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어도 정말 괜찮을까?
덜 소비하고 더 누리며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
일생의 절반 이상을 시골에서 보내며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전해온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는 시골 생활을 결코 낭만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시골에서는 내 일은 내 힘으로 한다는 강한 마음가짐과 체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현실을 짚는다. 도시에서 당연하게 누리던 편리함이 사라진 자리에서 필요한 것은 스스로 해결하는 힘이다. 자연은 아름답지만 때로는 거칠고, 노동은 정직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다무라 유니의 『오늘도 자급자족』 역시 이러한 시골 생활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연을 극복하거나 통제하려 하기보다 그 안에서 자신의 생활 방식을 조율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찾아간다. 시골을 이상적인 낙원으로 포장하지 않으면서도, 도시에서 잃어버린 삶의 감각을 하나씩 되찾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도시에서 누리던 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0엔 생활을 영위하려면 대대적인 설비와 비용이 필요하지만, 숲속에서 보다 원시적인 생활을 선택한다면 거의 돈을 들이지 않고도 시작할 수 있겠지요. (중략) 중요한 것은 ‘최소한의 편리함은 유지하면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돈을 쓰지 않는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22쪽)
물가 상승과 주거비 부담, 불안정한 경제 상황과 끝없는 경쟁 속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오늘도 자급자족』은 그 질문에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더 많이 가지는 삶에서 한 걸음 물러나, 스스로 살아가는 힘과 지금 가진 것의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돈과 편리함에 의존하지 않고도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인지, 이 책은 그 방향을 조용히 일러준다.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갈 때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가
『오늘도 자급자족』은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저자와 그 가족의 기록이다. 세 가족은 직접 집을 짓고 밭을 일구며 자연 속에서 아이를 키운다. 필요한 먹거리를 만들고, 고장 난 물건을 고쳐 쓰며, 생활에 필요한 일들을 자신의 손으로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 얼핏 보면 극단적인 생존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이 이야기하는 것은 절약의 기술이나 극한의 생존 노하우가 아니다.
이런 생활을 통해 저자가 보여주는 것은 돈을 적게 쓰는 과정에서 발견한 새로운 풍요다. 돈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삶이 빈곤해지는 것은 아니다. 직접 기른 작물을 먹고, 가족과 함께 집을 고치고,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며, 아이가 자라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삶의 가치다. 소비를 줄이는 대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늘려가는 과정에서 저자 가족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풍요와 ‘재산’을 발견한다.
“퇴비통 화장실을 계속 사용하면서부터는 조금 전까지 내 몸의 일부였던 것을 더럽게 여기는 마음도 점차 옅어졌습니다. 우리가 똥과 흙을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그것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63쪽)
시골에서의 ‘0엔 생활’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소재를 내세우지만, 이 책이 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법과 그 안에서 발견하는 가족의 일상이다. 집을 짓고 밭을 일구고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일은 구체적인 노동으로 그려지며, 그 과정에서 독자는 시골 생활의 불편함과 수고로움을 마주한다. 하지만 바로 그 노동을 통해 도시에서는 쉽게 지나쳤던 계절의 변화와 음식의 가치, 물건의 소중함, 이웃과의 관계,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새롭게 다가온다.
돈이 아니라 삶의 선택지를 넓히는 0엔 생활
이 책은 무조건 도시를 떠나거나 현재의 삶을 모두 포기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현대인에게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선택할 자유’다. 무엇을 살 것인지, 무엇을 버릴 것인지, 어떤 일을 자신의 손으로 할 것인지,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한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삶이야말로 행복에 가까워지는 길이라고 조용히 제안한다.
끊임없이 발전하는 테크놀로지 시대를 살아가며, 어느 순간 피로를 느끼고 있지는 않나요? 저 역시 0엔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는 그랬습니다. 많은 것이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필요한 정보는 언제든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이지만, 그 편리함 속에서 오히려 ‘나답게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은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257쪽)
‘0엔’은 이 책에서 단순히 소비하지 않는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가치가 얼마나 많은지를 발견하는 출발점에 가깝다. 돈을 쓰지 않기 위해 시간과 노동을 들이지만, 그 과정에서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만족과 관계의 의미를 발견한다. 절약은 목적이 아니라, 삶을 다시 선택하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
저자 가족의 삶을 모든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누구나 전기와 수도 없이 살 수 있는 것도, 도시를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오늘도 자급자족』은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적인 질문을 던진다.
저자 가족의 삶이 모든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전기와 수도 없이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도시를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오늘도 자급자족』은 바로 그 점에서 더욱 현실적인 질문을 던진다. “굳이 무리해서 앞으로 나아갈 필요도 없고, 모든 것을 과거의 방식으로 되돌릴 필요도 없습니다. 편리함과 불편함이 지닌 장점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시대이기에, 이와 같은 삶의 방식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259쪽)
적게 소비하고, 오래 사용하고, 가까운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도시를 떠나지 않더라도 불필요한 소비를 하나 줄이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나 늘리는 것. 거대한 결심이 아니어도 삶의 감각은 달라질 수 있다. 책은 작은 선택과 실천에서 시작되는 다른 삶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후위기와 과소비, 주거 문제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지금, 저자 가족의 생활은 단순한 이색적인 시골 체험을 넘어 미래의 삶을 고민하게 하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읽힌다. 자연을 소비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 버려진 것을 다시 사용하고 물건의 수명을 늘리는 생활 방식, 돈보다 시간과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은 특정한 지역이나 문화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늘도 자급자족』은 ‘가난하게 사는 법’이 아니라, 적게 소유하면서도 충분히 잘 살아가는 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내가 가진 시간과 노동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는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도시의 속도에 지친 사람에게는 잠시 멈춰 설 이유를, 소비와 경쟁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필요한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기회를 건네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