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봉 화도시선(큰글자책)

회봉 화도시선(큰글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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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문학의 종식기, 현대 한문학의 불을 밝히다
조선 후기에 태어나 대한 제국기, 애국 계몽기를 거쳐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회봉 하겸진. 그는 1700여 수에 가까운 한시를 남겼으며, 우리나라 한문학사의 마지막 시화집이라 할 수 있는 ≪동시화(東詩話)≫를 저술했고 화도시, 수미음(首尾吟), 집자시(集字詩), 회문시(回文詩) 등 다양한 형식의 시를 지어 일제 강점기 종식되어 가는 한문학의 장을 풍성하게 했다. 그가 도연명의 시에 화운한 화도시를 모았다. 일제 강점기, 꺼지지 않은 우리 한문학의 자취를 살필 수 있다.
저자

하겸진

河謙鎭,1870∼1946
회봉(晦峯)하겸진(河謙鎭)은1870년진주(晋州)의사곡리(士谷里)에서태어났다.그는한주(寒洲)이진상(李震相,1818∼1886)의적전면우(俛宇)곽종석(郭鍾錫,1864∼1919)의고제(高弟)이며,남명이‘설중한매(雪中寒梅)’라고기상을격찬했던각재(覺齋)하항(河沆,1538∼1590)의문인송정(松亭)하수일(河受一,1553∼1612)의11대손이다.학맥으로는퇴계의학풍을계승한고제이며,가학으로는남명의학풍을계승한적전이라는점은회봉의학문적성격과위상을대변한다.
그는조선과대한제국,일제강점기를거쳐해방을맞이한다음해인1946년까지역사상가장큰격변기를유학자,독립운동가,문학가의모습으로살았다.그의생은낙수재(落水齋)에서보낸학문수학기(1870∼1917)와귀강정사(龜岡精舍)에서보낸애국계몽기(1917∼1930),덕곡서당(德谷書堂)에서보낸창작저술기(1931∼1946)로나눌수있다.
학문수학기에는낙수재를중심으로향리의동학(同學)및집안의자제들과함께학업에매진하고,1896년27세되는해인가을에거창의다전(茶田)에서면우를알현하고사사했으며,후산(后山)허유(許愈,1833∼1904),사미헌(四未軒)장복추(張福樞,1815∼1900),물천(勿川)김진호(金鎭祜,1845∼1908),대계(大溪)이승희(李承熙,1847∼1916),송산(松山)권재규(權載奎,1870∼1952)등당대의명유(名儒)들과교유했다.
귀강정사에서의애국계몽기에는1919년파리장서에서명해진주와성주를오가며옥중생활을했고,1921년에는<국성론>을지어유학의가치인‘예의(禮義)’를‘국시(國是)’로국민의식을고취했다.1926년에는독립운동기지건설자금을마련하고자국내에잠입한김창숙(金昌淑,1879∼1962)을도운2차유림단의거에참여함으로써다시옥고를치렀다.그리고1929년에는을지문덕·김유신·강감찬·이순신을대상으로<명장열전(名將列傳)>,남이(南怡)와김덕령(金德齡)을대상으로<용장열전(勇將列傳)>을지어민족의식을고취했다.
덕곡서당의창작저술기에는1934년<화도시>120수를완성하고,다시1937년<수미음>134수를완성했다.<화도시>는망국의지식인으로살아가는갈등과고뇌의산물로,소동파가그랬던것처럼도연명의시에모두화운함으로써자신의시재(詩才)도나타내고,격변속에서도꼿꼿한절개를지켜갈것임을밝힌시다.그는또우리나라시화사(詩話史)의마지막비평집인≪동시화(東詩話)≫를저술했고,1943년에는생애마지막역작으로우리나라최초의학안인≪동유학안(東儒學案)≫을저술했다.1945년8월노쇠해진몸으로조국의광복을지켜보고,다음해인1946년7월에세상을떠났다.

목차

화도시서
<머문구름>에화운하다4수
<사계절의운행>에화운하다4수
<방참군에게답한시>에화운하다5수
<농사를권하며>에화운하다6수
<육체가그림자에게주다>에화운하다
<그림자가육체에답하다>에화운하다
<신석>에화운하다
<중구일에한가로이있으며>에화운하다
<전원의집으로돌아오다>에화운하다
<이사>에화운하다2수
<옛집으로돌아오다>에화운하다
<기유년9월9일>에화운하다
<술을마시다>에화운하다20수
<술을끊다>에화운하다
<고시를본뜨다>에화운하다
<잡시>에화운하다11수
<가난한선비를읊다>에화운하다7수
<두소씨를읊은시>에화운하다
<삼량을읊다>에화운하다
<형가를읊다>에화운하다
<산해경을읽고>에화운하다13수
<도화원>에화운하다

해설
지은이에대해
옮긴이후기
옮긴이에대해

출판사 서평

지만지한국문학큰글자책은약시나노안으로독서에어려움을겪는독자를위해만든책입니다.지만지한국문학의책은모두큰글자책으로제작됩니다.

지만지한국문학의<지역고전학총서>는서울지역의주요문인에가려소외되었던빛나는지역학자의고전을발굴번역합니다.‘중심’과‘주변’이라는권력에서벗어나모든지역의문화자산이동등한대우를받을수있도록합니다.지역학문발전에이바지한지역지식인들의치열한삶과그성과를통해새로운지식지도를만들어나갑니다.

한문학을통해망국을극복하려하다
하겸진의자는숙형(叔亨),호는회봉(晦峯),본관은진양(晉陽)으로1870년진주(晋州)사곡리(士谷里)에서태어났다.그가출생한시기는1866년병인양요로인해위정척사운동이확대되던시기였다.나라가일제에의해강제병합된후에회봉은파리장서사건과2차유림단사건에관여해두번의옥고를치렀다.그러나그가궁극적으로추구한것은도(道)를부지하고지켜서후일을기약하는것이었다.망국이라는시대적상황앞에서회봉은지식인으로서의소명을항일과저술활동,후학양성으로나타내었으며,이러한그의의식들은문학에그대로녹아들어한문학의종장을갈무리하는문학적결정으로승화되었다.

조선의선비,도연명과화운하다
화도시(和陶詩)는도연명의시에화운한시를말하는것으로,중국의송대동파소식이처음시도한시형식이다.소식이화도시를처음지은이후로중국과우리나라의많은문인들이화도시를창작했으며,한시의다양한형식속에서화도시라는한영역을구축하고그창작전통은꾸준히이어져왔다.고려조양촌(陽村)권근(權近)의<의고화도(擬古和陶)>4수에서시작해매월당(梅月堂)김시습(金時習),상촌(象村)신흠(申欽),문곡(文谷)김수항(金壽恒),극원(?園)이만수(李晩秀)등이화도시를썼으며,조선에들어서는이황,김종직,송시열등도그창작대열에합류했다.이전통은일제강점기까지이어져회봉(晦峯)하겸진(河謙鎭)에의해우리나라한문학사의마지막화도시120수가지어졌다.

화도시를통한하겸진과소식의만남
소식은도연명의시를좋아했고,그의지조있고청렴한‘고궁절(固窮節)’의삶을동경했다.하겸진은〈화도시〉서문에서자신도도연명의시를좋아하며,소식이도연명의시를화운한것을따라보고자화도시를짓게되었노라고밝히고있다.그들은도연명이라는인물의도덕적청렴함과인품의고결함,은자로서의삶에같은공감대를느끼며‘화도시’를지었다.시대의간극을뛰어넘어‘화도시’로만난하겸진과소식은각자처한시대와현실에고민하고갈등하며그내면적고뇌들을시에가감없이담아내었다.‘화도시’는이들의정신적고뇌의산물이면서한편으로는현실의고민과갈등을해소해가는일종의정신적해방구이기도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