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재 시선

목재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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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7세기 조선 학자 목재 홍여하의 시 97수를 엮었다. 그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명의 멸망과 청의 등장이라는 대격변 속에서도 영남의 학풍을 진작하고 계승하기 위해 애썼다. 혼란의 시대에 올바른 학자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애쓴 당대 지식인의 고민이 시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저자

홍여하

洪汝河,1620∼1674
목재(木齋)홍여하(洪汝河,1620∼1674)는본관이부림[(缶林,부계(缶溪)]이며부림홍씨15세다.부림은곧그의선향인데,지금경북군위군부계면대율리일대다.시조는고려중엽때재상을지낸난(鸞)이고,1세가직장을지맨좌(佐)이며5세인석(仁裼)과6세문영(文永)때상주로이거하고다시8세득우(得禹)때함창으로이거했는데,5세인석이후를함창파라부른다.성종과연산군때양대(兩代)홍문관대제학곧문형(文衡)을지낸홍귀달은홍여하의5대조가된다.그리고인조때대사헌을지낸홍호의아들이홍여하다.홍호는정경세의제자로퇴계에서유성룡,정경세로이어지는영남학맥의위치에있었다.
홍여하는자가백원,호가목재와산택재다.안동부성동리,즉지금의문경시영순면율리에서홍호와장흥고씨사이에서태어났다.14세때모친고씨의상을,27세때부친상을당했다.35세때생원진사시와식년문과에합격했다.37세봉교로있을때송규렴의반대를무릅쓰고이상진과이원정을추천한일로파직되었다.다시그해응지상소를올렸다가고상도찰방으로쫓겨났으며,40세경성판관으로있을때현종이즉위해응지상소를올렸는데,북방군정의폐단과함께이후원에대해붕당의행태가심함을지적하자이조판서로있던송시열이이것은자신을배척하는것이라고여겨상소한뒤사직하는사건이일어났다.당시서인측에서이상소가윤휴등이조종한것이라고보아크게문제를삼으면서,그는당쟁속에휘말려들었다.이때에는제1차예송이터지기도했다.41세때병마사권우의일을다시문제삼았다가파직된뒤에충청도황간으로유배되었으며,얼마후풀려나고향함창율리로돌아왔다.
율리로돌아온후그는산택재를짓고학문연구와저술에매진했다.51세때예천북쪽복천촌에존성재를짓고잠시이거했다가53세때다시율리로돌아왔다.55세때숙종이즉위해병조정랑과사간의관직을내렸으나병으로나아가지못하고세상을떠났다.예천의흑송리에장사지냈으며,이장후묘갈은계당유주목이지었다.1689년갈암이현일의주청으로통정대부부제학에추증되었다.1693년근암서원에배향되었다.

목차

≪목재집≫서문

우연히읊다
이국창에게드리다
최방옹에게주다
이택당에게올리다
마음대로읊어이대방에게장난삼아드리다
대명전에서봄날아침일찍조회하다
<독락원>시에차운해조용주선생께받들어올리다
영가의노래.윤순보를위해짓다
북으로노닐며
총석
동파의시에차운하다
꿈을기록하다
천군8수
속마음을풀다
눈병으로책을내버려두고날마다성성법만일삼다
우연히쓰다
스스로탄식하다
기자
인을말하다
생일날황이곤,정봉휘,전명수등여러공이약속도하지않았는데모였다.각각시한수씩을짓고이어서지난해외로웠던마음까지표현했다
바위모퉁이에심어놓은대나무가새이파리를틔워한수짓다
역법,시법,사법을평해목내지와이사징,두학사에게부치다
외증조≪제봉집≫뒤에삼가쓰다
장대성에게올리다
퇴계선생이동파에화운한시에차운하다
흥이나서짓다
6월9일술취해눈에비치는것을읊다
백련
계장을만들다
옛시를본뜨다
내가여름부터술마시기를멈추었는데올해벼논이수해를입었고앵무배도깨져서느낌이있어짓다
거부사
옛이별의노래
그물을엮다
수락대에서
우복당에서
복천에임시로거처하다
도원이≪맹자≫일곱편을외우는데하나틀리지않으니숙부가가상히여기고감탄했다.이어서주백손이문광공에게준시의‘≪노론≫은스무편이라,이골난듯외울사옥구슬이쟁반을구르도다’라는구절을외웠다.내가느낀바가있어절구한수를짓는다
비를읊다
갬을읊다
느낌이있다
4월17일밤,본것을기록하다
임인,7월그믐날맑다
고향마을
여러벗들과도남서원을찾아갔다
<포은전>을읽고느낌이있어
청량산에서
섣달그믐날밤에
이호우를추모하며
유자우의<강정>시에차운하다
전가즉사
신해,1월5일새벽에일어나니느낌이있다
문희사또김빈여에게편지로주어석밀과송화를구하다
안자
비오는가운데매화는채피지않았는데대는모두시들다
이참봉의둘째익문과셋째익승이찾아줌에고마워서
황원보·유자강·정봉휘·이선명·전명노등여러분들과우복당에서모이기로약속했는데,내가병때문에가지못하자황장께서시를보내왔다.삼가차운하다
주역본의
경서의구두에이언이깨뜨리는것이많아느낌이있다
흥취를느끼다
가을날감회를풀다
눈이어두워져서
자식을훈계하는글
우연히짓다
느낌이있어
7월그믐,밤비가내리다
주자절요를읽고느낌이있어
일을느끼다
상민이≪논어≫읽는것을보고
즉사
우연히짓다
안태화의<삼강>에화운하다
나를경계하다
단천을지나다
초봄
우연히짓다
저녁에날이개다
마을에화기가끊겼다가밥짓는연기를보고느낌이있다
흥이나다
나를경계하다
태수의분매를읊다
유곡역누각에서김천휴를보내면서,그편에한양여러임께부치다
학봉선생의묘도비를살펴보다
제목을붙이지않는다
이계칙을추모하며
가을장마
시잠
청잠
침잠
식잠
좌잠
입잠
보잠
와잠
사자잠
거실잠
기마잠

부록
목재기경인년

해설
지은이연보
옮긴이에대해

출판사 서평

지만지한국문학의<지역고전학총서>는서울지역의주요문인에가려소외되었던빛나는지역학자의고전을발굴번역합니다.‘중심’과‘주변’이라는권력에서벗어나모든지역의문화자산이동등한대우를받을수있도록합니다.지역학문발전에이바지한지역지식인들의치열한삶과그성과를통해새로운지식지도를만들어나갑니다.

영남에서문장으로빛나다
≪목재시집≫은목재(木齋)홍여하(洪汝河,1620∼1674)의문집인≪목재집≫가운데한시를골라번역하고주해한것이다.그의시는문집권1과2에수록되어있는것이총255제380수이며,교유인물들의문집에수록된시를모두포함하면총400여수가까이된다.이책에는그중작가의모습을비교적잘드러낸시97수를골라옮겼다.홍여하는자가백원,호가목재와산택재다.본관은부림(缶林)으로,지금의경북군위군부계면대율리일대다.부친은대사헌을지낸홍호인데,그는정경세의제자로퇴계에서유성룡,정경세로이어지는영남학맥의위치에있었고,홍여하가그뒤를이었다.문장이뛰어나당시영남사림에서우복정경세,동강김우옹,창석이준과함께영남문장사대가로꼽혔다.역사에도조예가깊어문집외에도≪동국통감제강(東國通鑑提綱)≫13권7책,≪휘찬여사(彙纂麗史)≫48권22책,≪해동성원(海東姓苑)≫등을남겼다.

혼란의시대에지식인의역할을고민하다
홍여하가활동한17세기는임진왜란과병자호란이라는큰전쟁을거치고사회의여러분야에서개혁의필요성이제기되던시기다.동시에명의멸망과청의등장이라는동아시아적대사건속에서당시의지식인들은이를어떻게설명하고대응해야할지고민해야했다.그는지식인으로서시대를고민했고다양한교류를통한활동으로영남의명맥을유지하는데시대적중간자로서의적극적인역할을수행했다.결국임·병양난이후혼란속인위적자연적시대변화의흐름속에서도영남의학풍을진작하고계승할명분을제시했다고할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