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 시전집 7: 악부 1(큰글씨책)

이백 시전집 7: 악부 1(큰글씨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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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백시문학회에서 이백 시전집을 완역한다. 오랫동안 이백을 연구해 온 14명의 전문 학자가 국내외 모든 이백 관련서를 참고하고 수차례의 윤독과 토론을 거쳐 가장 완벽한 정본에 도전한다. 제7권은 <악부> 160수 중 31수를 옮겼다. <촉도의 험난함(蜀道難)>, <장진주(將進酒)>, <가는 길 험난하구나(行路難)> 등 이백의 대표적인 악부시들을 만날 수 있다. 정확한 번역과 방대한 주석, 다양한 교감과 상세한 해설은 이백 시를 처음 만나는 사람부터 전문 연구자까지 모두에게 이백 시의 진정한 면모를 보여 줄 것이다.
저자

이백

시선(詩仙)이백(李白,701∼762)의자는태백(太白),호는청련거사(靑蓮居士)이고이한림(李翰林)이라고도부른다.두보(杜甫)와함께‘이두(李杜)’로병칭되며1000여편의작품을남겼다.이백의출생과어린시절은명확하지않다.전해지는바로는조적(祖籍)은지금의간쑤성톈수이(天水)부근의농서현(隴西縣)성기(成紀)였으나,수나라말기에부친이서역으로이사해서안도호부관할이었던중앙아시아에서이백을낳았고,부친이다시사천성면주(綿州)창륭현(昌隆縣)청련향(靑蓮鄉)으로옮겨옴에따라이백또한이곳에서어린시절을보냈다고전해진다.
725년(25세)촉땅을떠나서장강을따라삼협을거쳐강남일대를유람했으며산동,산서등지를떠돌며도교(道敎)에심취했다.742년(42세)도사오균(吳筠)의추천으로한림공봉(翰林供奉)에제수되었으나,자신의정치적포부를실현할수없자3년만에관직을버리고장안을떠나다시방랑의길로들어선다.
755년(55세)안녹산이난을일으켰을때이백은안휘성선성(宣城)에있었다.57세에황자(皇子)영왕(永王)인(璘)의막료가되었으나,영왕이권력투쟁에서패하고숙종이즉위하자이백도역도로몰려강서성심양(尋陽)에투옥되었다.송약사(宋若思)가구명해그의막료가되었으나끝내귀주성야랑으로유배되었다.야랑으로가는도중,삼협을거슬러무산에당도했을때특사를받아강릉으로내려가며<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을지었다.
이후노쇠한이백은금릉과선성을오가다가당도(當塗)현령으로있던친척이양빙(李陽冰)에게몸을의탁했다.762년병이중해지자이백은자신의원고를이양빙에게주고<임종가(臨終歌)>를짓고는회재불우의한많은한평생을끝마쳤다.우리에게는당도에있는채석기(採石磯)에서노닐다장강에비친달그림자를잡으려다가익사했다는전설이훨씬더익숙하다.
이백은굴원이후가장뛰어난낭만주의자로꼽힌다.그는당시의민간문예뿐아니라진한(秦漢)과위진(魏晉)이래악부민가를이어받아자신만의독특한풍격을형성했다.더구나그는도가에심취해서그의시는인간의세계를초월한환상적인경향또한짙다.

목차

제1수영원히이별하네(遠別離)
제2수임이여,황하를건너지마세요(公無渡河)
제3수촉도의험난함(蜀道難)
제4수양보음(梁甫吟)
제5수까마귀가밤에우네(烏夜啼)
제6수까마귀는깃들이고(烏棲曲)
제7수성남쪽의전투(戰城南)
제8수장진주(將進酒)
제9수가고또가며사냥하네(行行且遊獵篇)
제10수날아가버린용.두수중첫째수(飛龍引二首其一)
제11수날아가버린용.두수중둘째수(飛龍引二首其二)
제12수천마의노래(天馬歌)
제13수가는길험난하구나.세수중첫째수(行路難三首其一)
제14수가는길험난하구나.세수중둘째수(行路難三首其二)
제15수가는길험난하구나.세수중셋째수(行路難三首其三)
제16수한없는그리움(長相思)
제17수상류전(上留田)
제18수춘일행(春日行)
제19수술한잔앞에놓고.두수중첫째수(前有樽酒行二首其一)
제20수술한잔앞에놓고.두수중둘째수(前有樽酒行二首其二)
제21수한밤중앉아읊조리다(夜坐吟)
제22수들판의방울새노래(野田黃雀行)
제23수공후의노래(??謠)
제24수아침에장끼가날아오르다(雉朝飛)
제25수구름에오르는즐거움(上雲樂)
제26수이칙격에맞춰불무를추며부르는백구의노래(夷則格上白鳩拂舞辭)
제27수태양이뜨고지는것을노래하며(日出入行)
제28수오랑캐없어지면(胡無人)
제29수북풍의노래(北風行)
제30수협객의노래(俠客行)
제31수관산의달(關山月)

부록
<촉도난(蜀道難)>에대해

해설
지은이에대해
옮긴이후기
옮긴이에대해

출판사 서평

시선이백은당대시단나아가중국역대시단을통틀어시성(詩聖)두보와쌍벽을이루는시인으로평가받아왔다.그러나이백에대한높은평가에도불구하고국내에서는≪이태백시집≫을제외하고는그의시에대한완역이없어학자들이많이아쉬워하고있다.이러한반성에기초해몇몇사람들이뜻을모아≪이백전집≫을역주하고해설해출판하려는계획을세우게되었다.

민간의노래,악부(樂府)
악부시라는명칭은원래한대(漢代)악부시에서유래한다.즉,‘악부(樂府)’라는관청에서수집한민간가요를가리키는것이었다.그런데이악부시는다음과같은몇가지특성을갖는다.첫째,시가의내용면에서당시의시대상황을잘반영하는현실성이강하다.둘째,시속에서사용하고있는시어가평이하고그음절은간결하다.셋째,그형식이비교적자유로우며격률에서도엄격한제약을받지않는다.한대이후로많은시인이이를모방해창작했는데이를모두악부시라한다.또한한대이후의악부시중시제목에‘가(歌)’,‘행(行)’,‘음(吟)’등이포함된것들을가행체시(歌行體詩)라하는데,이도역시악부시에속한다.다만이를조금더자세히구분하면악부시는서사성이강하고,3인칭시점이많은반면,가행체시는서정성이강하고1인칭시점위주로되어있는경우가많다

이백의악부시
이백의현재전해지는작품가운데악부시의비중은상당하다.이백의전체작품약1000여수중현전하는악부시는전체의약16%에해당하는160수다.또한송대에편찬한≪악부시집(樂府詩集)≫에는약450여수의초당(初唐),성당(盛唐)악부시가수록되어있는데,이가운데161수가이백의악부시다.전체초성당악부시가운데이백의악부시가약36%를점하는것이다.이것하나만보더라도이백은초성당을대표하는악부시시인이라부를수있을것이다.이렇듯많은수량의악부시를창작하게된것은아마도그가전국을돌아다니며각지의다양한악부민가를접하게되었고,또이러한악부민가로부터적지않은시적영감을받았기때문일것이다.
이백의악부시는그창작수량뿐만아니라,예술적성취에서도역대로매우탁월한평가를받았다.명대의호진형(胡震亨)은“이백은악부시에서가장심오하다.옛악부시제(詩題)를모방하지않은것이없으니,어떤것은그본래뜻을사용했고또어떤것은새로바꾸어새뜻을지어냈다.그뜻을합쳤으되다른듯하고,그뜻이다르되합친듯하니,옛것을모방하는교묘함을지극히다했다”라고호평했고현대의푸루이(傅如一)는“이백의전체시작(詩作)의정수는거의다이악부시에모여있으니,그의총명함과재주역시가장통쾌하게발휘되어있다”고했으며,페이페이(裴裴)는“창작개성으로볼때,이백은감정을크게토로할때자유분방하게구사했는데,…자유분방한감정은어떠한속박에서도벗어날것을요구하니,이러한까닭에이백은악부시에서뛰어남을보였다”라고호평한바있다.이백의악부시는시대의아픔과백성의고통을잘반영하고있으며이백특유의자유롭고낭만적인개성이현저하게드러나있기때문이다.또한이백특유의상상력을동원하는가운데과장과상징수법등이변화무쌍하게사용되어뛰어난예술적경지를이루고있다.

≪이백시전집7악부1≫에는이백의악부시27제(題)31수가수록되어있다.원전의편차를그대로따랐기에창작시기와는상관없이수록되었으며,그내용도다양하다.이백악부시의대표작인<촉도의험난함(蜀道難)>,<장진주(將進酒)>,<가는길험난하구나(行路難)>등을만날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