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 속시화(큰글씨책)

시화 / 속시화(큰글씨책)

$28.00
Description
『시화 / 속시화』는 중국 최초의 시화집인 구양수의 《시화(詩話)》와 이에 감명을 받아 이어 쓴 사마광의 《속시화(續詩話)》를 함께 묶었다. 시화는 중국 특유의 비평 양식으로, 시와 시인에 대한 비평, 해석과 고증은 물론 시인의 일화나 시단의 풍조, 저자의 시관 등 시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폭넓게 다룬다. 시학과 언어학, 사회학적인 연구 자료로도 가치가 높지만 무엇보다 당시 시인과 시단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시를 더 다채롭게 맛볼 수 있다.
저자

구양수

저자구양수(歐陽修,1007∼1072)는북송(北宋)때의문학가겸역사가로자가영숙(永叔)이고호가취옹(醉翁)또는육일거사(六一居士)이며시호가문충(文忠)이다.문학가로서의구양수는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에속하는뛰어난문장가요송시(宋詩)의특질을확립하는데중추적인역할을한대시인일뿐만아니라송대를대표하는걸출한사인(詞人)이기도했으며,역사가로서의구양수는《신당서(新唐書)》와《신오대사(新五代史)》의저자였다.
그는진종(眞宗)경덕(景德)4년(1007)면주[綿州,지금의쓰촨성(四川省)?양(綿陽)]에서당시면주군사추관(綿州軍事推官)으로재임중이던구양관(歐陽觀,952∼1010)의외아들로태어났다.네살때아버지를여의고어머니와함께수주[隨州,지금의후베이성(湖北省)쑤이저우]에있는숙부집에의탁했다.다행히양가집딸인어머니가상당한수준의학식을갖추고있었기때문에구양수는어머니에게글자를배울수있었는데종이와붓이없어갈대를붓으로삼고모래를종이로삼아글자를익혔다.
스물네살되던해인인종(仁宗)천성(天聖)8년(1030)에진사시(進士試)에급제해서경유수추관(西京留守推官)을시작으로벼슬길에들어섰다.당시서경유수는전유연(錢惟演)이었는데그의막부에윤수(尹洙)·매요신(梅堯臣)등의뛰어난문인들이있어그들과가까이지낸덕분에그들의영향으로시문혁신(詩文革新)에박차를가하게되었다.
경우(景祐)3년(1036)에재상여이간(呂夷簡)의횡포를옹호하는고약눌을비판하다가이릉[夷陵,지금의후베이성(湖北省)이창(宜昌)]현령으로좌천되고말았다.
경력(慶曆)5년(1045)에저주[?州,지금의안후이성(安徽省)추저우]지주(知州)로나갔는데저주지주로재임하는동안그는취옹이라는자호를짓고〈취옹정기(醉翁亭記)〉라는불후의명문을창작했다.
경력8년(1048)에양주[揚州,지금의장쑤성(江蘇省)양저우]지주(知州)로부임해재임기간에평산당(平山堂)이라는유명한건물을지었고,황우(皇祐)원년(1049)에영주[潁州,지금의안후이성푸양(阜陽)]지주로부임했는데서호(西湖)를비롯한영주의산수에매료된나머지나중에그곳을퇴거지로삼는계기가되었다.
가우(嘉祐)2년(1057)에지공거(知貢擧)가되어예부시(禮部試)를주관한그는태학체를중시하던당시의문풍을바로잡기위해태학체로작성한답안을불합격시켰고소식(蘇軾)을발굴했다.
구양수는그뒤예부시랑(禮部侍郞)·추밀부사(樞密副使)·호부시랑(戶部侍郞)·참지정사(參知政事)와몇몇고을의지주를더역임하고신종(神宗)희녕(熙寧)4년(1071)6월에마침내사직을허락받아7월에영주로돌아가서한가로이지냈다.그러나그는한가로운생활을오래즐기지못하고1년뒤인희녕5년(1072)윤7월에병사하고말았다.향년66세였다.문집으로《구양문충집(歐陽文忠集)》이있다.

목차

시화(詩話)
저술동기
제1화이방(李昉)의〈영창릉만가사(永昌陵挽歌辭)〉
제2화인종(仁宗)시기의백낙천체(白樂天體)
제3화두서울의실사를묘사한시
제4화매요신(梅堯臣)의시〈복어(河豚魚)〉
제5화서남쪽오랑캐의활집무늬로사용된매요신(梅堯臣)의〈춘설(春雪)〉
제6화지체높은승려를싫어한정곡(鄭谷)의시
제7화정곡(鄭谷)의시와매요신(梅堯臣)의시
제8화“새한마리지나가듯몸이가볍다(身輕一鳥過)”
제9화구승(九僧)시의특징
제10화맹교(孟郊)와가도(賈島)의궁상(窮狀)을노래한시
제11화만당(晩唐)시인주박(周朴)의시
제12화묘사하기어려운경물과다하지않는뜻이있는시
제13화호방하고초탈한소순흠(蘇舜欽)의시와심원하고담박한매요신(梅堯臣)의시
제14화호단(胡旦)에게무시당한여몽정(呂蒙正)
제15화간을앓고콩팥에바람이든시와고양이를잃어버린시
제16화왕건(王建)의〈궁사일백수(宮詞一百首)〉에묘사된이원영(李元?)의〈협접도(?蝶圖)〉
제17화‘태수생(太?生)’과‘말궐병(末厥兵)’
제18화이치에맞지않으면멋진시구가아니다
제19화소순흠(蘇舜欽)·소순원(蘇舜元)형제의시
제20화시인의마음과다른독자의마음
제21화서곤파(西崑派)시의멋진구절
제22화낙양(洛陽)을노래한전유연(錢惟演)과정문보(鄭文寶)의시
제23화사백초(謝伯初)의시
제24화석연년(石延年)의신선적삶과시풍
제25화왕건(王建)의〈예상사(霓裳詞)〉
제26화조사민(趙師民)의시
제27화관운(寬韻)은통용하고착운(窄韻)은전용한한유(韓愈)시의압운
제28화송기(宋祁)의시〈오색과녁(采侯)〉

속시화
저술동기
제1화조정의실사를묘사한시
제2화옛날사람의시구를많이차용한혜숭(惠崇)의시
제3화매요신(梅堯臣)과한종언(韓宗彦)의죽음
제4화정문보(鄭文寶)의멋진시구
제5화과거시험때지은시중의보기드문명작
제6화상관의총애를얻게한포당(鮑當)의시
제7화임포(林逋)의시〈산속동산의작은매화(山園小梅)〉
제8화위야(魏野)의시와인품
제9화정위(丁謂)시중의경구(警句)
제10화재주와생각이깊고원대한구준(寇準)의시
제11화진요좌(陳堯佐)의시
제12화매일시를두세편씩지은방적(龐籍)
제13화처사한퇴(韓退)의생활과시
제14화석연년(石延年)이지은장헌태후(章獻太后)만가
제15화이하(李賀)의시에필적할만한석연년(石延年)의대구(對句)
제16화언어바깥에행간의뜻을담은두보(杜甫)의시
제17화유개(劉?)의위인과은거생활을노래한부필(富弼)의시
제18화관작루(?雀樓)를읊은왕지환(王之渙)과창제(暢諸)의시
제19화약재이름을활용한진아(陳亞)의시
제20화벼슬을내려도사양한양박(楊朴)의시
제21화유균(劉筠)과한기(韓琦)의시
제22화미묘하고완곡한한기(韓琦)의시
제23화환관(宦官)왕신(王紳)의궁사(宮詞)
제24화《구승시집(九僧詩集)》의편찬자진충(陳充)과소장자민교여(閔交如)
제25화고향에갔다가다시경사로돌아오면서지은범진(范鎭)의시
제26화유풍(劉諷)을전송한범진(范鎭)과주공작(朱公綽)의시
제27화사람들의칭송을받은경선지(耿僊芝)의시
제28화종신기(終身記)라할만한《초학기(初學記)》
제29화‘종곤(宗袞)’의생활신조
제30화두보(杜甫)의묘지는뇌양(?陽)인가공현(鞏縣)인가?
제31화한악(韓渥)의시에나타난‘과마(過馬)’의의미와당나라지방군사장관의과마청(過馬廳)

해설
지은이에대해
옮긴이에대해

출판사 서평

**지식을만드는지식큰글씨책은약시나노안으로독서에어려움을겪는독자를위해만든책입니다.지식을만드는지식의책은모두큰글씨책으로제작됩니다.

‘시화’라는새로운양식의글쓰기는구양수(歐陽修)에의해처음으로시도되어《시화(詩話)》라는이름으로첫작품이탄생했고,얼마후이에감명을받은사마광(司馬光)에의해시화의속편이라할수있는《속시화(續詩話)》가탄생했으며,이후많은문인들이계속해서이들을본뜬시가비평서를쓰기에이르렀다.이런과정에서‘시화’는서서히중국시가비평의대표적인양식으로정착하게되었다.그리하여현재전해지는시화만해도수백종에이르며지금도계속해서새로운시화저작이나오고있다.
시화가천여년동안이나계속해서중국시가비평의대표적인양식으로남아있을수있었던것은,이전의시가비평서와차별화되는고유한특성때문이다.그것은바로시화가다른시가비평양식에비해훨씬자유롭게시에관한담론을전개한다는점이다.구양수가《시화》의서두에서스스로“이이야기들을모아한담거리를제공한다(集以資閑談也)”라고밝힌바와같이,시화는마치누군가에게재미있는이야기를들려주듯시를화제로삼아이야기보따리를풀었다.
좀더구체적으로말하자면시화는이야기의편폭에제약이없고,이야기의배열과구성이매우자유롭다는특징을지니고있다.하나의항목이대개100∼200자정도로구성되어있고,각각의항목들이단편적이고독립적인이야기인지라인접한항목들간에연관성이없으며항목의배열에도정해진원칙이없다.또한서술대상시기나서술대상시인의선택도제한없이자유로워당송(唐宋)시대의시뿐아니라선진(先秦)·양한(兩漢)시대의시까지거슬러올라가기도하고,대시인들에관한이야기뿐만아니라세상에잘알려지지않은이름없는시인들까지다양하게이야기하고있다.
시화는서술체제나서술범위가자유로웠을뿐아니라,이야기한내용도아주다양하고광범위했다.시의본사와시인의일화를소개하기도했고,시어와시구(詩句)에대한해석과고증을하기도했으며,시와시인에대해비평하기도했다.또한시단의풍조에대해묘사하거나평가하기도했고,시관(詩觀)을전개하기도하는등시에관한다양한이야기를자유롭게전개했다.이와같이시에관한전반적인이야기를폭넓게다루고있기에창시자인구양수가여기에다이러한내용들을포괄할수있는‘시화’라는명칭을붙였을것으로여겨진다.
초기의시화는이전의시가비평서와달리비평중심이아니라기사(記事)중심이기때문에얼핏보면그냥잡문같은느낌이들기도할정도인데이들시화속의수많은기사중에는시와관련있는다양한자료가보존되어있어서일차적으로시학연구를위한자료를제공하며,나아가사회·문화연구를위한자료와언어학연구를위한자료를제공하기도한다.이를테면시화에기록되지않았더라면지금까지전해지지못하고유구한역사속에묻혀버렸을사백초(謝伯初)등무명시인들의시구가시화안에많이보존되어있다.또한시화의기록을통해조정의상황과관리들의생활상등당시의사회상을살펴볼수도있고,축국(蹴?)·주령(酒令)과같은당시의문화도엿볼수있다.나아가시화는운자(韻字)·평측(平仄)·성조(聲調)·구어·속어·은어·방언등언어학방면의연구에활용할수있을만한자료도상당히많이보존하고있는데그중에는다른문헌에서는찾아보기힘든내용들도있어귀중한자료로활용될수있다.이렇듯여러방면에서다양한자료를보존하고있다는점만보더라도시화의의의는매우크다고할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