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를 말하다: 맹세와 배신 사이, 혁명인가 반역인가

김재규를 말하다: 맹세와 배신 사이, 혁명인가 반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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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삼웅

저자 : 김삼웅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 현재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대한매일〉(지금의 〈서울신문〉) 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론을 가르쳤으며, 4년여 동안 독립기념관장을 지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백범학술원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다. 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자문위원,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위원회 위원,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 등을 맡아 바른 역사 찾기에 힘써왔다. 제3회 민족일보 조용수언론상과 제24회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했다.
역사·언론 바로잡기와 민주화·통일운동에 큰 관심을 두고,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인물들의 평전 등 이 분야의 많은 저서를 집필했다. 주요 저서로 『한국필화사』 『곡필로 본 해방 50년』 『백범 김구 평전』 『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년』 『단재 신채호 평전』 『만해 한용운 평전』 『안중근 평전』 『이회영 평전』 『노무현 평전』 『김대중 평전』 『안창호 평전』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 『김근태 평전』 『안두희, 그 죄를 어찌할까』 『10대와 통하는 독립운동가 이야기』 『몽양 여운형 평전』 『우사 김규식 평전』 『위당 정인보 평전』 『김영삼 평전』 『보재 이상설 평전』 『의암 손병희 평전』 『조소앙 평전』 『백암 박은식 평전』 『나는 박열이다』 『박정희 평전』 『신영복 평전』 『현민 유진오 평전』 『송건호 평전』 『외솔 최현배 평전』 『3·1 혁명과 임시정부』 『장일순 평전』 『의열단, 항일의 불꽃』 『수운 최제우 평전』 『꺼지지 않는 오월의 불꽃: 5·18 광주혈사』 『운암 김성숙』 『이승만 평전』 『함세웅 평전: 정의의 길, 세 개의 십자가』 『네 칼이 센가 내 칼이 센가』 『할 말이 있다』 등이 있다.

목차

추천사
· 김재규 장군을 기리며 기도합니다 _함세웅
· 재판을 넘어, 김재규의 인생과 마주하다 _심용환

개정 증보판 서문
초판 서문: 왜 김재규 장군 평전을 쓰는가?

1. 의협심과 정의감이 강한 소년
2. 군인의 길
3. 평탄하지 않은 군 생활
4. 5·16 군사쿠데타 이후 승승장구
5. 애증의 갈등 속에서
6. 운명의 길, 중앙정보부장
7. 박정희의 권력욕망에 맞서
8.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다
9. 군사법정의 피고인으로
10. 피고인 김재규를 사형에 처한다
11. 신군부 폭압 속에 열린 최종심
12. 대법원의 재심 기각과 구명운동
13.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를 만끽하십시오
14. 10·26 재평가와 명예 회복
15. 참고인들의 증언
16. 김재규의 재심과 복권

부록
1. 「수양록」 _김재규
2. 판결이 아니라 역사를 구한다 _김성신
3. 10·26 재심 공판 진행보고서 _김성신

주

출판사 서평

1979년 10월 26일 밤, 궁정동
그는 왜 총을 들었는가
“각하, 이따위 버러지 같은 놈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정치가 올바로 되겠습니까.” 그 말과 함께 궁정동 안가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1961년 5·16부터 18년 5개월 동안 이어진 박정희의 통치는 그날 밤 끝났다. 방아쇠를 당긴 사람은 야당 지도자도, 학생 운동가도 아니었다. 박정희가 가장 가까이 두고 쓰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였다.
한쪽에서는 그를 ‘시해범’이라 부른다. 자신을 키워준 은인을 배신한 자,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끝에 우발적으로 총을 쏜 2인자라는 것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그를 ‘의사’라 부른다. 유신의 심장을 멈춰 민주화의 문을 연 사람이라는 것이다. 김재규 자신은 법정에서 그날의 일을 ‘10·26혁명’이라 불렀고,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말했다.
어느 쪽이든, 판단에 앞서 필요한 것이 있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는 일이다. 독립기념관장을 역임했고 독립운동사와 현대사 인물 평전을 수십 권 써온 김삼웅은 이 책에서 김재규를 영웅으로 세우지도, 반역자로 묻지도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의 일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며, 그 밤의 총성이 어디서 왔는지를 묻는다. 저자의 말대로,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쏜” 김재규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가 이 책의 최종 목표다.

순사에게 대들던 소년은
어떻게 유신의 심장을 겨누게 되었나
김재규는 1926년 경북 선산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 4학년 때, 나무꾼을 괴롭히는 일본 순사에게 “이 순사는 도둑놈이다”라고 대들다 주재소 유치장에 갇혔다. 아버지는 “네가 한 일은 옳다. 그러나 남자는 참아야 할 때는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타일렀다. 저자는 이 일화에서 그의 생애를 관통하는 엇갈림을 읽는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정과, 때를 기다리며 참는 삶이다.
일제 말 가미카제 특공대 훈련을 받다 해방을 맞은 그는 김천과 대구에서 교단에 섰다가, 박정희와 함께 조선경비사관학교 2기로 군에 들어갔다. 같은 고향, 같은 사관학교라는 인연은 그의 운명을 바꾸어놓았다. 5·16 이후 보안사령관, 3군단장, 유정회 국회의원, 중앙정보부 차장, 건설부장관을 거쳐 1976년 12월 중앙정보부장에 올랐다. 박정희의 최측근이었다.
그러나 「수양록」과 법정 진술 속의 김재규는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1972년 10월 유신 직후, 3군단장이던 그는 유신헌법을 몇 번이고 읽었다. “아무리 보아도 민주 헌법이 아니고 그 목적이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영구 집권을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았고, 그 순간 격분했다고 적었다. 중앙정보부장이 된 뒤에는 긴급조치 완화와 구속자 석방을 거듭 건의하며 “다른 정보부장들이 사람을 잡아들이는 부장이었다면, 나는 놓아주는 부장”이라고 자부했다. 그리고 부마항쟁의 현장을 직접 보고 온 지 얼마 뒤, 궁정동으로 갔다.
이 책은 그의 과오도 비켜가지 않는다. 박정희 정권의 핵심에서 누린 권력, 사생활을 둘러싼 논란까지 함께 추적한다. 부제 ‘맹세와 배신 사이’는 바로 그 자리를 가리킨다. 한 사람에게 바친 충성과 헌법에 바친 맹세가 부딪히는 자리다.

1심 16일, 확정 뒤 나흘
법정은 서둘렀고, 역사는 아직 판결하지 않았다
1979년 12월 4일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첫 공판이 열렸다. 선고는 16일 뒤인 12월 20일이었다. 항소심은 7일 만에 끝났고, 1980년 5월 20일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했다. 그리고 나흘 뒤인 5월 24일 새벽, 서울구치소에서 형이 집행되었다. 만 54세였다. 박선호, 이기주, 유성옥, 김태원 등 그의 명령을 따랐던 부하들도 같은 날 차례로 처형됐다. 현역 군인이었던 박흥주 대령은 단심으로 이미 3월에 총살됐다.
그 사이 법정 밖에서는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났고,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이 권력을 장악해 갔다. 대법원 판사 14명 가운데 소수의견을 낸 6명은 그해 8월 법원을 떠나거나 이듬해 재임명에서 탈락했다. 사표를 거부한 양병호 판사는 보안사에 연행된 끝에 사표를 써야 했다. 이 책은 최후진술, 항소이유서, 상고이유서, 대법원 소수의견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이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되짚는다.
김재규는 “3심 재판에서는 졌지만 4심인 역사의 법정에서는 이길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처형 하루 전에는 30분 동안 유언을 녹음했다. 그 마지막 문장은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를 마음껏 만끽하십시오”였다. 이 책은 그 유언을 빠짐없이 실었다. 그가 왜 부하들을 ‘동지’라 불렀는지, 불교에 귀의한 사형수가 마지막에 무엇을 남기려 했는지 독자는 그의 목소리로 직접 듣게 된다.

“저희가 구하는 것은 판결이기보다 역사입니다”
유족이 직접 쓴 46년 만의 재심 기록
2020년 5월, 김재규의 셋째 여동생 김정숙은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실마리는 수십 년 동안 잠들어 있던 재판 녹음테이프였다. 52개, 128시간 분량의 육성은 공판조서가 실제 법정의 말과 달랐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5년 가까이 지난 2025년 2월 19일 서울고법은 재심 개시를 결정했고, 검찰의 재항고는 그해 5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사형 집행 45년 만에 다시 열린 법정이었다.
개정 증보판의 부록 2·3은 김정숙의 장남이자 김재규의 조카인 김성신이 썼다. 2013년 어머니가 처음 입을 연 날부터, 재심 청구와 개시 결정, 그리고 2026년 9월 30일 결심까지 본안 공판을 회차별로 기록했다.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을 두고 벌어진 공방, ‘내란 목적’이 있었는지를 둘러싼 쟁점, 검찰과 변호인단의 최종 의견까지 담겨 있다. 재심이 어떻게 열렸고 무엇을 다투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서울고법은 2026년 12월 16일 오후 2시에 판결을 선고한다. 김성신은 이렇게 쓴다. “45년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긴 세월일지 몰라도, 역사가 한 사건을 기술하기에는 너무 짧은 간격이다.” 판결이 어떻게 나오든, 법정 밖의 판단은 결국 기록을 읽은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이 책이 그 기록이다.

책 속에서

유신독재자의 아류들이 지배하는 사법의 3심보다 역사의 심판인 4심을 믿고, 기꺼이 모든 기득권과 개인적인 인연과 심지어 생명까지 내걸면서 거사에 나섰던 ‘10·26정신’은 반세기의 풍상에도 온전한 정명正名을 찾지 못하고 있다. (14쪽, 「개정 증보판 서문」)

보통학교 4학년 때의 일, 어느 날 (…) 이것을 보고 있던 김재규는 어린 가슴에도 의분을 참지 못해 순사에게 삿대질을 하며 “이 순사는 도둑놈이다”라고 대들었다고 한다. 순사는 나무꾼은 제쳐두고 어린 김재규를 잡아다 주재소 유치장에 넣었는데, 부친의 수습으로 풀려나왔다고 한다. 이때 그의 부친은 “네가 한 일은 옳다. 그러나 남자는 참아야 할 때는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라고 타일렀다 한다. (32~33쪽, 「의협심과 정의감이 강한 소년」)

김재규는 역술인 오 모 씨를 찾아갔다가 뜻밖의 수확을 얻었다. 그의 집에서 액자로 걸어놓은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이라는 글귀가 김재규의 눈을 사로잡았다. … “법은 이치에 이기고, 권세는 법에 이기고, 마지막으로 하늘은 권세에 이긴다”라는 뜻이 담긴 이 글귀에서 김재규는 크게 깨달았다. (108쪽, 「운명의 길 중앙정보부장」)

이 혁명이 어떻게 내란죄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까? 오늘날 자유민주주의는 우리 대한민국 전체 국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3,700만이 다 같이 갈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회복시키는 데 어찌하여 내란죄의 적용을 받아야 되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또 10·26혁명은 순수하고 깨끗합니다. 집권욕이나 사리사욕이 있는 게 아닙니다. (187쪽, 최후진술)

저는 저 스스로의 생명을 구걸하기 위해 최후진술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대장부로 태어나서 제가 죽을 수 있는 명분을 찾은 것으로 죽음의 복을 잘 타고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189쪽, 최후진술)

아무쪼록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영원한 그러한 발전과 10·26 민주회복 혁명, 이 정신이 영원히 빛날 것을 저는 믿고 또 빌면서 갑니다.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를 마음껏 만끽하십시오. (280쪽, 유언)

10·26혁명으로 자유민주주의는 회복되었다. 이는 마치 자유가 흐르는 강을 가로막고 있는 보를 절개해서 물을 흘려보내는 것과 같다. 이제는 천하 누구도 이 자유의 물결을 가로막을 자는 없다. (337쪽, 옥중 「수양록」)

재심에서 판결을 바꾸는 데 성공한다고 한들 10·26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한순간에 바뀌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오랫동안 사육신의 역사를 눈여겨보았다. 세조의 손에 죽은 그들이 충신으로 복권된 것은 숙종 때였고, 그분들이 세상을 떠난 지 235년 만이었다. … 45년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긴 세월일지 몰라도, 역사가 한 사건을 기술하기에는 너무 짧은 간격이다. (359쪽, 부록 2)

저희 유족이 구하는 것은 판결이기보다 역사입니다. 10·26과 김재규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 그 역사적 단초가 이 재판을 통해 만들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이제 하늘나라에서 오빠를 만나더라도 볼 낯이 서도록 해주십시오. (396쪽, 부록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