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얼굴책 (심오한 얼굴을 손쉽게 이해하고 스스로 활용하는 비법)

예술적 얼굴책 (심오한 얼굴을 손쉽게 이해하고 스스로 활용하는 비법)

$24.91
Description
이 책은 최소한으로는 다양한 문화적 가치를 존중하며 진지하게 사고하는 한 개인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고백’이다. 그리고 최대한으로는 치열한 고민과 토론을 통해 확장, 심화해 나갈 만한 시대정신의 화두가 되는 ‘이야기보따리’이다.
저자

임상빈

저자 임상빈은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미술작가가 꿈이었다. 그래서 예원학교 미술과, 서울 예술고등학교 미술과,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며 자신의 전공분야에 몰두했다. 그리고 풀브라이트 한미교육 위원단의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으며, 예일대학교 대학원 회화와 판화과(Painting & Printmaking)를 졸업한 후에는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 티처스칼리지 미술과 미술교육과(Art & Art Education)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우리나라와 미국 등, 국내외 여러 기관에서 미술작품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또한, 현재는 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미술교육과 예술 연구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나아가, 그동안 공부하고 터득한 자신만의 예술적인 통찰을 다양한 분야와의 연계를 통해 심화, 확장된 글쓰기를 지속하고 있다.

목차

들어오며: 얼굴로 세상을 바라보기
01 세상을 제대로 보고 싶다 3
02 세상을 보는 비법에 속지 마라 7
03 얼굴은 세상을 보는 통로다 9
04 수많은 얼굴을 관찰했다 13
05 전통적인 ‘관상이론’은 문제적이다 18
06 〈예술적 얼굴표현법〉을 제안한다 22

Ⅰ. 이론편: 〈얼굴표현법〉의 이해와 활용
01 얼굴을 읽다 29
얼굴을 읽는 눈 _29
〈얼굴표현법〉의 활용 _32
02 ‘부위’를 상정하다 37
개별 〈FSMD 기법〉의 시작 _37
‘얼굴의 특정부위’에 주목 _39
03 ‘형태’, ‘상태’, ‘방향’을 평가하다 45
‘음기’와 ‘양기’ _45
‘형태’ 6가지: 균형, 면적, 비율, 심도, 입체, 표면 _63
‘상태’ 5가지: 탄력, 경도, 색조, 밀도, 재질 _116
‘방향’ 3가지: 후전, 하상, 앙측 _164
04 전체를 종합하다 203
〈음양표〉 _203

Ⅱ. 실제편: 예술작품에 드러난 얼굴 이야기
01 이론에서 실제로 235
실제 얼굴을 읽다 _235
‘얼굴읽기’는 연상기법과 통한다 _239
얼굴 이야기의 어법은 다양하다 _244
02 형태를 분석하다 253
균형: 대칭이 맞거나 어긋나다 _253
면적: 크기가 작거나 크다 _266
비율: 세로폭이 길거나 가로폭이 넓다 _277
심도: 깊이가 얕거나 깊다 _289
입체: 사방이 둥글거나 각지다 _304
표면: 외곽이 주름지거나 평평하다 _317
03 상태를 조망하다 329
탄력: 살집이 쳐지거나 탱탱하다 _329
경도: 느낌이 부드럽거나 딱딱하다 _343
색조: 대조가 흐릿하거나 분명하다 _356
밀도: 구역이 듬성하거나 빽빽하다 _369
질감: 피부가 촉촉하거나 건조하다 _382
04 방향을 해석하다 395
후전: 뒤로 물러나거나 앞으로 튀어나오다 _395
하상: 아래로 내려가거나 위로 올라가다 _408
앙측: 중간으로 몰리거나 한쪽으로 치우치다 _420

나오며: 사람 사는 세상을 음미하기
01 이 책을 소개한다면 435
02 예술적 얼굴표현론이 중요하다 438
03 관상이 예술이라니 443
04 조형과 내용, 요즘 관계가? 447
05 이 책의 바람은

출판사 서평

01 세상을 제대로 보고 싶다

2016년 봄, 딸이 태어났다. 말 그대로 얼굴이 빛났다. 그런데 그중에 제일은 단연 눈빛이었다. 그야말로 화살이나 총알과도 같이 내 마음 속 깊숙한 곳까지 뚜렷이 꿰뚫어보는 듯했다. 마치 어둠을 밝히는 프로젝터나 이글거리는 태양인 양, 눈앞에 진한 잔상을 남기며 오래토록 어른거리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런데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 계속 보게 되는 그런 류의 매혹.
물론 당시에 내 딸이 내가 감정이입을 한 만큼 실제로 세상을 잘 본 건 아닐 거다. 우선 광학적으로, 신생아의 눈은 세상을 아직 조형적으로 또렷이 보지 못한다. 명암에 비해 색상은 구분도 못하고. 그리고 인지적으로, 신생아의 뇌는 세상을 아직 의미적으로 잘 이해하지 못한다. 받아들인 정보가 적고 이를 관념화하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만, 어른이라고 세상을 꼭 제대로 바라보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순수한 마음에 때가 한번 타기 시작하면 정말 걷잡을 수가 없다.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도 더불어 그렇게 되고. 물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이 객관적으로 다 맞는 건 결코 아니다. 내가 확신한다고 그게 남에게도 정답이 될 수는 없기에.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색안경’을 통해 세상을 본다. 말 그대로 ‘맨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다들 ‘숨겨진 뇌’로 세상을 보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해당 사회의 문화적 교육과 개인적 기질, 그리고 이해타산 등으로 버무려진 관념을 벗어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우리는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서 각자의 삶을 산다. 비유컨대, 뇌는 두개골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 그래서 뇌는 고유의 개성이 넘친다. 인식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한편으로는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하나하나 차원이 다 다르다.
그러고 보니, ‘다중우주’가 따로 없다. 그런데 외롭다. 길거리에 사람은 바글바글한데, 누가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줄까. 다들 각자의 방에서 어림잡아 짐작할 뿐, 사실은 나도 나를 잘 모른다. 그런데 잠깐, ‘나’는 누구지? 누구세요? 어, 이 소리는 또 누구?
그래도 뇌는 혼자가 아니다. 몸의 여러 감각기관을 통해서 다양한 신호를 받는다. 이를테면 눈이 주는 시각적인 정보, 그야말로 휘황찬란하다. 그래서 그런지 남녀노소(男女老小) 불문하고 누구나 자신의 조건하에서 세상을 참 열심히도 바라본다.
눈앞에 나타난 세상은 나름대로 소중하다. 그게 바로 자신이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갈 진정한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비유컨대, 설사 감옥의 창문일지라도. 잠깐, 이게 남향? 그러면 왜 밤에 더 잘 보이지? 아, 저게 햇빛이 아닌가?
자기 성격 어디 안 가듯이, 뇌도 마찬가지이다. 비유컨대, 이미 나 있는 창문을 바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크기, 이중창 등의 구조나 디자인 장식 등, 바라자면 끝이 없다. 그런데 애초에 전등불 켜고 끄는 일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 여기 황제감옥 아니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보다 더 만족스런 창문을 원한다. 비유컨대, 그래서 때 빼고 광낸다. 혹은 아예 교체하고자 백방으로 부단히도 노력한다. ‘명상팀’에 종종 연락도 해보며. 아, 오늘은 왜 이렇게 인터폰을 안 받지? 이런, 잘 안 보이네. 안경 어디 갔지? 음, 좀 살 것 같다.
나는 이 책이 세상을 바라보는 ‘좋은 색안경’이 되기를 바란다. 비유컨대, 내 눈도, 그리고 창문도 다 ‘색안경’이다. 그리고 없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기왕이면 우수한 품질에 뛰어난 미학이 갖춰져, 눈을 잘 보호해주고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채색해주면 좋겠다. 이를테면 세상을 납작하게 축약해버리는 ‘색안경’으로 세상을 보면 어딜 봐도 참 납작하다. 반면에 세상을 풍요롭고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색안경’은 그야말로 황홀하다. 이거 어떻게 업그레이드 하지?
그런데 다른 의복과 마찬가지로, ‘색안경’도 여러 개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알게 모르게. 비유컨대, 뇌는 프로그램 운영체제, 그리고 ‘색안경’은 개별 프로그램이다. 그렇다면 때로는 서로 충돌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물론 심각한 버그를 초래하면 조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무탈하게 잘도 흘러간다. 프로그램마다 개념적으로는 상이한 가치들을 그대로 간직한 채로. 예컨대, 다니는 직장과 믿는 종교가 상충되는 데도 전혀 문제없이 사는 사람들, 부지기수이다. 말 그대로 낮 다르고 밤 다르다.
물론 ‘색안경’이 하나만 있으라는 법은 없다.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사람에게는 ‘고차원의 미감’이 있다. 따라서 기왕이면 질 좋고 멋진 여러 ‘색안경’을 때에 따라 유연하게 바꿔 끼고 싶다. 그래서 한 번 사는 이 세상, 풍부한 의미를 누리며 미련 없이 삶을 음미하며 살고 싶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실상을 보면, 종종 싸움난다. 나와 너 사이에서, 혹은 내 안에서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고차원적인 수련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우선, 여러 ‘색안경’들을 깊이 이해하자. 비슷하면서도 다른 기능과 가치를 인정하며. 다음, 이들을 널리 활용해보자. 상황과 맥락에 맞게.
이와 같이 내 인식계의 깊이와 폭을 차근차근 넓혀가다 보면, 어느 순간 ‘예술적 인문학’의 경지에 이르러 마침내 ‘예술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지는 않을까. 그러한 뜻깊은 여정에 이 책이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잠깐, ‘색안경’ 좀 닦고. 앗, 너무 셌나?
02 세상을 보는 비법에 속지 마라

세상을 보는 비법이 있으면 참 좋겠다. 이를테면 명약관화(明若觀火)한 공식은 세상을 보는 눈을 명확하게 한다. ‘과학공식’이 바로 그 예이다. 바야흐로 1905년, 현대 물리학의 시금석이 된 수식이 발표되었으니, 이는 바로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의 특수상대성 이론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하는 ‘질량-에너지 등가원리’, 즉 ‘E=mc2’이다.
이 수식의 중요한 전제는 다음과 같다. 우선, 질량과 에너지에는 그 위계의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조건만 충족된다면 질량은 에너지로, 에너지는 질량으로 언제라도 변환 가능하다. 다음, 외부의 간섭 없이 잘 통제된 환경 하에서 그 총량은 항상 일정하다. 이는 이전부터 통용되어왔던 ‘질량불변의 법칙’과 ‘에너지 보존법칙’을 아인슈타인이 통합, 발전시킨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근대 서양철학사에서 상충되던 ‘합리론’과 ‘경험론’을 융합하여 위대한 철학자로 추앙받은 칸트(Immanuel Kant, 1724-1804)가 떠오른다. 오, 그렇다면 아인슈타인은 따로 놀던 ‘질량법’과 ‘에너지법’을 융합했기에 위대한 과학자가 된 게 아닐까? ‘융합과 간략화’의 중요성,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세상이 과연 그렇게 쉬운 공식과 이를 설명하는 단편적인 원리로 축약될 수나 있을까? 만약에 세상이 인격체라면 자신을 단순하게 추출해내려는 사람의 시도에 대해 혹여나 욱하며 성내지는 않을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편향되게 호도하며, 일종의 단세포로 납작하게 축약해버린 듯해서 상당히 불쾌하다며.
그런데 사정을 알고 보면 한편으론 이해도 간다. 세상은 원래 복잡하다. 그런데 사람은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아니다. 즉, 엄청난 연산속도와 거대한 저장장치를 지치지 않고 구동시킬 줄 아는 기계와는 애당초 거리가 멀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스스로 소화 가능한 단순한 공식이 필요하다. 자신의 한계와 조건 속에서 나름대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식의 눈’으로 세상을 섣불리 재단할 수는 없다. 마치 공식 자체가 우주불변의 절대법칙이며, 우주보다 선행해서 존재하는 양. 기껏해야 공식은 사람이란 종족에 특화되어 그들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방편적인 기술일 뿐이다. 즉, 그 원리를 다각도로 이해하고 여러모로 의미 있게 활용하라고 우리 앞에 놓여있을 뿐이다. 영원히 고이 잘 모셔야 할 마법의 신줏단지가 아니라.
03 얼굴은 세상을 보는 통로다

기왕 태어난 거 세상 한번 제대로 살고 가자는데 그게 참 짧다. 하고 싶은 일, 아무리 노력해도 어차피 다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주변을 돌아보면 세상만사, 별의 별 일이 다 일어난다. 각양각색의 시시콜콜하거나 중차대한 사건사고, 온갖 종류의 감정발생, 이입, 교류, 오해, 충돌, 소모… 그리고 논리라는 도구로 치장한 말, 말, 말… 어딜 가도 드라마는 끝이 없다. 나와 너 사이에서, 그리고 내 안에서. 거 참, 얼굴표정 구겨진다.
그래서 뜬금없는 상상으로 마음을 풀어본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사람 없이도 무탈하게 돌아가는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우선, 사람이 주인공인 역사는 더 이상 없다. 다음, 사람이 발생시키는 감정이나 논리놀이도 없다. 그런데 나 또한 사람이라 그런지, 그런 세상이 한편으로는 어색하고 공허하다. 사람의 패권을 놓친 세상, 자연이나 인공지능에게 최종적인 기득권을 넘겨준 세상, 우리 입장에서는 ‘디스토피아’가 따로 없어 보인다. 사람이 만들어야 진정한 의미지, 참으로 의미 없다.
따라서 근엄한 얼굴표정으로 또박또박 외친다. 사람이 세상이다! 우리의, 우리에 의한, 우리를 위한 온갖 종류의 의미로 가득 찬 세상. 물론 언젠가 상황이 바뀐다면 다른 이야기가 전개될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충분히 그러하다. 반면에 사람이 없다고 해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어김없이 해는 뜰 거다. 즉, 자연은 상관 안한다. 이는 인공지능의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마찬가지이다. 결국, 사람이 있어서 소중한 건 사람뿐이다. 그래서 난 사람을 바라본다.
그렇다면 세상을 쉽게 경험하는 비법 하나가 떠오른다. 그건 바로 ‘우리들의 얼굴’! 손오공이 경험한 부처님의 손바닥이 그러하듯이, 얼굴을 보면 우리들이 만들어가는 생생한 현재진행형 세상이, 그리고 시공의 한계를 넘어 억겁의 세월을 간직한 우주가 형형색색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