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적 시선

고적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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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고적은 잠삼과 함께 당대 변새시를 대표한다. 잦은 이민족의 침입과 정변으로 나라가 어지럽던 시기, 변방을 떠돌며 직접 목격한 백성과 병사들의 고통, 험준한 국경 지역의 풍경, 낯선 이민족들의 생활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평이하고 담담한 표현이 오히려 한층 침울하고 비통한 정서를 나타낸다.
저자

고적

저자고적(高適,701?∼765)은당(唐)나라창주(滄州)수[(蓚,지금의허베이성(河北省)징현(景縣)]사람으로,자(字)가달부(達夫)다.일찍이공업수립의뜻을품었으나기회를얻지못하고오랜기간송성[宋城,지금의허난성상추현(商丘縣)]에은거하며연조(燕趙)일대를유람하며지냈다.천보(天寶)8년(749)나이49세가되어서야비로소저양태수(雎陽太守)장구고(張九皐)의추천으로유도과(有道科)에합격해봉구위(封丘尉)에제수되어관직생활을시작했으나얼마되지않아그만두었고,가서한(哥舒翰)이농우절도사(?右節度使)가되자그의막부(幕府)에들어가장서기(掌書記)가되었다.안사(安史)의난이일어나자가서한을도와동관(潼關)을지켰는데,동관이함락되자그패배원인을현종(玄宗)에게아뢰어간의대부(諫議太夫)로발탁되었다.숙종(肅宗)이즉위하자어사대부(御史大夫)겸양주대도독부장사(揚州大都督府長史)·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가되어위척(韋陟),내진(來?)과함께영왕(永王)이린(李璘)의난을토벌했다.그러나환관(宦官)이보국(李輔國)의참언으로태자소첨사(太子少詹事)로강등되었으며오래지않아팽주(彭州)와촉주(蜀州)의자사(刺史)로전출되었다가다시성도윤(成都尹)·검남서천절도사(劍南西川節度使)에임명되었다.대종(代宗)때에형부시랑(刑部侍郞)에서산기상시(散騎常侍)로옮겼으며발해현후(渤海縣侯)에봉해졌고,영태(永泰)원년(765)정월에병사했다.변새(邊塞)에서의실제경험을토대로장수들의투지와용맹함을찬양하거나병사들의고통을써내는등많은변새시(邊塞詩)를창작해잠삼(岑參)과더불어당대(唐代)변새시를대표하는시인으로꼽힌다.저서로≪고상시집(高常侍集)≫10권이있다.

목차

인생길의어려움2수(行路難二首)
위참군과이별하며(別韋參軍)
궂은비속에방사형제에게부쳐(苦雨寄房四昆季)
객사에있는이소부를보내며(送李少府時在客舍)
변새에서(塞上)
계문에서왕지환과곽밀지를만나지못하고인해서남기어드리다(?門不遇王之渙郭密之因以留贈)
풍판관과이별하며(別馮判官)
영주의노래(營州歌)
왕칠의<옥문관에서피리소리를들으며>에화답해(和王七玉門關聽吹笛)
계문행5수(?門行五首)
계북에서돌아오며(自?北歸)
한단소년행(邯鄲少年行)
기수물가에서설거에게수답하고겸해소부곽미에게부쳐(淇上酬薛三據兼寄郭少府微)
진삼처사와이별하며드리다(贈別晉三處士)
기수물가의별장에서(淇上別業)
잠이십주부가가을밤보내온시에답해(酬岑二十主簿秋夜見贈之作)
위팔을전송하며(送魏八)
기수물가에서활대로가는위사창을전송하며(淇上送韋司倉往滑臺)
밤에위사사와이별하며(夜別韋司士)
선보의양구소부에곡하며(哭單父梁九少府)
기수에서황하를건너는도중에쓰다13수중5수(自淇涉黃河途中作十三首)
연가행(燕歌行)
궂은눈4수(苦雪四首)
위오와이별하며(別韋五)
소십팔을전송하며,돌아오신방시어께드리다(送蕭十八與房侍御回還)
제공들과가을날금대에올라(同群公秋登琴臺)
옛대량행(古大梁行)
동평으로가는길에쓰다3수(東平路作三首)
동평으로가는도중홍수를만나(東平路中遇大水)
도중에서녹사에게부치다(途中寄徐錄事)
동평에서전위현이채소부와이별하며(東平別前衛縣李寀少府)
이태수와함께북지에배띄우고고평의정태수와연회하며(同李太守北池泛舟宴高平鄭太守)
제공들과복양의성불사누각에올라(同群公登?陽聖佛寺閣)
역사를읊다(詠史)
<산으로돌아가는노래>를지어심사산인에게드리다(賦得還山吟送沈四山人)
동대와이별하며2수(別董大二首)
농가에서봄날바라보며(田家春望)
가을에쓰다(秋日作)
정삼과위구,낙양의제공들에게이별하며드리다(留別鄭三韋九兼洛下諸公)
막봉구에이르러쓰다(初至封丘作)
봉구현에서(封丘縣)
군대를전송하며계북에이르러(送兵到?北)
청이군에사신갔다거용관으로들어오며3수(使靑夷軍入居庸三首)
계성에서쓰다(?中作)
섣달그믐밤에(除夜作)
여러공들과함께자은사탑에올라(同諸公登慈恩寺浮圖)
설사직과여러공들과함께비개인가을날남산을굽어보며쓰다(同薛司直諸公秋霽曲江俯見南山作)
취한후장욱에게드리다(?後贈張九旭)
최원외,기무습유,경조부이사조와함께중양절에잔치하며(同崔員外?毋拾遺九日宴京兆府李士曹)
민땅으로폄적되어가는정시어를전송하며(送鄭侍御謫?中)
안서로부임하는이시어를전송하며(送李侍御赴安西)
협중으로폄적되어가는이소부와장사로폄적되어가는왕소부를전송하며(送李少府貶峽中王少府貶長沙)
송별(送別)
농산에올라(登?)
창송의동쪽경계로들어가산길을지나며(入昌松東界山行)
금성북쪽누대에서(金城北樓)
백장봉에올라2수(登百丈峰二首)
변경의노래(塞下曲)
구곡사3수(九曲詞三首)
부락의노래(部落曲)
광릉에서정처사와이별하며(廣陵別鄭處士)
설대의팔뚝위에있는매를보고쓰다(見薛大臂鷹作)
팽주로부임하는산길에쓰다(赴彭州山行之作)
두이습유에게드리다(贈杜二拾遺)
인일에두이습유에게부치다(人日寄杜二拾遺)

해설
지은이에대해
옮긴이에대해

출판사 서평

고적(高適,701?∼765)은당(唐)나라개원(開元),천보(天寶)연간의이른바성당(盛唐)시기에활동한시인으로,변새(邊塞)에서의실제경험을토대로장수들의투지와용맹함을찬양하거나병사들의고통을써내는등많은변새시(邊塞詩)를창작해동시대의잠삼(岑參)과더불어당대(唐代)변새시를대표하는시인으로꼽힌다.
고적은공업의수립과일신의영달을목표로삶의오랜기간을여러곳을유랑하며떠도는생활을했으며,실제고관으로서득의했다고할수있는시기는생의후반부의일부분에불과했다.또한안사의난이후정사에본격적으로참여하며관직에서승승장구한이후로는쓴작품수도이전보다많지않았다.현재남아있는그의작품의대다수는은거와유랑을반복하던시기에쓴것으로,공업수립의열망과그좌절에따른실망과안타까움으로점철되어있다.현재그의시는전하는판본에따라약간씩차이가있지만대략240여수가전하고있는데,이중특정인에대한기증시나증별시가매우높은비율을차지하고있다.아울러대상에따라그내용과표현방식또한차이가나는데,이는오랜기간떠돌며불우했던그의삶과밀접한관련이있다.고적은평생토록수많은사람들과교유하며자신과비슷한처지의사람들에게는동정과연민및격려의뜻을나타냄으로써스스로에대한위안으로삼고,고관이나정치적유력자들에게는이들에대한찬미와함께자신의능력과재주를드러냄으로써간알의목적을이루고자했다.
그러나아무래도그의시중가장돋보이며또한문학사적으로도높은평가를받는것은그의변새시(邊塞詩)라할수있다.고적은40여편에달하는변새시를썼는데,그의변새시는동시대잠삼(岑參)의변새시와도다른풍격을보인다.즉잠삼의시가화려하고섬세한정경묘사와독특하고빼어난표현으로호탕하고격정적인정서를나타내었던반면,고적의시는평이하고담담한정경묘사와침중하고혼후한표현으로침울하고비통한정서를나타내었으니,잠삼과더불어당대변새시의또다른최고수준을보여주었다고할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