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단

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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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그날 계엄을 막지 못했더라면…
2024년 12월 3일을 가장 명징하게 담아낸
부커상, 전미도서상, 필립 K. 딕상 최종 후보 정보라 작가 신작 소설
⟪처단⟫은 2022 부커상, 2023 전미도서상, 2025 필립 K.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한국문학의 창의적 장르성을 세계적으로 알린 정보라 작가가 12·3 비상계엄을 그려낸, 지금 이 순간 가장 시의적인 소설이다.

정보라 작가는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시점 그리고 그 이전과 이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엇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시민이 지켜내고 바로잡은 것은 무엇인지, 우리에게는 앞으로 무엇이 남아 있을지 ⟪처단⟫을 통해 담담하고도 처연하게 보여준다. 비상계엄은 6시간만에 해제되었지만, 그 몇 시간에 멈추고 허물어진 누군가의 일상과 삶, 의미, 가치에 대해 복기한다. 섣부르게 희망적인 미래를 전망하기보다 미래가 없는 상황,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반응과 시선, 나아감을 조용히 보여준다.
저자

정보라

연세대 인문학부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러시아·동유럽 지역학 석사를 거쳐, 인디아나대에서 러시아문학과 폴란드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러시아어를 전공하여 한국에선 아무도 모르는 작가들의 괴상하기 짝이 없는 소설들과 사랑에 빠졌다. 어둡고 마술적인 이야기, 불의하고 폭력적인 세상에 맞서 생존을 위해 싸우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사랑한다. 1998년 연세문화상에 〈머리〉가, 2008년 디지털문학상 모바일 부문 우수상에 〈호(狐)〉가 당선되었으며, 2014년 〈씨앗〉으로 제1회 SF어워드 단편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저주토끼⟫로 2022년 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고, 이듬해 국내 최초로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최종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너의 유토피아⟫는 영문판이 2024년 발간된 이래, 2024년 미국 주간지 〈타임〉의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고, 2025년 필립 K. 딕상 후보작으로 선정되었다.

목차

처단


작가의 말
해설

출판사 서평

오로지 걷는 데만 집중한
삶이 있는 곳으로의 걸음

⟪처단⟫은 2024년 12월 3일 계엄을 그리고 있다.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무장한 군 병력을 동원해 국회를 비롯한 헌법기관을 무력화했고, 이에 반발하는 시민을 공격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비상계엄은 6시간만에 해제되었지만, 그 몇 시간은 누군가의 일상과 삶, 의미, 가치, 시간이 멈추고 허물어지는 데 부족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간을 작가 정보라가 치밀하게 담아낸 소설이 ⟪처단⟫이다.

비상계엄은 정치적, 경제적 혼란을 초래했다는 단순한 사실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결과를 남겼다. 누군가는 1979년 이후 45년 만에 선포된 비상계엄 앞에서 절망적인 과거로의 회귀를 경험했고, 어떤 이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깊이 있는 작품으로 담아낸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과 비상계엄이 같은 해에 일어난 일이라는 데 새로운 절망을 느꼈다. 원 달러 환율 급등과 코스피 하락 등 환율·주식·채권 금융시장에 불확실성이 크게 확대되며 누군가의 가계 경제는 위기를 맞이했다. 국제적으로 한미일 관계 및 글로벌 금융시장에 대한 우려가 커져 외교·투자 신뢰가 흔들리며 어떤 이의 소중한 일터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은 사회적으로 약자와 소수층에 더 위험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처단⟫에 잘 드러난 것처럼 이 상황을 타개하고 풀어간 것도 소위 약하고 적은 수의 우리 주변 사람들, 바로 시민이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연대가 6시간만에 계엄을 해제한 것처럼, 희망적이기만 한 미래 전망은 차지하고라도 어쩌면 비상계엄이 야기한 불안과 공포도 헤쳐갈 수 없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무심하고 끈기 있게 ‘오로지 삶이 있는 곳으로 걷는 데만 집중하는’ 시민의 걸음이 암시한다.


해설: 혼신으로 일어서는 공동체 ------------------------------------------------------------
《처단》은 이런 문장으로 실행된다. “이것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이다.”(9쪽)
얼핏 지당하게 수긍되는 명제와도 같은 이 문장은 SF라는 정보라의 문학적 영토와 ‘기록’이 배면에 품은 사적(私的), 사실적 성격이 충돌하며 한 편의 소설을 향해 나아가는 점화의 순간으로 작동한다. 이제 막 소설의 문밖으로 나온 독자는 이 문장에 동의하는 한편 그러기에는 너무도 익숙한 상황적 전개 때문에 기시감을 초과하는 현실성마저 느끼며 이야기의 문을 마저 닫지 못한 마음으로 서성대고 있진 않을까. 우리가 아는 현실에서 단지 한 발짝 더 뗐을 뿐인데 그 발밑은 천 길 낭떠러지라는 지독히 사실적인 그림. 정보라의 SF가 섬뜩한 이유는 단 한줄기의 서사만을 비틀었을 뿐이라는 점으로부터 육박해온다. 이렇게 말하는 게 허락된다면 이 소설은 ‘르포르타주-SF’다.
정보라는 스스로 극사실주의 작가라 말한다. 그의 말에 기댈 때 저 문장은 《처단》이 지극히 현실적인 SF라는 것, 승자 중심의 역사가 기록하지 않는(않을) 이야기라는 것과 함께 산 자의 이야기만으로 소급되지 않을 것임을 축약한다. 문학은 언제나 역사의 기록보다 기민한 움직임의 조건 속에서 현재를 수립하며 그러한 정본의 역사가 제출하지 않은 문장들을 뒤돌아보며 추스른다.
근자에 한국 사회는 ‘시민’이라는 단어가 함의하는 정치성을 과도하게 돌출시키며 흘러가는 중이다. 2000년대로만 한정한다더라도 그 기점을 어디로 잡을 것인가 더듬어보자면 연쇄적으로 달려 나오는 참사의 목록에, 우리의 정치적 삶이 어째서 이토록 부당한 방식으로 누군가의 목숨을 희생양 삼아 융기해야 했던가 말문이 막혀 머뭇대게 되지만 그러한 부정의의 방점이 2024년 12월 3일에 찍히는 데는 별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처단》은 그날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정보라의 현실에서 ‘2차 비상계엄’은 극악무도한 방식으로 자행된다. 이 소설의 서사가 긴박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이유가 지난한 현실의 더블(Double)이기 때문임은 우리의 트라우마로서 확인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소설은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건드리지 않고 기록하는 ‘거짓말’로 SF를 유려하게 채택하며 동시에 현실을 향한 경고로 제출된다. 신념으로서 SF는 사회적 의미에 대한 재사유를 위한 것임을 상기할 때 이 이야기는 그런 일은 오직 소설 속에서만 일어나야 한다는 간곡한 소망으로 써 내려간 것처럼도 보인다. 그것은 결코 쉬 봉합되지 않을 우리 사회의 상흔을 염려하는 자의 주문을 닮았다. 이 서사는 현실에서 출발하고 현실을 초과한다.

수거 목록. 수거: 거두어 감. 용례: 쓰레기 수거. 굳이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지 않아도 되는 상식일진대, 우리는 이 단어가 사람의 이름이나 특정 단체의 명칭과 붙을 수 있음을 누군가의 수첩을 통해 보았다. 그러나 국가의 사적 편취에 눈먼 자에 복종하기 위해 작성된 선무당의 수첩으로부터 꺼내 정보라에게 이식된 이름의 목록은 결을 달리한다. 거대 야당이나 힘을 가진 단체였던 그것은 차라리 불린 적 없는 이름들이다. 정보라는 허약하고 지친 이름들을 자신의 수첩에 각인한다.
노동조합원과 조합 상근자인 ‘그녀’와 ‘그녀의 아내’는 여러 광장과 행진에서 마주친 ‘데모 동지’다. 첫 문장을 지나자마자 마주한 것이 “그녀”와 함께 있는 그녀의 “아내”(9쪽)인 게다. 정공법으로 천연덕스럽게 돌진하는 문장에서 우리는 둘의 조합이 정상성 문법의 규율 사회로부터 배제되기에 십상인 최약체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한다. 〈지향〉의 그녀들을 연상시키는 이들이 반가울 새도 없이 병원이란 조건은 난공불락의 처지를 더욱 궁색하게 몬다. 병원에 있다는 신체적 허약성은 그들의 결합이 ‘그녀’를 ‘아내’의 ‘보호자’로 세울 수 없다는 사회적 허약성에 겹쳐 폐가 굳어가는 아내가 더 이상 일하지 못할 처지라는 자본의 허약성에 대한 예고에 이르기까지 켜켜이 죄어오는 것이다.
그녀는 아내의 보호자가 아니다. 그녀는 “아내의 ‘간병인’이었다. 의사에게는 친척이라고 말했다”(23쪽). 간병인은 통상 직업적으로 부여된 역할이지 관계를 드러내는 용어로 쓰이지 않는다. ‘보호자’야말로 ‘정상 가족’과 가족 간병을 당연시한 결과로 두루뭉술하게 송출된 단어인 것이다. 보호자라는 말이 등장하는 방식과 맥락에는 법률이 요청하는 법적 주체, 시민의 요건이 뭉근하게 배어있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정상성’에 미달, 미성숙한 자는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건데, 게다가 병원에서 호출될 때는 서류의 책임과 치료비 정산 등 병원의 리스크 관리 차원으로 소급되는 개념으로 변용된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개념화한 ‘운명을 기댈 권리’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호출인 게다. 그마저도 그녀는 아내가 수술실로 들어가버리자 병원 내에서 탈각된다. 간병인으로서 역할마저 정지되니 그녀가 머물 자리도 동시에 납작하게 접혀버린다. 그녀는 갈 데가 없다. (보호자의 사인 등) 자신을 기재할 지면도 기립할 공간도 없다는 것은 그녀의 사회적 표상이나 마찬가지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온전한 자신으로는 표류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불안에 정치적 혼란이 중첩된다.
애초 12월 3일이 세계 장애인의 날이었음을 그런 방식으로 알고 싶었던 이는 아무도 없다. 비상계엄은 단 하루(이 역시 표면적이지만) 장애인의 날마저 빼앗아 간 셈이다. 거기에 더해 ‘2차 비상계엄’은 계엄군과 함께 소설의 현실로 침투한다.
“장애인 콜택시는 계엄령과 함께 운행이 중단되었다. 일반 택시는 대부분 휠체어 사용자를 태우려 하지 않았다. 전동휠체어는 일반 택시에 들어가지 않았다. 장애인 활동가들은 저상버스를 기다려서 타거나 지하철을 이용해서 사무실로 이동했다.”(65~66쪽)
르포르타주-SF의 문장은 버석거리는 현실의 냉랭함과 건조함을 그대로 옮긴다. 저 문장의 어디에 허구가 있을까. 지난한 현실 앞에 계엄이라는 폭압은 누군가의 취약성을 한 겹 더 발가벗길 따름이다. Vulnerability, 취약성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상처받을 가능성을 향해 한껏 열려있다. 이들을 휠체어에서 강제로 내리고 던지는 행위는 비유적이 아니라 다리를 절단하는 일이기도 하다. 만약 갑자기 걸을 수 없게 된 자의 집에 불이 난다면 그 전과는 완전히 다른 공포를 체현할 거라는 식의 짐작만으로 닿기에는 턱없이 부족해서 그런 폭력은 더 깊은 죄가 된다.
쉽게 상처받을 수 있는 존재는 곳곳에 있다. 이주노동자의 이름은 원래 다른 것이었지만 “한국 사람들이 발음하기 어려워해”(40쪽) ‘알’로 삭제, 변형된다. 가뜩이나 학력, 직업, 나이, 장소나 차림새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우리 사회 내 호명의 방식에는 계급과 계층, 자본과 세대의 문제가 지저분하게 착종 되어 모호하기만 한데, 이주노동자의 이름은 그 주인과 상관없이 호명 주체의 입말에 편하게 재단된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가정도 꾸리며 귀화를 마친 알의 한국어 실력은 유창하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이름을 되찾지는 못한다. 이름은 타자에 의한 부름인 것이다. 이름이 협소하게 재단되는 것이 알의 존재에 대한 유비이듯 학교 밖 성소수자 청소년 ‘단단’은 삭제되는 방식이 존재를 유지하기에 유리하다는 걸 깨우친 이다. 여러모로 ‘보호자’가 필요해 보이지만 그를 보호할 어른은 부재한다. 어째서 배제되는 것이 삶의 지속과 연동되어야 한단 말인가.
시민이면서도 내내 권리 앞에 누락된 자들, 그러나 여기서 알과 단단이 (영상) ‘기록’하는 자들이라는 것에 눈길이 머문다. 우리 사회 내에서 ‘입 없는 자’로 치부되는 이들에게 작가가 널리 말할 입을 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알이 실천과 이론 사이의 연결을 고민하는 자라는 것, 단단이 광장의 응원봉과 깃발의 연대를 아는 자라는 것은 작가가 이들을 신뢰하는 근거인 동시에 그들의 자원이기도 하다.
극우 선동가의 정치 집회 현장에서 카드발급으로 후원금을 인출하는 사례나 음모론으로 핸드폰 통신망의 안전성을 내세우며 가입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동지들과 집회는 수익모델 창출과 자본의 환산이라는 미국식 천민자본주의의 사실적 장면을 그릴 때조차 그들 역시 “억울한 사람”(100쪽) 없는 세상을 원했던, ‘배신’당한 자들임을 말함으로써 진영의 편을 가르거나 혐오의 정동을 생산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