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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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931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염상섭의 장편 소설. 전승주 교수가 그간의 각종 판본을 대조해 오류를 수정하고 정본을 확립했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한 지식인 가정 삼대의 모순을 통해 묘사한 사실주의의 대표작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본 작품이지만 제대로 읽어본 이는 많지 않고, 완전히 이해한 사람은 더욱 드물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100년 전의 식민지 경성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서울은 말도, 사람도, 지리도, 문화도, 모든 것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100년 전의 경성과 그곳에 살았던 덕기와 병화와 경애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김희경 박사의 방대한 곁텍스트와 김종욱 교수의 해설을 더한 완전판 ≪삼대≫이다. 연재 시 게재되었던 안석주 화백의 삽화를 함께 수록했다.
저자

염상섭

염상섭은1897년서울종로구필운동에서태어난다.중인계층의서울토박이라는계층적특징은염상섭문학세계의근간을이루는것으로,그의소설에서는풍부한서울말의흔적과근대적삶에대한예민한현실감각을찾아볼수있다.관립사범학교를중퇴하고보성학교중학과정을수학하던중1912년염상섭은일본유학을떠난다.일본군육군중위였던맏형의도움으로교토(京都)부립제2중학을마치고이후게이오의숙대학(慶應義塾大學)예과1학기를다니다자퇴한다.그러던중조선에서발생한3·1운동의소식을듣게되고,이에3월19일오사카덴노지(天王寺)공원에서단독적으로독립선언을주재했으나거사직전검거된다.약3개월간의수감후에는요코하마의복음(福音)인쇄소에취직해직공노릇을한다.이시기경험한양가적경험,즉‘근대그자체로서의일본(문학)에대한의식’과‘제국일본과식민지조선의문제’는이후염상섭문학전반을관통하는핵심적인요소로구체화된다.
1920년1월≪동아일보≫기자로임명된염상섭은귀국해서정경부기자로서활동하다1920년7월사직한다.염상섭은≪폐허≫창간호동인으로활동하는한편,1920년하반기부터1921년봄까지오산학교에서교직생활에몸담기도한다.
1921년<표본실의청개구리>를발표하며문단에데뷔하고문단의주목을받는다.1924년≪시대일보≫에발표된≪만세전≫은염상섭문학의전환점을보여주는작품이다.이러한문학적성취는1926년에서1928년사이에이뤄진두번째일본유학과결부되어보다심화된문제의식으로나아간다.일본유학중에도염상섭은꾸준히작품을발표하고있으며일본인과조선인이라는민족적정체성의문제(혈통,혼혈)를밀도있게다룬다.
1928년2월귀국해서≪이심≫,≪광분≫등을연재하는것에이어마침내1931년≪삼대≫를발표한다.1920∼1930년대발표된염상섭의작품들은식민지근대의문제를탐구하며,식민지조선의정치·경제·사회·문화·사상에관한사유를전개하고있다.역사와사회·현실을객관적으로들여다보며이를깊이있는문제의식으로구체화하고있다는점에서리얼리즘적성격을나타낸다.≪삼대≫이후염상섭은≪백구≫,≪모란꽃필때≫,≪불연속선≫등의장편소설을발표하지만,이들작품은앞선시기의작품들에비해통속화되었다는평가를받고있다.그런가운데1930년대중반염상섭은돌연만주행을선택한다.진학문의권유로≪만선일보≫의편집국장으로근무하며,1939년만주안동대동항건설사업선전에종사한다.이기간중염상섭은장편소설≪개동≫을집필하고,안수길·박영준등의창작집≪싹트는대지≫와안수길의창작집≪북원(北原)≫등의서문을쓴것을제외하고는별다른창작활동을보이지않는다.1945년광복을맞이하기까지약10여년의기간동안그는일종의‘문학적단절’의시간을보내는것이다.
해방된서울로돌아온염상섭은<해방의아들>을발표하며다시금문학활동을이어가고,≪경향신문≫창간당시편집국장으로근무하기도한다.해방의감격과함께곧이어마주하게된‘해방이후’식민지의모순,미소분할과신탁통치,남북분단등의혼란한사회현실의모습을<엉덩이에남은발자국>,<삼팔선>,≪효풍≫등의작품을통해세밀하게그려낸다.
1950년6월25일한국전쟁이발발하지만염상섭은피난을떠나지못한다.9·28서울수복,10·25중공군개입,1951년1·4후퇴의혼란속에서,염상섭은윤백남,이무영등과함께해군에입대해1951년부터1953년까지부산과서울정훈감실에서해군소령으로복무한뒤,1954년5월임시중령으로전역한다.전쟁의발발과폐허가된전후(戰後)의현실등과같은역사적비극앞에서,염상섭의소설은일상적삶의감각을객관적으로보여준다.1950년대중후반이후발표되는일련의후기작품들은주로남녀연애담에기반한결혼과가족의문제의문제를다루고있다.
염상섭은1963년3월14일서울성북동에서타계한다.서울에서나고자란서울토박이의삶은서울에서마무리된다.‘작가’염상섭이남긴빛나는작품들은여전히여기에남아있다.염상섭은평생에걸쳐작품창작에임하고,소설을쓴다는것의의미를붙들었던작가였다.그가보여주는치열한소설쓰기의모습은시대를헤쳐나가는염상섭이라는한개인의역사이기도하면서,동시에거대한물줄기로서정립되어가는한국문학사그자체의역사와다름없다.

목차

지만지≪삼대≫길라잡이

〈삼대〉
두친구
홍경애
이튿날
하숙집
너만괴로우냐
새누이동생
추억
제일충돌
제이충돌
제삼충돌
재회
봉욕
새번민
순진?야심
외투
밀담
편지
바깥애
김의경
가는이
활동
답장
전보

입원
새출발
상점
진창
취조
부모
고식
소문
용의자의떼
젊은이망령
피묻은입술
석방

〈≪삼대≫깊이읽기〉
작품이해의첫걸음을디딘다
염상섭은이런작가다
서사는얽히고등장인물은갈등한다
동정자조덕기를설명한다
식민지경성의지도를따라간다
식민지조선사회가바뀐다
텍스트너머의이야기를깊이읽는다
주요연구자들은≪삼대≫를이렇게연구했다
염상섭연보
삽화가석영안석주

〈해설과판본해설〉
해설:거짓말하는인간혹은삶의진실
판본해설:원본비평을통해본≪삼대≫정본

주석모음

출판사 서평

오리지널의오리지널,“완전복원원고”
≪삼대≫를읽은사람은많지만진짜≪삼대≫를읽은사람은없다.왜냐하면진짜≪삼대≫가이제야나왔기때문이다.지난세월동안우리문학독자들은작가의원의도에서멀어진틀리거나모자란텍스트를읽어왔다.그러던것이해방이되면서젊은주인공들이그리던사회주의색채가대폭축소되는방향으로개작이된다.반공주의의영향을받았기때문이다.염상섭은≪삼대≫연재가끝나자마자검열당국에출판허가를신청하지만거절당한다.해방후반공이데올로기가더욱강화되면서원전그대로의단행본출간은더욱요원해졌다.그는검열을통과하기위해내용을대폭수정해단행본을출간한다.그러면서당시사회를비판하던내용은순화되고가족의이야기에초점을맞춘다.이개작이비록염상섭본인에의해이루어지긴했으나이를원본으로볼수는없다.왜냐하면작품의미비한점을보충한다는의미보다는분단으로인한사회적,정치적상황에인한것이었기때문이다.학계에서도그간개작과정을연구하고여러판본들의오류를바로잡아야한다는필요를느껴왔지만성과를내지못했는데,이번에전승주교수가신문연재본을원전으로삼아정본을확정했다.정본확정은연구자들에게는작품분석을위한기초가되므로매우중요한일이다.무엇보다독자에게는오류없는작가의오리지널원고를만날수있게하므로더없이중요한일이다.
전승주교수는초판본인신문연재본을기본으로한책3종과개작된단행본을기본으로한책3종을비교해총5000여곳의서로다른점을찾아냈다.이5000군데의차이는개작으로인한변화도있지만출간과정에서일어난상당한오자와오식등의오류에서비롯된것이기도하다.그오류들에는염상섭이다음날정정기사를통해바로잡겠다고직접밝힌것을정정하지않은것도꽤있다.예를들면“그것은너무나‘극단’이오”에서‘극단’을‘독단’으로정정한다고했는데이후출간된모든판본이이를고치지않은채‘극단’으로표기하고있다.또“더구나자네‘아버니’께서는”의‘아버니’를‘아버지’,심지어는‘어머니’로바꾸어놓은경우도있다.‘아버니’는‘아버지’라는뜻의그시대말이다.이전의책들이가지고있는이러한오류들을모두바로잡은완전복원원고가전승주교수의정본이다.
그동안≪삼대≫를읽어온독자들은완전하지않은텍스트를진짜로알고있었다.이제진짜≪삼대≫를만나야한다.‘지만지≪삼대≫’는전승주교수가이룩한정본으로출간한책이므로진짜≪삼대≫라고부를수있는것이다.

회화로보는문학
≪삼대≫는1931년1월1일부터9월17일까지9개월동안≪조선일보≫에연재되었다.신문연재소설이대부분그렇듯≪삼대≫에도삽화가함께실렸다.삽화가는석영안석주다.안석주는당시신문연재소설의삽화를도맡아그렸던화가이자,≪백조≫동인으로활동한작가이자,‘토월회’에서활동한연극배우이자,한국최초의발성영화<심청전>을연출한영화감독이기도했다.이다재다능한이력이무엇을말하는것인가하면,그가그린≪삼대≫의삽화가소설가의시각,화가의시각,배우의시각,영화감독의시각을고루갖출수있게했다는것이다.때문에≪삼대≫의삽화는안석주가해석한소설의이미지로서,혹은연극으로서,혹은영화로서의또다른≪삼대≫라고도할수있다.이러한회화로서의가치는가히≪삼대≫의문학성에버금간다고해도지나치지않을것이다.
그동안염상섭의≪삼대≫를읽은사람은많지만안석주의≪삼대≫를읽은사람은당시신문독자들외에는없다.90여년의세월을지나안석주의≪삼대≫가‘지만지≪삼대≫’를통해회화로,무대위연극으로,영화로독자들을찾아왔다.
‘지만지≪삼대≫’의표지화를그린류장복화백은안석주의삽화를보고전율을느꼈다고했다.류화백은그의단순조명의명암대비,잉크의두께가느껴지는획의활기,속도감있는필촉,드로잉의거친흔적들에서보이는회화성에감탄하며그모든것이영화적이라고말한다.

“171컷의삽화를연속해서보면무성영화처럼흐름이잡힌다.영상언어로번역된것같은장면이줄곧반복된다.드라마틱한영화의미장센을방불케하는역동적인구도는≪삼대≫의삽화를관통하고있다.









위삽화에서안석주는마치영화를찍듯이돌담길에등장인물을밀어넣고카메라의셔터를누르기라도한것처럼장면을연출했다.줌인과줌아웃의구도를자유롭게넘나들며프레임의그물망을던지는솜씨가예사롭지않다.”

이처럼안석주의회화는지극히영화적이고삽화의앵글들은영화컷이라고해도무방할정도다.1931년에그려진이삽화들은또한당시의문화와생활상에대한훌륭한고증자료이기도하다.인물의의복과스타일,그들을둘러싼사물들,그리고풍경과장소들은소설을직관적으로이해하는데큰도움을줄것이다.초판본의이삽화들은독자로하여금소설을동영상으로즐길수있는효과를줄것이다.
‘지만지≪삼대≫’에는총171개의삽화가수록되었다.삽화는당시신문의낮은해상도와세월의흔적탓에거칠다.당시느낌을살리고자보정을최소화했다.

1920년대경성의로망
≪삼대≫의무대가된1920년대의경성은2020년의서울이아니다.독자들이경성을서울로생각하고작품을읽는착각을바로잡기위해≪삼대≫를시간적,공간적으로설명하는텍스트가필요하다.그것이‘지만지≪삼대≫’가착안한“곁텍스트”다.
고전작품들과현대독자들사이에는시공간과문화의넓고깊은골이생긴다.흔히고전이이해하기어렵다고하는것은여기서기인한다.한국고전출판의관행인간략한문학적해설만으로는이골을메울수가없다.독자의이해를돕기위한장치가필요하다.그것이‘지만지≪삼대≫’에수록된“곁텍스트”다.

‘지만지≪삼대≫’에수록된곁텍스트,‘선은광장’

≪삼대≫는식민지로전락한1920년대경성시민들의삶의풍경과기억을품고있는작품이다.당시엄청난변화속에내던져진경성시민들의일상과감정이붓으로그린듯이선명하게묘사되고있다.그래서≪삼대≫를한국리얼리즘소설의대표라고하는것이다.이러한≪삼대≫의리얼리즘적진면목을제대로알수있도록‘지만지≪삼대≫’는소설출판의관행을깨고파격적으로풍부한문헌적자료와이미지자료를더했다.작품에도,작품뒤에수록된곁텍스트에도자료들을과감히배치했다.
≪삼대≫전문연구자인김희경박사가작성한255쪽에달하는곁텍스트는≪삼대≫이해에디딤돌이될것이다.오직‘지만지≪삼대≫’에서만볼수있는깊이있는작품설명이다.특히주목할것은이미지자료들이다.이이미지들은≪삼대≫에나오는사물과공간과생활에관한것들이다.이야말로≪삼대≫를직관적으로이해할수있는시공간적자료다.수십여편의이미지는90년전식민지수도경성의풍경과생활을완벽하게재현한다.작품의대목들저마다에이미지자료들을겹쳐읽다보면독자들은그시절경성의풍경과문화지리지를손에잡을듯이생생하게감상할수있을것이다.
또한청계천을중심으로조선인은빈한한북촌,일본인은부유한남촌에모여살게되는데,그속에서살아간≪삼대≫인물들의행적을세밀하게재현하기위해1920년대경성의지도를수록했다.‘지만지≪삼대≫’에는16개의경성부분지도가실려있고지도위에는정치적지리적공간지표를표시했다.
2020년의광화문은남산을바라보지만1920년대경성의광화문은안국동을바라본다.일제가조선총독부청사를조성하는과정에서광화문이청사앞을가린다는이유로동문인건춘문으로이전했기때문이다.이러한사실을비롯해‘지만지≪삼대≫’의곁텍스트에들어있는많은시간적,공간적증거자료들은1920년대경성을더욱깊이이해하고똑바로알게한다.독자들은그시절로타임리프해경성의한복판에서있는느낌을받을것이다.‘지만지≪삼대≫’곁텍스트는독자들을1920년대경성의로망속으로데려가는타임머신이다.
문학평론가김종욱교수(서울대)는이책곁텍스트에대해이렇게의미를부여한다.“‘지만지≪삼대≫’는90년전의경성과그안에서살아간사람들의삶의흔적을정밀하게복원했다.이로써우리민족의엄혹했던지난세월과삶의진실을외면하지않는한국문학의힘을더욱실감나게확인할수있었다.”
박영률지만지대표는이렇게말한다.“‘지만지≪삼대≫’는“지난90년의세월을통과하면서잃어버린우리문학의가독성을회복하게할것이다.아울러스마트폰세대인21세기의젊은세대로하여금문학을통해한국현대사를이해할수있는통로를열어주는계기가될것이다.그역할을이책에실린곁텍스트가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