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재운
저자:진재운
기자,작가,다큐멘터리영화감독.대학에서심리학을공부하고대학원에서과학저널리즘으로석사학위를받았다.1995년방송기자로출발해사건현장을취재하다자연과생명으로시선을옮겼다.습지와기후위기,인간과자연의공존을주제로30편이넘는생태·환경다큐멘터리를연출했다.〈생명의땅삼각주〉,〈해파리의침공〉,〈한반도환경대재앙샨샤댐〉등의TV다큐멘터리를비롯해영화〈위대한비행〉,〈물의기억〉,〈허황옥3일〉,〈무경계〉,〈백산―의령에서발해까지〉등을만들었다.작품들은뉴욕페스티벌금상을비롯해한국방송대상,한국기자상,교보생명환경문화상,삼성언론상등국내외에서70회이상을수상했다.뉴스와다큐멘터리의경계를잇는‘뉴스멘터리’형식을개척하며생명과존재의경이로움을기록해왔다.현재기후문제를다룬영화제인〈하나뿐인지구영상제〉의집행위원장을맡고있다.
저자는31년동안물을따라가고,새한마리를기다렸다.산맥과대양을건너며자연깊숙이들어가오래바라보았다.그러다영화〈나무의노래〉의80대후반의여주인공을만나촬영하면서,오래바라본다고더많이아는것은아니라는사실을깨달았다.‘나무마다사투리가다르다’고말하는그녀와숲을걷고대화하는동안그동안믿어온지식과속도,소유와경계가하나씩흔들렸다.
그만남은영화〈나무의노래〉와이책이되었다.책은두사람이적도의숲에서나눈이야기와체험에서시작된다.한사람이움직이지않는한그루의나무앞에서얼마나깊이흔들릴수있는지,그리고그흔들림끝에서오히려얼마나더단단해질수있는지를따라간다.그렇게단단해진힘은자신의삶을다른존재에게내어주는이야기로이어진다.나무가그냥산소를주는것과다르지않았다.이책은31년간카메라뒤에서세상을바라보던사람이,마침내자신에게렌즈를돌리게된이야기이기도하다.
저자는2026년,31년간몸담았던방송사를나왔다.자신을설명하던직함이사라진뒤세상과자신을향한질문은더많아졌다.자신의존재를증명하려는애씀이줄었다.대신모르는것을모른채바라볼수있게되었다.그는여전히나무의말을알아듣지못한다.다만들리지않는다고해서없다고말하지않게되었다.
서문
프롤로그내가죽자그녀의말이들려왔다
1부.죽음을선고받은여인이숲을사다
1.흰옷의여인이백마를타고숲으로들어왔다
2.“당신에게남은시간은넉달입니다”
3.오줌을누고땅을사다
4.두바다로흘러가는한방울의물
5.죽기전에백만그루
2부.숲이인간을벗기다
6.나무앞에서나는발가벗겨진다
7.나무마다사투리가달라요
8.숲은침묵하지않는다
9.내게남은보름달은몇번인가
10.나무는다른삶을부러워하지않는다
3부.44달러를들고우주를건너다
11.몽당붓을들고우장춘을찾아간아이
12.“예수는서른셋에사람을살렸다”
13.세포에서우주를보고빌딩을샀다
14.동시성을자꾸자꾸믿게돼요
15.지식은얼마나달콤한마약인가
4부.아무것도소유하지않는법
16.고향으로돌아오다
17.빨간사과는없다
18.첫눈길을걸어라
19.내몸도내땅도내것은없다
20.내무덤에나무한그루심어다오
21.받은숨을돌려주는법-산소
5부.나무가먼저떨고있었다
22.계절을잃은세이바
23.자기꼬리를무는뱀의과학
24.인간이나무를구하는가,나무가인간을구하는가?
에필로그이름대신나무를남긴사람
부록이름없는주인공의시와그림
1.“나무마다사투리가다다른것알아요?”
:그녀가나무에게서배웠고,저자가그녀에게서발견한것
다큐멘터리감독인저자가그녀를처음만났을때들은말이다.그는대답하지못했다.나무가말을한다고?그말을사람이들을수있다고?그것도나무마다서로다른사투리를쓴다고?31년동안기후위기와습지,철새와해양생태계를카메라에담아온그에게나무는낯선대상이아니었다.그러나그녀를만난뒤발견하게된다.자신은나무를오래찍었지만,나무가그자리에서있는일을고맙게생각해본적은없었다는것을.
“카메라앞에서있던사람은그녀였지만,조금씩벗겨지고있던사람은나였다.”
이책은저자가이름을밝히지않으려는한여인,그가‘공주님’이라부르는사람과함께숲을걸으며써내려간고백이다.두사람이나눈약120시간의대화,A4용지1,300쪽에이르는기록에서건져낸스물네편의이야기는어느비범한인물의전기에머물지않는다.나무와인간,지식과관념,소유와죽음,두려움과자유에관한질문을담은철학적에세이이자,한감독이카메라뒤에서자기자신을다시바라보게되는내면의기록이다.
2.이름을밝히지않으려는‘공주님’
:한가지이름으로는담을수없는경이로운삶
올해88세인그녀는조선왕가의후손으로태어났다.어린시절부터그림과식물에마음을빼앗겼고,열두세살무렵에는육종학자우장춘박사를만나겠다며혼자서울역으로향했다.1969년,단돈44달러를들고미국으로건너가패브릭디자이너로생계를유지한뒤생물학과생화학을공부하고세포와암,감염병연구에참여해에이즈원인을규명했다.1985년뉴욕맨해튼이스트할렘의폐교를사들여연구소를만들려했으나도시규제로계획이좌절되자,그곳을주거공간과99석극장으로바꾸었다.이후말기암으로넉달시한부선고를받은뒤에는나무를심을땅을찾아나섰다.니카라과의황폐한목장약5천에이커(축구장3천여개크기)를사들여,백만그루를목표로나무를심고숲을가꾸고있다.
그러나그녀에게는자신이무엇을이루었고무엇으로불렸는가가중요하지않다.“그냥아무도모르게산소나만들어서,세상에보급하고죽는것이좋지않겠나…….”
이책은그녀를신비로운현자나완성된영웅으로그리지않는다.그녀는농담하고,불평하기도하며,화재를입은숲의살림살이를신경쓰고,시한부선고를받았을때는방에쌓아두었던빨랫감을걱정했다는사실까지그대로드러낸다.“내가죽고나서누가집을치우다가그걸보면어떡해.빨래가산처럼나올텐데.”
과학과죽음,자연과우주를이야기하면서도삶의사소하고구체적인일들또한그곁에있다.과학을사랑하면서과학의오만을의심하고,신비한체험을말하면서도그것을객관적사실로단정하거나강요하지않는다.바로그구체성과모순때문에그녀의말은삶과동떨어진교훈이아니라,여러번다시살아본사람이건네는생생하고감동적인이야기로다가온다.
3.새붓을몽당붓으로만든아이,서울역으로향하다
:보고싶은것은오래바라보고,알고싶은것은직접찾아나서다
어린시절,그녀는그림을그리지말라는말을들은뒤에도몰래그리곤했다.어머니가집을비운사이서랍속붓을꺼내나흘동안그리고또그렸다.“얼마나그려제꼈는지붓이몽당붓이됐어요.”
그러던어느날,책에서우장춘박사의글을읽었다.그가살아있고부산동래에있다는것을알게되자,학교를마친아이는집으로가지않고서울역으로향했다.“나는집을도망나온것도아니에요.우장춘박사를만나러간거지.그러니까가보자한거죠.아주심플해요.”
박사를만나지는못했지만,보고싶은것이생기면먼저길을나서는태도는그때부터시작되었다.어린시절의몽당붓은훗날뉴욕에서패브릭디자인을하는도구가되었고,꽃과잎을오래바라보며익힌눈은현미경아래세포를들여다보는눈으로이어졌다.
4.단돈44달러,그리고170만달러의폐교
:길이막힐때마다자신이가진것에서삶을다시시작하다
1969년,단돈44달러를들고미국으로떠났다.“미국에가면빨간양탄자를깔고나를받아줄줄알았지.”
그러나마중나오기로한친구는없었다.영어는통하지않았고,거리에서신문을덮고자기도했다.낯선도시에서그녀를먼저먹여살린것은과학이아니라그림이었다.“용감해서용감한게아니라,무식해서용감하고,생각을깊이안해서용감한거지.”
1985년겨울,그녀는눈내린맨해튼이스트할렘에서붉은벽돌폐교를발견한다.가격은약170만달러,그녀에게는그돈이없었다.“170만불.오케이,사자.170불도없는주제에.”
연34퍼센트에달하는이자를감수하고돈을빌려건물을샀지만,도시규제에막혀원래계획한연구소는열수없었다.그녀는교실을주거공간으로,지하를99석극장으로바꾸었다.
“다른데엔없는것을해야지.여태껏없는것을해야성공할수가있어요.”“실패라는게없어요.가는과정이지.”
5.“당신에게남은시간은넉달입니다”
:죽음을선고받고,무덤대신숲을찾아나서다
60대중반의어느겨울,의사는그녀에게말했다.“한4개월정도살겁니다.”
그녀는왜자신이냐고묻지도,울지도않았다.“삶이겨우이것이었구나싶었어요.무엇을하겠다고그렇게허둥대며살았을까.이상하게도마음이아주조용해졌어요.”
시한부선고앞에서가장먼저떠오른걱정은재산이나업적이아니라방한쪽에쌓인빨랫감이었다.넉달이지나도죽지않자,자신보다오래살아남을나무를심을땅을찾아나섰다.프랑스와하와이,코스타리카를거쳐니카라과의황폐한목장에이르렀다.“흰호수가딱보이는데,‘이거다’하고속으로생각했지.”
어린시절들은,마음에드는땅에용변을보면자기땅이된다는이야기를떠올리며나무뒤에서소변을본뒤500달러를계약금으로걸었다.
6.백만그루,아무도모르게만드는산소
:백만그루를향해,받은숨을세상에돌려주는고요한사랑
그녀가사들인땅은약5천에이커.나무를심는일보다심은나무를살아남게하는일이훨씬어려웠다.가뭄과화재,소와야생동물이어린나무를앗아갔다.백그루를심어도스무그루밖에남지않는때도있었다.
그녀가나무를심기시작한최초의이유는산소였다.“아무도모르는산소를,제일필요한것을만들어보자.”“산소는보이지않기때문에내가얼마를냈는지계산할필요도없고,계속해서나오고,everybodyneedsit.”“내가미워해도산소를주니까다행이다.”
죽어가던묘목이다시뿌리를내린날,그녀는산에서혼자춤을추었다.“살아줘서고마웠어.”“받은걸갚고가야죠.얼마를받았는지Idon‘tknow.조금이자붙여서드려야될거아니에요.”
그녀에게숲은서로무관한생명이모인곳이아니라,나무와새,물과바람이서로의소식을주고받는세계다.“분명히다다른소리인데,그게전체가하모니가일어나서막웅성웅성웅성하는거예요.”
그러나그녀는이체험을객관적사실이라강요하지않는다.“가끔가다어린애같은몽상속에있는거지.”
7.빨간사과는없다
:이미안다고믿는순간,눈앞의사람과세계는보이지않기시작한다
“빛이닿으면그빨간사과가하얗게보여요.그런데나는한번도하얗게보인다고생각하지않았어요.빨갛게봤지.”사람은사과를보는순간‘사과는둥글고빨갛다’는관념을먼저떠올린다.그러나실제사과는빛과위치에따라흰색과노란색,검붉은그늘을함께품는다.“관념이라는게얼마나사람을문맹으로만드는지몰라요.볼수없게하고느끼지못하게해요.”
진재운감독역시처음에는그녀에게서‘숲의현자’다운말을찾고있었는지모른다고고백한다.“처음나는그녀에게서‘숲의현자’다운말을찾고있었는지도모른다.그러나함께밥을먹고,말을타고,농담과불평을주고받고,갑자기바뀌는관심을따라가면서내가붙인이름들이자꾸흔들렸다.”
과학자였던그녀는지식의위험을안다.“인간의지식이라는것이마약과같아요.”“나는어느하나밖에몰라요.거기에는수천개의다른변인이있는데,오직하나만내게보이는거예요.”
“지식이라는말은지혜라는말과달라요.”
8.첫눈길을걷는삶,잠시맡아돌보는삶
:비교와후회,소유와공명심에서벗어나자기삶을살아가는법
“첫눈길을걷는것같은인생을살아라.”“남의발자국을따라가면내삶에‘나’‘’라는것이존재하지않고,그발자국만따라가게돼요.그러면아름다움을다잃어버려요.”
“후회라는건뒤를돌아보는거잖아.운전하는데계속뒤를보면금세사고나요.”
니카라과의숲은법적으로그녀의소유지만,그녀는자신을영원한주인으로여기지않는다.
“이땅은내땅이아니에요.내가살아있는동안잠깐머물면서하고싶은것을하는거지.”“내자신도내것이없어요.”
그녀는니카라과에서죽으면이불로몸을말아묻고그위에세이바나무를,뉴욕에서죽으면참나무를심어달라고했다.“그러면나무는내육신을먹고살겠지.나는이미죽었는데,이피지컬은내가아니에요.흙이나마찬가지지.”
9.그녀가나무를구했는가,나무가그녀를구했는가
:이름을남기지않고다른생명이살아갈자리를남기는삶
저자진재운감독은처음에는한사람이숲을구하는이야기를촬영한다고생각했다.
“처음에는한사람이숲을구한다고생각했다.촬영이길어질수록생각은반대로움직였다.숲이그녀를살게한것은아닐까.”
오래된레드우드앞에서그녀는자신을지탱해온이름과자부심이무너지는것을느꼈다고말한다.
“가식이많은인간이나무앞에서면발가벗겨지는기분이들어요.”“나는나무를키우면서사랑도배웠고,주는것도배웠고,받는것도배웠어요.”
책의후반,저자는고백한다.“오랫동안그녀를촬영했지만,끝내그녀를알지못했다는생각을한다.그녀는자신의이름보다다른생명이살아갈숲을남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