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맛

기억의 맛

$18.19
Description
어떤 음식은 입에 넣기도 전에, 냄새 하나만으로 우리를 오래전 어느 흐린 오후의 골목길에 데려다 놓는다. 『기억의 맛』은 그런 음식과 기억에 관한 책이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저자에게 기억의 첫 페이지는 늘 할머니의 부엌이다. 된장찌개 냄새와 밥솥의 뿌연 김이 가득하던 가로세로 세 걸음 남짓한 공간. 그 밥상에서 자란 아이는 임용 시험에 합격해 경기도로 발령받았고, 지금은 두 딸을 키우는 워킹맘이자 현직 교사로 살아간다. 그 시간의 마디마다 음식이 하나씩 놓여 있다. 자취 첫날 한 솥 끓여 물릴 때까지 먹은 카레, 할머니의 빈소에서 삼킨 육개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던 날 의사가 건넨 일력 한 장 때문에 사러 나간 아이스크림, 아이들을 깨우기 전 새벽에 뭉치던 주먹밥.

저자는 할머니의 손맛을 흉내 내려 불 앞에 서 있다가 엉뚱한 질문에 붙들린다. 이 음식들은 도대체 언제부터, 어떤 사연으로 우리 식탁까지 오게 된 걸까. 그 호기심은 그를 도서관의 서가와 오래된 기록물 사이로 데려갔고, 사적인 기억 뒤에 숨어 있던 거대한 역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제비 한 그릇에는 전쟁 이후 원조 밀가루와 혼분식 장려 정책의 시간이 고여 있었고, 육개장이 장례식장의 기본 메뉴가 된 것은 1990년대의 일이었다. 믹스커피의 출발점은 참호 속 병사들의 손에 들린 한 잔이었다.

그래서 스물세 편의 글은 저마다 두 개의 이야기가 있다. 앞은 지극히 사적인 기억이고, 뒤에는 그 음식이 걸어온 내력을 정리한 코너가 붙는다. 개인의 식탁과 음식의 역사가 겹치는 순간, 매일 무심코 넘기던 끼니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먹는 일은 기쁨만 삼키는 일이 아니다. 슬픔과 억울함, 안도와 수치와 외로움까지 함께 삼키는 일이다. 그래서 어떤 음식의 맛을 기억한다는 건, 그 시절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함께 떠올리는 일이 된다. 지친 하루의 끝에서 이유 없이 어떤 음식이 사무치게 그리웠던 사람이라면, 이 책의 어느 페이지에선가 자기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것이다.
저자

손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