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저마다의가난과싸우고있다”
대한민국이마침내초고령사회에접어들었다.낮시간대의지하철일반좌석조차노인들이절반을채우는풍경은이제낯설지않다.그러나이거대한인구학적전환기의이면을지배하는진짜공기는압도적인‘노인빈곤’과막연한‘노후불안’이다.아파트대출금과사교육비라는자본주의의협공속에서평균적인삶의패턴을유지하기위해평생을허덕이던4050세대는,은퇴이후의삶을떠올릴때마다깊은좌절감과마주한다.집,돈,관계,건강,일…그어떤영역에서도과거와같은고속우상향성장이더이상불가능해진‘성장제로의시대’,우리는과연노년에이르러돈말고어떤삶의의미를찾아야할까?
신간『평화로운가난속에서단정하게』의저자최광희는우리가마주한불안의정체가돈의절대적부족때문이아니라고단언한다.자본주의구조가시스템적으로주입하는강제적비교문화와돈을바라보는철학의부재에서불안이기인한다는것이다.이강박에갇혀있는한,연봉이5000만원이든수억원이든인간은결코불안의늪에서탈출할수없다.그렇다면해방구는무엇일까?성장이멈춘시대의진짜노후대책은통장잔고를불리는기술이아니라,삶의보폭을낮추고돈의쓰임을재설계하는근원적인가치전환에서시작되어야한다고저자는말한다.
“풍요로운자가‘가난’을두둔하는건기만입니다.‘분수를알라’는말도기만입니다.그러나가난한자가거기에평화라는장식을덧입힐수있다면그것은현명한일입니다.‘부자되세요’가덕담이되는시대에이책은‘적당히벌고마음편히사세요’를제안합니다.”_본문에서
“돈은없지만삶은그누구보다풍부하다”
인터넷방송〈매불쇼〉등에서솔직함을넘어적나라한비평으로화제를모았던영화평론가최광희는스스로를서슴없이‘도시빈민’이라고규정하는기이한백수다.정기적인방송출연료가전멸하여대출원리금등을빼고나면한달순수생활비가80~100만원남짓으로쪼그라들었지만,그의삶은그누구보다풍요롭고분주하다.
일단돈이쌓이면재빨리써서없애버린다.계좌에돈이모여자본주의적탐욕이영혼을침식하기전에서둘러해외여행을떠나전부탕진하는것이그의독특한재무관리법이다.슬리퍼를찍찍끌고나가8000원짜리수제비를먹어도기꺼이만원지폐를내며거스름돈을사양하는‘군자의품격’을고수하되,골프나외제차따위의사치는거들떠보지도않는다.맛있는게먹고싶으면아끼지않고사먹고,만나기싫은사람은억지로만나지않는다.
“돈의관성에맡겨두면돈이내정신을갉아먹는단계가됩니다.불안이영혼을침식합니다.한달먹고살돈이면충분합니다.내년,내후년에먹을것까지준비하는것자체가불안의증빙이니까요.따라서당장의필요이상으로남는돈을처리해야합니다.그래서결심했습니다.가진돈을다쓰고죽기로말입니다.”_본문에서
그렇다고이책이가난을낭만적으로미화하기만하는것은아니다.주거비가한푼도들지않는반지하환경을안온하게받아들인뒤완벽하게자유로운삶을사는저자는이렇게말한다.“가난한사람들의생활환경이그리좋지않은건가난하기때문이기도하지만,정확하게말해무기력하기때문입니다.무기력에서벗어나면궁핍은그저불편일뿐입니다.”기초생활수급자가된작은형이처음으로철쭉화분두개를사온날,저자가이를두고‘최고의소비’라고찬사를보낸이유도여기에있다.사람은먹는것으로만살수없다.아무리수입이적어도누구나꽃한송이정도살돈은있다.가난을너무두려워하지않아도되는이유다.
“모두가높이올라가려는시대에거꾸로하강을택하다”
평범한대기업직원이자가장이었던저자는이혼과실직을겪으며아내에게집소유권을넘겨준채,고시텔과원룸을전전하다결국어머니의유산인봉천동꼭대기반지하집으로돌아온다.대학시절이후26년만의귀환이었다.처음2년은참담함과열패감속에서술에의존해보냈다.
“절망감을술로다스리다알코올중독에도빠져보았다.내방문고리를응시하면서김광석처럼죽을생각도했다.그러다문득내처지가아니라내생각이멋있지않다는결론을내렸다.그랬다.중요한건처지가아니라생각이었다.”_본문에서
이생각의전환이모든것을바꿨다.급격한환경변화속에서체면과위신,무엇보다절실한‘돈’의문제에직면한그는스스로의정체성을적극적으로받아들이며독특한자본주의생존실험을시작한다.그리고이때부터반지하는그에게벗어나야할실패의낙인이아니라,세상의이치를사색하는‘생각과글의우물’이되었다.봉천동반지하집에서창밖으로하늘은보이지않지만,콘크리트담장사이에터를잡고돋아난풀한포기의위대한장면은관찰할수있으므로.
그래서최광희에게반지하라는공간은철저히‘정치적’인공간이다.언덕배기높은곳에위치한이반지하집은,자신의계급적정체성인도시빈민을형상화한곳이다.그는이공간에서우리사회의불평등한구조를정면으로인지할수있었다고고백한다.실제로그는독립언론‘뉴스타파’를창립당시부터후원했고,베트남전쟁에대한부채감을갚기위해현지의한청년에게매달100달러씩송금하고있다.
글과말로밥을벌어먹는평론가로서세상의부조리에분노하고목소리를내기위해선,도리어자본의탐욕으로부터가장멀리떨어진가난의정체성을품고반지하라는지하기지에머무를필요가있다는것이그의지론이다.
“지금저는어머니가유산으로남기신반지하집에서살고있습니다.저는이집을도시빈민의계급적정체성을잊지말라는정신적유산처럼여깁니다.분명히말하지만생활수준이도시빈민인것이아니라,'험블'하게유지하는생활태도와민주주의의본질에대한생각이도시빈민의그것입니다.”_본문에서
“내유일한노후대책은죽을때까지은퇴하지않는것”
나이가든다는것은그저쓸쓸히죽음을기다리며울적하게하루를보내는것뿐일까?저자는단호하게외친다.나이를먹고어른이될수록행복을느끼는힘인‘행복력’이약해지기때문에,우리는행복한순간을많이만들기위해이를악물고마음을먹어야한다고말이다.
그렇다면늙음의불안을이기는확실한방법은무엇일까?지성의크기를키우고감수성을훈련하는것이다.비록창밖으로하늘은보이지않는반지하일지라도주변건물에굴절되어들어오는햇빛을축복처럼느낄수있다면,그리고2만원짜리체크무늬남방하나를사입어도자신만의단정한세련미를풍길수있다면,그하루가곧자본주의가규정한표준으로부터독립한어른의삶이다.
“사람들은내게‘언제외롭냐’는질문을종종던진다.하지만나는외롭지않기에그질문에답할수없다.정확하게말해외로울틈이없다.내노후대책은죽을때까지은퇴하지않는것이다.죽을때까지글을쓰고죽을때까지여행을다닐것이다.그러기위해서건강말고는미리준비할것이없다.”_본문에서
노년의불안은이제선택이아니라삶의기본값이되었다.하지만우리가정말두려워해야할것은통장의잔고일까,아니면그잔고를바라보는걱정섞인시선일까?돈의쓰임을재구성하는일은곧삶을재구성하는일이다.이책은단순히돈을아끼는기술이아니라,50대중년남성이어느날반지하로하강해그곳에서발견한한줄기빛을통해노후를단정하고평화롭게재설계한작은이야기다.노후가막막한4050세대라면도시빈민최광희가자신의삶을실험대상삼아쓴이‘반지하로부터의수기’를통해새로운삶의철학을실험할용기를얻을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