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는왜위기에빠졌는가?
-자유주의의내재적딜레마
자유민주주의는인류역사상가장성공적인정치체제였다.파시즘과공산주의에맞서며찬란하게빛났던자유주의는경제성장을통해공동의번영을이루고,교육과의료를비롯한충분한공공서비스를제공하며,모든시민이자유롭게자신의견해를표현하고정치에목소리를낼수있도록보장했다.실제로제2차세계대전이후서구의자유민주주의국가들은광범위한경제성장을일구어내며노동자와중산층의삶을크게개선했다.1991년소련이해체되었을때자유민주주의의세계적승리를확신했던것도바로이때문이다.
그러나자유주의는개인의자유와다양한삶의방식을보장하는바로그속성때문에,처음부터몇가지딜레마를안고있었다.바로자유를부정하는견해를어디까지관용할것인가,공동체의규범이개인의자유를억압할때어디까지개입할것인가,그리고전문지식과민주적자치사이의균형을어떻게잡을것인가하는문제였다.한편으로는모든생각과아이디어가주장되고지지받을수있어야하지만,다른한편으로는대중가운데많은사람이자유주의사회에서용납될수없는“불관용intolerance”을외친다는문제가있었다.또한모든사람이표현의자유와선택의자유를가져야함에도,어떤자유주의자들은교육받은사람만이그런자유의가치를인식하고사회적이득을위해사용할수있으므로,공적의사결정에서“무지ignorance”한사람들보다더많이목소리를내야한다는결론으로나아갔다.존스튜어트밀을비롯한여러자유주의사상가들역시교육받지못한다수의압제를우려했고,전문가와고학력층에더큰정치적발언권을부여하려는유혹에서완전히자유롭지못했다.
이러한딜레마에대한가장영향력있는해법가운데하나는사회계약론적장치에의존하는루소식진보주의에서나왔다.루소는각개인이사적인이해관계를넘어공동체전체의이익을뜻하는‘일반의지’에참여하고복종할때비로소진정한자유를누릴수있다고보았다.하지만일반의지가이미존재한다고가정하고누군가가이를해석하기시작하면,숙의와이견의공간은급격히좁아진다.일반의지에반대하는사람은단지다른의견을가진시민이아니라자신의진정한이익을알지못하거나공동선을거스르는사람으로취급될수있기때문이다.이처럼사회계약을통해하나의공통된의지를상정하는루소식자유주의는평등과자치를약속했지만,동시에깨우친소수가사회전체에‘올바른’가치관을부과하는사회공학으로나아갈위험을내포하고있었다.
이딜레마들로인해자유주의가언젠가시험대에오르게될것은불가피한일이었다.경제가지속해서성장하고공동번영이유지되던시대에는이문제가치명적인갈등으로드러나지않았다.그러나1970년대이후상황은달라졌다.
공동번영은어떻게좌초되었나?
-산업적협약의붕괴와기술발전
자유민주주의는기술혁신과경제성장을공동번영으로연결하는데성공했다.새로운기술이생산성을높이면기업의이익이늘었고,노동자의임금도함께상승했다.포드가대량생산의첫걸음을떼기시작하면서수많은비숙련노동자를채용했던것이대표적이다.포드나GM같은기업들은더높은임금과안정적인고용을제공했고,증가한노동자의소득은다시자사제품에대한수요를창출했다(포드가노동자를쥐어짜는대신높은임금을지급하기로한결정은,노동자가목소리를내고법적권리를향유하며민주적감시가작동하던자유주의사회의결실이었다).대량생산방식은타산업으로확산되었고,1950~1960년대서국전역에서임금은놀라운수준으로상승했다.실로‘공유된번영’의시대였다.
그러나1970년대이후이선순환의고리가끊어지기시작했다.위기의출발점은전후자유민주주의를떠받쳤던‘산업적협약’의붕괴였다.제조업의쇠퇴와자동화,세계화는중산층의안정적인일자리를흔들었고,기술혁신의성과는점점더소수의기업과고숙련노동자에게집중되었다.동시에플랫폼독점,지역격차,정치적영향력의불균형이심화되면서공동번영이라는자유민주주의의약속도흔들리기시작했다.
컴퓨터와정보통신기술이확산되면서기업들은생산성을높이는방식보다노동력을절감하는방식으로기술을활용했다.반복적이고중간수준의숙련을요구하는일자리는자동화되거나해외로이전되었고,노동조합의교섭력도약화되었다.그결과생산성은계속올라갔음에도임금상승은그속도를따라가지못했으며,성장의과실은노동자전체가아닌자본소유자와엘리트대졸자에게집중되었다(1970년대말이후미국의중위임금은연평균0.45%씩상승한반면,노동생산성은연평균1.5%이상증가했다).
자유주의는왜노동계층을잃었는가?
-탈산업사회의정치와대졸자연합
미국의통치철학이명확하게자유주의적개념에기반을두게된것은루즈벨트행정부시기였다.뉴딜시대의자유주의는노동운동,남부민주당(딕시크랫),고학력전문가집단(루즈벨트스스로가보스턴브라민가문출신이었다)의연합위에세워졌다.노동자와농민을보호하기위해시장을규제하고(1935년와그너법으로노조활동합법화),사회보장을확대하는한편,행정국가를운영할전문가들에게큰역할을부여했다.
그러나저항세력에서권력의주체로올라선자유주의앞에는커다란과제가도사리고있었다.개인의자유와진보를옹호하고반자유주의적정책을비판하는것만으로는더이상충분하지않았다.자유주의는이제권력의자리에서성장해야했다.누가이아젠다를지휘할것인가?
1970년대이후디지털기술과서비스경제의발전은대졸전문직과엘리트의경제적·사회적지위를크게올려놓았고,이들은노동계층에의존하지않는독자적인정치세력으로성장했다.반면자동화와제조업쇠퇴는노동계층의소득과사회적위상을약화시켰으며,대졸자와비대졸자는주거지,직장,결혼,인간관계,가치관등삶의모든영역에서점점더다른세계를살아가게되었다.
이러한변화는자유주의정치의기반도뒤흔들었다.뉴딜시기의노동자·전문가연합은해체되었고,민주당을비롯한서구중도좌파정당은점차고학력전문가와대졸자의정당으로재편되었다.노동계층이상대적으로더선호했던노조강화,보호무역,공공일자리정책보다(공공프로젝트보다세후재분배에중점을둔)조세와재정지출중심의정책을중시하게되었고(미국에서는워터게이트베이비스로불린민주당의고학력신인정치인들이이를주도했다.295쪽),노동계층의경제적·문화적요구와는점차거리를두었다(자유주의의“부작위의죄”).그결과많은노동계층유권자가중도우파와우파포퓰리즘으로이동하게되었다.
한편대졸자집단내부에서도엘리트대졸자(시장과능력주의에우호적)와대중대졸자(시장에비판적이고재분배선호)의경제적이해관계는달라졌지만,이민·동성결혼·낙태·세계화등문화적이슈에서는공통된가치관을형성했다.여기에탈산업경제의최대수혜자인테크산업이창업자와뛰어난엔지니어는사회에가장큰기여를하는만큼가장큰보상을받아야하며,사회의중요한결정역시가장유능한전문가가내려야한다는능력주의와전문가주의를사회전반에확산시켰다.그결과자유주의는점차자치와숙의보다전문가의판단과엘리트의리더십을더신뢰하게되었고,시민전체의참여보다‘올바른결정’을우선시하는경향을띠기시작했다(자유주의의“작위의죄”).
이러한변화는자유주의와노동계층의거리를더욱벌려놓았다.대학교육을받은엘리트들은세계화와이민,다양성,젠더이슈를긍정적으로받아들였지만,제조업쇠퇴와지역공동체의붕괴를경험한비대졸노동계층은전혀다른현실을살아가고있었다.자유주의정치는점차후자의경제적불안보다전자의문화적우선순위를더적극적으로대변하기시작했고,노동계층은자신들이정치의중심에서밀려났다고느끼게되었다.그리고이러한변화는단순한선거전략의실패가아니라자유주의내부의방향전환이었다.자유주의는원래다양한공동체가서로다른삶의방식을실험하고공존할수있도록하는사상이었다.그러나탈산업시대에는점차하나의보편적가치관을사회전체에확산시키는데더많은에너지를쏟기시작했다.그리고바로이지점에서‘사회공학’이등장한다.자유주의는왜표현의자유와자치보다올바른가치의확산을더중시하게되었는가?
사회공학:문화전쟁과백래시의기원
-깨우친사람들이선의에서출발하여사회를통제하고자하는시도는역사적으로반복된다
2016년9월,미국대선유세당시힐러리클린턴은트럼프지지자의절반을인종차별,동성애혐오,외국인혐오에물든“한심한자들의바구니”라는범주에넣을수있다고발언했다.자유주의사회는트럼프지지자들의혐오발언(불관용)에어떻게대응해야하는가?어떤사회든불관용까지표현의자유로인정해용인할것인지,아니면다른이들의자유를제약하고폭력적인억압으로이어지지않도록규제할것인지그사이의어딘가에선을그어야한다.그런데오늘날차별과혐오를줄이고더포용적인사회를만들겠다는선의는점차하나의가치관을사회전체에확산시키려는‘사회공학’으로변질되었다.그리고자유주의가이러한가치들을설득과타협의대상이아니라이미합의된상식처럼다루며스스로의원칙을훼손하기시작한과정에서오늘날의문화전쟁이시작되었다.
여기서사회공학이란,비판적인사고나토론의과정을거치지않고사람들의가치관과사고를재구성하려는노력을말한다.오늘날의사회공학은국가권력의강압에의해서라기보다는,교육과기업의인사제도,대학,언론,시민단체,각종전문직집단이특정한가치관을사회의표준으로만들고,그기준에서벗어난언어와생각을점차용납하지않게되는과정을통해작동한다.표현의자유보다‘올바른가치’가우선시되기시작했고,대학에서는보수성향연사의강연이취소되고(DEI에비판적이었던MIT존칼슨강연취소사례),기업에서는의무적인DEI교육이확대되었으며,일부대학(UC버클리)에서는교수채용과정에서DEI에대한입장을사실상의평가기준으로삼기도했다.이러한변화는폭력적이지는않았지만(그래서강력한백래시를불러왔다),자유주의의핵심원칙인표현의자유와자치를약화시켰다.
그런데깨우친사람들이선의에서출발하여자신들의신념에맞춰사람들을통제하고자했던시도(사회공학)는역사적으로반복되어온하나의메커니즘이었다.중세가톨릭교회는성직자를통해신앙의통일성을강요했고,중국제국은과거제와관료를통해성리학적규범을전국에확산시켰으며,이슬람세계에서는울라마가종교규범을사회전체에주입했다.이사례들과오늘날의사회공학은권력의필요에의해시작되었는지그리고국가폭력을동반했는지에있어서는차이가있지만,시간이지나면서실무자들(성직자나관료vs.대학·언론·기업·시민단체에자리잡은대졸전문가집단)이사명감과권위를바탕으로자신의가치관을사회의표준으로만들고자한다는점에서는다르지않다.
이러한사회공학은의도와는정반대의결과를낳았다.자유주의엘리트가더많은관용과평등을추구할수록,비대졸노동계층은자신의가치관과사고를통제받는다고느끼기시작했다.그불만은강한백래시를낳았고,트럼프와같은반자유주의정치세력은이를정치적자산으로활용했다.여기에더해몇몇요인이문제를한층더악화했다.특히주목할만한것이소셜미디어인데,사고단속에나서려하는사람들을한데모으고매우가시적인형태의규범집행가능성을확대하면서공급주도형사회공학의인센티브를강화했다.동시에소셜미디어는사회공학에대한불만을증폭하고조직하는수단을제공해악순환을더욱심화시켰다.이렇게자유주의의사회공학은반자유주의의사회공학을불러왔다.사회공학은또다른사회공학을낳는다.
소셜미디어는어떻게위기를증폭시키는가?
-알고리즘시대의자유주의
알고리즘과AI는자유주의의원칙을바꾸지는않는다.그러나자유주의가직면한딜레마를훨씬더심화시키며,동시에공동번영을회복할새로운가능성도제공한다.문제는기술그자체가아니라기술이어떤방향으로발전하느냐에있다.
소셜미디어알고리즘은자유주의의가장중요한토대인표현의자유를직접검열하지는않지만,저스틴사코JustineSacco사건(367쪽)처럼분노와도덕적비난,동료집단의압력을증폭시켜‘알고리즘판규범의우리’를만들어낸다.그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