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만리 시선

양만리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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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양만리는 송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육유, 범성대, 우무와 함께 남송 사대가로 꼽힌다. 형식과 기교에 치중하던 강서시파와 달리, 그는 시법(詩法)의 굴레를 벗어나 자연으로 나아감으로써 ‘신체시(新體詩)’를 이루었다. 그의 시는 흔한 사물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아 그 본질을 찾아내고 이를 기발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시어로 표현해 만물에 생명을 부여한다.
저자

양만리

저자양만리(楊萬里,1127∼1206)는자(字)가정수(廷秀),자호(自號)는성재야객(誠齋野客)이며,남송(南宋)고종(高宗)건염(建炎)원년(元年,1127)음력9월22일(양력10월29일),길주(吉州)길수현(吉水縣)동수향(同水鄕)신가리(新嘉里)밤당촌(?塘村)에서태어났다.28세에과거시험에합격한뒤,고종,효종,광종,영종의네황제가통치하는기간동안지방과수도에서관직생활을했다.
개희(開禧)2년(1206),80세,음력5월8일(양력6월15일)에세상을떠났으며이듬해(1207),조정에서광록대부(光祿大夫)를추증(追贈)했고,가정(嘉定)6년(1213)에는‘문절(文節)’이라는시호(諡號)를내렸다.
양만리는송대를대표하는문학가중의한사람으로,시인으로특히유명하며산문(散文)도잘지어<천려책(千慮策)>을비롯한좋은글들을남기고있다.비평서로≪성재시화(誠齋詩話)≫가있다.사(詞)도15수전한다.양만리는또아버지의영향으로≪역경(易經)≫에도정통해≪성재역전(誠齋易傳)≫을남기고있다.

목차

백가도를지나며지은절구네수(2)
농부들을걱정하며
한가로이지내며초여름낮잠에서일어나지은절구두수(1)
가랑비
촉땅사람위치요무간의<만언서>를읽고
다음날취해돌아가다
여름밤서늘함을찾으며
조용히지내면서읊은세수(2)?운와암
작은연못
<엄자릉전>을읽고
새싹돋은버드나무
저녁더위에연못가를노닐면서지은다섯수(3)
개미를보고지은두수(1)
추위에언파리
까마귀
추운날참새들
어린아이가얼음을갖고놀다
모심기노래
영취사에서묵다
병든뒤노쇠함을느끼며
장난삼아짓다
배가사담을지나며
단호사람들
바람의신에게띄우는격문
새벽에정자사를나와임자방을전송하며(2)
덕륜행자를전송하며
햇님과달님의노래
상호령을지나가면서초현강의남쪽과북쪽산을바라보며(2)
밤에동저에묵으면서큰소리로노래부르며지은세수(1)
밤에동저에묵으면서큰소리로노래부르며지은세수(3)
상서성간판관서공중의최근시를읽고
배에서저녁경치를바라보며(1)
양자강을지나며(1)
양자강을지나며(2)
배타고양자교를지나면서멀리바라보며
처음으로회하에들어서서지은절구4수(1)
처음으로회하에들어서서지은절구4수(2)
처음으로회하에들어서서지은절구4수(3)
처음으로회하에들어서서지은절구4수(4)
눈그치자새벽에금산에오르다
죽지가(7)
3월3일,충양공성묘를갔다가산보를하면서지은절구열수(6)
강하늘의저녁경치에탄식하며(2)
상다갱길에서(7)
송원을지나,아침밥을칠공점에서먹다(5)
탄식을하며
중양절이틀뒤,서극장과만화천곡에올라달빛아래술잔을돌리다
도중에잠시쉬다
산장의자인조카와동원에서매화를보다(1)
8월12일밤,성재에서달을바라보며
여름날밤,달과놀다
옷을말리다
또나를돌아보며


해설
지은이에대해
옮긴이에대해

출판사 서평

양만리(楊萬里,1127∼1206)는송대를대표하는시인중의한사람이다.송대를다시북송(北宋)과남송(南宋)으로나눌때,양만리는육유(陸游,1125∼1210),범성대(范成大,1126∼1193),그리고우무(尤?,1127∼1194)와함께‘중흥사대가(中興四大家)’,또는‘남송사대가(南宋四大家)’로일컬어지며남송(南宋)의시사(詩史)에서차지하는비중이크다.
남송(南宋)의저명한시비평가엄우(嚴羽)는≪창랑시화(滄浪詩話)≫에서역대의시를논하면서,송대의시인으로는소식과황정견,진사도,왕안석,소옹(邵雍),진여의,그리고양만리를들고그의시를‘양성재체(楊誠齋體)’라고일컬었다.
양만리의동시대(同時代)사람들은양만리시의특색을논하면서‘활법(活法)’이란표현을쓰길좋아했는데,예컨대장자(張?)는양만리의시를‘활법시(活法詩)’라고평한바있다.앞에서보았듯이강서시파의후학들이황정견의원래취지를제대로파악하지못한채시법에매이자여본중(呂本中)이이러한폐단을바로잡으려했으며이에‘활법’을제창했다.그는말하길,“시를공부함에마땅히활법을알아야한다.활법이란법도를모두갖추면서동시에법도밖으로나갈줄알며,변화를헤아리기어렵지만법도에위배되지도않는것이다”라고했다.양만리의‘활법시’,그의성재체는이러한여본중의주장을계승,발전시킨것이라할수있다.
그런데양만리의‘활법시’는단순히시를짓는방법문제만고려하는것은아니다.양만리는<이천린에게화답한두수(和李天麟二首)>제1수에서“시를공부함에는모름지기‘투탈’해야하니,손가는대로맡겨도저절로홀로높은경지에이르네”라고해서‘투탈(透脫)’을제시했다.이것은시인의흉금(胸襟)과사유(思惟)가어떠한외부사물에도매이지않으며,일반적이고고정된사고(思考)의틀이나법도의구속등에서벗어나는것을가리킨다.‘투탈’은불교의고승들이수행과관련하여어떤것에도집착하지말것을강조하는말중하나다.양만리의‘투탈’중시는또그의학문이나사상과도밀접한관련이있다.양만리는젊어서유안세(劉安世),장구성(張九成),왕정규(王庭珪),호전(胡銓),그리고장준(張浚)등으로부터이학(理學)의가르침을받은바있는데,송대의이학가들은일상생활속에서우주만물에대한조용한관조(觀照)를통해도(道)를깨닫고자했다.양만리는평소에여러사물들을접하면서언제나그들의존재,모습,움직임,그리고변화등을유심히관찰하면서우주자연의이치를살피고자했다.그는이런과정을통해얻게되는만물의존재와관련된새로운발견과느낌등을자신의풍부한시적감수성을바탕으로해서시로나타내었다.그의시에등장하는사물들은사람과마찬가지로사고를하고행동을하며,독자들은이들이‘살아있다[活]’는인상을받는다.“양만리는만사에활법을깨달았다”는주필대(周必大,1126∼1204)의평은바로양만리의이러한‘투탈’사상과그의‘활법시’를가리키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