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 SHIPING FOR OVER $100 - MOSTLY SHIP VIA USPS GROUND ADVANTAGE %D days %H:%M:%S
전익구
全翼耈,1615∼1683전익구는본관은용궁(龍宮),자는명수(明叟),호는가암(可庵)이다.본관인용궁은지금경북예천군용궁면지역이다.종조인전찬(全纘,1546∼1612)은퇴계이황에게수학했으며부친전이성(全以性)은정구(鄭逑)와정경세에게배워가학의연원이깊다.부친은인조때춘추관편수관을겸직하면서≪광해군일기≫의편찬에참가했으며월봉고인계,월간이전,무주홍호,창석이준,이수광의아들이민구등당대의석학들과상당히깊이교유했다.그의성장과정에대한기록은아직찾지못했다.그의행역에대해정종로가묘지명을썼으며,많은인물들과교유했는데특히정경세의손자정도응,홍귀달의5세손홍여하와교분이깊었다.평생관직에진출하지않고정경세가우거하던상주우산(愚山)근처로이주해가암(可庵)을건립하고독서와강학으로보냈다.상당한유학적소양을갖추었으나안타깝게학문적성취라고할수있는것은남기지않았다.그러나숙종조에포의로서소를올려지역사족으로서의역할을다하기도했다.
암자에서경치를읊다 밤에앉아읊다 취벽당의노래여덟마당 <도산잡영>44절구를써서벽에걸어두고앉거나누웠거나눈으로바라보면서아침저녁으로외웠더니,아득할사오색구름이눈앞으로옮아오더니마치친히아름다운산수사이에서선생을모시는듯,상하로같이흐르는기상을보았다.나도모르는사이발로뛰고손으로춤추며감히한구절을읊고마음으로즐거워할따름이다 여막으로되돌아오다 나를말하다 우복선생시에공경히차운하다 홍목재에게부쳐보내다 차운해정무첨에게주다 <나각사>에차운해이인재에게드리다 김자신에게부치다 장맛비내리는날작은서재에서2수 홍목재의시에차운해석당황상사에게부치다2수 삼가여러노선생의시에차운해정무첨에게부치다 동짓날노래 새벽에일어나구점으로지어홍계량에게부치며화답을구하다 노용호의시에차운하다 정무첨의시에차운해주다 권자도의시에차운해주다 노익지에게주다 봉화군수노용호의시에차운해주다 홍언명에게보내다 맑은새벽,노래를불러석문안하에게보내드리다 다시앞시의운을차운해,석문의높은은혜와주옥같은시에감사하며드리다 무술년새로초가를짓고율시한수를읊조린뒤,노익지,홍백원,정봉휘,홍언명등과서로화운하다 또앞의시에차운해노익지에게주다 홍계량의시에차운하다 김칙야의시에차운해주다 홍계량과함께관음사에들어가우복선생의시를공경히차운하다 심은후의시를차운해홍언명에게주다 김칙야에게주다 우복선생의시에공경히차운해목재,무첨에게화운을구하다2수 문경에서이서산의시에차운하다 마음을적다 수륜석노래 정무첨에게사례해주다 뜨락의국화가한창피었는데무단히도눈보라가쳐서느낌이있어서읊었다.정무첨에게부치다 퇴계선생의시에공경히차운해홍계량에게주다 홍계량의시에차운하다 홍백원의시에차운해이학관에게보내다 이면숙에게주다2수 인일,앞시의운을사용해면숙에게받들어드리다 입춘,다시앞시의운을써서면숙에게삼가보내다 우산에서다시앞시의운을써서면숙에서주다 퇴도선생이동파의시에화운한시를공경히차운해문득목재와무첨에게주다 <가지동>시에차운해주인정무첨에게주다 또전운을차운해시를지어무첨에게부치다 홍계량과함께운을불러‘남’자를얻다 노용호에게주다 노용호의시에차운해배율16운을지어보내다 홍계량이동파의시에화운한것을차운해주다 종원에서송별하는말을찾다가불현듯절구하나를엮다 우산에서 2월,다시우산으로들어가다 회원대에오르다 승려희운에게주다 분매의푸른잎을보다가우연히읊다 병중에우연히읊다 우산에있으면서운을부르다 홍목재에게부치다 정무첨이단성에부임해전송하다 수회동가는길에 가지동에노닐면서일절을구점하다 창녕군수정봉휘에게절구2수를지어부치다 홍목재에게주다 계정에서밤에앉아경치를마주하다 생각이나서구점하다 종연가는길에 달밤에구점해창노에게보여주다 부록≪가암유고≫서문 사우계서문 해설 옮긴이에대해
지만지한국문학의<지역고전학총서>는서울지역의주요문인에가려소외되었던빛나는지역학자의고전을발굴번역합니다.‘중심’과‘주변’이라는권력에서벗어나모든지역의문화자산이동등한대우를받을수있도록합니다.지역학문발전에이바지한지역지식인들의치열한삶과그성과를통해새로운지식지도를만들어나갑니다.평생을학문으로보내다가암전익구(全翼?,1615∼1683)는본관은용궁(龍宮),자는명수(明?),호는가암(可庵)이다.본관인용궁은지금경북예천군용궁면지역이다.예천지역의뿌리깊은세족으로,종조인전찬(全纘)은퇴계이황에게수학했으며부친전이성(全以性)은정구(鄭逑)와정경세에게배워가학의연원이깊다.전익구도많은인물들과교류했는데,특히정경세의손자정도응,홍귀달의5세손홍여하와교분이깊었다.그는관직보다는학행으로이름이알려졌는데평생관직에진출하지않고정경세가우거하던상주우산(愚山)근처로이주해가암(可庵)을건립하고독서와강학으로보냈다.자연가운데홀로외로움을느끼다그의문집≪가암집≫은2권1책으로권1에한시69제81수가수록되어있는데,이책에서는이를모두번역했다.이시들의창작형식을보면고시와배율을제외한근체시는65수에해당한다.보통근체시는시의의미전달보다운자와평측,대우등형식적조건을우선으로한다.이런형식적제약때문에근체시는장·단구를자유롭게사용하는악부시나평측과대우를고려하지않는고시보다짓기가까다롭다.이런제약에도불구하고근체시창작을지향한것은평생출사하지않고자신의삶에대해끝없이성찰하고고민한그의성격을드러낸것이라하겠다.내용면에서는특히교유시가많아증답시와송별시가41수나되며그외전원시,회고시등다양한소재를다뤘다.표현은자연스럽고구속됨이없으며,일상속의실천을중요하게생각한도학자로서의면모가그대로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