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렬한 허기 (암과 요리의 계절)

맹렬한 허기 (암과 요리의 계절)

$19.26
Description
지금은 어머니가 항암 치료를 시작한 지 3주째
나는 육식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하는
채식주의자로 사는 게 어떤 의미인지 배우고 있다

“이 아름다운 책의 제목이 말하는 가장 깊은 허기는 결국 삶에 대한 허기다. 아마 그 허기는 죽음의 그림자 아래에서, 그리고 죽음에 맞서는 사랑의 빛 속에서 가장 강렬해질 것이다.” 패멀라 밀러, 저널리스트

“『맹렬한 허기』는 결국 암이 우리 삶에 들여놓는 그 무게, 곧 삶의 좌표를 피할 수 없는 이별 쪽으로 서서히 옮겨놓는 무게에 관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동시에, 그럼에도 우리를 서로에게 붙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는 책이기도 하다.” 애나 리히, 시인

『맹렬한 허기』는 예순다섯에 ‘배아형 횡문근육종’이라는 희귀 자궁암을 진단받은 어머니를 돌본 캐런 바빈의 회고록이다. 암세포가 배아의 골격근과 닮아 ‘배아형’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암은 주로 10세 이하 어린아이에게 발병한다. 한때 바빈을 품었던 어머니의 자궁에 이제 종양이 분열하고 있고, 같은 시기 여동생의 뱃속에는 레몬만 한 크기의 태아가 자라고 있다. 이 책에 흐르는 절박한 허기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왜 하필 어머니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뱃속이 죽어버린 것 같다’는 어머니에게 무엇을 먹여야 하는지. 탄생과 파괴의 그림자가 드리운 가을부터 모든 치료를 마친 이듬해 여름이 오기까지 바빈이 붙든 것은 다름 아닌 요리다. 어머니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만들기 위해 손끝으로 고기를 누르고, 묵직한 뼈를 우리고, 재료를 썰고 다지는 나날 가운데 바빈은 음식과 가족, 질병의 관계를 묻는다. 왜 나는 질병이라는 불확실성을 메우기 위해 음식 은유를 끌어오는가? 환자를 쉽게 지워버리는 의료 시스템에서 언어는 어떤 힘을 가지는가? 암이라는 부조리 앞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는가? 이 책에서 요리는 무너져 내리는 일상을 지탱하는 가장 구체적인 반복 행위이자 삶의 부조리를 해석하는 앎의 방식이다. 종교와 과학, 예술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계의 불협화음에 응답하듯 바빈은 요리로써 삶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배운다.

이 책의 저자 캐런 바빈은 장소와 풍경에 새겨진 기억을 따라 인간과 자연, 가족과 역사의 관계를 탐구하는 에세이스트이자 교육자다. 창작 논픽션(creative nonfiction)을 문학 연구의 대상으로 다루는 학술지 『어세이』(Assay)의 창립자이자 편집장으로 활동하며, 현재 미국 테네시대학교의 채터누가 캠퍼스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바빈이 나고 자란 미국 중북부 미네소타주의 척박한 토양과 독일계와 스웨덴계에 뿌리를 둔 가족사는 그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중요한 토대다. 『맹렬한 허기』에는 혹독한 겨울을 함께 견디는 공동체의 돌봄과 지지가 곳곳에 스며 있다. 마을 사람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수프를 끓였던 어린 날처럼, 어머니의 암 선고 이후 이웃들은 겨울밤 추위를 뚫고 한 아름의 음식을 들고 찾아온다. 문 앞에서 괜한 사과의 말을 건네다가도 입김과 함께 웃음을 터뜨리는 이웃들, 육식하는 어머니를 위해 요리하는 채식주의자 딸에게 “당신이 만들려는 음식에는 그쪽이 더 나을지도 몰라요” 하고 재료를 권하는 정육점 직원. 이 책에는 암이라는 개인적인 고통을 한 사람의 몫으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공동체의 의지가 담겨 있다.


풍요롭고도 날카로운 향,
깊은 우울에 빠지거나 공포에 질려 무기력해질 때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강력한 사랑의 맛

암의 나날에 바빈이 마주한 건 어머니 몸에 발생한 병변만이 아니다. 여성이 분명히 느끼는 고통을 과장의 산물로 변질시키는 의학계의 오랜 관성, 암을 ‘승리해야 할 전쟁’이나 하늘이 인간을 시험하려 내린 시련으로 보는 오래된 언어 역시 바빈을 내리누른다. 손택은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질병을 바라보는 가장 ‘진실한’ 방법이 은유적 사고로부터 멀어지는 데 있다고 썼다. 바빈은 질병을 둘러싼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비유를 경계하는 손택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도 은유를 내려놓지 못한다. 중고 가게에서 싼값에 들여온 빈티지 냄비와 프라이팬에 왜 애그니스, 에스텔, 미니, 페넬로페 같은 이름을 붙이고 그들을 친구 삼았는지 설명할 길이 없지만, 그럼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알 수 없음’을 밀어내고 있으니까. 녹아내린 치즈가 황금빛 국물 위에 레이스 무늬를 그리는 순간, 품에 안긴 조카를 ‘호박’, ‘꿀’이라 부르며 재우는 순간처럼 사소한 일상과 우리가 서로에게 붙인 이름이 우리를 웃음 짓게 하니까. 이렇게 조리 도구와 재료에 바빈은 마음을 기댄다. 뭉근하게 끓인 양배추가 간절한 어느 날, 진한 보라색과 흰색 사이를 힘주어 썬다. 빽빽하게 겹친 잎 속에 숨어 있던 무늬와 소용돌이는 “우연이라기엔 너무도 아름답다”. 『맹렬한 허기』는 암에 덧씌워진 낡고 폭력적인 은유를 걷어내 삶을 계속하기 위한 새로운 은유를 빚어내는 책이다.
저자

캐런 바빈

Karen Babine

에세이스트이자 교육자. 장소와 풍경에 새겨진 기억을 따라 인간과 자연, 가족과 역사의 관계를 탐구하는 글을 쓴다. 미국 중북부의 미네소타주에서 나고 자랐으며, 미국 북부 지역의 척박한 토양과 독일계와 스웨덴계에 뿌리를 둔 가족사는 바빈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논픽션 연구 저널 『어세이』(Assay)의 창립자이자 편집장으로 활동하며, 현재 미국 테네시대학교의 채터누가 캠퍼스에서 창작 논픽션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물과 우리가 아는 것』(Water and What We Know) 『다른 곳을 꿈꾸며』(The Allure of Elsewhere) 등이 있다.

『맹렬한 허기』에서 캐런 바빈은 희귀암 진단을 받은 어머니를 보며 이렇게 질문한다. “열이 나면 굶기고, 감기에 걸리면 먹이라는데, 암은 어떻게 해야 할까?” 평생 채식주의자로 살아온 바빈은 어머니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만들기 위해 사골 육수와 소고기찜 같은 낯선 요리의 세계에 뛰어든다. 손끝으로 고기를 누르고, 묵직한 뼈를 우리고, 재료를 썰고 다지는 나날 가운데 바빈은 음식과 가족, 질병의 관계를 성찰한다. 왜 나는 질병이라는 불확실성을 메우기 위해 음식 은유를 끌어오는가? 환자를 쉽게 지워버리는 의료 시스템에서 언어는 어떤 힘을 가지는가? 암이라는 부조리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는가? 『맹렬한 허기』는 질병을 통과하는 시간에 대한 기록이자 요리라는 행위를 통해 이해할 수 없는 고통에 다가가려는 분투다.

목차

10월 프라이팬의 이름은 애그니스 … 9
11월 나는 당신 말을 믿지 않아요 … 43
12월 우리는 어둠과 촛불과 기다림의 사람들 … 89
1월 환대받지 못한 씨앗 … 117
2월 모든 전투에서 패배하고도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 125
3월 희망이 깃털 달린 것이라면 기쁨은 햇살 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비눗방울 속에 … 135
4월 신성함과 일상 사이 순간 … 161
5월 기억을 요리에 넣는 일 … 177
6월 몸은 하나의 주먹이 되고 그렇게 우리는 살아남는다 … 203

감사의 말 … 211
옮긴이의 말 … 214

출판사 서평

풍요롭고도날카로운향,
깊은우울에빠지거나공포에질려무기력해질때
우리에게필요한가장강력한사랑의맛

암의나날에바빈이마주한건어머니몸에발생한병변만이아니다.여성이분명히느끼는고통을과장의산물로변질시키는의학계의오랜관성,암을‘승리해야할전쟁’이나하늘이인간을시험하려내린시련으로보는오래된언어역시바빈을내리누른다.손택은『은유로서의질병』에서질병을바라보는가장‘진실한’방법이은유적사고로부터멀어지는데있다고썼다.바빈은질병을둘러싼선정적이고폭력적인비유를경계하는손택의문제의식에공감하면서도은유를내려놓지못한다.중고가게에서싼값에들여온빈티지냄비와프라이팬에왜애그니스,에스텔,미니,페넬로페같은이름을붙이고그들을친구삼았는지설명할길이없지만,그럼으로써자신을둘러싼수많은‘알수없음’을밀어내고있으니까.녹아내린치즈가황금빛국물위에레이스무늬를그리는순간,품에안긴조카를‘호박’,‘꿀’이라부르며재우는순간처럼사소한일상과우리가서로에게붙인이름이우리를웃음짓게하니까.이렇게조리도구와재료에바빈은마음을기댄다.뭉근하게끓인양배추가간절한어느날,진한보라색과흰색사이를힘주어썬다.빽빽하게겹친잎속에숨어있던무늬와소용돌이는“우연이라기엔너무도아름답다”.『맹렬한허기』는암에덧씌워진낡고폭력적인은유를걷어내삶을계속하기위한새로운은유를빚어내는책이다.


책속으로

나는우리안에들어앉아결코사라지지않는것들에대해자꾸생각한다.사랑과공포,정서적이고육체적인흉터들을.
---p.12

오늘은발사믹향을너무깊이들이마셨을때처럼피부가따끔거리는날이므로식초와새콤한사과의톡쏘는맛도간절하다.얇게썬양파두개의매운맛이달콤하게가라앉을때까지볶다가회향씨의달콤하고알싸한향을더해방전체에따스함이퍼지게한다.큼직하게썬그래니스미스사과세개를양파에넣고부드럽게섞은다음다시보라색양배추로시선을돌린다.양배추를썰어냄비에넣고발사믹식초를충분히부은뒤한시간동안뭉근히익힌다.병변같은생각은떨쳐버리고진한보라색과흰색사이를필요이상으로힘주어썰어나간다.빽빽하게겹친잎속에숨어있는무늬와소용돌이는우연이라기엔너무도아름답다.
---p.20

우리는진정고유한존재인가,아닌가?과학은우리가그렇지않다고말한다.우리는시스템과네트워크,가족과친구라는매트릭스,그리고패턴속에존재한다.우리는혼자가아니다.우리는세포단위에서도시간과공간과논리를뛰어넘어모두연결되어있다.어쩌면개별성이야말로우리가만들어낸신화일지모른다.
---p.22

뼈가우리를배신할때,아이들이자라지않을때,어머니가소아암에걸릴때,우리가믿었던뼈가더이상우리를지탱해주지못할때,우리에게어떤일이벌어지는가?그런상황에서우리는우리삶을어떻게똑똑히설명할수있을까?
---p.49

사실우리는운이좋은편이었다.여성이생각하고,느끼고,우려하는것을우리는어떤인간인가에대한해설로변질시키고,우리가느끼는것을히스테리나상상의산물로치부하는의학계의오랜습성에서완전히벗어날수는없었지만말이다.강한감정을표현하면생리전증후군이냐는조롱섞인무시나들어야했던게한두번인가?히스테리환자취급을받았던건또몇번인가?1978년데니스도너휴가『뉴욕타임스』에쓴수전손택의『은유로서의질병』서평조차손택이화가나있다는이유로작품을폄훼했다.음식을뜬금없는조합으로먹으면“임신했냐?”는말을몇번이나들었던가?대통령선거가달아올랐을때여성후보가날카롭다는소리를얼마나자주들었던가?그후보가폐렴때문에대중앞에서휘청거렸는데도회복할시간도없이체력이형편없다는비난이나듣는상황에놀라는여성은내주변에단한명도없었다.우리는미국전역에서자행되는가스라이팅을들었다.우리는분명히들었는데듣지않았다고주장하는그런말을들었다.나는당신말을믿지않아요…….
---pp.57-58

나는나를둘러싼조리도구들의화려하고선정적인색깔을보며,어머니가회복할수있도록고요해진이집의풍경과가스레인지위에놓인파르메산국물의투명함을보며웃고만다.조금만더나의은유들을붙들고있을것이다.
---p.72

나는이부르기뇽안에서어머니가잃어버린시간이되살아나길기다린다.독한독소주사가몸에부어진여섯시간이우리존재의나머지를,우리안의어두운빈곳을채워주는음식의여섯시간으로대체되길기다린다.온가족이식탁에둘러앉아한해를보내고다음해를맞이하는시간이되기를기다린다.
---p.140

희망이깃털달린것이라면기쁨은햇살속에서부풀어오르는비눗방울속에있다.기쁨은내장으로느끼는것이고,사랑의에너지다.위장을간지럽히는설렘이고,흉곽을부풀리는자긍심이다.웃음은바로여기서탄생한다.그러니빵굽기의즐거움이우리를이토록충만하게채워주는게과연놀라운일이겠는가?
---pp.147-148

어째서우리는다른질병에는부여하지않는도덕성을암에만투영하게되었을까.어쩌다암을근본적으로용납할수없는죽음의방식으로보게되었을까.암에투영된이도덕적잣대탓에담배를피우다폐암에걸리면자업자득이지만평생담배한번피운적없는배우자가폐암에걸리면받아들일수없는일이되고만다.의료서비스의불평등이생사를결정짓는현실은또어떤가.그불공정은모든것을집어삼킬듯무겁다.소위현대의학의기적은신이내리는기적만큼이나자의적이다.어떤사람은구원받고어떤사람은그렇지못한다.지금당장내가믿는단한가지는집안가득스며들어상심한내친구를향한슬픔으로어룽진어두운구석구석을채워주는돼지고기와사과와회향의달콤함뿐이다.
---p.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