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유 시전집 2(큰글씨책) (교유시(1))

왕유 시전집 2(큰글씨책) (교유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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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왕유 시의 국내 최고 권위자인 박삼수 교수가 20여 년간의 연구를 총정리해 ≪왕유 시전집≫ 완전판으로 엮었다. 당나라 3대 시인의 하나로 시불(詩佛)이라 불리는 왕유의 시 308편 376수를 모두 옮기고 각 시마다 상세한 해제를 추가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2권에는 교유시 중 송별시와 회인시 86편 89수를 실었다.
저자

왕유

저자왕유는시불왕유는시선이백,시성두보와함께성당(盛唐)시단의3대가로,중국은물론우리나라고전문학에도상당한영향을끼친대시인이다.왕유의자(字)는마힐(摩詰)이고하동(河東)포주(蒲州)사람으로,상서우승(尙書右丞)을지낸적이있어흔히‘왕우승(王右丞)’이라일컬어진다.당(唐)·무후(武后)장안(長安)원년(701)에태어나숙종(肅宗)상원(上元)2년(761)에향년61세를일기로세상을떠났으며일생동안무후,중종(中宗),예종(睿宗),현종(玄宗),숙종등다섯제왕의시대를살았다.
왕유는중소(中小)관료집안출신으로,유년시절부터아주총명해아홉살때이미글을지을줄알았다고하며열다섯살때고향을떠나서경(西京)장안과동도(東都)낙양을오가며사회진출을도모하기시작했다.열아홉에경조부시(京兆府試)에응시해해원(解元)급제했다.개원9년봄,스물한살의나이로진사에급제했고,곧태악승(太樂丞)에임명되면서벼슬길에첫발을내딛었다.그러나같은해가을,수하의예인(藝人)들이오직황제를위해서만공연할수있는황사자무(黃獅子舞)를사사로이공연한사건에연루되어제주(濟州)사창참군(司倉參軍)으로좌천되고말았다.
개원23년(735)왕유는마침내장구령의천거로우습유(右拾遺)를제수받고낙양으로가서부임했으며,개원24년10월에는현종을따라장안으로돌아왔다.그러나같은해11월,왕유의정신적·정치적지주였던현상(賢相)장구령이간신이임보(李林甫)의시기와모함으로파면되었고,이듬해4월에는또형주장사(荊州長史)로좌천되고말았다.왕유는감찰어사(監察御史)부터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등의벼슬을오가다가개원29년봄종남산(終南山)에은거했다.천보(天寶)원년좌보궐(左補闕)에오르며다시입경했고늦어도천보3년(744)에는남전현(藍田縣)의망천(輞川)계곡에별장,즉‘망천장(輞川莊)’을마련해역관역은의후기생활을시작했다.그후천보15년에안녹산반군의포로가될때까지여가나휴가때면으레망천별장으로돌아와풍경을즐기며유유자적했다.천보9년(750)봄,50세의왕유는모친상을당해망천으로돌아갔고복상(服喪)하며2년간은거했다.거상(居喪)기간이끝난천보11년봄,다시입조해이부낭중(吏部郞中)을제수받았으며,같은해이부가문부(文部)로개편된후에도계속문부낭중을지냈다.천보14년(755)에는다시종오품상의급사중(給事中)으로옮겼는데,그해11월에안녹산의난이일어났다.
천보15년6월,안녹산반군이동관(潼關)을함락하고급기야서경장안으로입성하자현종(玄宗)은부랴부랴수행원을대동하고촉(蜀)땅으로피난했다.그러나왕유는미처그일행을따르지못하고반군의포로가되었다.일부러환자나장애인인것처럼위장하며위기를모면코자했으나별소용이없었다.반군은왕유를낙양보리사(菩提寺)로압송·구금하고그들의벼슬을강요했다.왕유는완강히버티며응하지않았지만대략9월이후에는자신의뜻과는상관없이위직(僞職)급사중벼슬이떠맡겨지고말았다.
지덕2년(757)에동·서양경을수복한조정은같은해12월,그간반군에게억류당해있으며위직을맡았던사람들을모두여섯등급으로나누어논죄했다.왕유는보리사에갇혀있으면서친구배적(裴迪)에게지어보였던시[보리사에갇혀있는데배적이찾아와…(菩提寺禁裴迪來…)]로일찍이숙종을감동시킨데다당시형부시랑(刑部侍郞)의높은벼슬을하고있던동생왕진이자신의관직을삭탈하는대신형의죄를감면해줄것을청원해숙종의특별사면을받게되었다.
그후왕유는망천에서한거하다가이듬해봄에복관되면서태자중윤(太子中允)에문책(問責)제수되었으며,다시얼마후에는집현전학사(集賢殿學士)를가함받았다.그리고태자중서자(太子中庶子)와중서사인(中書舍人)을역임한뒤가을에마침내급사중에복직되었고상원(上元)원년(760)여름에상서우승(尙書右丞)으로승진했다.
상원2년봄,왕유는동생왕진이외직(外職)인촉주자사(蜀州刺史)로나가있는것을안타깝게여기며[책궁천제표(責躬薦弟表)]을올려자신의관직을삭탈하는대신동생의내직(內職)귀환을청원했다.그러나왕진이새로운내직을제수받고귀경하는도중인같은해7월,그리운동생을만나지도못한채61세를일기로세상을떠났다.그리고오랫동안‘역은(亦隱)’의삶을살았던망천장을개조한사찰,청원사(淸源寺)서쪽에안장되었다.

목차

1.송별시(送別詩)
과거에낙방하고고향으로돌아가는기무잠을송별하며
손이를송별하며
제주에서조영을송별하며
이별의광경을바라보며
기수(淇水)가에서조선주를송별하며
촉(蜀)땅으로돌아가는엄수재를송별하며
양양으로돌아가는맹호연을송별하며
회남으로유랑길떠나는사촌동생왕번을송별하며
최흥종을송별하며
산중의족형(族兄)온고상인께유별(留別)하며아우왕진에게보이다
‘쌍황곡가’로송별하며
부모님을뵈러밀주로가는최삼을송별하며
영운지에서사촌아우를송별하며
귀임하는기주원장사를송별하며
자성사에서감이를송별하며
봉태수를송별하며
강태수를송별하며
선성군으로부임해가는우문태수를송별하며
계주형자사를송별하며
대주로출정하는조도독을송별하며분운(分韻)함에청(靑)자운(韻)을뽑아짓다
육원외를송별하며
과거에낙방하고강동으로돌아가는구위를송별하며
벼슬을버리고강동으로돌아가는교서랑기무잠을송별하며
기무잠을떠나보내며
산중으로돌아가는장인을송별하며
선성으로돌아가는장인을송별하며
촉땅으로유랑길떠나는최흥종을송별하며
외사촌동생최흥종이종남산으로가려할제말위에서즉흥시를지어주며송별하다
서낭중을송별하며
수양이태수를송별하며
부임길에오르는위군이태수를송별하며
일본국으로돌아가는비서감조형을송별하며
최흥종의[남쪽으로돌아가는형산원공을송별하며]에화답하다
생질하수원외랑을송별하며
당주로가는구위를송별하며
산속으로돌아가는친구를송별하는노래ㆍ2수
진운군묘태수를송별하며
임회로돌아가는고도의아우고탐을송별하며짓다
상락군으로부임해가는이태수를송별하며
안양으로부임해가는웅구를송별하며
하서로부임해가는장판관을송별하며
행군사마가되어하서로부임해가는우문삼을송별하며
위평사를송별하며
안서로부임해가는유사직을송별하며
평담연판관을송별하며
안서로출사(出使)하는원이를송별하며
높은누대에올라여습유를송별하며
산중송별
남전으로돌아가는전소부를송별하며
동경유수위척(韋陟)을송별하며
동생진(縉)을떠나보낸후청룡사에올라멀리남전산을바라보며
과주로부임해가는양장사를송별하며
강회전운사로부임해가는원중승을송별하며
육혼으로돌아가는여섯째외숙을삼가송별하며
송별
권이를송별하며
강주자사의좌리(佐吏)로부임해가는장사인을송별하며설거의10운(韻)20구(句)에화답하다
최오태수를송별하며
강동으로부임해가는이판관을송별하며
산중으로돌아가는장도사를송별하며
손수재를송별하며
방성위명부를송별하며
이원외의영랑(令郞)을송별하며
재주이사군을송별하며
남쪽으로돌아가는벗을송별하며
숭산으로돌아가는방존사를송별하며
침주로좌천되어가는양소부를송별하며
성묘하러촉땅으로돌아가는왕존사를송별하며
강동으로돌아가는심자복을송별하며

2.회인시(懷人詩)
9월9일산동의형제들을그리며
조자허를눈물로추모하며
활주에이르러황하너머로여양을바라보며정우를그리다
제수(濟水)가네현인의노래ㆍ3수
산중에서동생들에게부치다
맹호연을눈물로추모하며
은요를눈물로추모하며
은요를장송(葬送)하며
태을산도관(道觀)의가생의거처를찾아서
오지않는저광희를기다리며
가을밤에홀로앉아외사촌동생최흥종을생각하며
심거사의산장에들러고인(故人)을눈물로추모하며
그리움
겨울밤에흰눈을마주하고호거사의집을생각하며
눈내린날이읍을그리며
저사마를눈물로추모하며
최흥종의초상화

출판사 서평

당시(唐詩)의문학적가치와고전적향기는오늘날에도불후의생명력을발휘하며전세계문학애호가들을매료한다.시불(詩佛)왕유는시선(詩仙)이백,시성(詩聖)두보와함께당시의황금기를이끈대시인이다.
이백이풍류넘치는삶을살며호방한필치와낭만적인서정으로시운을만나지못한개인적시름과울분을토로했다면,두보는우국우민(憂國憂民)의충정을바탕으로침울하면서도사실적인필치로전란(戰亂)의고통에신음하는사회민생을여실히반영했다.반면불교에심취했던왕유는역관역은(亦官亦隱)의고뇌에찬삶을살며담박하면서도고아한필치로세속적번뇌에서초탈하고해탈한정서를묘사했다.그때문에왕유의시는자연의정취와불가(佛家)적선취(禪趣)가넘치는것으로유명하며이는속세를떠난서정의극치로이어진다.
그러나왕유의시적재능은은일(隱逸)한서정에만머물지않았다.적극진취적인처세를보인전기에는경세제민(經世濟民)의정치적이상을표출하는가하면,현실사회의불합리를풍자하기도했다.또한생애전반에걸쳐창작된교유시(交遊詩)와증별시(贈別詩),그리고일상생활의다양한감정을담은작품에서묻어나는은근하면서도온후한정감은감탄을자아낸다.
입신현달(立身顯達)의꿈을품고열다섯살에고향을떠나장안으로가던왕유는,굳이진시황릉을찾아애절한솔바람소리를들으며흥망성쇠에대한깊은감개를토로할정도로(1208쪽[진시황릉을찾아서]참조)어려서부터이미인생에대한통찰이남달랐다.그러므로그는가정적인불행에정치적실의와실절(失節)이이어지는시련과고통속에서도결코비관하거나염세하지않고,인간의내면적생명가치를추구하며정신적해탈에이를수있었다.
오늘날치열한생존경쟁의틈바구니에서어느누구도현실적인고뇌와갈등으로부터자유로울수는없다.소중한일상속에서진정한삶의의미와가치를찾기는커녕왕왕상대적빈곤과열등의무게를이기지못하고힘들어한다.그래서일까,우리는몸소밭을갈며인생의참뜻을깨닫고희열의노래를부른전원시인도연명(陶淵明)보다는,고통과시련의삶속에서도인생에대한통찰로자신을지켰던왕유에게서더욱매력을느낀다.왕유의시는분명고단한현대인에게초탈과해탈의지혜를일깨워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