모든것들이,아이들과아내와어머니가문밖에서혼자버티던나를다시안으로들어오게만들었다.아버지는끊음을선택했지만내가택한것은붙듦이다.그것이나의연고이다.놓치지않는것.잊지않는것.붙잡아끌어오는손이아니라돌아올자리를닫지않는문.끝내들어온몸에게왜늦었냐고묻지않고잘왔다고말해주는목소리.나는그목소리를따라살아간다.
무연고라는말에서시작한글이결국알려준것은,관계는서류위에서끝나지않는다는것이었습니다.관계는몸에남아있었습니다.(…)
늦게알아본마음들,너무가까워서오래보지못했던사람들,끝내남아있던관계들을책한권에담아두고싶었습니다.이책은그자리를더듬어온기록이자,제게는늦게마련된‘빈소’입니다._‘작가의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