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연명의료결정법입법10주년,‘좋은죽음’의의미를새롭게묻다
2026년,연명의료결정법입법10주년을맞이한지금,사람들은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쓰고연명의료는받지않겠다고다짐한다.그러나죽음은근본적으로불확실성의영역에속한다.현실은언제나우발적이라사람이죽어가는과정에는서로다른목적과역량을지닌의료기관들,계속변화하는의료기술과지식체계,그리고그사람을둘러싼다양한돌봄의관계망이얽혀있다.그러므로저자에따르면‘좋은죽음’은연명의료를받느냐,받지않느냐의이분법을훌쩍뛰어넘는다.‘죽어감’의과정에얽혀있는법이나규칙,매뉴얼은이복잡한얽힘을모두포착할수없으므로삶과죽음을세세하게규제하는장치이기보다,예외와특수성,관계의복잡성에열려있는틀이되어야한다고강조한다.생애말기를인류학적으로이해하기위해서‘현장’에들어간저자가끈질기게포착하고있는것도바로이지점이다.
‘말기’는의사가선언하는순간완성되지않는다
책에서Z병원으로언급되는서울의한상급종합병원은최첨단의료기술과치료역량이집중된공간이지만,동시에말기환자가오래머물기어려운곳이기도하다.이곳에서환자들은암을치료하거나진행을늦추기위해입원하지만,더는시도할치료가없다고판단되는순간‘말기환자’로재분류된다.그러나저자는말기가의사의선언만으로완성되는것은아니라고말한다.의료진내부의판단,환자와가족을대상으로한호스피스상담,연명의료에관한대화,환자명단의‘항암’에서‘완화’로의분류변화가함께이루어질때비로소말기는현실에서활성화된다.
말기를받아들이는과정은결코단순하지않다.환자와가족은치료를포기하는것으로받아들일까두려워하고,의료진은언제어떻게사실을설명해야할지망설인다.이책은그러한침묵과갈등을특정개인의무지나이기심으로환원하지않고,병원조직과의료문화,법과제도,가족관계가얽힌현실로분석한다.
한편저자가들여다보는말기는입체적이다.즉,말기가의료전문가에의해생산되는시간이라면,그시간은어떤말과행위와사물에의해실현되는가?말기라는시간은그것이생산되는공간과어떻게조응하는가?말기에진입한존재와그들을돌보는이들은어디에머물다가어디로떠나는가?죽음을앞둔사람을돌보는것은여타간병과어떤차이가있고그의미는무엇인가?이책은이런질문을파고들며말기를의료인류학의시선으로탐구한다.
병원밖으로보내는일이돌봄이될때
책의3장은말기환자의‘이동’에주목한다.병원과관련된여러행위중환자의이동은학계의관심을적게받은주제이기도하다.상급종합병원에서환자가갈수있는곳은집,호스피스,요양병원,중환자실등다양하지만,각각의장소가환자와가족에게갖는의미는다르다.집은익숙하고가족과함께할수있는장소이지만,산소호흡기나석션(suction)등의료기술을관리할가족의역량과돌봄부담이요구된다.호스피스는병원의장점을일부유지하면서도보다편안하고관계중심적인돌봄을제공할수있지만,병상부족과때로는환자및가족의심리적저항이라는현실적장벽이존재한다.반대로중환자실은생명을연장하기위한강력한의료기술이집중된공간이지만,말기환자에게는고통스러운처치와가족과의단절을초래할수있다.
저자는환자를다른기관으로보내는‘전원’이단순한행정절차가아니라고강조한다.이책의주인공가운데하나인완화의료팀은환자의신체상태,가족의돌봄능력,경제적조건,지역과종교,환자와가족의바람을세심하게조율해다음장소를찾는다.때로는병원규칙에따라환자를빨리내보내는대신,환자가안전하게이동할수있을때까지병원에머물도록돕기도한다.이과정에서전원은환자를밀어내는행정이아니라,환자에게마지막시간을보낼수있는‘괜찮은장소’를마련하는돌봄으로재구성된다.
말기돌봄의궁극적인지향점,‘관계-생성적돌봄’
이책이특별한이유는말기돌봄을제도나관념의차원에만머물게하지않고,체화된몸의경험과일상의행위속에서포착한다는데있다.저자는완화의료팀과함께환자의머리를감기고,목욕과족욕을돕고,면도와마사지,환복을지원했다.환자에게차를권하고,병실을방문해안부를묻고,이야기를들어주며,가족에게감사와사랑의말을전할기회를마련했다.이러한행위는겉으로는작고사소해보이지만,쇠약해진몸의요청에응답하고,소진된가족의부담을덜며,환자와가족이병원에서고립되지않도록하는구체적인돌봄이었다.이러한‘관계맺기’는간호사나봉사자개개인과의관계가아니라환자및가족-완화의료팀이라는집합적관계의속성을띤다.관계의목적이개인적친교가아니라말기돌봄이기때문이다.
특히저자는말기돌봄의궁극적인지향을‘관계-생성적돌봄’이라는개념으로제시한다.말기돌봄은단지통증을줄이거나치료를중단하는데그치지않는다.환자가자신과관계를맺고,가족과못다한말을나누며,돌봄제공자와연결되고,사별이후에는다른유가족과새로운관계망을만들어가도록돕는실천이다.따라서말기돌봄의중요한본질은그것이관계를생성하고,잇고,확장한다는것이고,이관계됨자체가바로돌봄의목표라는것이저자의핵심주장이다.
‘좋은죽음’을넘어말기돌봄을상상하기
이책은‘좋은죽음’이라는이상을무비판적으로제시하지않는다.고통없이,평온하게,가족과함께,자신의의사를밝힌채죽음을맞이하는이상은중요하지만,모든환자와가족에게동일하게적용할수는없다.환자의몸상태와가족관계,경제적여건,의료인프라와법적조건에따라가능한선택은달라진다.따라서저자는‘좋은죽음’의정답을제시하기보다,말기라는시간을어떻게함께구성할것인지묻는다.연명의료를받을것인지중단할것인지의이분법을넘어,어디에서누구의돌봄을받으며무엇을이야기하고어떤관계를남길것인지가함께논의되어야한다는것이다.돌봄은고통과통증에관심을기울이는것이지,고통없는세상을꿈꾸는것이아니며,특히말기돌봄은환자개개인에게가장적합한것을찾아내기위한아주작고미세한실천들의조합이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