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서해는 조용하지 않았다

그해, 서해는 조용하지 않았다

$18.73
저자

배형준

저자 : 배형준
198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9년 11월 해군에 입대해 진해에서 기초군사훈련과 운전병 교육을 받은 뒤, 대한민국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복무했다.
2함대 수송대 운전병을 거쳐 서해 최전방 도서기지를 관할하는 208조기경보전대에 배치되었다. 전대장 소속차 운전병으로 근무하며 부대 안팎과 서해 일대를 오갔고,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 당시 부대 안에서 벌어진 일과 그 시간을 지나던 사람들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2011년 11월 전역했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오래 남은 것은 사건의 이름만이 아니었다. 생활관에서 함께 음악을 듣던 동기들, 휴가를 기다리던 후임들, 최전방 섬에서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던 장병들, 그리고 갑작스러운 비극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했던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전역 후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현재는 사업을 하며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해, 서해는 조용하지 않았다』는 2010년 서해에서 직접 보고 들은 일과 그 시간을 함께 지나온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 쓴 첫 책이다.

목차

프롤로그

1부. 아무것도 몰랐던 시간들

- 서울 토박이, 해군에 지원하다
- 진해의 자부심, 그리고 철없는 젊은이
- 숙취와 삭발, 그리고 장복터널의 끝
- 렌즈를 낀 훈련병, 맨손의 화타가 되다
- 곁눈질로 배운 사회, 달콤한 외박
- 집밥의 온기, 그리고 서평택의 칼바람
- 2함대 수송대, 암기왕과 해군가

2부. 그날, 서해는 멈췄다

- 검은 세단, 그리고 선택받은 핸들
- 조기경보의 심장부, 폭풍 전야의 3월
- 2010.03.26, 평화가 비명이 된 봄밤
- 깨어진 평온, 잿빛이 된 2함대의 아침
- 깨져 버린 유리창, 살아남은 자들의 침묵
- 그날 이후, 우리가 했던 생각들
- 하늘도 울었다, 영원한 항해를 떠나며
- 행정이라는 이름, 남겨진 사람들

3부. 다시 흘러가기 시작한 시간

- 10분의 간극, 생과 사의 경계에서
- 바람 잘 날 없는 208전대, 섬의 그림자
- 상병의 무게, 전과 달라진 시선
- 2010.11.23, 다시 타오른 서해
- 탄흔이 새겨진 섬, 그곳의 눈빛들
- 호텔 캘리포니아, 그리고 강철의 의지

4부. 남겨진 사람들, 이어지는 시간

- 운전대를 잡은 지휘관, 그리고 이별
- 서해의 윤슬, 마음의 문을 연 사람들
- 메멘토 모리, 그들의 준엄한 메시지
- 핸들을 넘기고, 2함대를 나서다

에필로그

마지막 보고

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두근대는 마음을 억누르고 위병소를 나서는 순간, 차갑고 맑은 바람에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낯익은 편의점 간판, 거리의 자잘한 소음, 지나가는 사람들. 분명 같은 눈으로 바라보는데, 밝기와 채도가 보정된 화면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구속하지 않는 시간. 우리 여섯 명은 그 달콤한 공기를 조금이라도 더 느끼려는 사람들처럼 멈춰 섰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꽤 괜찮았기 때문이다. _40

안개 사이로 반쯤 모습을 감춘 대형 스피커에서 ‘해군가’가 흘러나올 때면, 수송대 선후임들은 추위를 이기려는 듯 목청껏 그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다. 하나같이 입에서는 입김이 새어 나왔다. 진해의 훈련소에서도 매일같이 불렀던 노래였다. 하지만 군함이 정박한 부두와 차가운 서해를 곁에 둔 자대에서 부르자, 같은 가사도 다르게 들렸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시작한 노래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다들 아무 말 없이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철없던 청년들이 조금씩 군인이 되어가던 수송대의 아침이었다._55


아까 생활관 점호할 때까지만 해도 웃으며 음악방송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침몰한 함정의 이름을 붙잡고 서 있었다. 사령부 본청 앞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노란 달이 떠 있었고, 그 곁으로 작은 별들이 드문드문 반짝였다. 지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듯, 밤하늘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문득 백령도 앞바다에서도 같은 하늘이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 바다 위를 항해하던 전우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_77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격언은 냉정하게도 사실이었다. 생활관에 걸려 있던 벽시계의 초침은 누구도 자신을 멈추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를 비웃는 듯, 무심하고 조용하게 돌아갔다. 골든타임 72시간. 그 잔혹한 기점이 지나가고 있었다. 한 채널… 두 채널…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단어들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_83

“미안합니다. 그리고 또 미안합니다. 그대들을 천안함 속에 남겨둬서 미안합니다. 그대들과 함께 끝까지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천안함 생존 전우들의 눈물 어린 메시지가 46명의 동료에게 닿았을까. 우리는 정해진 위치에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영정이 하나씩 지나갔다. 걸음은 일정했고, 속도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름이 불렸다. 한 명씩, 천천히. 불린 이름들은 그 자리에 오래 머무는 듯했다._101

‘삶과 죽음은 어째서 이렇게까지 다른 모습일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그 오래된 격언의 의미를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할머니의 소천은 평온한 휴식처럼 느껴졌지만, 천안함 피격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 속에서 스러져간 전우들의 희생은 조금 달랐다. 그 희생은 남겨진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준엄한 메시지처럼 느껴졌다._ 231

시간이라는 파도는 많은 것을 집어삼킨다.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았던 ‘마음’,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믿음’,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존재’들까지도.
내 청춘의 2년을 녹여낸 군 생활. 그 기간 동안 겪은 국가적 사건들. 잊히기엔 너무 마음 아픈 그때의 사람들. 하지만 세월 앞에서 그 기억들마저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잊힌 것인가 싶었다. 그들이 잊혔기에 조용한 것인가 싶었다._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