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꽃이 핀다 1~10 세트 (전 10권)

오랑캐꽃이 핀다 1~10 세트 (전 1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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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9권은 화성외국인센터 한윤수 소장이 기록한 895편의 외국인 노동자 상담 사례이고 10권은 이에 대한 해설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이 책은 그들을 제대로 알기 위한 리얼한 생활 현장 이야기이고 삶에 관한 생생하고 진실한 최초의 기록이다. 외국인 200만 시대! 한국 사람들이 기피하는 3D 업종에서 경제의 근간을 떠받치는 그들,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노동 인력 부족을 겪고 있는 한국 사회는 산업현장뿐만 아니라 농어업에서도 이제 외국인 노동자들 없이 지탱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그들 삶에 관한 기록이 우리에겐 없다.
저자

한윤수

1948년 충북 청주에서 출생,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연미복 입은 모습이 좋아 외교관을 꿈꿨지만 외교관 월급이 적어 품위 유지하려면 부잣집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꿈을 접었다. 29살에 출판사 ‘청년사’를 차려 ≪판초 빌라≫, ≪본회퍼≫, ≪산체스네 아이들≫, ≪여공 20년 후≫ 등의 논픽션을 출간했다. 1978년 이오덕 선생이 농촌 아이들의 글을 모와 와 시집 ≪일하는 아이들≫과 산문집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로 출판했다. 1980년 야학을 하던 대학생들이 10대 노동자들의 글을 모아 와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 10대 근로자들의 일기와 생활담≫으로 출간했다. 계엄령하였지만 책 못 내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무려 2만 부를 찍어 200여 곳 교회 청년회를 통해 뿌렸다. 나오자마자 책은 판금됐고, 청년 사장 한윤수는 도망자가 됐다. 그해 가을 세상이 잠잠해지자 있는 돈 없는 돈 쓸어 모아 글 쓴 노동자들에게 인세를 지급하고 함께 마지막으로 북한산 등반을 했다. 이 책은 1980년대에서 21세기 초까지 대학 및 노동계 운동권의 필독서가 됐고, 원본을 구할 수 없어 복사본이 돌아다닐 정도였다. ‘청년사’ 운영을 후배에게 넘기고 경기도 고양군에 들어가 농사를 짓다가 누가 치어(稚魚)도 대 주고, 크면 다 가져다 팔아 주겠다고 해서 가물치 양어장을 차렸지만 가물치의 생태에 대한 전문적 소양의 부족으로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빚이 늘어 갚을 요량으로 ‘형제출판사’를 열어 가족들 사이의 일을 적은 일기문들을 <고부일기 시리즈>로 내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무너진 가계는 도무지 회복이 안 됐고 1997년 IMF 사태로 결정타를 맞았다. 채무는 60억 원 가까이 늘어났다. 저당 잡혔던 친구들 집 12채도 다 넘어갈 뻔했지만 다행히 가물치 양어장 터가 삼송택지개발지구에 수용돼 그 보상금으로 원금을 갚았다. 그러나 생활비는커녕 아이들 교통비도 갖다주지 못한 상황에서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곤 교회에 가서 같이 앉아 주는 것밖에 없었다. 부인과 “1. 절대로 죽지 않는다. 2. 희망을 가진다”고 합의하고 빚쟁이들을 피해 전국 안 가 본 곳 없이 도망다니다가 결국 부인에게 너무나 미안해 결혼하고도 25년 동안이나 가지 않았던 교회에 1998년 2월 어느 날 제 발로 가겠다고 나섰다. 교회에 간 동기가 일차적으로는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에 있었지만, 실제로는 빚쟁이들을 피해 보자는 도피 심리가 더 컸다. 그나마 안전하겠지 했던 교회에까지 빚쟁이들이 쳐들어왔다. 크리스마스 날 빚쟁이들이 교회로 와서 노래 부르고 있는 그에게 ‘넌 빚을 지고선 즐겁게 노래가 나오냐’고 했다. 빚쟁이들한테 몰려 마지막으로 간 데가 신학교다. 2005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도사 생활을 시작하고 안산에 오게 되었다. 1년 정도 지나 ‘안산노동자센터’에서 연락이 왔고 그때 외국인 노동자들을 처음 봤다. 새카만 모습으로 와서 도와달라고 하는데 10대 노동자들 생각이 났다. 30년 전 그 애들의 얼굴이 겹쳤다. 맨날 돈 떼이고 두들겨 맞는 것이 똑같았다. 그런데 상담이 맘대로 안 되었다. 어느 날은 상담실이 컴퓨터 교육실이 되어버렸다. 아스팔트에 비치파라솔을 놓고 상담을 했다. 컴퓨터도 전화도 없고 상담일지도 없었다. 내 식대로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던 중 2007년 4월 목사 안수를 받고 한 달 뒤 아무 연고도 없이, 단지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장 많다는 이유로 경기도 화성시로 향했다. 2007년 6월 5일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를 세우고 무료 상담을 시작했다. 전국에서 가장 돈 잘 받아 주는 센터로 통했다. ‘인생은 60부터’, ‘다시 인생이 바뀌었다’면서 2008년 11월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 일명 ‘외국인 노동자 탐구생활’ 백서라고 할 수 있는 ‘오랑캐꽃’ 칼럼 연재를 시작했다. 현재까지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 대표로 있다.

목차

제1권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에 관한 기록
초원의 소리
허리가 망가진 베트남 사람 썬
베트남 청년 네 명, 유도 퇴직에 당하다
원탁의 태국인
베트남에서 온 공주 틴
나들이 머릿수 버스 한 대에 맞추기
주간 한 명 야간 한 명인 회사
목사님 같은 목사님은 처음
수원의 명쾌 상쾌 통쾌한 감독관
통장에 돈이 들어오기 전에는
제멋대로 폴, 잘 지내기를
그 목사 있는 한 안 돼요
허허벌판에 방치한 네팔인 두 명
꽃보다 이쁜 썬의 베트남 가족들
같이 밥 먹는 사이니 현금 카드 살려 주세요
쿠무두의 인기 비결
밀고가 판치지 못하게
블라우스 첫 단추, 지금은 어디 있나?
위치안과 리안의 현명한 선택
사샤의 유목민 기질
아누아르의 지푸라기 잡기 작전
태국인은 왜 소통이 어려울까?
루앗의 봉투가 남긴 교훈
노동자센터? 임신센터?
정반대 성격이 퇴직금에 미치는 영향
랭유린의 눈물
필리핀 타임 부활해야 하나?
제 머리 못 깎은 헛똑똑이 리만
애수의 소야곡 I, 저들의 순진무구한 심성
흐뭇한 가래떡 보너스
외국인 노동자들의 새해 인사 문자
오늘의 노동부 출석 조사 예상
오 필승 코리아, 아니 오피스 넘버원!
노파랏의 굴욕 I, 노동의 대가를 날리다
노파랏의 굴욕 II, 이제 절대 사인 안 해
부끄러운 고등어구이
나중에 딴소리하지 말기
당당한 태국인 노동자 수진의 삼색 모자
외국인을 돕는 쉬운 방법 I, 대신 전화하기
한 시간 동안 난 뭐 한 거지?
첸의 기막힌 만능 현금 카드
우리 센터는 동남아시아
웬티둥의 뺑소니 사건
변덕이 죽 끓는 레이의 필리핀 상륙작전
누구에게 필요한 것인가?
우타이의 서푼짜리 오페라
결혼 이주 여성들의 애환
콩나물국에 눈물 뚝뚝
베트남 사람의 저력
외국인과 한국말로 소통하기 5계명
내 성깔대로 퍼붓고 싶지만
소펙의 블랙박스
사장님 센터를 만들겠다고?
외국인을 쓰는 이유, 3D돈말결해
옹고집보다 더 센 방고집
직장 이동만 하게 해 주세요
낭만주의자 투안
필리핀 루머… 꿈 깨라!
하루만 더 싸우지
한국을 나쁘지 않은 추억으로 기억하길
로멜라 케이스, 작은 문제는 스스로
의심 많던 디네쉬, 굿 럭!
손톱깎이 이후로 평이 확 달라진 댕
월급과 자존심 사이의 딜레마
꿈같은 ‘쯩’

제2권
얼음공주의 급여 명세서
꽃남은 왜 죄다 시시하게 사라질까
농부의 마음을 배신한 한과 한
‘잔인한’ 4월, 노동부 출석 조사 기록들
또 때리기만 해 봐라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떠돌이별
때로는 가만히 있는 것이 최선의 방법
친구의 친구면 친구다
외국인을 돕는 쉬운 방법 II, 쉼터 운영
한국 사모님의 압도적 공포
센터의 보물 2호
센터 에이스 N 여사의 아킬레스건
막대기로 옆구리를 찔린 누남
화교 청년 타와차이의 좌절
저 먹을 건 알아보는 메기의 눈
눈물 한번 잘 흘린 덕으로 게임 끝
원숭이가 사자 되어 고기 먹는다
바퀴 없는 오토바이로 ‘죽난’? ‘사난’?
필리핀에서 온 조세핀의 편지
고용지원센터에 근본 대책을 건의하다
한 시간이라도 빨리 보내고 싶은 빈대
태국인들에게 2년간 구애
체불 임금 해결하는 시스템은 작동하는가?
결국 주홍 글씨를 지웠다
위짓의 아내 공포증
횡령 I,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해야 할 일
촛불 춤, 돈으로 살 수 없는 진짜 우정
돈을 받기 위한 세 고개
해결사 I, 보호자가 맞짱 뜬다
해결사 II, 재판까지 간다
나롱, 이게 웃는 모습이지롱
컨테이너 기숙사비
한심한 뒷북
포기를 모르는 불도그 센터
그들과 동행해 주는 것이 희망이다
브로커, 양의 탈을 쓴 늑대
횡령 II. 국민연금
백설공주 란의 이중고
고물상은 싫어요
티라왓의 진실 게임
별게 다 개인 정보 유출
로랜드의 혼자 전화 걸기
도움에도 우선순위가 필요하다
외국인 노동자를 짐짝 취급
폭우를 뚫고 올라온 캄보디아 네 명
말썽쟁이 데니스
노동부에 통역이 없다
먼지 속의 캄보디아인
강가에 내놓은 파이야
람야이는 왜 한국을 떠날까?
담배 한 개비로 시작된 파용의 방황
봉사자들이 외국에 많이 나가는 이유
철학자가 된 자원봉사자
마랑의 산재 보험 카드
남편 회사 근처로 옮기고 싶은 카피
필리핀 노동자들의 최저 임금
누가 뭐래도 당당한 길
친구 따라 강남 가는 태국인
교회가 할 일은 어디까지인가

제3권
건강 검진 결과가 안 좋게 안 나오면
인터넷 전화 I, 전화비 156만 원
돈 더 벌겠다는 단순한 이유
삼각관계가 모든 것을 말아먹다
목사님은 태국만 좋아해
기부의 원칙
왜 도와줘요?
고립 탈출 방법
수코타이의 잔혹한 출근
추석에도 일한 아농낫
통역이 흥분한 이유
버니가 변할 때까지
베트남 사람 강해, 이겨야 돼
인터넷 전화 II, 통화료 409만 원
미운 오리 새끼 수라차이
상금으로 노동자 유혹
주 84시간의 쳇바퀴
기름값 굳었다
자격증이 필요해?
시간은 내 편이다
웃기는 짬뽕
7인의 사무라이
오락가락 갈대 같은 티의 마음
사장님이 더 주든 말든 상관할 일 아니다
불법 알선 택시 요금
외국인 노동자는 귀국 후 무슨 일을 할까
캄보디아 오면 꼭 들르세요
특별 대우 어림없지
짱과 틴 부부의 방 빼기 작전
시시콜콜한 심부름은 사절
출석 요구서 보내는 게 다가 아니다
낯선 세계가 무서워
얼굴값, 영어 값 하는 다핀
내 친구가 브로커였다니
잠자는 전단지를 꺼내 볼까?
태국 여성의 인감 증명 떼기
8년간의 고독을 끝장내다
생각보다 추운 컨테이너
우린 무조건 도와주지 않아
와라펀의 친정 나들이
발안의 독특한 상권(商圈)
농카이의 불꽃 I, 쓸모없는 놈
농카이의 불꽃 II, 당당해서 싫어
합법이 되는 유일한 방법
대사관 I, 최선을 다했건만
대사관 II, 꼬리표 달린 돈은 안 받습니다
엄마가 된 베트남 공주
고집 센 놈 I, 남편 따라 덩달아 그만두고
고집 센 놈 II, 죽어 가는 놈 살렸더니
도반흥, 실종 후 사체로 발견
동반자들
운전하고 싶어?
방랑자 삭차이
레이몬드가 소송을 하려면?
의과대학을 졸업한 니말, 자동차 박사 되다
눈물을 머금고 제주행 포기
무책임한 회사의 유혹
면허 없이 차를 모는 태국인 부부
사업주 편, 노동자 편
사표 쓰고 돌아가면 다시 못 온다
후안의 양심선언, 또이 콩 비엣
해결사 III, 차이안과 프라싯의 퇴직금
의료 보험 없는 회사
결혼 휴가 두 달은 무리야
딸을 치료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고개
아전인수 사장에게 들이민 진정서
왜 우리가 폼을 잡죠?
과시욕 때문에 덜미 잡힌 사장
남의 수술비를 물게 된 사폰
귀국 비용 보험 들고 심리적 안정 찾다
얘가 1000만 원 주고 온 바로 그 애예요
수준 I, 한국말 잘하기
수준 II, 한국 법 잘 알기
도금 공장에서 하루 일 하고 도망치다
미련이 남아 미련 떠는 캄보디아인
셰르파의 손가락
힐레르모의 힘없는 해방 문서

제4권
노예 계약 I, 국가 브랜드에 멍이 든다
제다이는 아무것도 못 받아요?
리챠드를 재고용하려면?
스리랑카인 디네쉬, 아내 때문에
베트남 사람이 무서운 이유
철심 3개 박은 기안의 손
8년 거주한 파키스탄인의 신원 보증
태국인이 광주은행 양재지점 가기
루이와 기엔 부부의 피임
무시키 어머니의 진단서
치라운이 받을 200만 원
베트남 여성, 코피 또 나게 생겼다
돈 정말 없어
사장님이 매달 2만 원 뜯어 가다
한국 남자를 뭘로 보고!
외국인을 끌어당기는 한 사람
녹취 비용 10만 원 투자해 600만 원 받다
우락부락한 프라팁, 멋진 놈
미라의 잔꾀
14개월을 끈 수파조 재판
오토바이 질주의 결과
이름 모를 그 공무원 덕분에
투이와 함께한 기나긴 하루
역사를 바꿀 VIP
삼성만 줄 거야
랑선 사람들 센터 점령
저것들 짜고 치는구나
기름 만땅 채우고 천천히
위로금과 퇴직금 사이
5월인 것 같아요
티라랏에게 필요한 건 직권 이동
신원을 감춘다고 되나
전봇대 같은 베트남 사내
태국의 ‘무서운 놈들’
수피아의 새빨간 거짓말
시왓의 신장 결석
속이 뒤집히는 타와차이
환치기상을 믿어?
사콘을 우습게 보면 안 돼
총각 A와 처녀 B가 할 수 있는 건?
한 장 더 써서 600만 원
한글학교, 2년 4개월 만에 문 닫다
귀하디귀한 태국어 통역
입을 여는 자 퇴직금 받는다
재입국한 제롬, 퇴직금이여 안녕
이빨 무료 치료해 드립니다
외국인들의 분리수거
피리 부는 사나이, 멋졌다
시골 남자 호안 전 재산 사기 당하다
퇴직금 사수를 위한 가접수 묘책
산업연수생 I, 줄줄이 바보 사탕
산업연수생 II, 안 되는 일이 어딨니?
10만 원 상품권의 주인공은?
사장님의 벌금 I, 덤터기 쓴 싱캄
사장님의 벌금 II, 아무리 순진하다지만
1호 자원봉사자 K 양 이야기
청소 I, 공포의 사모님
청소 II, 자진 퇴사
사적인 문제는 못 도와줘
태국 대사관 본받아라
26년 짧은 생을 마친 유리
30년 전 어린 노동자들
간단하고 멋없는 홈페이지
의심쟁이도 쓸 데가

출판사 서평

이 책은 어떤 책인가?
1~9권은 화성외국인센터 한윤수 소장이 기록한 895편의 외국인 노동자 상담 사례이고 10권은 이에 대한 해설이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가장 많을 뿐 아니라(합법 체류자만 2만 5000명)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도 악명 높은 경기도 화성시. 이 책은 이곳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무료 법률 상담을 해 주고 있는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 한윤수 목사가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0년 동안 기록한 상담 사례이다. 젊은 시절 출판사를 운영하며 논픽션과 10대 노동자들의 글을 모은 운동권 필독서를 출간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그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상담 사례를 기록할 의무감을 느꼈다. 월급 떼인 이야기, 퇴직금 못 받은 이야기, 폭행당한 이야기, 산재 이야기, 부당해고 이야기와 같은 불평등 이야기뿐만 아니라 소소한 생활 이야기까지 센터를 거쳐 간 그들의 이야기를 몽땅 기록했다. 이는 우리와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세계 시민으로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에 관한 생생하고 진실한 최초의 기록이다. ‘화성외국인센터’는 돈 잘 받아 주고 문제 해결 잘 해 준다고 소문이 나 전국 방방곡곡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몰려들었다. 한윤수 소장은 그들의 가지가지 이야기를 매주 두 편 이상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과 센터의 블로그에 연재했다. 언젠가는 이 기록이 유용하게 쓰일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그렇게 모은 글이 무려 895편이다. 이를 총 9권에 나누어 실었고 10권에는 엮은이 홍윤기 교수의 해설과 한윤수 소장이 언론사와 진행한 인터뷰 2편을 수록했다.

이 책을 왜 내는가?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긴 시간 동안 우리는 그들과 산업 현장에서 동고동락했지만, 부끄럽게도 그들 삶에 관한 기록이 우리에겐 없다. 그들이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행동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하지만 이게 사실이다. 한글 배우기, 컴퓨터 학습, 한국 문화 체험 등 관제 행사에 동원된 그들의 어색한 미소 뒤에는 인간으로서의 절실한 욕구와 좌절과 희망과 희로애락이 숨어 들끓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우선 리얼한 생활 현장 이야기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맞닥뜨린 상황부터 알고, 그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 나가고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생활 이야기의 양이 많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 사회·문화·인류학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왜 ‘오랑캐꽃’인가?
외국인 노동자들! 3D 업종 등에서 일할 사람이 없기에, 한국 쪽에서 절실히 필요해서 불렀으면서도, “너희들 나라에 가만히 엎드려 있지, 한국에 왜 왔냐?”라는 식으로 불청객 취급을 당한다.
“걔네들은 돈 좀 더 받기 위하여 뭐든지 한다니까!” 하는 식의 모멸 어린 시선을 받는다.
“도무지 보고 배운 것이 없어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고!” 하는 식의 근거 없는 모함에 시달린다.
의식 있는 소수를 제외한 많은 한국 대중에게 영락없이 오랑캐 취급을 당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하지만 삶의 속내를 알고 보면 오랑캐꽃처럼 어여쁘기에 이 제목을 붙였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누구인가?
외국인 200만 시대의 주역, 외국인 노동자들! 한국 사람들이 기피하는 3D 업종에서 경제의 근간을 떠받치고,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노동 인력 부족을 겪고 있는 한국 사회는 산업현장뿐만 아니라 농어업에서도 이제 외국인 노동자들 없이 지탱하기 어렵게 되었다. 1990년대 초 산업기술 연수생 제도를 시작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2003년 고용허가제를 도입하면서 이들을 정식 근로자로 인정하고 노동법도 적용했다. 2023년은 고용허가제 도입 20년이 되는 해다. 그간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을 거쳐 갔고 경제 발전에 일익을 담당했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에 대한 처우는 열악하기 짝이 없고, 근래 4년간 외국인 노동자들의 임금 체불 금액은 매년 1000억 원이 넘는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왜 쓸까?
첫 번째 이유는 일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3D 업종에서 그렇다. 한국인은 돈을 많이 준다 해도 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 직종에서 좀처럼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보자. 화학약품 공장에 한 번 간 적이 있다. 똥냄새 비슷한 구린 냄새가 심하게 났다. 숨 쉬기 힘들어 단 5분도 못 견딜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일하는 사람은 모두 외국인이고 사장님만 한국인이었다. 그러나 그 사장도 지게차를 몰고 있었다. 지게차를 몰 한국인 운전기사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공장이 전국적으로 한두 군데가 아니다. 수천 개, 수만 개이다. 그러니 외국인을 쓸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이유는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인 노동자에 비해서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어떤 덕트 공장에 갔을 때 인사 담당 이사가 이런 말을 했다.
“외국인을 왜 쓰는지 아세요?”
“모르죠.”
“한마디로 ‘돈말결’이죠. 외국인은 돈 적게 줘도 되고, 말(불평)이 없고, 결근이 없기 때문이죠.”
이런 형편인데도 외국인은 돈을 떼이고 폭행당하고 성추행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왜 그럴까? 한국의 외국인 고용 제도가 무척 후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