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 청문회(큰글자책)

오펜하이머 청문회(큰글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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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독일 정신과 의사이자 희곡 작가, 연출가인 하이나어 키파르트는 독일 과거 청산을 위해 수많은 기록극을 썼다. 《오펜하이머 청문회》는 그의 대표작으로 3000매에 달하는 신문 기록을 바탕으로 창작한 기록극이다. 베를린과 뮌헨에서 초연 이후 독일 내외에서 리바이벌되었다.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닌 사건의 핵심과 의미를 현재에서 되짚어 보려는 작가의 개입이 눈에 띈다. 청문회 당시 역사적 배경의 이해를 돕는 자료와 기록극의 발전과 가능성을 다룬 상세한 해설을 덧붙였다.
저자

하이나어키파르트지음,양도원옮김

1922년3월8일저지슐레지엔에있는하이더스도르프에서태어나1982년11월18일뮌헨에서사망했다.정신과의사였으나작가로활동하며희곡《오펜하이머청문회》,《아이히만형》으로세계적명성을얻었다.기록극의대표작가로알려져있다.

의학공부와군복무
1940년몰트케광장김나지움에서아비투어를마쳤다.나치스제국노동봉사단에서복무를마치고,1940년본대학의학부에서공부를시작해정신과에서전문분야훈련을받는다.스무살이되던해입대를하고동부전선으로파견된다.휴가중고향에서로레하넨과결혼한다.1943년스탈린그라드전투후겨울철수작전에참여하지만,다음해운좋게도위생부대의대학생중대원으로쾨니히스베르크로오게된다.같은해브레슬라우대학에서학업을계속하다가뷔르츠부르크대학으로옮긴다.1945년가족들과함께뒤셀도르프에살면서의학아카데미에서의학공부를지속하고,크레펠트시립병원에서보조의사로일한다.

문학활동의시작과독일극단
무자비한사건이벌어지던전쟁중에도키파르트는역사와문학과철학에관심이많았다.극우정당의독재는끝난것처럼보였지만비참하게살수밖에없었던전쟁시기에대해괴로워하거나고통을호소하는이가한명도없었다.1950년크레펠트를떠나동베를린으로가서자선병원에취직한다.그리고문화정책을다루는잡지《재건》에첫작품《금세기한가운데》를발표한다.그덕분에볼프강랑호프와수석드라마투르크로전속계약을맺는다.1953년6월17일동독에서일어난대규모반정부시위이후사회주의통일당의자기비판이한창일때《급하게셰익스피어를찾음》으로동독3등문화훈장을받는다.1950년대초키파르트는에른스트블로흐와깊은우정을쌓고,에르빈피스카토어와생산적인논쟁을벌이고,페터학스를위해개입하는등성공적인활동을한다.1956년헝가리민중봉기로동독사회주의통일당지도부가공연계획에간섭을해오자독일극장과의계약을파기한후국경을넘어뒤셀도르프로돌아간다.그곳에서극장감독카를하인츠슈트루에게작품을쓰는조건으로극장근무를위한체류허가를약속받는다.작가계약을맺은그는희곡《장군의개》를쓰면서서독문화계에이름을알리기시작한다.출판사베르텔스만은그에게티브이를위한작품을의뢰하면서편집자자리를마련해준다.

문학계혜성
1964년《오펜하이머청문회》가에르빈피스카토어의연출로베를린에서,파울페르후번의연출로뮌헨에서동시에무대에올려지면서양쪽독일에서큰주목을받는다.그해게르하르트하웁트만상과조형예술독일아카데미의TV상을받는다.1965년《요엘브란트이야기》로프란츠페터비르트와아돌프그림상을공동수상한다.1971년결혼한하이나어ᐨ피아부부는프라운베르크의집으로이사했고,생애마지막몇해동안그의창작활동이다시전성기를이룬다.1977년브레멘문학상을받고,1981년평화지원을위한베를린만남에참여한다.사후작품으로《아이히만형》이무대에올려졌다.

키파르트협회
2008년크레펠트에하이나어키파르트협회가결성되어행사,공연,학회를통해작가를기억하고있다.

목차

서문
제1부역사적사실
제2부오펜하이머청문회
나오는사람들
해설
지은이에대해
옮긴이에대해

출판사 서평

‘갈릴레이재판’의현대판,오펜하이머청문회
1939년급변하는세계정세속헝가리출신물리학자실라르드는당시미국대통령이던루스벨트에게핵분열이군사목적에사용될지도모른다는염려를담은편지를보낸다.약1년반동안편지는면밀히검토되어1941년12월6일이미지의폭탄제조에착수하라는명령이하달된다.“맨해튼프로젝트”라고불리던이사업은뉴멕시코의로스앨러모스의황폐한고원에연구실을갖추고,버클리대학물리과교수였던오펜하이머가기술과학분야책임자로임명되었다.연구와실험에만전념했던이젊은과학도는뉴스를통해독일내에거주하던그의유대계친척들이어떤가혹한대우를받는지깨달은참이었고,과학의힘을국가의이익을위해사용할수있다는점에서희망에부풀어있었다.1945년7월16일뉴멕시코앨러모고르도에서“삼위일체”라고불리던인류최초의원폭실험이실시되었고,며칠뒤일본에이엄청난무기를투하했다.미국이원폭실험에성공한지4년만인1949년8월29일소련도최초의원폭실험에성공한다.영원히반복될것만같은무기경쟁의굴레에서오펜하이머를비롯한과학고문단은의견을표명했다.그내용은신무기,즉수소폭탄개발이인류의98퍼센트에서100퍼센트를파멸시킬것임을경고하고있었다.수소폭탄개발에반대입장을취한오펜하이머는이후매카시선동이불던때위험인물로지목당하고,1954년4월12일부터약3주간그의충성심과신뢰도를따져묻는청문회가열린다.그곳에서그의사적인관계와과학기술에대한주관적견해까지도낱낱이해부되고그는파멸한다.

키파르트의기록극
키파르트는역사의기록자가아닌작가로서역사적사실을문학작품화한다.그는다른기록극작가와다르게이작품에서‘재판’이라는특수한장면을도입한다.재판과정을기록한‘기밀문서’가우연히대중에게공개되고,키파르트는3000매에달하는이실제사건의내용을청중에게전달하기위해무대에적합한장면을골라140매로충실히요약해담는다.키파르트와몇차례작품속표현문제에대한서신을주고받은오펜하이머는끝내자신에게얽힌근본적인문제를다루고있음을확신한후에작가에게사과편지를썼다.희곡은재판경험이없는언론계사장,기업가,화학교수로구성된위원회가판사역할을맡고,검사측에유리하게설계된여건을드러내며법적절차를따르지않는재판과정의불공정함을부각한다.
기록극을통해역사적사건의“핵심과의미(KernundSinn)”를찾으려고한키파르트의관심은사건의결과를넘어원인과과정,사건에가담된사람들의세계,나아가그들각각혹은서로와관련맺는외부세계까지닿아있다.총아홉장면으로구성된희곡은증인신문과반대신문,논고와변론을짜임새있게펼치며재판과정의긴박함을표현한다.더불어작가가사건을바라보는관점,사건을재구성하며던지는질문을엿볼수있는연출요소를곳곳에서만날수있다.무대뒷면영사기를동원한폭발장면과“검은버섯”을관찰하는과학자들의모습,히로시마원폭피해자들의모습그리고확성기와자막을통한장면연출은재판에얽힌사회적,정치적이데올로기와현대과학자가처한윤리적갈등의새로운국면을강조하며긴장감을불어넣는다.

철저한패배자로서오펜하이머
키파르트는오펜하이머라는과학자를통해한시대를비판하면서그를향한동정과연민을유발하거나그의혼란스러운태도에의심을갖도록만든다.재판을받는오펜하이머의자세에서우리는그의불확실한태도를볼수있다.평소설득력있는언변으로다른과학자들을끌어들인언어천재였으나,이재판과정에서는부정확하고불확실한대답을해서“마치무기를버리고전장에나간듯한인상을보였고,정신이나간듯마치그가그곳에없는것같은인상”을풍기기도했다는것이다.작가가인위적으로삽입한오펜하이머의최후진술에서그는철저한패배자로남는다.이를통해청중은사건과인물을바라보는고정된시각에서벗어날것을요구받는다.
과학기술의혜택을받는인간은물러서면벼랑인현실앞에서더어려운취사선택문제에봉착한다.무분별한무기경쟁이끊이지않고전쟁은지금도일어나고있다.《오펜하이머청문회》는절대적인비관과낙관을강요하기보다단지과거의사실을우리눈앞에서‘다시’상연한다.기술,자연,더불어인간과의공존이란과학자한개인의문제를넘어이세계를살아가는이들모두이미맞닥뜨린시급하고숙명적인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