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발췌 박학한 무지

원서발췌 박학한 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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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박학’과 ‘무지’라는 모순된 언표의 결합 안에 진리를 함축하고 있다. 인간이 깨칠 수 있는 최대의 ‘지(知)’란 무엇인가. 진리에 닿기 위해 끝까지 그를 좇다 보면,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최대의 ‘지(知)’는 결국 ‘무지(無知)’였다.
저자

니콜라우스쿠자누스

(NicolausCusanus)
니콜라우스쿠자누스는1401년독일모젤강유역의쿠에스(Kues)에서태어났다.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당시교양과정인자유학예(artesliberales:문법·수사학·논리학·대수학·기하학·음학·천문학)를이수하고,파도바에서교회법박사학위(Doctordecretorum)를받았으며,쾰른대학에서철학과신학을공부했다.
1431년에개회한바젤공의회의신앙위원회위원으로발탁되어다양한종교및종파의신앙고백형식의일치문제에관심을가졌다.그에따라≪공동체의친밀성(Deusucommunionis)≫,≪교회의일치(Deconcordantiacatholica)≫,≪박학한무지(Dedoctaignorantia)≫,≪가늠에관하여(Deconecturis)≫,≪가려계신하느님(DeDeoabscondito)≫,≪하느님을찾아서(DequaerendoDeum)≫,≪하느님의자녀-됨(DefiliationeDei)≫,≪성부께서비추신빛(Dedatopatrisluminum)≫등을집필했다.
1450∼1455년에는교황사절(Delegatusapostolicus)직분을겸하면서독일과보헤미아,영국과프랑스사이의지역분쟁을해결하는데공헌했다.1464년8월11일교황비오2세의명에따라터키십자군원정을준비하고자베네치아로가던중산악도시토디에서갑자기숨을거두었다.그의시신은그가첫본당을맡았던빈콜리의성베드로쇠사슬성당에안치되었고,뒤에그의심장은그가생전(1458년)에고향쿠에스에봉헌했던성니콜라우스병원의부속소성당으로이전되었다.

목차

제1권(헌정사∼26장)
제2권(서언∼13장)
제3권(1∼12장)

참고문헌

해설
지은이에대해
옮긴이에대해

출판사 서평

‘박학한무지’의깨달음
서로상반되어보이는속성들마저절대적인단일성안에포용하는신을알아보는일이신학에서중요한과제였다.쿠자누스또한이슬람,동방·서방교회등다양한종파및교파로갈라선‘교회의일치’에남다른관심을갖고있었다.1437년콘스탄티노플에서다른종교인들과대담을마치고로마로돌아오는바다한가운데서,그는‘인간이알수있는진리를능가해,납득할수없는방식으로납득할수없는바를알아듣는’특별한체험을했다.그리고그체험을≪박학한무지≫에요약해놓는다.

최대의지식=최소의지식
≪박학한무지≫는인간에게최대의지식은무엇인지알아보는것을전제로삼고있다.그런데쿠자누스는시작부터이미결론을내렸다.인간에게최대의지식은결과적으로최소의지식에불과하다는것이다.이를위해그는세단계의논증을펼친다.가장먼저검토하는측면은통상적으로가장명료하게지식을습득할수있다고여기는수학·기하학적방식이다.그다음으로는가장보편적이고전체적인차원의지식으로간주하는자연학·천문학적방식이다.마지막으로삶의완성및구원과직결된지식으로서강생(降生)한신예수그리스도,곧종교·신학적방식을통해최대의참된지식을검토한다.

니콜라우스쿠자누스를바라보는두시선
니콜라우스쿠자누스에대한연구자들의평가는두방향으로나뉜다.하나는팔켄베르크및카시러등의평가다.그들은쿠자누스가중세를마감하고근대를여는길목에서물질과정신이라는‘이분법적인사고’의토대를제공했다고보았다.다른하나는빌페르트,슈탈마흐,자콘등의평가다.그들은쿠자누스를아리스토텔레스의‘순수현실태’이론을과감하게확장한모험적인사상가로내다보았다.순수현실태로서절대자[神]를고려하는그의태도는분명현실태와가능태로구분되는만물의처지를초월한다는점에서도근대주의적사고방식이유보하거나포기한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