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문수간

사문수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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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퇴계 이황이 제자 조목에게 보낸 편지를 모았다. 편지 사이에 드러나는 가족과 제자에 대한 따뜻한 마음은 멀게만 느껴졌던 대학자의 인간적인 면을 보여 준다. 제자와 성리학에 대해 격렬한 토론을 벌이기도 하고, 그 이론이 타당하면 제자의 지적도 서슴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학문에 대한 그의 자세를 살필 수 있다. 성리학에 대해 설명하는 별지의 글에서는 이기이원론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저자

이황

저자퇴계(退溪)이황(李滉)은1501년11월25일안동예안현온계리에서진사이식(李埴)과박씨부인의7남1녀중막내로태어났다.6세에이웃노인에게서≪천자문(千字文)≫과≪동몽선습(童蒙先習)≫,≪명심보감(明心寶鑑)≫,≪소학(小學)≫등을배웠고12세에는숙부송재공(松齋公)이우(李?)에게≪논어(論語)≫를배웠다.15세에게[蟹]를보고<부석천사자유가(負石穿沙自由家)>등의시를지었고20세에는≪주역(周易)≫을탐독했다.
21세에서울로올라와성균관에유학한다.27세에경상도향시에2위로합격하고28세에진사회시에2등으로합격,32세에문과초시2등으로합격하고다음해인33세(1533)에반궁(泮宮)에유학하며경상도향시에합격한다.34세에문과에급제해승문원권지부정자와예문관검열이되었고36세에선무랑과성균관전적을거쳐9월호조좌랑에임명되었다.37세에선교랑,승훈랑,승의랑에임명되었으나어머니박씨의상을당해관직에서물러난다.
39세에3년상을마치고홍문관부수찬을거쳐수찬지제교로승진해40세에는사간원정언,승문원교검,경연시독관,춘추관기주관교리에임명되었고42세에는홍문관부교리,충청도·강원도어사로순찰했으나,43세에병을이유로관직을사임했다.이후종친부전첨,세자시강원필선,사간원사간,성균관사성등에여러차례제수되었으나나아가지않았다.
44세10월에상경한후중종이승하하자부고와시장을집필했다.47세7월에안동부사에제수되었으나사임했다.홍문관응교에제수되어상경해사퇴하려고했으나뜻을이루지못했다.48세에외직을자청해단양군수로취임했다.10월에풍기군수로전임했다.49세에소수서원을개칭해사액서원의효시가되었다.9월에신병으로사임해귀향했다.그러나신병을이유로세번이나사직원을제출한후회답을기다리지않고퇴계로돌아와임소를이탈했다는죄목으로직첩을박탈당했다.50세에예안하명동에한서암(寒棲庵)을짓고학문에전념한다.53세4월에성균관대사성에제수되었으나사퇴한다.
54세에형조·병조참의,첨지중추부사에임명되었고경복궁에새로지은여러전각의편액을썼으나이듬해병으로모든관직을사임하고귀향한다.56세에도산에서≪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편찬완성하고다음해인57세에도산서당을지을터를마련하고≪계몽전의(啓蒙傳疑)≫를저술했다.58세에대사성에임명되자사직을청했으나허락받지못하고공조참판에임명되었다.59세에휴가를얻어귀향한후관직을사임하고≪송계원명리학통록(宋季元明理學通錄)≫을저술했다.
60세에고봉기대승(奇大升)과편지로사단칠정론(四端七情)을변론했다.도산서당(陶山書院)이완공된다.61세에<도산기(陶山記)>를저술했다.64세2월에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의발문을썼으며65세에≪경현록(景賢錄)≫,≪역학계몽(易學啓蒙)≫,≪명당실어(名堂室語)≫등을저술했다.66세에공조판서와홍문관·예문관대제학에제수되었고,다음해인67세에다시예조판서,경연춘추관사로임명되었으나사의를표명하고8월에귀향,역동서원(易東書院)을새로건축했다.
68세에선조원년의정부우찬성과판중추부사에제수되자6월에소명을어기지못해상경해양관의대제학을겸임했다.재임중<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성학십도(聖學十圖)≫를저술했다.69세(1569)에이조판서에임명되었으나사의를표명하고귀향했다.70세7월역동서원에가서≪심경(心經)≫을강의하고,8월역동서원의낙성식에참여했다.11월격물치지설(格物致知說)을개정하다병이심상치않자12월봉화현감으로재직중이던큰아들을사직,귀가하게해장례준비를갖추도록했다.‘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는명문(銘文)과자명(自銘)을몸소짓고,임종직적매화분에물을주라는말과함께한서암에서세상을떠났다.이후영의정에추서되었다.

목차

제1
사경에게답함
사경에게답함
사경에게답함
사경에게말함
사경ㆍ문원에게안부함
사경에게보냄
사경에게답함
사경에게안부함
사경에게답함
사경에게답함
사경보게

제2
사경(士敬)에게답함
사경에게보냄
사경에게답함
사경ㆍ협지에게
사경보게
사경에게답함
여러분께안부함
사경보게
사경ㆍ협지ㆍ돈서(惇敍)등에게답함
월천조상사에게부침
사경보게
사경에게답함
사경에게답함
조사경의유거(幽居)에
사경의방문에감사한시에차운함.절구두편
부용동의여러시에차운함
사경에게알림
사경보게
사경에게답함
사경에게안부함
사경에게답함

제3
사경보게
사경에게답함
사경에게안부함
사경에게안부함
조사경에게부침
사경보게
사경에게답함
부용주인에게답함
사경에게안부함
사경에게안부함
사경에게답함

제4
사경을위로함
사경에게답함
사경보게
사경에게답함
사경에게안부함
사경에게답함
사경에게답함
사경에게안부함
사경에게말함
사경ㆍ문원에게말함
사경에게안부함
사경을초대함
사경보게
사경에게답함
사경에게안부함
사경보게

제5
사경과문원에게말함
사경에게답함
별지
사경에게안부함
사경에게답함
별지
사경에게안부함
별지
사경보게
사경에게답함
사경께답함
사경과문원에게말함
대성ㆍ간지ㆍ사경ㆍ문원에게는전어각다섯마리
사경에게안부함

제6
사경에게답함
사경보게
별지
산에살면서우연히병중의심정을써서사경과문원에게부침
사경에게
조사경이질문한≪심경(心經)≫에답함
별지
사경이술을가지고방문함
사경에게말함
사경에게말함
사경에게답함
사경에게답함
사경에게답함
사경에게답함
사경에게답함
별지
사경에게답함

제7
사경께답함
사경에게안부함
사경에게답함
사경에게답함
사경보게
사경에게안부함
사경께답함.다래조생원댁
사경에게안부함
사경께답함
사경에게안부함
사경에게안부함
사경에게답함
사경에게말함
사경에게다시말함
사경에게안부함
사경ㆍ문원제군에게말함

제8별록(別錄)
사경에게답함
조ㆍ이ㆍ권ㆍ박여러상사에게안부함
제군들에게말함
별지
광영당에가랑비내린뒤지음
조사경의‘명(明)’자운에화답함
사경에게안부함
부용산인에게
제군들이점필재(畢齋)에대해지은시에차운했던한수의시를지금다시고침
신숙계(申啓叔)에게보낸답장을지금보충함
문원보게
정조대왕어제발문

해설
지은이에대해
옮긴이에대해

출판사 서평

≪사문수간(師門手簡)≫은월천(月川)조목(趙穆,1524∼1606)의나이27세인1550년부터퇴계가세상을떠나기전인1570년까지이황이조목에게보낸편지를모은것으로,월천의나이65세에직접8책으로첩을만들어이황의후손에게전해도산서원광명실(光明室)에보관했다.이후정조16년(1792)도산과(陶山科)를보일때이만수(李晩秀,1752∼1820)가≪사문수간≫을가지고상경해정조에게올렸다.이서첩을본정조는2년뒤인1794년직접발문(跋文)을지어승지이익운(李益運,1748∼1817)을통해도산서원으로보내지금까지전해져오다가지금은옥진각(玉振閣)의전시용2권을제외한나머지는한국국학진흥원고문서자료실에위탁보관되어있다.
조목은15세(1538)겨울에퇴계이황(李滉,1501∼1570)의문하에서공부를시작했다.이때이황은38세로,조목과는23세차이가난다.당시이황은정6품좌랑의관직으로서울에있다가한해전어머니박씨의상을당해고향으로내려와있었다.이후조목은18세에생원시에합격한뒤잠깐성균관에서지낸때를제외하고는스승이황이세상을떠나기전까지가장가까이에서모시고공부했던인물이다.이러한제자에게이황은수시로편지를보내자신의심경을펴거나학문적토론을이끌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