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래 시집

봉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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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양사언(楊士彦)은 16세기 조선의 문인이자 서예가로 금강산을 사랑해 자신의 호를 ‘봉래(蓬萊)’라 했다. 그는 초년에는 시서와 거문고를 벗하며 안빈낙도의 흥취를 즐겼고, 중년과 말년에는 선정을 베풀면서도 산수 자연을 유력하며 도가적 흥취에 몰입했다. 『봉래 시집』은 시(詩)·부(賦)·기(記)·제문(祭文)·행장(行狀) 등 여러 형식의 글 69편을 정선해 원전의 순서대로 실었다.
저자

양사언

저자양사언(楊士彦,1517∼1584)은조선전기의문인·서예가다.본관은청주(淸州),자는응빙(應聘),호는봉래(蓬萊)·완구(完邱)·창해(滄海)·해객(海客)이다.조선중종12년(1517)에경기도포천에서출생했다.
그는서얼출신임에도불구하고,명종1년(1546)문과에급제하여대동승(大同丞)을거쳐삼등·함흥·평창·강릉·회양·안변·철원등여덟고을의수령을지냈다.중간에사임하고쉰때도있긴하지만,근40여년간관직에있었다.내직을역임하기도했지만대부분을외직에서보낸셈이다.부임하는고을마다선정을베풀어칭송이자자하였고,안변군수로있을때는통정대부의품계를받았다.만년에지릉(智陵)화재사건으로해서(海西)에유배되었다.그리고2년뒤풀려나서돌아오는길에죽었다.선조17년(1584),68세때의일이다.
그는해서와초서에능하여안평대군(安平大君)·김구(金絿)·한호(韓濩)와함께조선전기4대명필로일컬어졌다.특히큰글씨를잘썼다.금강산만폭동바위에‘봉래풍악원화동천(蓬萊楓岳元化洞天)’이라새긴글씨외에도도처에많은암각문이남아있다.
문집으로《봉래시집》이있으며,별도로《봉래유묵》이전한다.아우사기(士奇),사준(士俊)과함께문명을떨쳐중국의미산삼소(眉山三蘇)에견주어졌다.

목차

오언절구(五言絶句)
승축산수도에쓰다(題僧軸山水圖)
금강산(金剛山)
운상인에게(贈雲上人)
반월산(半月山)
가평현감윤후에게감사하며(謝上尹加平)
불정대에서차식의시를차운하여(佛頂臺次紫洞韻)

육언(六言)
〈왕반산〉시를차운하여산의바위에쓰다(書山石次王半山)

칠언절구(七言絶句)
보지못하여(不見)
연(蓮)
아우응거와응룡에게편지를부치며(簡寄弟應擧應龍)
이치를터득하다(自得)
구호(口號)
사구대에서북쪽바다높은봉우리를바라보며(沙丘臺望北海諸嶠)
반월산에서거문고를타며(半月山彈琴)
삼일포(三日浦)
강선정에서차식을기다리며(降仙亭待車紫洞)
만경대에서임억령의시를차운하여(萬景臺次林石泉韻)
구선봉(九仙峯)
보덕굴(普德窟)
금수정(金水亭)
선유담(仙遊潭)
강서사주지에게(贈江西寺住持)
불정대(佛頂臺)
유점사(楡岾寺)
평안도사김언형을보내면서세상의단가를본떠짓다(送平安都使金彦亨步俗短歌而作)
풍악에서놀며차식에게화답하다(遊楓嶽和車紫洞)
관동에새터전을닦다(新卜關東)
낙산사(洛山寺)
금강산천일대(金剛山天逸臺)
고죽최경창에게(贈崔孤竹)
금옹에게(贈琴翁)
발연사경석위에쓰다(題鉢淵磬石上)

오언율시(五言律詩)
고산만항복하지않았네(孤山獨不降)
반월산(半月山)
금주산(金柱山)
비래정(飛來亭)
해오라기(鷺?)
풍악산중대(楓嶽中臺)
장항령(獐項嶺)
산영루(山映樓)
유점사(楡岾寺)
불정암에서월출을보며(佛頂菴觀月出)

칠언율시(七言律詩)
유선사(遊仙詞)
입춘을축하하며(春帖字)
영상시에서지은시(迎祥試詩)
운악산(雲岳山)
퇴계선생만사(退溪先生挽詞)
국도에서놀며(遊國島)
청간정(淸磵亭)

오언배율(五言排律)
송강조경숙의〈영설〉을차운하여(次趙松江?叔詠雪)

칠언배율(七言排律)
사촌의시를차운하여회포를풀다(次沙村韻仍遣懷)

습유(拾遺)
휴정에게(贈休靜)
아내를곡함(哭內)
백옥을기리며(白玉贊)
고성동각에서차식의시를차운하여(高城東閣次車紫洞韻)

오언고풍(五言古風)
경요허이대(瓊瑤許李臺)
감회가있어서(有感)
국도가(國島歌)
밝은달을읊다(郎月吟)

칠언고풍(七言古風)
소나무껍질을먹다(食松皮)

장단구(長短句)
견우와직녀의노래(牛女詞)
백로를노래하며(詠白鷺)
미인곡(美人曲)

부(賦)
단사부(丹砂賦)

문(文)
전책(殿策)
열운정기(閱雲亭記)
정장령포기(鄭掌令浦記)
효우문전(孝友門傳)
친구의제문(友人祭文)
청허대사에게부치는편지(寄淸虛書)
또부치다

해설
지은이에대해
옮긴이에대해

출판사 서평

16세기조선의문인이자서예가인양사언(楊士彦)의문집이다.아들만고(萬古)가집안에전하는초고를바탕으로수집·편차해간행한것이다.편찬자의서(序)와발(跋)이없어편집및간행연대를정확하게알수없다.현재1633년경목판으로간행한초간본이전한다.분량은3권1책으로총86판으로,부록된《풍고시집》은4판으로시21수가,《청계시집》은3판으로시16수가실려있다.
양사언의시작품은수필고본(手筆稿本)으로전해진것외에양만고가산재한작품을일일이수집해수록한것도적지않고,양재웅소장《봉래유묵》에도별도로작품이전한다.그의시작품을주제별로분류해보면자연·명승지57편,술회(述懷)57편,차운(次韻)44편,증시(贈詩)43편,제시(題詩)15편,송별(送別)14편,만사(輓詞)13편,제진(製進)12편,교분(交分)10편순이다.
양사언은자연·명승지를유람하면서지은작품과자신의회포를노래한시가많은데,특히금강산을주제로한작품이많다.금강산만폭동바위에‘봉래풍악원화동천(蓬萊楓嶽元化洞天)’이라는글귀를새기는등금강산을특별히여겼다.차운한시편도대개유람하면서정자나관가의현판을보고지은것이고,증시·송별시·교분시는절친한친구들과화답하며지은것이다.내직에있으면서지은제진시(製進詩)12편은관료로서의면모를충분히시사한다.
제가의평대로그는이인(異人)으로태어나내외의방술(方術)에몰입했고,유자(儒者)이면서도불교를가까이했으며,만년에는선도(仙道)에빠졌던인물이다.남사고(南師古)에게서역술(易術)을배우기도했다.조경(趙絅)이〈묘갈명〉에서“처음에는이단(異端)을가까이하더니/나중에는선도(仙道)에빠졌도다/이단과선도를하지않았다면/넉넉히요천에드실텐데”라평했다.또한이익(李瀷)은《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양사언을두고신선과같은인물이라고하고,그글씨또한그인물과같은데,사람들이그글씨가진속(塵俗)을벗어난줄은알아도그시가세상사람의말이아님을알지못한다고말하면서세속의태를벗어난천진하고도청아한시풍을높이평가했다.이같은인물평은양사언이여느사람과구별되는취향을가졌음을잘보여주며,그의작품에그대로투영되어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