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마가지꽃 (황의수 시조집)

길마가지꽃 (황의수 시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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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황의수 시인의 첫 시조집 『길마가지꽃』은 자연과 계절, 가족과 삶의 노동, 그리고 시간이 남긴 성찰을 단정한 시조의 언어로 담아낸 작품집이다. 시인은 짧은 형식 안에 봄꽃의 기운, 고향의 정서, 부부의 정, 산장과 농장의 일상, 그리고 인생을 돌아보는 깊은 사유를 고르게 담아내며, 전통 시조의 미덕을 오늘의 감각으로 풀어낸다.

이해설에서 드러나듯, 『길마가지꽃』의 특징은 자연·가족·노동·성찰의 소재를 다루면서도 과장된 감정에 기대지 않고, 장면의 제시와 문장 구조의 균형으로 설득력을 확보한다는 점이다. 특히 여러 작품에서 종장은 단순한 결론이 아니라, 초장과 중장에서 축적된 정서를 다른 방향으로 이행시키는 장치로 작동하며, 시조 특유의 압축과 절제의 미학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표제작 「길마가지꽃」은 봄을 앞두고 먼저 피어나는 꽃의 생명력과 환한 기운을 통해 만물이 들썩이는 회춘의 감각을 불러내며, 시집 전체의 정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절기와 산수, 가족과 고향, 부부의 정, 노년의 성찰, 산장과 농사의 일상, 궁궐과 역사 공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삶의 장면을 시조의 언어로 정제해낸다.
저자

황의수

시인은 남원시 출생으로, 아호는 성보(省普)이다.
세종문학회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문예춘추 최남선문학상을 수상했다.
전 광림문학회 회장, 대동문인협회 고문을 지냈고,
현재 (사)한국시조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목차

■시인의 말
■축사: 잠든 영혼을 깨워주는 주옥같은 깨달음의 시혼詩魂 / 이광녕

1부 길마가지꽃
입춘立春
봄 향기
길마가지꽃
설중매 향기를 찾아
채송화의 미소
입추立秋
가을이야
코스모스
동백의 입주
동지
겨울 산행
설악산雪嶽山
설야雪夜
맨드라미
다육이의 미소
불손
박주가리
황촉규黃蜀葵
목천료木天蓼
들국

2부 고마운 아내
고향길
함미성
수리봉
옥녀직금혈玉女織錦穴
내 고향 이백면二白面
시제 時祭
우리 형님
누나 생각
요천수는 누나의 강
고마운 아내
부부싸움
목도리
보리 건빵
뇌경색
팔순 연
간월암看月庵
방장산方丈山
청안靑岸에 서서
용정龍井은 말한다
암서재巖棲齋를 찾아서

3부 길을 걸으며
웃는다
길에서
길을 걸으며
삶이란
정情
일어나라
석양
그리움
효자손
나이 드니
반추反芻
해후邂逅
살면서
사는 일
나의 길
낚시
말의 씨
무서운 말
시비是非
삼재일체三才一體

4부 산장에 가면
팔 남매 사랑舍廊
소우정消憂亭
산장의 아침
이렇게 살아가자
산장에 가면
산장의 밤
소나무 숲에서
산중신곡
겨울 산장
산바람
산장의 단풍
산길에서
냉이꽃
잡초에게
밭에서
5월의 농장에서
유월의 농장에서
옥수수
들깨 농사
가을이 고추밭에 앉았다
제야除夜

5부 청산은 가슴에
인연因緣
마음자리
묵은 정
한탄강 잔도를 걷다
집념
송호정松湖亭에서
청산은 가슴에
광풍狂風
겨울비
첫눈
하얀 능선의 숨결
삼전도비를 보며
창경궁 문정전에서
경복궁 근정전

■해설: 『길마가지꽃』의 시적 세계와 서정의 윤리_김태균

출판사 서평

황의수의 첫 시조집 『길마가지꽃』은 자연과 계절의 변화, 가족과 삶의 노동, 그리고 인생을 돌아보는 성찰을 단정하고 절제된 시조의 언어로 담아낸 작품집이다. 짧은 형식 안에 담긴 시편들은 화려한 수사보다 삶의 결을 있는 그대로 길어 올리며, 읽는 이에게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이 시조집은 표제작 「길마가지꽃」을 비롯해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기운을 포착한 작품들, 가족과 부부의 정을 따뜻하게 담아낸 작품들, 길 위의 사색과 산장·농장의 일상을 그린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시인은 자연을 단순한 배경으로 두지 않고 삶의 태도와 마음의 결을 비추는 대상으로 삼아, 계절의 변화 속에서 인간의 시간과 감정을 함께 읽어낸다.
『길마가지꽃』의 미덕은 무엇보다 절제에 있다.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정서는 선명하고, 장면은 소박하지만 그 안에 스민 의미는 깊다. 전통 시조의 형식미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오늘의 삶과 정서를 현재형으로 끌어안고 있어, 시조를 익숙하게 읽어온 독자뿐 아니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도 편안하게 다가간다.
『길마가지꽃』은 자연의 숨결, 가족의 온기, 노동의 땀, 그리고 삶을 통과해 온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사유를 한 권에 담은 시조집이다. 짧아서 쉽게 읽히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여운을 지닌 책이다.


■ 해설

『길마가지꽃』의 시적 세계와 서정의 윤리
- 자연·기억·노동의 주제군과 의미 구조 분석

1. 여는 글

“삶은 고통을 통과하는 일이고, 생존은 그 고통에서 의미를 길어 올리는 일이다.”

이 짧은 문장은 삶의 고통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고통을 통과하는 인간의 방식이 결국 ‘의미의 구성’이라는 점을 환기한다. 실존철학과 의미치료의 논의처럼 삶의 문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규범적 질문에만 환원되지 않으며, 상실과 불완전성의 조건 속에서 삶을 지속시키는 태도와 해석의 기술이 요구된다. 문학은 그러한 지속의 기술을 언어로 조직해 온 예술로 이해될 수 있다. 시조는 그 과정을 길게 설명하기보다 짧은 형식 안에서 핵심 전환을 집중적으로 제시한다. 초·중·종장의 제한된 구조 속에서 감각과 정서를 축적하고, 종장에서 의미의 방향을 꺾어 마감하는 순간, 시조는 삶의 태도를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한다. 따라서 시조의 완성도는 ‘무엇을 말했는가’뿐 아니라, ‘어떤 전환으로 끝맺는가’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황의수 시인의 시조집 『길마가지꽃』은 자연을 노래하면서도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나 감상의 대상으로만 두지 않는다. 여기서 자연은 계절 풍경의 나열이 아니라, 삶의 리듬을 다시 조정하게 하는 하나의 계기이자 기호 체계로 작동한다. 입춘의 빛, 동지의 붉음, 설악의 설경, 밭과 길의 장면은 모두 ‘보기에 아름다운 세계’를 반복 확인하는 데에 머물지 않고, 독자의 생활 감각을 환기한다. 이는 자연의 의미를 단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연이 열어 놓는 감각의 문을 통해 주체가 스스로를 재정렬하도록 하는 전략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조집의 자연시조는 찬미의 수사로 완성되기보다, 종장에서 태도의 전환으로 수렴될 때 더욱 강한 설득력을 확보한다.
기억과 가족의 문제 또한 이 시조집에서 중요한 서정적 기반을 형성한다. 문학에서 기억은 종종 아름다운 회상으로 소비되지만, 기억이 강하게 잔존하는 이유는 대체로 그것이 관계의 구조와 역할을 함께 담기 때문이다. 즉 기억은 감정의 장식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려고 감당해 온 노동과 책임의 흔적일 때 현재의 삶을 더욱 강하게 지탱한다. 이 시조집에서 고향과 가족을 다룬 작품들은 바로 그 지점에서 감상적 회고의 유혹을 절제한다. 누나의 삶과 고향의 물길, 부부 관계의 지속은 미화된 ‘따뜻함’으로만 재현되지 않고, 생활 속의 반복과 수고, 그리고 뒤늦은 자기 점검의 문장으로 구체화된다. 그러므로 이 시조집의 가족 서정은 감정의 과잉이 아니라 관계의 윤리를 통해 성립하며, 그 윤리는 종장에서의 결구 방식에 의해 더욱 분명해진다.
이 시조집이 “서정의 책”이면서 동시에 “태도의 책”으로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삶은 사건 자체로만 바뀌지 않으며, 사건 이후에 형성되는 습관과 리듬이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질병, 노년, 노동의 시간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것이 곧바로 비극의 결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현실을 어떤 언어로 정리하며, 어떤 자세로 통과할 것인가이다. 『길마가지꽃』의 성찰시조들은 거창한 관념을 선언하지 않고, 길·호흡·말 같은 최소 단위를 통해 삶을 다시 구성한다. 여기서 말은 관계를 형성하는 씨앗이며, 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자기 교정의 통로로 기능한다. 시조가 짧은 형식인 만큼, 설명이 길어지는 순간 시는 산문화될 위험이 있으나, 이 시조집의 강점은 상당수 작품에서 종장이 ‘요약’이 아니라 ‘전환’으로 작동한다는 점에 있다.
결국 이 시조집이 보여주는 세계는 중심의 화려함이 아니라, 가장자리의 현장에서 유지되는 삶의 진실에 가깝다. ‘길 마가지꽃’은 시선의 중심에서 비켜나 있지만, 오히려 그 비켜남을 통해 오래 버티고 다시 피어난다. 황의수 시인의 시조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생성되는 언어들을 채록한다. 따라서 이 시조집을 읽는 일은 단지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가족의 추억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삶을 지속시키는 태도가 어떤 문장으로 정리될 수 있는지를 되묻는 과정이 된다. 그 질문의 끝에서, 시조는 오래된 형식임에도 여전히 현재형의 문학으로 남는다.


2. 절기·꽃·산수의 시학
-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삶을 다시 쓰게 하는 신호”다

문학에서 자연은 흔히 감탄과 묘사의 대상으로 처리되거나 인간 정서를 비추는 배경으로 배치되어 왔다. 그러나 생태비평의 관점은 자연을 단순한 장식적 공간으로 환원하기보다,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과 감각의 질서를 재구성하게 하는 적극적 범주로 이해하도록 요청해 왔다. 따라서 계절을 읽는다는 것은 풍경을 감상하는 차원에만 머무는 일이 아니라,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주체의 내적 리듬이 어떻게 변주되는지를 점검하고 삶의 태도를 재조율하는 과정으로 확장된다. 계절은 되풀이되지만 늘 같은 방식으로 돌아오지 않으며, 예년의 봄은 예년의 마음에만 속하고 올해의 봄은 또 다른 결핍과 기대를 끌고 온다. 그 차이는 자연을 단지 바라보는 대상으로 두지 않고, 오히려 삶을 다시 쓰게 하는 신호로 전환시킨다. 결국 자연의 변화는 외부 풍경의 변화가 아니라, 주체가 자기 삶의 방향과 감각을 새롭게 조정하게 하는 계기로 작동한다.

이 시조집 『길마가지꽃』은 그러한 ‘자연의 윤리’를 가장 정직하게 구현한다. 자연이 아름답다는 선언보다 먼저, 자연이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관찰이 앞선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입춘」이다.

구만리 내린 햇살
유리창 밀고 드니

마음도 활짝 열려
도홧빛 얼굴 피네

일어나
붓을 들어라
입춘대길 봄 마중.
-「입춘」, 전문

“구만리 내린 햇살 / 유리창 밀고 드니”라는 초장은 빛을 ‘부드럽게 들어오는 것’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햇살은 밀고 들어온다. 외부의 변화가 내부의 경계를 눌러 여는 순간이 시조의 사건이 된다. 그 결과로 “마음도 활짝 열려 / 도홧빛 얼굴 피네”라는 정서의 개화가 이어지고, 종장은 마침내 “일어나 / 붓을 들어라 / 입춘대길 봄 마중”으로 닫힌다.
이 종장의 명령형은 매우 중요하다. 자연을 ‘감상’에서 ‘행동’으로 돌려세우는 전환이기 때문이다. 봄은 오는 것이 아니라 맞는 것이고, 맞는다는 것은 결국 삶을 다시 쓰는 결단, 즉 붓을 드는 행위로 구체화한다. 시조의 종장 기능(전환·결구)이 여기서는 생활의 실천으로 재배치된다.

춘분도 오기 전에
서둘러 오셨는가

곱다시 꽃 피우고
향기를 날리시니

만물이 들썩이면서
임을 따라 회춘하네.
-「길마가지꽃」, 전문

표제작인 「길마가지꽃」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에 ‘달력 바깥의 시간’을 끌어들인다. “춘분도 오기 전에 / 서둘러 오셨는가”에서 계절은 정확한 날짜에 맞춰 도착하는 사건이 아니라, 예감처럼 앞질러 스며드는 변화로 제시된다. ‘오셨는가’라는 경어적 물음은 봄을 단순한 기상 현상으로 보지 않고, 맞이해야 할 손님 또는 임으로 높여 부른다. 이어 “곱다시 꽃 피우고 / 향기를 날리시니”에서 봄은 ‘피어남’과 ‘향기’라는 감각적 징후로 먼저 자신을 증명한다. 즉 자연은 “아름답다”는 감탄의 대상이기 이전에, 삶의 감각을 깨워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촉발로 작동한다.
특히 종장 “만물이 들썩이면서 / 임을 따라 회춘하네”는 이 작품의 핵심 전환이다. 여기서 ‘회춘’은 한 개인의 젊음 회복을 뜻하기보다, 봄이라는 ‘임’을 따라 세계 전체가 다시 생기를 얻는 과정으로 확장된다. 만물이 ‘들썩인다’는 동사는 정적인 풍경을 깨뜨리고, 자연의 변화가 곧바로 공동의 리듬으로 번져 나가는 장면을 만든다. 따라서 이 시조에서 꽃은 젊음의 상징이라기보다, ‘임’의 도착을 알리는 첫 신호이며, 그 신호에 반응해 존재들이 스스로의 시간을 재가동하는 계기다. ‘회춘’이라는 단어가 다소 크게 들릴 수 있지만, 시적 맥락에서 그것은 되돌림의 기적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들이 다시 살아가려는 방향성, 즉 생이 갖는 최소한의 의지로 읽힌다. 결국 「길마가지꽃」은 자연을 배경으로 두지 않고, 인간의 심리적 시간과 세계의 리듬을 함께 교정하는 장치로 제시하며, 작은 꽃 한 송이를 통해 ‘새로 시작되는 시간’의 윤리를 설득력 있게 환기한다.

어둠이 내려앉아 하늘빛 짙어지면
겨울은 깊어지고 별빛은 초롱초롱
한 해를 마무리하며 / 온 누리가 잠든다.

정들인 새알 팥죽 선영께 제 올리면
집안을 감싸주는 붉은 온기 번져 나와
우리 집 안 사랑에도 따스함이 스민다.

햇살은 짧아져도 오늘을 다시 세워
한숨을 고르면서 긴 밤을 지내 오면
땅에서 / 온기 오르며 / 새날 빛이 열린다. -「동지」, 전문

그리고 「동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