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 수필선집

장준하 수필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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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타락한 권력에 맞서 민주 대도를 내세웠던 장준하의 사상을 가장 잘 드러내는 글 10편을 가려 엮었다. 군부 독재에 대한 거침 없는 비판, 민족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기획은 그의 냉철한 현실 인식을 드러낸다. 그는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그의 염원은 소멸되지 않고 한국 민주주의를 향한 신생의 기운을 북돋우고 있다.
저자

장준하

저자장준하는1918년평안북도의주에서4남1녀중장남으로태어났다.장준하는할아버지와아버지로부터많은영향을받으며성장한다.장준하의할아버지는당시한문지식뿐만아니라신문명을수용하는데도적극적태도를보였는데,장준하의회고에따르면시골벽지에서유일하게신문을받아볼정도로당대의정세를면밀히파악하고있었다.그래서인지장준하의할아버지는일제에게불령불온자인‘요주의인물’이었다고한다.그런가하면장준하의아버지는3ㆍ1운동이일어나자의주에서시위참가자들에게태극기를나눠주며만세운동에적극참여하는등항일저항의식을보였다.
이처럼장준하는성장환경속에서할아버지의지식인적삶으로부터이후≪사상계≫의잡지를발간하게되는영향을받게된다.그리고아버지의항일저항의식과불의에맞서선(善)을추구하는것으로부터민족의식과인류보편적민주주의를향한정신을함양하게된다.장준하의이러한모습은1937년‘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사건’으로그가다니는평양의신성중학교교장선생님이연루돼일본경찰에체포된데대해석방을요구하는수업거부와동맹시위를주도하면서본격적으로드러난다.이것은장준하에게일제에맞서항거한본격적투쟁이었다해도과언이아니다.
신성중학을졸업한이후장준하는평북정주에있는신안소학교의교원이되는데바로이때스승과제자로만난사람이장준하의반려자김희숙여사다.3년간의신안소학교교원생활후장준하는1년간일본유학길에오른다.일본유학에서그는신학을열심히공부했다.그런데장준하가일본유학길에오른1940년대초일제의군국주의는더욱기승을부리더니아시아태평양전쟁을일으키면서전시총동원체제아래피식민지는일제의전쟁물자를공급해야하는처지로전락하게된다.이무렵장준하는김희숙과결혼(1943)을한후일본군의‘학도지원병’으로지원한다(1944).일본군으로중국전선에참전하게된장준하는동료조선인과함께가까스로탈출을했고온갖난경속에서장개석이이끄는중국중앙군유격대에들어간다.바로그곳에서장준하는그보다먼저일본군에서탈출한그와같은조선인학병김준엽을만난다.장준하와김준엽은무려6000리(2400킬로미터)가떨어져있는중국충칭에있는대한민국임시정부에합류하기로결심하고일본군과마적의위협을뚫고마침내임시정부에들어가중국중앙군관학교린촨분교내한국광복군훈련반에입소해군사교육을받는다.이곳에서그는≪등불≫이라는잡지를만들어신학,철학,사학,문학등다양한분야에걸친토론과학습자료를만들며문무를겸비해나간다.특히중국서안에서미국OSS의혹독한훈련을받으면서한반도에기습침투하는,오늘날공수특공대와같은게릴라식전투를주도면밀히준비했는데,이는안타깝게도작전개시5일전,1945년8월15일일본천황의항복선언으로중단된다.이에대해장준하는체험수기≪돌베개≫에서“떳떳한승리의군대로조국에개선해서발언권을가지고국내치안을주도해보려던꿈이잠들고말았다”며대단히안타까워했다.
이렇게일제가패전한후백범을비롯한임시정부요인들과함께조국으로돌아온장준하는해방공간의혼돈속에서못다한신학공부를했고,한국전쟁의소용돌이속에서1952년9월피난지부산에서월간지≪사상≫창간에이어1953년4월≪사상계≫를발행했다.한국전쟁와중에발행된≪사상계≫는척박한한국언론의토양을객토하고,무엇보다환멸과허무에침잠해있던한국지성사에신생의활력을북돋았다.≪사상계≫의역할은상상이상큰것이었다.≪사상계≫는분단극복과민주주의회복이라는두과제를중심에놓고일체의타락한정치사회세력에대한준열한비판을서슴지않았다.5ㆍ16군사쿠데타이후정권을찬탈한박정희가장준하와그의≪사상계≫를탄압하기위해온갖정치적박해와음모를가했다는것은당시중앙정보부의암행기록에여실히드러나있다.
≪사상계≫의활동은‘아시아의노벨상’으로불리는필리핀의막사이사이상언론문학부문의수상자로장준하가선정되면서(1962)국제적명성과정당한평가를받는다.그런데장준하의이러한지속적노력에도불구하고박정희의군사독재는장기집권을획책하는데,이에대해장준하는박정희가대통령이될수없는이유(친일파,정치적무능력,반민주주의독재등)를조목조목언급하면서재야민주주의인사를통합하는데혼신의힘을쏟았다.그뿐만아니라그는박정희의정치적탄압으로옥중에있을때옥중에서국회의원출마를선언했고(1967),마침내국회의원으로당선돼현실정치활동을하였다.그리고무엇보다박정희의장기집권이노골화되기시작한유신체제아래장준하는‘유신헌법개헌청원을위한100만인서명운동’(1973)을벌이면서숨죽이고있던민주주의를향한열정과군사독재에대한분노를표면으로솟구치도록하는도화선역할을맡는다.
이처럼장준하는반민주주의를획책하고정치사회적억압을통해정권을유지하는박정희정부를향한준열한비판과저항에모든것을걸었다.박정희정부의눈엣가시였던장준하는경기도포천에서등산도중실족으로의문의죽음을맞이한다(1975).이후그의죽음에대해정확한조사가이뤄지는데한계가있던터에,2012년그의묘를이장하기위해관뚜껑을열었는데그의두개골이함몰된것이드러나면서두개골정밀감식을거친다.그에대해2013년3월26일백범기념관에서서울대의대법의학자이정빈교수의결과보고가있었다.보고에따르면,“두개골함몰은추락에의한골절이아니라외부가격에의한손상”이고,“장준하선생은제3의장소에서살해당하고시신이옮겨온것”이라는결론이내려진다.이로써장준하의죽음은등산도중실족사가아닌타살이라는사실이입증된것이다.그렇다면중요한것은누가무엇때문에장준하를살해했는가하는사실이다.그리고그배후는누구인가?이점은아직도미궁으로남아있다.
광복군으로서,재야인사로서,정치인으로서,언론인으로서장준하는한국현대사에서그가말한대로‘민주대도(民主大道)’를향한가시밭길을걸었다.그의죽음이결코헛되지않기위해서는분단극복과민주주의회복이라는두과제를동시에수행해야할과제가우리앞에놓여있는것이다.

목차

사상계지수난사
나의사랑하는생활
시민이읽은30년간의신문
박대통령에게보내는공개서한
민족통일전략의현단계(초안)
민족주의자의길
죽음에서본4ㆍ19
혁명상미성공
실질적민정복귀를위한범야재단합투쟁을호소한다
한ㆍ일관계의기형화와전망

해설
지은이에대해
엮은이에대해

출판사 서평

‘한국수필선집’은지식을만드는지식과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공동기획했습니다.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한국근현대수필을대표하는주요수필가50명을엄선하고권위를인정받은평론가를엮은이와해설자로추천했습니다.작고작가의선집은초판본의표기를살렸습니다.

진보적매체≪사상계≫의발행인이자편집인으로널리알려진장준하(張俊河,1918∼1975)는무장항일투쟁을준비해온광복군으로서,분단극복과민주주의쟁취를위한재야인사로서,그리고현실정치에직접참여한정치인으로서치열한삶을살아왔다.특히장준하는해방이후한국사회의훼손된민주주의를회복하고이를뿌리내리기위해혼신의힘을쏟는다.그리하여그는이승만정부의부정부패뿐만아니라박정희의군사독재로이어진반민주적장기집권에대한민주화운동을절대지상의과제로삼았다해도과언이아니다.무엇보다4·19혁명(1960)이이승만을비롯한타락한위정자를일소하고학생과시민의힘으로민주주의를회복하고자했으나그과도기의어수선한분위기를틈타정치군인들이쿠데타를일으켜정권을찬탈하고애초약속대로민정으로이양하지않은채자신들이직접정치권력을장악하는것에대해장준하는매서운비판을가한다.
해방공간에서일어난사회주의계열과민족주의계열의통일운동의공과에대해장준하는매우객관적태도로성찰하고,몽양과백범으로대표되는두통일운동세력이범민족적조직적투쟁을전개하지못한것에대한날카로운비판을보인다.무엇보다해방공간에서미국과소련의한반도분할통치점령에대한문제의식과대응을펼치지못한점을직시하는대목은냉전제체아래민족의분단을어떻게현명하게극복할것인지에대한과제를제시하고있다는점에서그의폭넓은현실인식을주목하지않을수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