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은 직물로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여성의 창조성과 지성을 다시 발견하다
바느질은 오랫동안 온순함과 과묵함 같은 전통적인 ‘여성성’의 이미지와 연관되었다. 하지만 니콜 네리그는 바느질이 여성의 힘의 원천이자 주체성을 발휘하는 방식이었다고 말한다.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와 북유럽 전승에서 실을 잣고 천을 짜는 여신들은 생과 사를 관장하는 존재로 그려졌고, 여러 문화권에서 직물을 만드는 능력은 여성의 지위와 정체성과 긴밀히 연결되었다. 우리 전통에서도 유사한 역할을 하는 삼승할망이 명주실과 바늘을 지니고 다닌다.
여성들은 일상에서 직물로 창작하며 창조성을 발휘했다. 저자가 만난 직조 장인들은 윗세대 여성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기술을 익혔다고 말한다. 체계화된 지식의 형태가 아니라 “손에 밴 감각”이자 “체화된 지식”으로서 직조 기술을 계승한 여성들은 여기에 즉흥성과 개성을 더해 자기만의 패턴을 만들고, 자신의 내적 세계를 담아 주제를 만들어냈다. 이 책은 전통 기법을 보존하고 있는 안데스 장인들부터 현대 자수·공예 예술가들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이 직물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삶의 의미를 발견해 온 사례를 폭넓게 소개한다.
직물을 만드는 여성들은 비록 집에 얽매여 있어도 자신의 생각을 가정 너머로 내보내 세상과 역사 속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자기표현의 도구인 바늘과 펜을 나란히 놓는 비유법은 여성들의 글에 빈번히 등장해 왔다. 스위스 작가 고트프리트 켈러는 19세기 중반에 발표한 소설 『녹색의 하인리히』에서 이렇게 썼다. “하얀 리넨은 주부들의 종이이다. 층층이 넉넉하게 쌓여 있어 언제든 꺼내어 그 위에 인생철학과 비애와 기쁨을 적어넣는다.” (124쪽)
네리그는 이러한 창작 활동이 지적인 활동이었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원하는 무늬와 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계산, 공간 감각, 문제 해결 능력이 필요하다. 『실을 잇는 여자의 손』은 직조와 뜨개에 담긴 수학적 구조부터 자카르 직기의 천공카드가 초기 계산기와 컴퓨터의 발달에 끼친 영향까지 살피며, 직물이 추상적 지식과 사고를 구현하는 도구였음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집안일’과 ‘취미’로 평가절하되어 온 직물 노동에서 여성의 창조성과 지성을 복원하고, 바느질이 예술과 노동, 나아가 지성의 역사에서 지닌 의미를 새롭게 조명한다.
피어슨콕스의 설명이 보여주듯 직물을 만드는 일에는 수학이 필요하다. 인류학자 캐리 브리진은 「알고리즘과 자동화」에서 “직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물질세계에서 수학이 작동한다는 증거다.”라고 썼다. 손으로 직물을 짜는 수학자 엘렌 하를리치우스-클뤼크에 따르면 이제는 직조를 지성사의 중요한 일부로, 구체적으로는 과학적·수학적 개념을 형성하는 데 기초가 된 시작점으로 인정해야 할 때다. (89쪽)
우리는 왜 힘들 때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가?
상실을 애도하고, 트라우마를 치유하며, 삶을 다시 잇다
뜨개질과 자수, 퀼팅 등 수공예 작업의 심리적 효능은 여러 연구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심리학과 미술을 공부한 저자는 심리학·신경과학 연구와 예술과 역사 자료를 두루 살피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불안과 상실, 트라우마를 견디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지 전문성 있게 풀어낸다. 부드러운 천의 촉감은 안정감을 주고, 반복적으로 손을 놀리면서 형체가 있는 작업물을 만드는 경험은 현재에 몰입하게 하며 명확한 보상을 안겨준다. 특히 저자는 아직 말이 되지 못한 경험도 천 위에서는 하나의 색과 무늬, 형태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손을 움직이는 동안 고통은 조금씩 다루고 견딜 만한 것이 된다.
오랜 옛날부터 직물은 매장 의식의 일부이자 사별의 슬픔을 다스리는 수단이었다. 애도를 통해 우리는 누군가가 물리적으로 사라졌음을, 그들의 죽음 때문에 삶이 바뀌었음을 체감한다. 그 사람 없이 사는 법을 알아내야 한다.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내려면 과거를 풀어헤치거나 허물어야 한다. (158쪽)
직물은 오래전부터 죽음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고인의 옷과 이불은 남겨진 이들에게 귀한 유품이 되었고, 여러 문화권에서 직물은 애도 의식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실을 잇는 여자의 손』은 직물을 만들며 죽음을 애도하고 상실을 견뎌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고로 세상을 떠난 오빠의 뜨개옷을 풀어 수의를 만든 여성과 집단 학살로 희생된 부모에 대한 기억을 수놓아 100점의 직물을 완성한 가족의 이야기까지, 다양한 애도의 장면이 펼쳐진다. 직물에는 사람의 흔적과 기억이 깃들어 있으며, 그것을 풀고 해체해 새로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은 상실을 애도하고 회복으로 나아가는 과정과 닮아 있다.
천에다 이야기를 수놓는 작업의 목적은 단순히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고 통합하는 데 있다. 끔찍한 사건에서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면 고통을 다른 감정으로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고, 만족감과 자부심이 생겨 트라우마로 인한 무력감과 수치심에 맞설 수 있다. (171쪽)
회복은 개인의 내면에만 머물지 않는다. 직물 노동은 여성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삶과 고통을 함께 나누게 하는 매개가 되어왔다. 니콜 네리그는 이주 여성들이 떠나온 고향과 새로 정착한 삶 사이를 직물로 이어 붙이는 ‘스페이스인비트윈 프로젝트’, 전쟁과 성폭력, 강제 이주의 경험을 천 위에 새기는 ‘커먼스레즈 프로젝트’ 등에 참여한 난민 및 피해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를 통해 개인의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 목격되고 인정받으며 공동의 기억으로 확장되는 집단적 치유의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참정권 운동의 현수막부터 ‘인티파다 드레스’까지
직물, 공동의 기억을 잣고 세상을 바꾸다
직물 공예를 통해 우리는 아이디어를 체계화하고, 목표를 성취하고, 서로 연결된다. 이 방식을 사회운동에도 적용할 수 있다. 직물 공예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힘은 삶의 다른 영역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억압, 전쟁, 기후 변화 속에서 체계적이고 정교하게 직물을 만드는 작업은 주의를 기울이고, 인식을 높이고, 전통을 지키고, 우리의 자리를 꿋꿋이 지켜내고, 세계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된다. (306쪽)
바느질은 사회적·정치적 목소리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확장되었다. 『실을 잇는 여자의 손』은 여성들이 거리와 미술관에서 자신의 권리와 정체성, 저항의 의지를 표현한 사례들을 조명한다. 1910년 영국에서는 참정권을 요구하다 투옥된 여성 80명의 이름을 수놓은 현수막이 약 1만 명의 여성과 함께 글래스고 거리를 행진했다. 팔레스타인의 전통 자수 타트리즈 역시 공동체의 기억을 간직하는 한편 정치적 저항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제1차 인티파다 당시 여성들은 전통의상 토브에 팔레스타인 국기와 지도, 정치적 문구를 수놓은 ‘인티파다 드레스’를 만들어 민족 정체성과 저항의 의지를 드러냈다.
오늘날 직물 공예는 전통적인 재료와 쓰임을 넘어 새로운 형식의 예술로 진화하고 있다. ‘얀 바밍’ 또는 ‘니트 그래피티’라 불리는 설치 예술은 나무와 벤치, 동상 같은 공공물을 뜨개로 뒤덮으며 뚜렷한 목소리를 낸다. 한때 사적이고 ‘여성적’인 작업으로 치부되었던 자수와 바느질은 여성의 자율성을 높이고, 폭력을 증언하고, 세상을 바꾸는 메시지를 담아내는 그릇으로 자리매김했다. 여성들이 자신의 두 손으로 잣고 엮어온 세계는 과거와 현재를, 공과 사를, 예술과 정치를 가로지르며 지금도 새로운 의미와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추천사
심리학자이자 열렬한 뜨개질 애호가인 저자는 세계 곳곳의 생생한 이야기를 모아, 오랜 시간 공들여 직물을 만드는 일이 여성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치유해 왔는지 보여준다.
- 엘리자베스 웨일런드 바버 (『여성의 일』)
이 책은 뜨개질이 어떻게 세대와 대륙을 넘어 여성들을 연결하고 인류를 하나로 엮어왔는지 담고 있다. 아름답게 직조된 인류학적 탐구이며, 창조성의 본질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 줄리 사토우 (『여성들이 5번가를 이끌던 시절』)
수많은 문화권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직물을 만들고 장식하는 일이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이들에게 목소리를 주고, 시대를 거듭하며 힘과 희망, 용기를 안겨주었음을 보여준다.
- 아라티 프라사드 (『실크』)
충실한 역사 연구와 개인의 만남을 한데 엮어 놀랍고도 새로운 직물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이 오랫동안 직물을 통해 육체적·영적·정서적 세계와 맺어온 관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 클레어 헌터 (『삶의 실타래』)
여성이 지닌 창조의 힘을 깊고 폭넓게 탐구한 책. 공예와 사회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
- 에스터 러터 (『황금 양털』)
시대와 지역을 넘나들며 여성들의 매혹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로 너무나 다르지만, 경제적 힘과 정치적 영향력, 창조적 표현을 얻기 위해 직물을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하나로 이어진다.
- 대니엘 드라일링거 (『가정학의 숨겨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