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처럼 살기 : 사과 농부 정치학자가 월악산 숲속에서 건네는 공존과 존엄의 기술

버섯처럼 살기 : 사과 농부 정치학자가 월악산 숲속에서 건네는 공존과 존엄의 기술

$21.40
저자

김영수

저자 : 김영수
아프리카 정치의 역사를 공부하고 연구했다. 공동체의 삶 속에 담긴 민주주의적 대안과 권리의 문제에 천착했으며, 학술 연구지 《진보평론》의 편집위원, 공공운수노동조합 조직국·정책국 활동가로 일했다. 2010년에 귀농·귀촌한 뒤 현재는 시간의 절반을 사과밭에서, 나머지 절반을 마을과 지역에서 연구와 가르침, 배움에 쓰고 있다. 제천 남부 지역의 마을신문 《봉화재 사람들》을 발행하고 ‘숲속 아카데미아’를 운영한다. 저서로 『화해는 용서보다 진실을 요구한다』, 『과거사청산, 민주화를 넘어 사회화로』, 『민주주의를 혁명하라』, 『당신은 민주국가에 살고 있습니까』, 『헌법전쟁』 등이 있다.

목차

프롤로그
포자-숲속 아카데미아 열기: 일탈하며 신화 쓰기
핀(PIN)-‘잘’ 사는 사람들
갓-장마와 태풍을 기다리는 송이버섯

제1장 ‘잘’ 사는 사람들
성공을 재정의하는 사람들
신인류로 사는 사람들
귀농·귀촌을 바라보는 관행 깨기
여백과 공공선을 만드는 사람들
영토를 일구는 사람들

제2장 길을 찾아 나선 길
오해라는 껍질
농산촌 코드의 역설
자신의 신화 일깨우기

제3장 자아의 신화에서 깨어나기
살아 있다가 죽고 싶은 꿈
남김없이 죽을 수 있을까?
에필로그
한국형 『월든』은 가능한가?

발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를 이어 주고 순환하게 하는 삶

출판사 서평

“주류의 방식으로 살지 않아도, 우리의 삶은 성립합니다.”

김영수는 아프리카 정치의 역사와 민주주의, 공동체의 권리와 자치 문제를 연구해 온 정치학자다. 대학에서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학술 연구지 『진보평론』의 편집위원과 공공운수노동조합의 조직국·정책국 활동가로도 일했다. 이후 여러 사회운동 단체에서 활동연구자이자 연구활동가로 살아왔다. 정치학자로서 공동체와 권리, 민주주의의 문제를 연구하고 사회운동의 현장에서 제도와 현실의 간극을 경험했던 저자는, 농촌으로 삶의 자리를 옮긴 뒤 그 질문들을 땅과 사람의 관계에서 다시 풀어낸다.

그에게 귀농은 도시를 떠나 편안한 삶을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이론의 추상성과 구체적인 삶 사이의 거리를 자신의 몸으로 건너는 일이었다. 저자는 “주체성을 통제하거나, 변화의 힘을 상실하게 하는 관행이야말로 정신의 식민화”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일탈은 익숙한 질서를 무작정 거부하는 행동이 아니다. 자신을 지배해 온 기준을 의심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조직하기 위한 주체화의 과정이다. 농촌에서의 삶은 저자에게 관행을 깨고 새로운 삶의 신화를 쓰는 실험이었으며, ‘반노반지’의 방식은 그 실험을 가능하게 한 구체적인 조건이었다. 저자는 사과밭에 들어설 때마다 “먼저 땅속에서 살아가는 미생물들을 보고, 다음으로는 사과밭에서 사과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40여 종의 풀과 풀뿌리를 본 다음, 사과나무와 이파리에서 살아가는 균류와 곤충을 살피고 나서 사과를 본다”고 쓴다. 사과밭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생산의 공간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이 함께 살아가는 “공생의 터”이며, 농부는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생명의 관계를 돕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농사에만 머물지 않는다. 저자는 2017년부터 준비해 2020년부터 제천 남부 지역의 마을신문 『봉화재 사람들』을 발행하고, 2025년에는 수산면 숲속 마을에 ‘숲속 아카데미아’를 열었다. 마을신문은 주민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지역 안팎의 관계를 이어 가는 실천이며, 숲속 아카데미아는 마을과 숲을 새로운 배움의 공간으로 삼아 사람들이 함께 ‘잘’ 사는 삶과 삶의 질을 생각하는 자리다. 책에는 이 과정에서 만난 농산촌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수산면 이장협의회 장병운 회장과 장덕 씨, 마을의 기억을 지켜 온 성정순 할머니 등은 거대한 성공의 서사와는 다른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 가며 공동체를 지탱하는 인물들이다.

저자는 이들을 ‘삶터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풀뿌리의 거인들’이라고 부른다. 책 속 한 농부의 말처럼, “지금 이 순간보다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없다네”라는 삶의 감각은 돈과 지위만으로는 측정되지 않는 삶의 가치를 보여 준다. 『버섯처럼 살기』는 도시의 성공 기준에 의문을 품은 독자에게 다른 삶의 척도를 제시하고, 귀농·귀촌을 고민하는 독자에게는 농촌 생활의 낭만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보여 준다. 동시에 지역에서 살아가는 독자에게는 자신의 노동과 관계, 마을의 기억이 지닌 공공적 가치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사과 농부 정치학자가 월악산에서 건네는 삶과 죽음,
그리고 관계에 관한 깊은 사유

『버섯처럼 살기』는 농촌과 생태의 문제를 넘어 삶의 후반부와 죽음, 그리고 한 사람이 다른 존재들과 관계 맺는 방식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나이 듦은 관행의 층을 켜켜이 쌓는 과정”이라고 말하며, 나이 든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이 흐르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방식과 신념을 돌아보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당신은 어떤 노인으로 살다가, 어떻게 죽고 싶습니까?”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만을 묻는 것이 아니라, 남은 시간을 어떤 노동과 관계 속에서 살아갈 것인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새롭게 시작할 것인지 묻는 질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삶의 후반부를 ‘고령 청년’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삶을 정리하고 축소하는 대신 새로운 배움과 노동, 관계를 시작하며, 잘 살다가 잘 죽는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아프리카의 우분투 사상과 버섯의 균사체를 연결하는 사유로 확장된다. “너를 통해서만 내가 사람임을 알 수 있다”는 우분투의 명제처럼, 인간은 홀로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라 타인과 자연, 장소와 기억의 관계에서 비로소 사람다워진다. 저자가 말하는 공존은 모든 차이를 지우고 하나가 되는 상태가 아니다. 각자의 자리와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로의 삶이 가능하도록 돕는 관계이며, 자연과 인간, 농업과 지역 경제, 세대와 세대, 생산과 돌봄을 함께 바라보는 삶의 방식이다. 이 책이 기존의 생태 에세이나 귀농 서사와 다른 지점도 여기에 있다. 생태적 삶을 개인의 생활 방식으로 축소하지 않고, 지역의 경제와 문화, 노동과 돌봄, 나이 듦과 죽음,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하나의 연결된 문제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지방 소멸과 초고령사회, 기후위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오늘날, 이 책은 거대한 정책 해법을 제시하기보다 한 사람이 땅을 돌보고 주민의 이야기를 기록하며 서로 배울 자리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 준다. 그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사회의 변화가 반드시 거대한 사업이나 눈에 띄는 성과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자리와 공동체의 관계에서 시작될 수 있음을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한국형 『월든』 역시 사회를 떠난 은둔의 삶이 아니다. “한국의 ‘월든’은 소멸해 가는 지역 공동체의 바닥에서 이웃의 손을 잡고, 서로의 귀가 되어 주며, 늙어 감을 지혜의 지층으로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완성된다.” 이 책은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현실적인 질문을, 도시의 청년에게 성공과 효율의 언어 바깥에서 삶을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은퇴와 이주를 준비하는 중장년에게 삶의 후반부를 새롭게 상상할 언어를 건넨다. 생태와 환경, 지역과 공동체, 노년과 돌봄의 문제를 고민하는 독자에게는 서로 다른 의제가 사실 하나의 삶의 문제로 이어져 있음을 보여 준다.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우리가 자본의 코드를 거부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힘을 신뢰하며, 타인의 아픔을 내 지층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각자의 삶터에서 한 송이 버섯으로 피어날 수 있다”고 쓴다. 『버섯처럼 살기』는 한 사과 농부의 귀농 기록에 머물지 않는다. 정치학자이자 사회운동가였던 김영수가 농부로 살아가며 얻은 질문과 마을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지역의 가능성을 실험하며 발견한 답을 함께 담은 책이다. 혼자 살아남는 삶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상상하고,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서로의 삶을 지탱할 것인지 묻는다는 점에서 이 책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삶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