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상록

금강산 관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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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승려의 눈으로 본 금강산
근대 통도사의 선승이자 시승이었던 구하 스님의 금강산 여행기와 관상시들을 소개한다. 경승 유람으로 일관된 유학자들의 기록과는 달리, 금강산을 수행의 근원이자 치유의 공간으로서 바라보는 승려의 시각은 귀중한 자료가 된다. 구하 스님은 금강산 내의 각 사찰과 소장 유물, 부속 암자 등을 상세히 밝히고 순례자의 눈으로 바라본 금강산의 모습을 경건하고 엄숙하게 묘사한다. 그의 관상시에서는 조선 불교 시승의 맥을 이은 구하의 풍부한 시학과 한문학적 소양이 잘 드러난다.
저자

구하

九河, 1872∼1965
구하(1872∼1965) 스님은 근대 통도사의 개혁을 이끈 선승(禪僧)이자 시승(詩僧)이다. 법명은 천보(天輔), 법호는 구하(九河), 시호(詩號)는 축산(鷲山)이다.
13세가 되던 1884년 천성산 내원사로 출가했고, 1886년 경월도일(慶月道一)을 은사로 득도했다. 1896년 표충사에서 만하승림(萬下勝林)에게 대소승계를 수지했다. 이후 1899년 통도사에서 수선 안거를 시작하면서 동시에 내외 경전을 두루 섭렵하게 된다. 1899년(28세)에 통도사 황하각에서 성해남거(聖海南巨) 선사의 전법 제자가 되어 구하(九河)라는 법호를 받았고, 1905년 통도사 옥련암에서 정진하다 오도의 경지를 맛본다.
1908년 명신학교를 비롯해 1932년 입정상업학교(지금의 부산 해동고등학교), 1934년 통도중학교(지금의 보광중학교)를 설립해 어려운 절 살림과 암울한 일제 치하의 시대 속에서도 인재 양성에 힘썼으며, 1910년부터 15년간 통도사 주지를 맡아 근대 통도사의 개혁을 이끌게 된다. 구하의 개혁은 ‘안으로부터의 개혁’이 우선이었고, 환성의 법손임을 매개로 대중을 아울렀으며 교육을 기반으로 포교와 역경 사업을 함께 추진했다. 불교를 통해 세상과 공생하고자 했으며, 무엇보다도 일제 치하에서 ‘독립’이라는 민족의 염원을 위해 임시 정부에 독립 자금을 지원하는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한 불교계 독립 운동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수많은 글씨와 시문들을 남기기도 했다. 1963년 10월3일 세수 94세, 법랍 82세로 열반에 들었다.

목차

관상록에 적다(觀賞錄記) 3

금강산 가는 길과 볼거리(金剛山路程及觀賞)
1932년 4월 29일
5월 2일
5월 3일
5월 5일
5월 5일
5월 6일
5월 9일
5월 7일
5월 8일
5월 9일
5월 10일
5월 20일
5월 22일
5월 23일
5월 24일
5월 25일
5월 26일
5월 27일
6월 20일
7월 16일
8월 5일
8월 6일
8월 8일
8월 10일
8월 12일
8월 13일
8월 14일
8월 15일
8월 16일
8월 23일
8월 24일
8월 25일
8월 26일

보고 느낀 것을 시로 짓다
단발령
내금강역에 처음 들어서며
운주문
만천교
장안사
여름에 금강산 장안사에 있으면서 마음대로 읊다
명경대
영원암
수렴동
망군대
백탑동
장경암
보문암
안양암
옥천암
표훈사
능파루
정양사
헐성루
만폭동
명연담
돈도암
신림암
청련암
보덕굴
마하연
백운대
금강수
묘길상
만회암
불지암
내원통
수미탑
선암
유점사
외무령
오탁천
중내원
미륵봉
송라암
은선대
십이폭
칠보대
금사정
내무령
비로봉
금강문
신계사
미륵암
보광암
문수암
보운암
상운암
법기암
동석동
양봉래 출생지
집선봉
문필봉
삼관음봉
발연사 터
온정리
수정봉
발우봉
한하계
천불동
구만물상
만상정
신만물상
오만물상
천선대
선담
앙지대
옥류동
연주담
무비폭
수렴폭
구룡연
팔담
옥녀봉
금강산에 붙이다
해금강
현종암
영랑호
구선봉
적벽강
고성군
삼일포
외금강역 출발 장소에서 금강산을 되돌아보다
총석정
삼방약수

발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 후기
옮긴이에 대해

출판사 서평

지만지한국문학의 <지역 고전학 총서>는 서울 지역의 주요 문인에 가려 소외되었던 빛나는 지역 학자의 고전을 발굴 번역합니다. ‘중심’과 ‘주변’이라는 권력에서 벗어나 모든 지역의 문화 자산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지역 학문 발전에 이바지한 지역 지식인들의 치열한 삶과 그 성과를 통해 새로운 지식 지도를 만들어 나갑니다.

선승, 금강산을 기록하다
이 글은 구하 스님이 1932년 4월 7일에 통도사를 출발해 8월 28일 다시 통도사로 돌아올 때까지 약 5개월간의 행적을 일기체 형식으로 기록한 여행록(旅行錄) 혹은 관상록(觀賞錄)이다. 구하는 물금역을 출발해 서울→철원→금화→금성→단발령→말휘리→내금강역으로 연결된 내륙 철도를 이용했다. 구하가 금강산에 도착한 뒤 장안사를 거점으로 기록이 시작되는데, 본문 격인 <금강산 가는 길과 볼거리(金剛山路程及觀賞)>는 크게 노정과 관상시로 나뉘어 있다. 노정에는 통도사에서 출발해 금강산 장안사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 금강산에서의 관상, 돌아오는 귀로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히 사찰과 관련한 이야기, 구조와 정취, 소장 유물과 부속 암자 등을 자세히 기록했다.

조선 불교 시승의 맥을 잇다
≪금강산관상록≫은 크게 기행록인 <금강산 가는 길과 볼거리>, 그리고 관상시인 <보고 느낀 것을 시로 짓다>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금강산 가는 길과 볼거리> 안에도 중간중간 구하가 금강산에서 본 선인들의 관상시와, 이에 대해 화답한 구하의 시들이 들어 있다. 구하의 시들은 보이는 것을 사실적으로 표현했고, 금강산 곳곳의 자연환경에 대한 찬탄을 기본으로 했으며, 승가의 일상적 모습, 사찰의 고요한 정취 등을 담아내었다. 풍부한 시학과 한문학적 소양이 잘 드러난 이 시들은 근대 승려의 시문 창작과 활용 방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한문학이 쇠퇴해 가고 있는 오늘날, 이러한 승가의 자료와 시문들은 근대 한문학의 자취를 이어 줄 소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