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생태위기를먼저사유한미셸세르의문제작
“세계와의전쟁을멈출새로운계약이필요하다”
계약은인간만의것인가
근대정치철학은인간이어떻게함께살아갈것인지를물으며‘사회계약’을발명했다.인간은서로의권리를인정하고법을세우며정치공동체를만들었다.그러나미셸세르는이위대한계약에결정적인누락이있다고지적한다.인간들끼리계약을맺는동안정작그들이발딛고살아가는세계는계약에서제외되었다는것이다.인간은법적주체가되었지만땅과강,바다와대기,동식물은인간이마음껏소유하고사용하고지배할수있는대상으로남았다.사회계약은인간의권리를확장했지만,그문을닫는순간거대한세계를바깥으로밀어냈다.
1990년처음출간된『자연계약』은바로이오래된계약을다시쓰자는급진적인제안이다.한때일부인간에게만허락되었던법적주체의지위가마침내모든인간에게확대되어왔다면,이제그역사를인간너머로밀고나가야한다.세르는자연을인간과대등한계약의상대이자법적주체의지위로끌어올리고,인간과세계사이에새로운권리와의무를설정하자고주장한다.인간들끼리만맺은사회계약이후,이제세계와맺는‘자연계약’이필요하다는것이다.그것은자연을보호해야한다는도덕적호소보다훨씬근본적인요구이다.
인간의전쟁뒤에서시작된세계의반격
『자연계약』은고야의그림〈모래위의결투〉에서시작한다.두남자가몽둥이를휘두르며서로를쓰러뜨리려하지만,정작그들이서있는땅은진흙펄이다.싸움이격렬해질수록두사람은함께더깊이가라앉는다.당사자들은오직누가이길것인가에몰두하지만,그림밖의관람자는다른질문을던질수있다.누가이길것인가가아니라,둘다살아남을수있는가.세르는이장면에서인류의역사를읽는다.전쟁과경쟁,지배와소유에몰두해온인간은서로의적만바라보느라자신들이함께빠져들고있는세계를보지못했다.
그러나인간이자연에행사하는힘이전지구적규모에이르면서상황은역전된다.우리가대상으로취급해온세계가이제인간의행위에전체적으로반응하기시작한것이다.기후와바다,땅과대기는더이상인간역사의고요한배경이아니다.인간은세계를지배하는주체인동시에자신이변화시킨세계에의해다시변화되는존재가되었다.세르에게기후위기는그래서단순한‘환경문제’가아니다.인간이세계와벌여온오래된전쟁이마침내인간자신을향해되돌아오는사건이다.지배와소유가그한계를넘어서는순간승리는패배가되고,인간은자신이의존하는세계와함께몰락한다.역사는뜨겁게불타올랐지만,그동안우리는그아래가라앉고있는땅을보지못했다.
지배와소유에서권리와공생으로
세르가요구하는것은자연으로돌아가자는낭만적인회귀가아니다.문제는‘자연과인간사이에어떤새로운법적관계를세울것인가’이다.근대의사회계약은인간들사이의평등을인정했지만자연을권리없는대상으로남겨두었고,근대과학은세계를인식하고지배할대상으로만들었다.세르는이두역사를하나의문제로묶는다.과학이세계를변화시킬만큼강력해졌는데도법과정치는여전히인간사회내부의이해관계만을조정하고있다면,인간의힘과세계의힘사이에는어떤질서가세워져야하는가.그가자연계약을단순한생태적약속이아니라사회계약과과학적계약을동시에넘어서는‘형이상학적’계약이라고부르는까닭이다.
그전환을압축하는말이‘기생’에서‘공생’으로의이동이다.인간은오랫동안자연을무한한숙주처럼사용해왔다.그러나숙주를죽이는기생자는결국자신도살아남을수없다.인간의지배가전지구적규모로확대된오늘날,지배는도리어인간을위협하는힘으로되돌아온다.따라서자연계약은자연에대한인간의선의를요구하는계약이아니다.인간과세계가서로에게의존하며서로에게작용한다는사실을법과정치가인정하는계약이다.세르가말하는자연계약은인간의자유를포기하는것이아니라,인간의자유가성립할수있는세계의조건을다시법안으로불러들이는일이다.역사의갈림길에는이제두개의길만남는다.죽음이냐아니면공생이냐.
세계와함께,세계안에서,세계에의해,세계를위해
세르는계약을하나의‘끈’으로사유한다.끈은인간과인간을묶지만인간과사물도연결하며,지식과힘,법과세계를함께얽는다.과학과기술이전지구적규모로발전한오늘날,인류와지구는이미이전에는상상할수없을만큼강하게연결되어있다.인간의국지적인행동이지구전체를변화시키고,변화한지구는다시인간의삶을바꾼다.우리는지구를소유한다고생각했지만동시에지구에의해규정되고있으며,세계를이해한다고생각했지만이제는세계가인간의정치와법을다시쓰도록요구한다.『자연계약』의마지막에등장하는‘끈’은그래서단순한비유가아니다.인간과세계어느쪽도홀로존재할수없게된시대의존재조건이다.
이책이처음세상에나온것은1990년이었다.당시에는자연에게법적주체의지위를부여하자는주장이터무니없는것으로받아들여지기도했다.그러나세르는훗날다시쓴서문에서자신이제안했던법적해결책이여러나라의입법속으로들어가기시작했음을지적하며,한세대전에는불가능하게보였던생각이이제실천가능한것이된것은아닌지되묻는다.오늘날『자연계약』을다시읽는다는것은그래서오래된생태철학의고전을되돌아보는일이아니다.기후변화와생물다양성의붕괴앞에서인간의정치와법,과학과철학의토대자체를다시묻는일이다.세계를인간의‘환경’으로둘러세웠던오래된인간중심주의에서벗어나,인간과세계가서로에게주체이자대상이되는새로운관계를시작해야한다.세계와함께,세계안에서,세계에의해,세계를위해살아갈수있는가.오래전도착한세르의경고에이제는답할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