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한 작품집

김정한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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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김정한의 소설은 리얼리즘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그는 분단 이후 한국문학사에서 참여문학의 기틀을 세우는 데 크게 기여한 작가로 민중의 시선에서 그들의 고난과 투쟁을 생생하게 그려 냈다. 일제로부터 해방 후 조선인이 조선인을 수탈하는 모습과 일제 권력에 기생했던 자들의 계속되는 승승장구 등 우리 역사의 비틀어진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
저자

김정한

저자요산김정한(金廷漢)은1908년음력9월26일경상남도동래군북면(현재부산광역시금정구)에서태어났다.어려서는집안에서세운서당에나가한학을배웠고,1919년열두살이되자범어사에서운영하는명정학교(明正學校)에입학했다.입학직후그는3·1운동에참여했는데,범어사는해인사,통도사와더불어식민지시대항일노선을유지했던대표적인사찰로꼽힌다.1923년열여섯살때서울의중앙고등보통학교로진학했으나고향친구들과어울려학비를탕진한까닭에유학생활은1년6개월만에마감할수밖에없었고,1924년9월동래고등보통학교로전학하게되었다.동래고보재학중동맹휴학에참여하기도했으며,이시기에민족적인울분을표출하는방법으로문학에눈을떴다고한다.1928년3월동래고보를졸업하고,9월울산대현공립보통학교의교원으로부임했으나,교원생활은그리오래이어지지못했다.같은해11월일본인교사와한국인교사의차별대우에분개해조선인교원연맹결성을추진하다가피검되었고,이를계기로교사직을그만두게되었기때문이다.이때그의나이스물하나였다.따라서스물즈음까지그의의식을거칠게나마정리한다면,굳건한민족의식으로무장해자신의세계를지탱해나갔다고파악할수있겠다.
김정한이애초관심을보인문학장르는시였다.예컨대경상남도양산에는그의외가와왕고모댁이있었고,1927년스무살에양산의조분금(趙分今)씨와결혼했는데,이곳을취해<수라도>를비롯한여러소설의배경으로설정해나간것은몇십년이지난후다.그러니까이시기에는소설에뜻이없었기때문에양산에서벌어졌던다양한사건들을문학으로끌어들이지않았던것이라고이해할수있다.대신이때몰두했던것은시창작이었다.1928년에는목원(牧園)혹은김정한(金汀翰)이라는이름으로<불교>와<조선일보>에시·시조를투고했으며,1929년10월부터1930년까지는목원생(牧園生),김목원(金牧園),김추색(金秋色)이라는명의로<조선일보>,<동아일보>,<조선시단>,<대조>등에다수의시를발표했던것이다.그렇지만1931년을기점으로해그는소설분야로방향을선회했는데,11월무렵<구제사업>이라는단편소설을써서잡지에투고했으나일제의검열로결국게재될수없었다고훗날술회했던데서이러한사실이드러난다.
시창작으로출발했던김정한이소설분야로나아간까닭은계급사상의영향과관련지어생각해볼수있다.주지하다시피계급/계층의대립구조를효과적으로드러내기에는시장르보다는소설장르가적합하다.다시말한다면,각각의계급/계층이충돌하는지점에서사건을구성하고,이로써현실의갈등을긴박하게제시하는데맞춤한장르가소설이라는것이다.그가계급사상에빠져들었던것은일본유학때다.1929년2월일본으로건너간그는1930년4월와세다대부속제일고등학원문과문학부에입학했다.이시절그는독서회에가입해사회과학서적들을탐독하는한편,이찬,안막,이원조등과교류하며계급사상에빠져들었던것이다.1931년11월결성된동지사(同志社)에발기인으로참여한데서알수있듯이,김정한이품었던계급사상의열도는대단했다.재일조선인예술연구단체인동지사는계급의식으로뭉친단체였다.일본유학을그만두게된계기도계급사상과관련이있다.1932년3학년여름방학때귀향한후농민조직활성화를위해사업을펼치다가경찰에피검되었고,이사건으로인해9월학업을중단하게되었던것이다.같은해12월그의처녀작<그물(?)>이<문학건설>에발표되었다.
학업을중단한후김정한은다시교사가되어,1933년9월부터남해공립보통학교에서근무했고,1939년5월에는남해군남명심상소학교로발령받아1940년3월까지교직을이어나갔다.그가소설가로등단한것은교직생활을펼쳐나가면서였다.1936년단편소설<사하촌(寺下村)>으로<조선일보>신춘문예당선을거머쥐었던것.비참한농촌의현실을실감나게형상화한한편,이에편승하는타락한불교계의한단면을폭로했다는점에서이작품은발표되자마자큰반향을일으켰다.뿐만아니라,농촌을계몽의대상으로파악하는것이아니라,농민들이현실에자각해나간다는관점은다른작가들과크게변별되는요소였다.그렇지만이로인해고초를겪기도했다.<사하촌>이사찰을비방하는소설이라고하여그는장학사의조사를받았으며,귀향했을때는테러를당하기도했다.이때그의나이스물아홉이었다.1940년교직을그만두고난후김정한은<동아일보>동래지국을맡아8개월여간운영도해보고,경남면포조합에서기로취직해사무도보다가드디어해방을맞이했다.
해방정국에서김정한은좌익계열단체에서활발하게활동을벌여나갔다.1945년경남인민위원회문화부에서활동했고,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회원으로이름도올렸으며,1946년2월조선문학가동맹부산지부장에이어부산예술연맹위원회회장에피선된전력이이에해당한다.이때의활동으로인해김정한은두번이나옥고를치렀다.1946년4월미군정은이러한활동을‘정부행세’로규정해노백용(盧百容),김동산(金東山)등과함께그를검거했으며,1950년전쟁이발발하자한국정부는사상문제로그를체포했던것이다.그가김동산으로부터‘요산(樂山)’이라는아호를받은것은1950년8월감옥안에서였다.아호요산에는‘오래도록지조를지키며살아라’라는의미가담겨있다.이후김정한이보여준삶의궤적을보면,아호‘요산’처럼살아나갔음을확인하게된다.민주화를향한방향으로한치의어긋남도없이나아갔기때문이다.1960년4·19혁명이일어난이후통일운동을역설하고,민주화운동을옹호하는등수차례강연을했다가1961년군사쿠데타를만나쫓겨다녔고,예순일곱살이었던1974년에는개헌촉구서명에나섰으며,1985년5·18민주혁명기념사업범국민운동추진위원회고문으로추대되기도했다.1987년6월에는개헌촉구33인시국선언에동참했고,9월민족문학작가회의초대회장으로뽑힌바도있다.
마지막까지아호요산에담긴의미를지켜나갔던김정한은1996년11월28일타계했다.살아서그가꿋꿋하게이어온삶의궤적을존중하는차원에서그의장례는사회장으로치러졌다.

목차

인간단지(人間團地)
수라도(修羅道)
모래톱이야기
해설
지은이에대해
엮은이에대해

출판사 서평

분단이후부터4·19혁명이전까지한국문학에서는소위‘순수문학’이주류를형성하고있었다.사회현실의갈등이나모순을다루는작품들에대해정부는불온시했고,작가들대부분은정부의정책에순응해현실을우회하거나배제하는경향을드러내었는데,이를순수문학이라칭하면서지향했던것이다.이러한흐름에변화를가져온계기가바로4·19혁명이었다.1960년대에순수-참여논쟁이치열하게펼쳐지면서젊은비평가들은문학의사회적역할에대한논리를섬세하게가다듬어나갔다.하지만문학논리란구체적인작품분석을바탕으로할때비로소설득력을확보할수있다.김정한의작품들은이러한흐름속에서참여문학의의미와성과를구체적으로증명하는사례로주목받았고,한국문학사에서그는분단이후참여문학의기틀을세우는데커다랗게기여한작가로이름을남기고있다.
김정한이한국문학사에서자신의위치를마련해나간것은<모래톱이야기>(<문학(文學)>,1966.10)를발표하면서부터다.논의를하필<모래톱이야기>에서끌어내는까닭은두가지다.첫째,<모래톱이야기>로건재를알리기이전까지그는절필을유지하고있었다.1956년9월2일<자유민보(自由民報)>에발표한<개와소년(少年)>을마지막으로창작에서손을뗀상태였다.그러니까“이십년이넘도록내처붓을꺾어오던내가새삼이런글을끼적거리게된건별안간무슨기발한생각이떠올라서가아니다”(189쪽)라는<모래톱이야기>의첫머리는시차부분에서변형이가해지기는했으나,전혀근거없는내용은아니라고할수있다.둘째,등단작<사하촌(寺下村)>(1936년<조선일보>신춘문예당선작)으로자신의빼어난능력을이미증명했지만,이후발표했던작품들은등단작의성취에미치지못하는감이있다.즉<모래톱이야기>로재기하지못했더라면김정한은역량있는작가로우뚝하게자신을드러내기가힘들었을것이다.
김정한작품세계의특징은단연리얼리즘이다.그만큼그는민중들의구체적인생활을대상으로삼아그고난과투쟁의면모를생생하게복원하는데탁월하다.이는곧장한국문학의성취로직결되었는데,<모래톱이야기>가발표된1966년이라면1970년대한국문학에서리얼리즘의꽃을피운황석영,이문구,조세희등의작가가아직등장하지도않았거나이제막등단한시점이니,그의미는충분히가늠할수있다.이는그의세대가가질수있는역사적인경험과맞물리면서또하나의특징으로이어졌다.식민지시대에일제와결탁해민중을억압했던세력이해방이되어청산된것이아니라,오히려세력을공고하게구축해가는양상을냉철하게파악해나갈수있었던것이다.그는<모래톱이야기>를발표할당시벌써59세였다.이는연륜의덕이기도하겠지만줄곧민중의관점에섰기때문에가능했던것이기도하며,이러한면모로따지더라도그는발군의작가라이를만하다.친일잔재청산문제가아직까지도우리사회의심각한의제라는점을떠올리면이는특히주목해야만할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