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락편방(큰글자책)

기락편방(큰글자책)

$38.00
Description
우리 선조들은 자연을 만끽하며 그 속에서 심성의 의미를 되새겨 마음을 닦고 여유를 즐겼다. 여기 아름다운 모임 둘을 소개한다. 1607년, 영남학파의 거두 한강 정구와 의병장 곽재우를 비롯한 35명의 선비들이 함안 용화산 아래 낙동강에서 배를 타고 노닐었다. 1634년, 현풍 현감 김세렴을 비롯한 12명의 젊은 선비들이 풍영대에 올라 호연지기를 기르며 시를 읊었다. 1757년, 이 두 모임 참석자의 후손인 박상절이 선조들의 기록을 모으고, 시와 그림을 더하고 서문을 붙여 하나의 책으로 간행하니 바로 《기락편방(沂洛編芳)》이다. 마음의 긴장을 해소함으로써 다시 마음을 다잡을 힘을 얻는 것이 놀이의 목적이었다. 산천의 유장하고 미려함을 통해 긴장을 해소함으로써 마음을 다잡을 힘을 다시 충전하던 선조들의 현명한 놀이 문화를 배울 수 있다.
저자

박상절

자고당(紫皐堂)박상절(朴尙節,1700∼1774)은박진영의아들인완석당박형룡(朴亨龍,1614∼1696)의여섯아들가운데다섯째인박창조(朴昌兆,1666∼1748)의맏아들이다.자는성보(成甫)로,성호이익(李瀷,1681∼1763)의문하에종유했고,벼슬은통덕랑이었다.학문이정심(精深)하고효우가순지(純至)해고을원이두번이나재랑(齋郞)에천거했고,이인좌의난때는창의해격문을돌리기도했다.학문에도뛰어나《이전작해(理全酌海)》와문집15권이있었다고하는데지금은전하지않는다.

목차

기락편방서문(沂洛編芳序)

용화산하동범록(龍華山下同泛錄)
용화산하동범록(龍華山下同泛錄)
〈용화산하동범록〉소재제현의행적(龍華諸賢行蹟)
1.한강(寒岡)정선생(鄭先生)
2.망우당(忘憂堂)곽선생(郭先生)
3.부총관(副摠管)박공(朴公)
4.여헌(旅軒)장선생(張先生)
5.독촌(獨村)이공(李公)
6.작계(鵲溪)성공(成公)
7.문암(聞巖)신공(辛公)
8.입암(立巖)조공(趙公)
9.갈촌(葛村)이공(李公)
10.옥촌(沃村)노공(盧公)
11.영모당(永慕堂)신공(辛公)
12.두암(斗巖)조공(趙公)
13.외재(畏齋)이공(李公)
14.교수(敎授)나공(羅公)
15.복재(復齋)이공(李公)
16.생원(生員)유공(兪公)
17.​매죽헌(梅竹軒)이공(李公)
18.창랑수(槍浪叟)이공(李公)
19.광서(匡西)박공(朴公)
20.국암(菊菴)이공(李公)
21.영모재(永慕齋)이공(李公)
22.봉사(奉事)신공(辛公)
23.처사(處士)이공(李公)
24.처사(處士)이공(李公)
25.도곡(道谷)안공(安公)
26.처사(處士)이공(李公)
27.처사(處士)곽공(郭公)
28.소우헌(消憂軒)이공(李公)
29.슬곡(瑟谷)이공(李公)
30.처사(處士)유공(柳公)
31.간송당(澗松堂)조공(趙公)
32.익암(益庵)이공(李公)
33.처사(處士)이공(李公)
34.처사(處士)이공(李公)
용화산하동범록추서(龍華山下同泛錄追序)
삼가〈용화산하동범록추서〉뒤에쓰다(謹書龍華山下同泛錄追序後)
용화산수도
용(龍)
화(華)
산(山)
하(下)
동(同)
범(泛)
지(之)
도(圖)

풍영제현행략(諷詠諸賢行略)
풍영대의돌에이름을새긴그림(風詠臺題名石刻圖)
풍영대의옛일을회고하며(風詠臺述古詩)
풍영제현행략(諷詠諸賢行略)
1.동명(東溟)김선생(金先生)
2.매음(梅陰)나공(羅公)
3.처사(處士)김공(金公)
4.동호(東湖)김공(金公)
5.처사(處士)곽공(郭公)
6.관송정(灌松亭)곽공(郭公)
7.오의정(五宜亭)조공(趙公)
8.처사(處士)김공(金公)
9.대포자(大布子)곽공(郭公)
10.송호(松湖)박공(朴公)
11.별검(別檢)곽공(郭公)
12.진사(進士)허공(許公)
13.완석당(浣石堂)박공(朴公)

기락편방발문(沂洛編芳跋)1
기락편방발문(沂洛編芳跋)2
《기락편방록》뒤에쓰다(題沂洛編芳錄後)
공경히《기락편방》의뒤에쓰다(敬書沂洛編芳後)


해설
옮긴이에대해

출판사 서평

지만지한국문학의〈지역고전학총서〉는서울지역의주요문인에가려소외되었던빛나는지역학자의고전을발굴번역합니다.‘중심’과‘주변’이라는권력에서벗어나모든지역의문화자산이동등한대우를받을수있도록합니다.지역학문발전에이바지한지역지식인들의치열한삶과그성과를통해새로운지식지도를만들어나갑니다.

용화산아래낙동강에서배띄우고노닐다
강에배를띄우고무리지어노닐며시를짓거나유락하는일은그유래가오래되었다.《삼국사기》에는백제의무왕이궁녀를데리고뱃놀이를했다는기록이있고,《고려사》에도왕이서경대동강에서뱃놀이하며시를수창하고,임진현강변에서뱃놀이를즐겼다는기록이있다.〈용화산하동범록〉은함안의용화산아래에서함께배를타고노닐었던이들을기록한것이다.영남학파의두거두,남명조식과퇴계이황의진전을모두이어받은한강정구(鄭逑)는1607년,과거군수로있었던함안을찾아와여헌장현광(張顯光)과함께망우당곽재우((郭再祐)의정사에서묵었는데,대학자와의병장으로명성높았던세사람이한자리에있다는소식에인근각지의선비들이함께모였다.이들은낙동강에서배를타고용화산아래계곡을따라노닐며시를읊고정담을나누었다.이때정구가모인사람들의면면을기록하도록했으니바로〈용화산하동범록〉이다.

기수에서목욕하고바람쐬며읊조리고돌아오다
‘풍영(諷詠)’이라는말은《논어》〈선진〉편에나오는공자와그제자들의문답에서유래한다.공자가제자들에게뜻을물었을때,증점이“늦봄에봄옷이만들어지면어른대여섯,아이예닐곱과함께기수에서목욕하고무우에서바람을쐬며읊조리고돌아오겠습니다”라고하자공자가감탄하며“나는점과함께하겠다”라고했다.선현들은공자와증점의이같은경지를본받고자경치가좋은곳에나아가바람을쐬며심사를읊고,그곳을‘풍영대’라일컫곤했다.대구현풍에도풍영대가있었는데,1634년,현풍현감김세렴이뜻을같이하는젊은선비들과함께풍영대에올라바람쐬며시를읊어호연지기를기르고,참여한이들의명단을돌에새겼다.이른바〈풍영대제명석각〉이다.

시를묶어선현을추모하고그리워하는정성을부치다
1927년,자고당(紫皐堂)박상절(朴尙節)은〈용화산하동범록〉의초고를갈무리한간송당조임도(趙任道)의현손인조홍엽(趙弘燁)을통해이기록을보고증조부박진영이이모임에참석했음을알게된다.이에박상절은이짧은기록과서문에더해당시선유에참석한사람의행적을여러문헌에서찾아추가했고행적이불분명했던두사람의내력을확정한다.또당시선유의모습을여덟장의그림으로새겨더욱실감나게했으며,그림마다5언시를붙여감흥을더했다.
또한풍영대각석을통해조부박형룡이김세렴을중심으로한현풍풍영대모임에참석했다는사실을확인한박상절은〈용화산하동범록〉아래에〈풍영대제명석각도(風詠臺題名石刻圖)〉를그려서붙이고,또〈풍영대술고시(風詠臺述古詩)〉를서문과함께수록했다.이어현풍풍영대의돌에새겨진사람들의행적을찾아〈풍영제현행략〉이라는이름아래서술했다.이두편의글을엮어제목을《기락편방(沂洛編芳)》이라했으니,기수(沂水)에서목욕하고자했던풍영대의고사와낙동강가에서함께뱃놀이했던일에착안한것이었다.

놀이문화의재발견
《기락편방》에실린제현록을통해우리는한시대를슬기롭게살아간조상의행적을만날수있다.또〈용화산수도(龍華山水圖)〉및서발문의여러기록을통해유서깊은장소를상상해볼수있고직접찾아가그때그자리를눈에담아볼수도있다.이를통해선현이추구했던놀이의의미(풍류)와삶의의미[수신(修身)]를되새길수있으며,여기서얻은깨달음을우리삶에적용하고또지금보다나은삶을고민하고실천할수도있다.《기락편방》은단순한과거의기록이아니라우리삶을새롭게재구하는창의적상상력의원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