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를해체하고재구성하기
1987-1997‘민주화이행기’의문화정치,그리고우리가잃어버린것에대하여
우리가기억하는‘민주화’는정말그시대의전부였는가
1980~1990년대의문학과혁명을다시읽다
1980~1990년대의문학/문화사를통해,‘민주화’라는승리의서사뒤에숨은혁명·민중의문화정치사를다시써본다.특히저자는1987년6월항쟁에서1997년IMF경제위기까지‘민주화이행기’라는문제적시간대에주목한다.이‘이행기’동안한국의문화정치는어떻게작동했으며,그과정에서무엇이기억되고무엇이지워졌는가.들끓던‘혁명의시대’는어떻게‘민주화시대’로번역되고순치되었는가.그리고‘민주화이후’한국의지식담론과민중의‘삶’,‘문학’,‘노동’은어떻게재조직되었는가.나아가‘문학’과‘혁명’을한몸처럼생각하던시대가저물어버린오늘날,글쓰기와문학이앞으로도인간을위해무엇을할수있는지를다시묻는다.
승리의서사뒤에숨은혁명·민중의역사를복원하는문화정치사
이책은총4부11장으로구성된다.제1부(1~3장)는〈기억,시대,세대:1980~1990년대문화정치〉,제2부(4~6장)는〈혁명가들의자리에남은서사〉,제3부(7~8장)는〈이행기의한국지성과세계화·자유화〉,제4부(9~11장)는〈서발턴은쓸수있는가:이행기의노동과문학〉이다.
〈1장.시대인식과문학·문화〉에서는1980년대와1990년대를‘단절’이아닌‘연속과이행’의시대로읽으며,특히1987년6월항쟁부터1997년IMF경제위기까지를‘민주화이행기’라명명한다.이시기동안민중문화·대항문화는대중문화와서로경합하고침투하면서한국사회의감각과문화적주체를바꾸었으며,따라서1990년대의개인주의와문화적다채로움역시갑자기생겨난것이아니라그시대의문화적·정치적변화에서이어진결과라는것이저자의진단이다.
〈2장.1980~1990년대의기억정치와86세대〉에서는누가‘민주화’의기억을만들고독점해왔는가를살펴본다.오늘날우리가기억하는1980년대와‘민주화운동’의이미지는학생운동경험을바탕으로이후정치·문화권력의중심으로진입한86세대남성엘리트들의자기서사,‘민주정부’수립이후국가의공식기억,영화와대중문화가함께만들어낸결과라는것이다.특히저자는영화〈변호인〉〈1987〉등이민주주의가치를대중화한긍정적의미를인정하면서도,그과정에서노동자대투쟁,지역의항쟁,급진적변혁운동등훨씬복잡했던1980년대가‘순수한대학생들과시민의승리’라는서사로축소됐다고지적한다.즉‘독재대민주화’만으로는1980년대를충분히설명할수없다.
〈3장.1980년대문학사다시쓰기〉에서는1980년대문학을설명해온문예이론인‘민족문학론’,‘리얼리즘론’,‘문예운동론’을오늘의시각에서재검토한다.저자는‘리얼리즘대모더니즘’같은오래된이분법으로그시대를평가해서는안되며,1980년대문예운동의중요한유산은특정미학적형식보다지성과노동,글쓰기와민중의삶사이의분리를극복하고문화적소외에서벗어나려했던인간해방의지향에있었다고주장한다.이를테면당시리얼리즘론은단순한창작기법이아니라인식론과혁명론을아우르는문학운동의원리였고,민족문학론·민중문학론과결합해하나의강력한문학적·정치적체계를형성했다.
〈4장.‘거리의혁명가’백기완의민족·민중서사〉에서는단순한‘민주화’운동가나통일운동가가아니라,독자적인사상체계를수립한‘민중혁명사상가’로서백기완을다시읽는다.특히그가제도권학문이나엘리트지식인의이론이아니라,민중의가난한삶과투쟁현장에서자신의사상을길어올려궁극적으로인간해방을꿈꾸었다는점에주목한다.실제로1987년과1992년대통령선거에서그가제시한노동자자주관리,재벌해체,사회보장,민중주도정치등의비전은당시변혁운동이꿈꾸었던사회의모습을보여준다.따라서그의사상은,‘민주화’라는말로포섭되어사라진1980~1990년대급진적사회변혁의상상력을복원하는중요한통로가된다.
〈5장.상처,화양연화,호접지몽〉에서는‘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참여자들이자신들의실패한혁명의시간을어떻게기억하는가를다룬다.사노맹은1980~1990년대급진적변혁운동의극단을상징했으며,공안기관과언론에의해두려움과혐오의대상으로각인됐다.그러나저자는이를단순한시대착오적사회주의조직으로평가하는대신,그시대의사회적모순속에서나타난인간해방운동의한형태로바라본다.참여자들의기억은하나로수렴하지않는다.어떤이에게그것은고문과투옥,사회적낙인때문에평생숨겨야했던‘상처’이고,어떤이에게는가장고통스러웠지만동시에가장뜨거웠던‘화양연화’다.이런개인들의복잡한기억을통해저자는혁명운동의쇠퇴와‘민주화이후’의개인화과정역시오늘의한국사회를만든중요한역사였음을보여준다.
〈6장.혁명가가구루가됐을때〉는신영복의『감옥으로부터의사색』이1988년출간된뒤수십년동안스테디셀러가된과정을다룬다.이책의출발점에는통일혁명당사건과20년의수감이라는매우정치적인역사가있었지만,독자들은점차그책을혁명의언어보다는인간,관계,삶,성찰,마음의평화를이야기하는책으로읽게됐다.저자가주목하는것은바로이‘비정치성의정치성’이다.1980년대말에는국가폭력피해자에대한연민과부채의식속에서읽혔다면,이후독자들은자기계발과내면적성찰,인간관계의지혜까지책에서발견했다.혁명가가대중적‘스승’또는‘구루’가되는과정은급진적정치의언어가‘민주화이후’어떻게변형되고순치되었는지를상징적으로보여준다.
〈7장.‘민주화’이후탈근대담론과한국지식문화〉에서는1987년이후한국지식계에서폭발적으로등장한포스트마르크스주의,포스트구조주의,포스트식민주의,문화주의,생태주의등이른바‘탈근대’담론의형성과변화를추적한다.현실사회주의붕괴와‘민주화’,대학과미디어환경의변화속에서기존마르크스주의중심의지식체계가흔들리고새로운잡지와담론장이빠르게생겨났다.저자는탈근대론을단순히‘좌파의퇴각’으로만평가하지않는다.계급외에도젠더,생태,욕망,신체,문화,소수자등의문제를사유할수있게한중요한지적전환이었다.그러나동시에제3세계와변혁론의시야가약화되고,서구지식에대한의존이커지는문제도있었다.따라서이제는과거의탈근대론을반복할것이아니라,식민성,분단,자본주의,평화등과변혁을새롭게결합하는갱신된비판적인문학의틀이필요하다고주장한다.
〈8장.1987년이후한국출판문화·지식문화의전환〉에서는1987년이후출판의자유가확대되는과정을한국사회의‘민주화’만으로해석하지않고,세계화·자유화가동시에진행된변화로분석한다.금서와납·월북작가가해금되고표현의자유가확대되었지만,출판에대한검열과공안탄압은이후로도계속됐다.한편으로출판산업이해외저작권체계와국제시장에편입되면서한국지식문화는제3세계적자의식에서벗어나더욱강한서구화·미국화로이동한다.오늘날‘한국문학의세계화’와K-문학의성취로이어지는역사적기반도이때형성됐다.즉한국의출판자유화는글로벌신자유주의체제로의편입과정이기도했다.
〈9장.서발턴은쓸수있는가〉에서는노동자·여성·빈민등이른바‘민중’이직접자신의삶을글로쓰기시작한역사에주목한다.특히1970~1990년대노동자의수기,르포,생활글과여성노동자들의글쓰기는단순한기록물이아니라,지배계급/민중,앎/무지를갈라놓던문화적분할에맞선‘해방의글쓰기’였다고평가한다.따라서‘민중문학’을지식인이‘민중을대신해’그려낸문학으로만이해할수없다.중요한것은누가말하고누가쓸수있는가,글쓰기의권리를누가가지고있는가하는문제다.
〈10장.세기를건넌한국의노동소설〉은1980년대부터오늘날까지약30년간의노동소설의흐름을,노동과정과주체의변화라는관점에서다시읽는다.기존의문학사는1980~1990년대노동소설에대해,투쟁하는노동자를주인공으로한도식적인물구도,선악의이분법에갇혀쇠퇴했다고평가해왔다.그러나저자는노동소설이실제로사라진것이아니라,주류문학계시야에서배제됐을뿐이라고말한다.또한정규직/비정규직,서비스노동,불안정노동등노동의모습과주체가복잡해지면서‘투쟁하고연대하는20세기노동자’와‘고립된21세기노동자’를단순대립시켜서는안된다고말한다.덧붙여오늘의문학이청년과불평등문제에는민감하면서도노동의권리와노동운동자체에는상대적으로무감하지않은지다시물어야한다고역설한다.
〈11장.노동소설의노동소설〉에서는이인휘의장편소설『노동자의이름으로』를통해,민주노조운동의역사와‘민주화이후’를다시읽는다.소설은1987년노동자대투쟁에서2016~2017년촛불항쟁까지30년간의현대자동차노동조합역사를가로지르며,정규직과비정규직,아버지세대와아들세대노동자가다시만날가능성을보여준다.저자는이작품을‘노동소설의노동소설’로명명하면서,1980~1990년대노동소설의세계관과윤리,서사문법을집성하고갱신한작품이라고평가한다.그리고이제86세대엘리트중심의‘민주화’서사와다른,노동자의시선으로민주주의서사를다시써보자고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