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저자:김구
9세에한글과한문을배우기시작했고,18세에동학에입문하여접주가되었으며,해주에서동학군을거느리고봉기했으나관군에게진압되자만주로도피했다.이듬해귀국,시해된명성황후의원수를갚고자일본육군중위를살해,사형이확정되었으나고종의특사령으로감형되었다.3/1운동직후에는상해로망명해임시정부를이끌었으며,28년에한국독립당조직에참여,적극적인항일무력활동을전개하였다.39년임시정부주석에취임한후에는광복군특별훈련반을설치,한반도수복군사훈련을적극추진하던중광복을맞이했다.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한국의신탁통치가결의되자반탁운동을전개하였으며,48년남한만의단독총선거를실시한다는UN의결의에반대하여통일정부수립을위한남북협상을제창,평양에서열리는남북협상에참가하였으나실패했다.그후정부수립에가담하지않고민족통일의원칙을계속주창하다가,49년경교장에서육군소위안두희에게암살당해국민장으로효창공원에안장되었다.62년건국공로훈장중장이추서되었다.
주해:도진순
서울대학교국사학과에서학사·석사·박사학위를취득했고,창원대학교사학과교수로재직했다.미국하버드대학,일본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중국베이징대학,타이완타이완대학방문교수를역임했다.국회법제사법위원회의‘백범김구선생시해진상규명위원회’전문자문위원,‘백범김구선생전집편찬위원회’위원,‘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이사,백범학술원운영위원등을역임했다.
저서『한국민족주의와남북관계』(서울대출판부,1997)로‘한국백상출판문화상저작상’을수상했고,주해본『백범일지』(돌베개,1997)가MBC〈느낌표!〉‘책을읽읍시다’에선정되었으며,대중용『쉽게읽는백범일지』(돌베개,2005)는2005년프랑크푸르트국제도서전‘한국의책100’에선정되어독일어로번역되었고,2009년동아시아출판인회의의‘동아시아100권의책’에선정되어중국어·일본어로번역되었다.『백범일지』친필원문을탈초한『정본백범일지』(2016,돌베개),백범과몽양의대표작을엮은『김구·여운형:합작과통일,시대와의불화』(창비,2026)도출간했다.이외에도「백범일지의원본·필사본·출간본비교연구」,「휘호로본백범김구,그삶의궤적과진수」등백범에관한다수의논문이있다.백범김구의일생과사상적맥락을자세히파악할수있는『백범연보』(근간)를집필하고있다.
개정증보판을펴내며
일러두기
출간사
[상권]
인·신두아들에게
황해도벽촌의어린상놈
조상과가정/난산의개구쟁이/궁핍한글공부
붓을던지고,총을들다
과거낙방,붓을던지다/동학에투신,김창수가되다/열아홉살의팔봉접주,해주성공격에실패하다/동학이동학에패하다/청계동안진사에게의탁하다/스승고능선
청나라군대와연대하는의병의길
북행:평안도와함경도/청국탐문/청국무장서씨/김이언의병과강계성공격실패/인연없는양반스승의손녀사위
치하포사건과탈옥
일본인쓰치다를죽이다/첫번째투옥:해주옥/인천감리서감옥으로압송/역사적신문,영웅의탄생/옥중왕/김주경의구명운동과부모님의소장/탈옥:심야에삼릉창을들고
피신과잠행:중,거북
한성으로/삼남:피신과견문/마곡사에서중이되다/평양영천암의장발걸시승/은인김주경을찾아강화로/심심산촌에서거북이되다/스승과의신구논쟁
양반도깨어라,상놈도깨어라
부친상,기독교,미혼처의죽음/장련:권상위원,교육운동,결혼/을사늑약과상경투쟁/교육운동과하기사범강습회/해서교육총회학무총감/두번째투옥과안중근의거/재령여물평보강학교와나석주·이재명
옥중의‘뭉어리돌’,백범이되다
신민회와안악사건/세번째투옥:경성경무총감부,고문과기절/기약없는15년형/경성감옥에서의심리변화와뭉어리돌정신/옥중의면면들/옥중의의·식·주·행/불한당괴수김진사/백범김구가되어다시인천감옥으로
상하이망명과임시정부
가석방/농감생활/상하이망명/임시정부:경무국장에서국무령까지/내인생을돌아보며
[하권]
하권을쓰고나서
상하이임시정부:경무국장에서국무령까지
상하이도착/문지기와경무국장/분열:사상갈등,모스크바자금,국민대표대회/문전걸식하는국무령의‘편지정책’
이봉창과윤봉길의의거
‘일본영감’이봉창/일본천황,불행부중不幸不中/윤봉길과의짧은만남/훙커우공원의쾌거
광둥런장전추
위기일발의상하이탈출/자싱피난생활/활동사진으로남기고싶은하이엔피난/옌자방의시골농부/여사공주아이바오와선상생활
다시항일전선으로
난징치루에서장제스와야밤극비회동,뤄양군관학교/한국국민당조직과임정국무위원복귀/난징:밀정,폭격,주아이바오/어머님과두아들:이별과재회/창사:가슴에박힌총탄
충칭임시정부와광복군
만리장정으로전시수도충칭에/죽음과탄생:어머님과한국독립당/광복군창설과여성광복군/대륙에묻힌영혼
[계속분]
해방전후의임시정부과광복군
탈출학병들의임정청사도착/한미합동국내침투훈련/왜적의조기항복/해방직후충칭에서의임정/충칭과투차오생활,일제의대공습/14년만에상하이로돌아와서
조국에돌아와서
27년만에감격의환국/투옥과은신의자취를찾아서(인천옥,마곡사)/유방백세:삼의사유골봉환과안장/삼남순회/유인석과김주경,시조경순왕을찾아서
[나의소원]
민족국가/정치이념/내가원하는우리나라
미주
참고문헌
백범김구연보
찾아보기
주해본에서정본화작업을거쳐전면개정증보판으로,
철저한고증과깊어진주석으로만나는가장완벽한『백범일지』
『백범일지』(1947,국사원)출간50주년이되던해인1997년에돌베개출판사는주해본『백범일지』를펴냈고,2002년〈느낌표,책을읽읍시다!〉에서주요도서로선정된뒤현재까지100쇄에이를정도로많은사랑을받았다.2005년에는모든세대의독자가쉽게읽을수있도록주해본의각주를없애고본문의중복과혼란을간결하게정리한『쉽게읽는백범일지』를펴냈으며,이책도이미50쇄를넘어섰다.그리고2016년에는백범탄생140주년을맞아백범선생의숨결까지구현한다는목표아래원본을꼼꼼하게검토하고탈초한『정본定本백범일지』를출간하였다.
그리고주해자인도진순교수는2018년부터현재까지『백범연보』(근간)작업에매진하였고,최근에그초고를탈고하였다.백범선생의연보를쓴다는건백범선생의탄생이전부터죽음이후까지모든생을관통하는역사를쓴다는것이며,도교수는이과정을통해백범선생의일생을‘그의시대’속에서재조명하고『백범일지』행간의글을볼수있었다.
개정증보판『백범일지』는,
-상권과하권,해방이후의일을기록한‘계속분’과「나의소원」으로이루어져있다.
-『정본백범일지』의근대국어문장을원전의맛을헤치지않는범위내에서좀더쉬운현대문으로바꾸고,원문을소개하는주석을줄였다.
-현장감을높이는사진과지도80여장을엄선해서요소마다수록하였다.
-장절구분과제목을개편하여『백범일지』전체를일목요연하게파악할수있도록하였다.
-중국의지명과인명을중국현지음으로바꿔주었다.
-『백범일지』는수십년이전을회고한내용이고,선생조차헷갈리는부분은모친인곽낙원여사에게물어보고보완했다고하니당연히시기의선후가혼재되거나전도된경우가많고,고유명사의오류또한상당히많다.이책에서는본문의서술순서를준수하면서연보작업의성과를반영하여연·월·일을바로잡고사건의선후관계를바로잡으면서읽을수있도록하였다.아울러인명및지명의표기오류등도모두바로잡았다.백범의글이아닌,도교수가바로잡은내용들은〔〕에담아원문옆에부기하였다.
1997년부터30년에걸친꾸준한출판작업으로인해,돌베개출판사의『백범일지』는독자들에게가장모범적이고표준이되는책으로평가받고있으며,이번에펴내는개정증보판『백범일지』는독자들이만나는가장완벽한『백범일지』가될것이라자부한다.
‘백범’白凡을만든뭉어리돌정신,
가장낮은이들의애국심이완전한독립을이룬다
1911년,백범선생은경성총감부에서심한고문을당했다.“밤낮으로,도살장에서소와돼지를때려잡는소리가여기저기서끊이지않고들린다.”(『백범일지』)여덟번째신문을받던날,백범선생을고문한일본인이이렇게말한다.
너의동류가대부분자백하였거늘너한놈이자백을않으니심히어리석고완고하다.토지를사들인지주가논밭에서〔쓸모없는〕뭉어리돌을골라내는것은당연한일아니냐?네가아무리입을다물고혀를묶어한마디도발설하지않으려하지만,여러놈의입에서네죄가발각되었으니,지금당장말하지않으면이자리에서때려죽이리라.
여기서‘뭉어리돌’은못생기고쓸모없는돌로,둥글둥글한‘몽우리돌’과는다른것이다.일본인의말에백범선생은이렇게대답한다.“나를논밭의자갈돌로알고파내려는그대들의노고보다,파내어지는나의고통이더욱심하니내가자결하는것을보라.”
미친개모양으로분기탱천해서죽도록매질하는(『백범일지』의표현그대로다.)왜놈이백범선생을뭉어리돌이라하는것에대해선생은오히려기뻐하며‘오냐,나는죽어도뭉어리돌정신을품고죽겠고,살아도뭉어리돌의책무를다하리라’는생각을깊이새겼다.
백범선생은가장천한‘백정’(白丁)의‘백’(白)과평범한‘범부’(凡夫)의‘범’(凡)을따서자신의호를지었다.백범선생은뭉어리돌처럼,백정처럼,범부처럼가장낮고평범한이들이주체의식을가지고애국심을가질때비로소완전한독립국을이룰수있다고생각했다.
『백범일지』는백범선생의유서다.
애초에이글을쓸생각을낸것은내가상하이에서대한민국임시정부의주석〔국무령〕이되어내몸에죽음이언제닥칠는지모르는위험한일을시작할때〔1928~1929년〕,당시본국에들어와있던어린두아들에게나의지난일을알리고자하는동기에서였다.이렇게유서대신으로쓴것이이책의상권이다.
하권은윤봉길의사사건이후중일전쟁의결과로우리독립운동의기지基地와기회를잃어,이목숨을던질곳이없이살아남아서다시오는기회를기다리게되었으나,그때〔1941~1942년〕내나이벌써칠십을바라보아앞날이많지않으므로주로미주美洲와하와이에있는동포를염두에두고,민족독립운동에대한나의경륜과소감을알리려고쓴것이다.이것역시유서라할것이었다.
_「출간사」중에서
1929년에탈고한상권은백범선생이일제의침략이극에달하자,고국에있는두어린아들(김인,김신)에게아비가걸어온길을알리기위해유서형식으로집필했다.어린시절부터동학입문,치하포의거,그리고상하이임시정부초기활동까지의여정이담겨있다.
1943년에탈고한하권은중일전쟁발발이후임시정부가충칭으로이동하는긴박한상황속에서집필되었다.이봉창·윤봉길의사의의거를비롯해한국광복군조직등한인애국단과임시정부의본격적인항일무장투쟁과민족독립운동에대한기록이다.
해방이후고국에돌아온백범의활동을기록한것을‘계속분’에담았고,1947년‘국사원판’출간당시책의말미에부록형태로수록한것이「나의소원」이다.
침략하지않는나라,한없이높은문화의힘을가진나라
해방공간은논쟁의영역이다.많은인물이재평가되고있지만,백범선생의위상은다르다.「나의소원」을쓴해인1947년은해방을맞이했음에도불구하고남북분단이가시화되고,국내적으로는좌우익의극심한이념대립과파벌싸움으로혼란스럽던시기였다.백범선생은우리동포가중심을잡고통일민주국가를건설하는데필요한자주적민족철학을제시하고자이글을발표했다.
「나의소원」의핵심내용은크게세부분(‘민족국가’,‘정치이념’,‘내가원하는우리나라’)으로나뉘며두가지핵심메시지를담고있다.
“네소원이무엇이냐?”하고하느님이물으시면대답은오직하나,“대한독립”이며,그다음도“우리나라의완전한자주독립”이라는구절로시작하는이글은,우리주권으로세운당당한독립국을향한절절한마음이담겨있다.
또한백범선생은우리나라가군사강국이나경제대국이되기보다오직“높은문화의힘”을가진나라가되기를소망했다.문화의힘만이우리자신을행복하게하고,나아가남에게도진정한평화와행복을줄수있다는청사진을제시했다.
나는우리나라가세계에서가장아름다운나라가되기를원한다.가장부강한나라가되기를원하는것은아니다.내가남의침략에가슴이아팠으니,내나라가남을침략하는것을원치아니한다.우리의부는우리생활을풍족히할만하고,우리의힘은남의침략을막을만하면족하다.오직한없이가지고싶은것은높은문화의힘이다.문화의힘은우리자신을행복하게하고,나아가서남에게도행복을주기때문이다.
「나의소원」의이문장속에마치지금을예견한듯한두가지놀라운지점이있다.대부분한가지는안다.“오직한없이가지고싶은높은문화의힘”,한국의대중문화가세계에알려질때사람들은백범선생의이글을떠올린다.그룹BTS(방탄소년단)가앨범‘아리랑’(ARIRANG)수록곡〈에일리언〉Aliens에서백범선생에게묻는다.“Pardon김구선생님tellmehowyoufeel.”
하지만,문화의힘보다백범선생이먼저강조한것은남을침략하지않는다,즉침략전쟁에반대한다는부분이다.어디로귀결될지알수없는21세기의혼란한국제정세속에서한세기전백범선생의이말을새겨듣고확고한원칙을세운다면,적어도우리끼리의분열은없지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