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이 0원이 되는 시대,
무엇이 운명을 가르는가
2006년,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무대에 올라 CUDA를 발표했다. 아무도 박수 치지 않았다. 게임용 그래픽카드를 만드는 회사가 왜 과학자용 연산 플랫폼을 만드느냐며 월스트리트는 조롱했다. 시장 규모는 말 그대로 0이었다. 황은 게이머들이 쓰지도 않을 이 기술을 모든 게이밍 칩에 얹어 팔며 19년을 버텼다. 그리고 2025년 10월 29일, 엔비디아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시가총액 5조 달러를 돌파했다. 오늘날 챗GPT를 구동하는 GPU도, 테슬라의 자율주행 신경망을 훈련하는 서버도, 그때 아무도 원하지 않던 CUDA 위에서 돌아간다.
AI가 모든 정답을 쏟아내는 세상에서 ‘아는 것’의 가치는 0에 수렴한다. 기존 문제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푸는 능력은 이미 AI가 인간을 압도하는 영역이다. 반대로 문제 자체를 의심하고 아무도 던지지 않은 질문을 발명하는 능력이 있다. 남들이 풀고 있는 문제판 위에서 더 잘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판을 엎고 새 판을 까는 능력이다.
이 책의 저자 김영록과 최혜인은 그것을 ‘탈패턴’이라 부른다. 머스크는 로켓을 더 싸게 만드는 법을 묻지 않았다. 왜 로켓은 한 번 쓰고 버려야 하는지를 물었다. 아모데이는 AI를 더 똑똑하게 만드는 법이 아니라, AI가 똑똑해질수록 왜 더 위험해지는지를 물었고 그 질문을 거대한 사업으로 만들었다.
기술은 이제 누구에게나 열린 상수다. 결과를 가르는 변수는 그 기술을 쥔 사람의 생각의 깊이와 방향이다. 이 책의 핵심 개념인 ‘생각의 격차’는 시가총액의 격차로, 조직의 생존 격차로, 결국 개인의 운명의 격차로 이어진다.
시선, 경계, 스케일, 룰
10명의 거인이 깨부순 네 개의 틀
이 책에 등장하는 10명은 서로 다른 전장에서 싸웠지만 그들의 뇌에는 놀랍도록 같은 원리가 새겨져 있다. 저자들은 이를 네 개의 파괴로 정리한다.
첫째, ‘시선의 파괴’다. AI 붐이 일자 수많은 천재가 더 똑똑한 모델을 만들려고 몰려들었다. 알렉산더 왕은 반대로 데이터 라벨링이라는 진흙탕에 걸어 들어갔다. 투자자들이 착취 노동이라며 고개를 저은 그 사업에 9년 뒤 저커버그는 20조 원을 꺼냈다. 코드 한 줄 못 쓰는 철학 박사 알렉스 카프는 흩어진 데이터 위에 어떤 틀을 씌울지 정하는 능력으로 전장의 문법을 바꿨다. 젠슨 황은 규모가 0인 시장을 19년 동안 지켰다. 세 사람 모두 AI 모델을 만들지 않았다. 대신 AI가 존재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을 시장보다 수년 먼저 보았다. AI가 모든 것을 효율화하는 시대에는 모두가 외면하는 비효율과 병목이 역설적으로 가장 강력한 해자가 된다.
둘째, ‘경계의 파괴’다. 데미스 허사비스는 체스 신동에서 게임 개발자로, 다시 뇌과학자로 옮겨 다녔다. 한 우물을 파지 않은 이력이었지만, 그는 그 모든 분야를 ‘지능이란 무엇인가’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꿰어 알파고와 알파폴드를 만들고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사티아 나델라는 아들 자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로 한 뒤 ‘다 아는 사람’의 문화를 ‘다 배우려는 사람’의 문화로 바꿨다. 20년 가까이 적대 관계였던 리눅스를 끌어안았고, 시가총액 3,000억 달러에서 정체되어 있던 마이크로소프트를 약 4조 달러 기업으로 키웠다. 피터 틸은 군중이 조롱하던 순간에 페이팔과 페이스북, 팰런티어에 베팅했다. 이 셋이 지운 경계는 각각 분야와 분야 사이, 나와 타인 사이, 군중의 합의와 나만의 진실 사이에 있었다. AI는 경계 안에서 최적화할 뿐 경계 자체를 지우지 못한다.
셋째, ‘스케일의 파괴’다. 앱을 만드는 사람은 어떤 문제를 풀지 묻는다. 운영체제를 만드는 사람은 모든 문제가 그 위에서 작동할 구조를 묻는다. 샘 올트먼이 세우거나 투자한 사업들을 한데 놓으면 AI, 연산, 에너지, 인간 인증, 수명을 잇는 하나의 문명 운영체제가 보인다. 다리오 아모데이는 그 위에서 무엇이 작동해서는 안 되는지를 회사의 구조와 AI 모델 안에 새겼다. 2억 달러 규모의 국방부 계약 앞에서도 끝까지 지킨 그의 레드라인은 브레이크가 강해야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AI가 코드를 짜는 시대에 인간에게 남는 질문은 ‘어떻게’가 아니라 ‘왜’와 ‘어디로’다.
넷째, ‘룰의 파괴’다. 일론 머스크는 로켓 원재료비와 완성품 가격 사이의 50배 간극을 ‘바보 지수’라 부르며, 60년 동안 아무도 의심하지 않은 전제를 깨뜨렸다. 로켓은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이라는 전제였다. 백준호는 ‘AI 칩은 엔비디아 방식이어야 한다’는 업계의 상식을 의심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잘하는 범용 칩 대신 추론이라는 한 점에 모든 것을 건 칩을 만들었다. 물리 법칙처럼 바꿀 수 없는 것과, 관행이어서 아무도 바꾸지 않은 것이 있다. 이 둘을 구분하는 눈은 기존 데이터의 전제를 의심하지 못하는 AI가 결코 가질 수 없는 능력이다.
그들은 타고난 천재가 아니었다
탈패턴 뇌는 설계할 수 있다
이 책이 여느 인물 평전이나 성공담과 갈리는 지점은 제목 그대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끝까지 묻는다는 데 있다. 알렉스 카프는 글을 한 줄씩 따라 읽지 못하는 난독증 탓에 문장이 아니라 페이지 전체의 구조를 보는 눈을 얻었다. 아홉 살에 켄터키의 교화 학교에서 백 명 넘는 소년들의 화장실을 청소한 젠슨 황은 기대치를 바닥에 놓는 습관으로 규모 0의 시장을 견뎠다. 아버지의 언어폭력과 학교 폭력 속에서 자란 머스크는 사람의 말 대신 물리 법칙을 믿었고, 이것이 ‘제1원칙 사고’의 뿌리가 되었다. 아모데이에게는 치료법이 나오기 4년 전에 아버지를 잃은 경험에서 나온 한 줄이 있었다. “과학이 빠르면 사람이 산다.” 이 한 줄은 어떤 압박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되었다. 삼성전자의 엘리트 엔지니어였던 백준호는 아킬레스건이 끊어져 누워 지내던 침대 위에서 AI 전용 칩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렇다고 고통이 천재를 만든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거인들이 직접 설계한 교육 실험이다. 대학을 그만두는 조건으로 청년을 지원하는 틸 펠로우십이 있다. 고졸 청년에게 플라톤부터 소프트웨어 아키텍처까지 가르치는 팰런티어의 메리토크라시 펠로우십이 있고, 학년도 성적표도 없이 정답 없는 난제를 던지는 머스크의 애드 아스트라가 있다.
이 실험들은 한 가지 사실에서 출발한다. 기존 교육이 가장 잘 길러낸 능력, 곧 정해진 범위 안에서 정답을 빠르게 찾는 능력은 AI가 가장 잘하는 일과 정확히 겹친다는 것이다. 전제를 해체하고 밑바닥부터 논리를 쌓아 올리는 사고는 트라우마의 부산물이 아니라 훈련할 수 있는 인지 구조다. 10명이 삶에서 우연히 만난 결정적 순간을 의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면, 탈패턴 인재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낼 수 있다.
거인의 이야기를 수입하던 나라에서,
거인을 만들어내는 나라로
마지막 장의 주인공이 백준호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한국의 AI 반도체 스타트업 퓨리오사AI는 13억 원으로 시작해 월급을 주지 못하는 시기를 견뎠다. 세계 최대 반도체 콘퍼런스 ‘핫 칩스’에서는 엔비디아와 나란히 발표 무대에 섰고, 메타의 8억 달러 인수 제안을 거절한 뒤 독자 노선을 택했다.
한국은 오랫동안 거인의 이야기를 수입해왔다. 백준호의 9년은 ‘탈패턴 인재’의 조건에 실리콘밸리가 꼭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점을 찾아 그 점에 전부를 거는 사고 구조는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
이 책은 2026년 8월까지의 움직임을 담았다. 앤트로픽과 미 국방부의 충돌, 스페이스X의 xAI 인수와 나스닥 상장, 퓨리오사AI와 브로드컴의 파트너십까지 들어 있어, 지금 AI 산업의 최전선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이 독자에게 궁극적으로 건네는 것은 거인들에 관한 정보가 아니다. 자기 일과 삶에 곧바로 대입해볼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다.
“내 일터에서 모두가 중요하다고 알지만 아무도 손대지 않는 진흙탕은 무엇인가?”
“정말 중요한 진실인데 남들이 나에게 동의해주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당연하게 따라온 절차와 가격을 원재료부터 다시 계산하면 어떤 간극이 드러나는가?”
“나는 ‘어떻게’만 묻고 있는가, ‘왜’를 묻고 있는가?”
AI가 모든 사람에게 가장 매끄러운 평균의 답을 내놓는 시대에는 그 답을 한 번 더 의심하는 사람만이 AI 옆이 아닌 AI 위에 선다. 이 책을 덮을 즈음 우리의 손에는 너무 오래 당연했기에 전제인 줄도 몰랐던 무언가가 하나쯤 쥐어져 있을 것이다. 그것을 처음 의심하는 순간이 곧 ‘탈패턴 사고’가 시작되는 자리다.
책 속에서
황은 이상한 결정을 내렸다. CUDA를 모든 지포스 게이밍 칩에 강제로 얹어서 출시한 것이다. 게이머 수천만 명이 자기 컴퓨터에 쓰지도 않을 기술을 함께 사 가게 된 셈이었다. 마진은 깎였다. 분기 실적 발표 때마다 애널리스트들은 의문을 표했다. 왜 게이머의 비용으로 과학자용 기술을 깔아두는가.
훗날 황은 지포스가 20년 동안 CUDA를 등에 업고 다녔다고 말했다. 닭과 달걀의 문제였다. 소프트웨어가 없어서 칩을 안 사고, 칩이 없어서 소프트웨어를 안 만든다. 황의 해법은 단순했다.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으니, 시장이 만들어졌을 때 이미 거기에 있을 인프라를 미리 심어두는 것. 직접 달걀을 미리 놓아두고 닭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
그것은 ‘무엇’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의 문제였다. 시장이 없는 곳에서 버티려면 기다림을 견디는 구조가 필요하다. 황은 그 심리적 조건을 정확히 지목한다.
“무지는 초능력이다. 엔비디아를 건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엔비디아를 건설할 수 있었다.”
기대치를 바닥에 놓되, 가능성은 천장에 놓는 뇌의 구조. 켄터키의 화장실 바닥에서 형성된 그 습관이, 규모가 0인 시장에서 19년을 버티게 했다.
pp. 069-070 <젠슨 황 - 고통의 복리>
틸이 면접에서 항상 던지는 질문이 있다.
“정말 중요한 진실인데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