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상 기행 절구(큰글자책)

열상 기행 절구(큰글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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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열상(冽上)’이란 열수(冽水), 즉 한강 위를 말한다. 《열상 기행 절구(冽上紀行絶句)》는 1846년, 신필영이 성묘를 위해 서울 두모포(현재의 옥수동 금호동 일대)에서 출발, 남한강을 거쳐 고향인 경기도 지평을 다녀오면서 쓴 7언 절구 100수의 연작 기행시다. 기본적인 기행시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한강의 동호 및 남한강 일대의 역사·문화 경관, 빼어난 산수풍경, 친교를 맺은 인물들과 사별한 아내에 대한 정회(情懷), 한강 변 향촌의 일상 등의 다양한 내용을 아우르고 있다. 당시 서울에서 경기도까지의 한강 뱃길, 농촌 사회의 모습 등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조선 후기 죽지사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작품이다.
저자

신필영

신필영은1810년(순조10)음력11월초5일경기도지평현옥현리의종애(鍾崖)에서낭암(朗巖)신효선(申孝善,1783∼1821)과함종어씨(咸從魚氏,1779∼1853)사이의장남으로태어났다.자는치량(穉良)이고호는옥파(玉坡)·옥파거사(玉坡居士)·자이고객(自怡藁客)·이당옹(怡堂翁)·비원거사(賁園居士)·민재(敏齋)등이다.
신필영은황해북도평산군(平山郡)을본관으로하고,고려의개국공신의일원인장절공(壯節公)신숭겸(申崇謙)을시조로하는평산신씨(平山申氏)가문에서태어났다.부친신효선을일찍여의고외가인함종어씨집안에서수학했으며,20세무렵부터홍길주(洪吉周,1786∼1841)의자제인홍우건(洪祐健,1811∼1866)과교분을맺고홍석주(洪奭周,1774∼1842)의문하에출입하며풍산홍씨(豊山洪氏)집안의자제들과교유했다.신필영은당대명문에속하는함종어씨집안과의척분및풍산홍씨집안과의각별한교분을통해19세기의유명문인학자들과폭넓게교유하면서활발한문학활용을벌였다.
신필영은만년에참봉에제수되기이전까지포의(布衣)로살며주로문학활동에치중해방대한양의시작품을남겼다.문(文)을창작하는것에는별뜻이없었다고언급한것으로보아그는평생시창작에몰두했던것으로보인다.신필영은50세이던1859년(철종10)에증광생원시에장원으로급제한후,54세때인1863년(철종14)7월에야비로소창릉참봉(昌陵參奉)에제수되었다.이후에대과(大科)에응시했으나낙방하고,참봉에제수된지만2년만인1865년(고종2)10월12일에유행성감기로인해경기도지평현옥현리주애(注崖)의정침(正寢)에서향년56세로타계했다.

목차

열상기행절구서문

1.두호(荳湖)
2.유하정(流霞亭)
3.뚝섬[纛苫]
4.압구정(狎鷗亭)
5.삼전도(三田渡)
6.송파(松坡)
7.남한산성을바라보다
8.춘초정(春草亭)
9.광나루[廣津]
10.대승암(大乘菴)
11.둔촌서원(遁村書院)
12.미음(渼陰)
13.석실(石室)
14.평구(平邱)
15.덕연(德淵)
16.팔당[巴塘]
17.당정(棠汀)에서유숙(留宿)하다
18.두미(斗尾)
19.봉안역(奉安驛)
20.우천(牛川)
21.두릉(斗陵)
22.창연정(蒼然亭)
23.남자주(藍子洲)
24.고랑리(高浪里)병사(丙舍)
25.부인묘소에서곡하다1
26.부인묘소에서곡하다2
27.왕손골[王孫谷]
28.풍석(楓石)서유구(徐有榘)를곡하다
29.영백(永伯)홍우명(洪祐明)을방문하다
30.유산(酉山)정학연(丁學淵)을방문하다
31.서울로돌아가는아들을전송하다
32.고랑(高浪)나루를건너다
33.월계(月溪)
34.양근군의치소(治所)에서
35.군의주막에서점심을먹다
36.용문산(龍門山)을바라보다
37.마취령(馬嘴嶺)
38.현천(玄川)에서벗을방문하다
39.인삼밭··
40.마천(馬川)
41.옥구촌(玉鉤村)
42.8월24일1
43.8월24일2
44.향촌즉흥시1
45.향촌즉흥시2
46.향촌즉흥시3
47.향촌즉흥시4
48.향촌즉흥시5
49.향촌즉흥시6
50.향촌즉흥시7
51.향촌즉흥시8
52.향촌즉흥시9
53.향촌즉흥시10
54.향촌즉흥시11
55.향촌즉흥시12
56.향촌즉흥시13
57.향촌즉흥시14
58.향촌즉흥시15
59.향촌즉흥시16
60.향촌즉흥시17
61.향촌즉흥시18
62.관가(觀稼)1
63.관가2
64.관가3
65.관가4
66.관가5
67.관가6
68.관가7
69.관가8
70.관가9
71.관가10
72.관가11
73.관가12
74.관가13
75.잡영(雜詠)1
76.잡영2
77.잡영3
78.잡영4
79.잡영5
80.잡영6
81.잡영7
82.잡영8
83.잡영9
84.잡영10
85.잡영11
86.잡영12
87.잡영13
88.잡영14
89.잡영15
90.잡영16
91.잡영17
92.잡영18
93.잡영19
94.잡영20
95.잡영21
96.잡영22
97.서울로돌아가며1
98.서울로돌아가며2
99.서울로돌아가며3
100.서울로돌아가며4


해설
지은이에대해
옮긴이후기
옮긴이에대해

출판사 서평

지만지한국문학의〈지역고전학총서〉는서울지역의주요문인에가려소외되었던빛나는지역학자의고전을발굴번역합니다.‘중심’과‘주변’이라는권력에서벗어나모든지역의문화자산이동등한대우를받을수있도록합니다.지역학문발전에이바지한지역지식인들의치열한삶과그성과를통해새로운지식지도를만들어나갑니다.

한강뱃길을따라노래하다
〈열상기행절구〉는한강일대를소재로삼은7언절구100수의장편연작기행시다.신필영은1846년(헌종12)음력8월초에지금의서울시성동구옥수동및금호동일대인두모포(豆毛浦)에서출발해동호(東湖)일대와남한강을거쳐고향인경기도지평현부근까지를일정으로해서8월하순까지약20일간의여정을시로담았다.한강기행시는김선(金䥧,1772∼1833)의〈주행백수(舟行百首)〉로부터비롯했는데,김선은당나라전후(錢珝)의〈강행무제(江行無題)〉100수를전례로삼아100수의한강기행시를창작했다.이후두릉의마재[馬峴]에서출발해북한강을거슬러춘천을여행하며남긴정약용의《천우기행(穿牛紀行)》에수록된7언절구25수,한강의서호(西湖)일대를읊은신위의〈서강절구(西江絶句)〉30수등,18∼19세기에는한강기행시창작이유행했다.

조선후기죽지사(竹枝詞)의흐름을잇다
신필영의〈열상기행절구〉는오롯이뱃길여행만을다룬김선의〈주행백수〉와는달리,한강의동호및남한강일대의역사·문화경관,빼어난산수풍경,친교를맺은인물들과사별한아내에대한정회(情懷),한강변향촌의일상등다양한내용을100수의편폭에담아내었다.그러나죽지사를표방한다는점과절구의형식을활용해여행에서마주하는짧은순간의광경이나정감을효율적으로담고있다는점에서는〈주행백수〉와일맥상통한다.죽지사란중국민가에서기원한양식으로,경치,인정,풍속등을주로다루는풍물연작시의일종이다.18세기에들어서면조선시단에는다양한개성을지닌작가가등장해기존에는찾아볼수없었던면모들이나타나기시작하는데,그중하나가바로작가의독특한주제의식을담은연작시의대량출현이다.이같은연작시는조선후기에대거창작된기속시및연행체험을서술한장편연행시등의다양한형태로등장했으며,그가운데서절구형식의단형연작시들도활발하게창작되었다.〈열상기행절구〉역시일반적인기행시를표방하면서도내용면에서는다채롭고독특한작가의주제의식을담아내었으며,형식면에서는절구형식의단형연작시로창작되었으므로,18세기한시사의특징을계승하고있다고할수있다.신필영은이러한자유로운연작시의시체를따라회고시,산수경물시,회인시,도망시,농촌시등여행에서경험한다양한일들을자유롭게노래해개별절구가독립된작품으로서도의미를지닐수있게한한편,유기적구성에서밀도가떨어지는연작시의한계를극복하고자구성면에서하나의짜임새를갖춘작품을만들었다.소재와내용면에서도여정과함께일대향촌의풍정까지도담아내고자한결과,〈열상기행절구〉는일반적인기행시를넘어서죽지사풍기속시로서의성격도지니게되었다.

실제를기록하다
신필영은〈열상기행절구〉의서문에서선상여행,성묘,관가라는여행의세가지주요목적을제시했으며,특히“실제를기록한것이다”라고해서자신이눈으로보고느낀한강유역과농촌의‘참모습[實]’을보여주고자했음을밝혔다.회고시,산수경물시에서는남한강일대의풍경을묘사하면서전고를활용해시경(詩境)을확장하는가하면,동양화작법의하나인도영법(倒影法)과색채어를활용해풍경을그림처럼표현하고자했다.홍길주,김매순,신익성,서유구등을추모한회인시에서는그들의삶의내력과그들에대한추억등을형상화했으며,사별한아내연일정씨를위해남긴총여덟수의도망시는비창(悲愴)한심정이진솔하게투영되어〈열상기행절구〉전체의서정성을강화하고있다.동호의뚝섬(제3수),송파나루(제6수)와우천의사옹원분원(제20수),여주의이포나루(제89수)를소재로한기속시에서는그곳을터전으로삼고살아가는사람들의생활상및경제활동의모습을생생하게묘사해내었고,농촌시에서는농촌에서마주친다양한민중을사실적인필치로형상화하면서해학적인묘사와대화체를활용해서현장의생동감을부각해농촌의일상을핍진하게묘사하고농민들의온정을드러내는등조선농촌의특색을전면에드러내19세기한시의‘조선풍’을공유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