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머무는공간이나를바꾸고있다
집과사무실,거리와도시가몸과마음에미치는영향
아침에눈을뜨는방,출근길의거리,하루종일머무는사무실,진료를기다리는병원,아이들이오가는학교의복도,저녁이면다시돌아오는집.우리는하루에도수많은공간을지나고그안에머문다.그리고그곳에서문을열고들어서는순간의거리감,벽과천장이만드는압박감과안도감,바닥의질감과동선의리듬,빛이들어오는방향에끊임없이영향을받는다.자신도모르게걸음을늦추고,어떤장소에서는오래머물고싶어하며,또어떤공간에서는이유없이빨리벗어나고싶다고느낀다.
그런데정작우리는이러한감정과행동의변화가공간에서비롯되었다고생각하지않는다.공간을그저일상이펼쳐지는배경으로받아들이기때문이다.건축가이자신경과학을건축설계에접목해온다비데루촌은바로이지점에서질문을시작한다.그동안건축은왜그안에서살아가는인간보다건물자체에더많은관심을기울여왔을까?
지난수십년동안건축과도시개발은효율과기술,투자가치와시각적인완성도를높이는방향으로발전해왔다.그과정에서건물을사용하는사람의몸과감정,행동과경험은종종뒷전으로밀려났다.문제는건축이아름답지않아서도,기능적이지않아서도아니다.인간이공간을어떻게경험하는가에대한이해없이건물을설계해왔다는데있다.
우리가만든공간은어떤경험을만들어내는가.그리고그경험이반복될때인간의몸과감정,행동과관계는어떻게달라지는가.이책은그동안건축의주변부에머물렀던‘인간’을다시설계의중심으로불러들인다.
우리는공간을보는게아니라,몸으로느낀다
계단과천장,빛과동선이감정과행동을움직이는방식
왜탁트인높은곳에올라서면가슴이시원해질까?왜어떤복도에서는자연스럽게걸음을재촉하고,어떤장소에서는괜히천천히걷게될까?높은천장과낮은천장,직선과곡선,밝은공간과어두운공간은왜서로다른감정을불러일으킬까?
우리는흔히공간을눈으로보고머리로판단한다고생각한다.하지만저자는공간에대한우리의반응이훨씬더빠르고신체적인방식으로일어난다고설명한다.인간의뇌와몸에는오르고,내려가고,눕고,뛰고,몸을웅크리고,다른사람에게다가가고,탁트인곳을바라보았던수많은경험이축적되어있다.이때의움직임은단순한동작으로저장되지않는다.몸의긴장과이완,호흡과심박의변화,그순간느꼈던감정이함께묶여기억된다.그래서비슷한공간을만났을때우리의몸은의식적인판단보다먼저그곳에서가능한움직임과그에뒤따를감정을예상한다.
이책에서중요하게다루는‘행위지원성(affordance)’은이러한작용을이해하는핵심개념이다.계단은오르기를,의자는앉기를,열린통로는이동을자연스럽게불러낸다.그러나공간이인간에게제안하는것은행동의가능성만이아니다.공간은행동뿐아니라그행동이몸에남길감정까지미리제안한다.어떤움직임을예상하고실행하는과정에서몸의상태가달라지고,그변화는다시감정으로이어지는것이다.
이를테면위로오르는움직임과아래로내려가는움직임에서우리는근육의긴장,머리의기울기,시야와자연광의양을서로다르게경험한다.같은사람이라도공간의형태와그안에서요구되는움직임에따라전혀다른신체상태를경험할수있는것이다.결국공간은우리가충분히생각한뒤행동하게만드는것이아니다.공간은먼저몸에말을걸고,몸의움직임을통해감정에영향을준다.『인간을위한공간』이말하는공간의힘은바로이처럼눈에잘보이지않는곳에서시작된다.
아름다운공간이반드시좋은공간은아니다
좋은건축을결정하는새로운기준,‘조율’
그렇다면사람에게긍정적인경험을주는좋은공간은어떻게만들수있을까?이책을관통하는핵심개념은‘조율’이다.우리는흔히좋은건축을아름다운외관이나효율적인동선,새로운기술과같은개별요소로판단한다.그러나저자는어느한요소가뛰어나다고해서좋은공간이만들어지는것은아니라고말한다.자연광,벽과천장의형태,공간사이의거리,재료,색채,리듬,질감,냄새가각각인간에게영향을미치는것은분명하지만,중요한것은이요소들이그장소에서인간이하게될행동과느껴야할감정에맞게하나의경험으로조율되어있는가하는점이다.
병원을생각해보자.병원이의료장비와진료실을효율적으로배치하는것만으로충분하다면‘좋은병원’과‘나쁜병원’의공간적차이를설명하기어렵다.환자가병원에서기대하는경험의본질에는치료뿐아니라안정과회복이포함된다.따라서공간역시그감정과행동을뒷받침해야한다.학교와사무실도마찬가지다.교실과복도를효율적으로배치하는것만으로는‘배움’이라는경험을,책상을최대한많이넣는것만으로는집중과협업이라는경험을담아낼수없다.
좋은공간이란특정한형태나색을적용해누구에게나같은감정을일으키는공간이아니다.그장소가수행해야할역할,그안에서일어나는인간의행동,몸이기대하는움직임,공간이담아야할감정이서로어긋나지않는공간이다.그래서저자가말하는아름다움역시단순한시각적취향과다르다.공간을바라보고움직이고머무르는과정에서인간의몸과감정이자연스럽게맞물릴때,우리는그경험을편안하고아름다운것으로받아들인다.
건축의아름다움을눈으로만판단하던시선에서벗어나,몸과감정의경험으로다시생각하게만드는것이이책의중요한전환이다.이러한조율의원리는저자의감각이아니라신경과학과인지과학연구에기반한것이며,집과사무실같은일상의공간에서도시라는거대한스케일까지똑같이적용된다.결국이책이향하는곳은하나다.인간의몸과감정을이해한다면,우리가만드는공간도달라질수있다는것이다.
결국건축의문제는인간의문제다
우리가머무는공간이삶의방식이되는순간
세계적인건축사상가유하니팔라스마는이책의서문에서오늘날건축이기술과효율,경제논리에지나치게종속되어있다고지적한다.건축이기능을해결하고보기좋은형태를만드는데그쳐서는안되며,그안에서살아가는인간이무엇을느끼고어떻게행동하는지를다시중심에놓아야한다는것이다.다비데루촌은여기에신경과학과인지과학의관점을더해,좋은공간이란무엇인가라는오래된질문을‘인간은공간을어떻게경험하는가’라는문제로새롭게풀어낸다.
『인간을위한공간』은그래서건축가와디자이너만을위한책이아니다.집과사무실,학교와병원,거리와도시속에서살아가는누구에게나우리가당연하게받아들여온공간을다시바라보게한다.공간은삶이펼쳐지는무대에그치지않는다.우리가머무는공간은결국삶의방식그자체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