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이책은지식의패러다임을과학,도덕학,미학으로재구성하고,세패러다임의역학을통해사회학의발전과정을살펴본다.그렇다고발전과정의‘모든’모습을남김없이있는그대로‘재현’하려는것은아니다.이는개인의역량을한참이나넘어서는무모한시도일뿐만아니라,무엇보다도인식론적으로불가능한일이다.상대성이론이나온이후절대적시공간개념이사라지고모든시공간이상대적으로변해버렸다.이제시공간에대해말하려면먼저특정한준거프레임(referenceframe)을짜고,이를통해시공간에대해말해야한다.준거프레임을짜는것이절대적으로중요해진시대인것이다.사회학역사를쓸때도마찬가지다.준거프레임에따라다양한사회학역사가나올수있다.나는과학,도덕학,미학이라는준거프레임으로사회학의발전과정을분석적으로살핀다.이러한분석적이야기는결코‘총체적’이야기가아니며,특정한분석적관점에서말하는‘부분적’이야기다.서구의지식사에관한많은이야기가존재할수있다.내가들려주는이야기는과학,도덕학,미학의관계를통해서구의지식사를분석적으로재구성한‘하나의’이야기일뿐이다.그이야기를얼마나설득력있게들려주었느냐하는것은또다른문제일것이다.
이작업은몇가지의의를지닌다.우선사회학내부에서만본다면,사회학의기원을‘계몽주의’를두고벌어진논쟁에서찾는기존설명의좁은틀을벗어나게해준다.뉴턴의수학적물리학을사회세계에적용하려는계몽주의는사회세계를수학적인단순한몇몇공리가지배하는,그래서불확실성,갈등,모순이제거된조화로운코스모스로만들려는꿈을지니고있다.수학적단순성은사회세계를종교,전통,주술과같은비합리적의미로부터해방하며,그결과사회세계는수학적법칙에따라계산되고정복가능한양적인존재로전환된다.계몽주의는수학적법칙이테크놀로지와과학의발전을가져와인간과사회의물질적삶을개선할뿐만아니라도덕적완결성을가져오리라믿는다.이러한주장은텍스트내적인분석만으로는그인식론적,윤리적·정치적함의를밝혀낼수없다.오히려그주장을더넓은서구의지식사적맥락안에넣을때만그뜻을가늠할수있다.그렇게될때계몽주의와의관련속에서그기원을찾는사회학의의미도그모습을분명히드러낼것이다.
다음으로는과학이사회세계를구성하는주된원리가될때나타나는사회적효과를가늠하게해준다.중세시대를통해보편주의적일원론으로무장한이론과학이경험과학,도덕학,미학을억누르고사회세계를구성할때,그것이얼마나서구인의삶의지평을좁히고경직시켰는지이글을통해알수있을것이다.보편주의적일원론이지배할때타자들은존재할수도알려질수도없을뿐만아니라,윤리적·정치적으로이론과학체계의한계에배치되어그체계의완결성을보증하는기능을하면서도철저히주변화되고억압된다.르네상스휴머니즘이도덕학을되살리기까지거의중세천년이걸렸다는역사적사실을볼때,이론과학의지배를무너뜨리기가얼마나어려운지알수있다.도덕학의핵심은반토대주의적맥락주의로,일정정도애매성과불확실성을전제로한다.계몽주의는뉴턴적수학적물리학을빌려애매성과불확실성을제어하여확실성의세계를만들고자하는데,이것이과연계몽주의가말하듯진정한진보인가?역사가말해주듯,모던세계는과학의타자들에게는악몽이아니었던가.
마지막으로는서구의과학을따라잡기에급급해그윤리적·정치적함의를일정정도내버려둬온한국사회학에성찰의계기를마련해줄것이다.아직도적지않은한국의사회학자는사회학을과학으로만드는데몰두하고있다.헴펠(Hempel,1965)의용어를써서말하면,이론과학자는‘연역적-법칙적설명모델’을따라소위논박불가능한공리(일반법칙)에서출발하여이를독립변수라할선행조건과결합하여설명되어질종속변수를논리적으로연역해내려한다.그들이꿈꾸는것은거대한논리적연역체계를구성하는것이다.이는플라톤이래로끈질기게지속되어온서구지식인의오랜꿈으로서,이제는한국의과학적사회학자가대신꾸어주고있다.경험과학자는‘귀납적-확률적설명모델’,즉무작위적실험을수행하는특정의조건에서특정종류의결과가특수한퍼센티지로일어날것이라는통계학적법칙을따라쿤(Kuhn,1962)이말하는‘정상과학’아래의자연과학자처럼이미알고있는사실을‘통계학적유의미성’으로확인하기위해자료를수집하고실험하는데여념이없다.이는서구의모던세계에와서,특히1930년대통계학이도입되면서발전되어온비교적최근의과학관인데,이역시많은한국의사회학자가따르고있다.이제한국의사회학자는적극적으로물어야한다.도대체‘과학’을한다는것이윤리적·정치적으로어떤의미를지니는것인가?
책의짜임
제1장은지식의세패러다임인과학,도덕학,미학의역학을통해서구지식사를고대그리스로부터르네상스휴머니즘까지살펴본다.우선지식의세패러다임의원형을고대그리스사상에서찾는다.원자론자는경험과학의원형을,소피스트는도덕학과미학의원형을,플라톤은초월주의적이론과학의원형을,그리고아리스토텔레스는본질주의적이론과학의원형을제출했다.이렇게다양했던헬레니즘적세계는유대-기독교의일신교를만나다양성을상실하고이론과학에지배당하게된다.이러한변환에결정적인역할을한것이신플라톤주의이다.거의12세기에이르기까지기독교화된플라톤주의이론과학이서구지성계를지배한다.12세기에서14세기동안에는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되살아나자연에관한경험적연구를촉발했지만,그것이지닌본질주의적이론과학의성격탓에그이전철학과근본적인단절을이루지는못했다.르네상스휴머니즘에접어들어서야고대그리스사상중도덕학이되살아나이론과학과긴장관계를형성하면서이전과비교해다원적인세계로접어들었다.
제2장은고전유럽사회학의모체를과학,도덕학,미학을통해살펴본다.지금까지많은사회학자들은사회학의기원을18세기의계몽주의와이에대한19세기의반동적대응에서찾았다.이들은계몽주의를18세기만의현상,즉프랑스혁명에서정점에이른혁명적정치사상운동으로좁게정의한다.더나아가계몽주의의기본성격을진보적인것으로평가하고,19세기를이에대한반동의시대로보는경향이있다.이글은이러한표준적인서사에대항하여,계몽주의를17세기와18세기의현상으로넓힘은물론그것의퇴보적성격을강조한다.지식사적으로볼때,계몽주의는르네상스휴머니즘이지녔던이론과학과도덕학의건강한대립에서도덕학을제거하고수학적물리학이라는통합과학을특화했다는점에서퇴보적이다.이러한퇴보적성격탓에그에대항또는반대하여대항계몽주의와반계몽주의가출현했다.이러한새로운서사를따르게되면,17세기와18세기는계몽주의,대항계몽주의,반계몽주의가서로경합하는복합적인시기로밝혀진다.이는지식의패러다임이라는면에서볼때,고대그리스이래로서구지식사에서처음으로이론과학,경험과학,도덕학,미학이모두되살아나서로경쟁하는독특한시기이다.이러한전통은19세기로이어져맑스,뒤르케임,베버와같은사회학의창건자들에게매우복합적인지적환경을제공했다.
제3장은19세기유럽에서출현한사회학의지식지형을탐구한다.첫번째시기(1789~1832/1848)는프랑스혁명과그엄청난여파로달궈진시기이다.프랑스혁명은처음부터유럽을강타한범유럽적인운동으로서,그역사적전개과정을통하여계몽주의의기본테제를유럽곳곳으로전파했다.고전정치경제학과공리주의가계몽주의의영향아래출현하고발전했다.프랑스혁명은또한대항세력도불러냈는데,대항계몽주의전통의주된계승자인낭만주의가그대표라할수있다.두번째시기(1832/1848~1884)에는계몽주의전통과대항계몽주의전통이각각새로운형태로자신의모습을드러낸시기이다.크게보아이시기에는대항계몽주의정신이줄고계몽주의지향의정신이더욱커졌다.실증주의와다윈적진화론이이시기계몽주의를대표하는사상이다.1870년대경에는대다수과학자들이진화라는개념을받아들였다.사회적다윈주의의모토,즉적자생존은리카르도경제학을일반화시켰다.자유경쟁은최상의사회,최상의인간,최고의개인을만들어줄것이다.대항계몽주의전통은이러한계몽주의전통을비판했다.고전유럽사회학은실증주의와다윈적진화론의협소한시각에대항한주된세력이었다.세번째시기(1884~1914)는산업화,도시화,기술적진보등의어두운면이진보에대한실증주의적신념을어느정도상쇄한포스트다윈주의와포스트맑스주의세계로이루어져있다.물리학과생물학의새로운발전은사회와인간을설명할때우발성이중요하다는점을일깨워주었다.이시기는또한반계몽주의전통이재활성화되는시기이기도하다.반계몽주의전통을이어받은쇼펜하우어,니체,프로이트같은여러지식인은산업화,도시화,기술적진보가감추고있는어두운면을탐구했다.
19세기유럽에서발흥한사회학은애초에계몽주의의독단을대항계몽주의라는대안을통해비판하고보완하는기획으로출현했다.수학적물리학으로대표되는뉴턴의과학을인간사회에적용했을때,인간사회로부터정신적,문화적,규범적차원을제거하고물리적,경제적,도구적차원만남겨놓는다고보았기때문이었다.맑스,뒤르케임,베버와같은사회학의창건자들이계몽주의의영향을받은것은사실이지만,당대지배적인계몽주의사상인계약론,공리주의,고전정치경제학과비교해볼때오히려대항계몽주의의영향을더받았다고할수있다.고전사회학자그누구도계약론,공리주의,고전정치경제학을전적으로받아들이지는않는다.그들은전통적인종교적의미의제거가곧무의미한물리적체계와같은계몽주의적사회로나아가야함을뜻하는것은아니라고믿었다.오히려모던사회세계에새로운의미를부여해야한다고보았고,이의미는기존의보편주의적일원론처럼외부에서자연적으로주어지는것이아니라구체적인맥락적인간의실천을통해이루어진다고보았다.
제4장은모던미국사회학이사용한지식패러다임을살펴봄으로써그발전과정을추적한다.모던미국사회학은사회학을진정한과학으로수립하고자미학을배제했다는점에서고전유럽사회학과어느정도유사하다.하지만고전유럽사회학과달리모던미국사회학은경험과학을비판하지않았다.오히려경험과학을사회학을위한최고로우월한지식의패러다임으로끌어올렸다.모던미국사회학은미국의영웅적개인주의정신과잘들어맞을때만도덕학을긍정적으로받아들였다.또한모던미국사회학은이론과학을받아들였지만,유럽과는사뭇다른양상을보여주었다.유럽에서는맑시즘과구조주의와같은본질주의적이론과학이사회학을포함한지성계에서지배적인위치를차지했다.하지만미국에서는본질주의적이론과학이사회학담론으로자리를잡지못하였다.주된이유는미국지성계를지배한세속화된과학관이본질주의적이론과학의목적론적·비과학적함의를용인할수없었기때문이다.반면초월주의적이론과학은목적론을담고있지않아서모던미국사회학에서비교적손쉽게자리를잡을수있었다.경험과학과초월주의적이론과학이서로손을잡고모던미국사회학에서크게성공을거둔것은놀라운일이아닌다.뉴턴이이미경험과합리적추론을종합하여자신의과학관을제출한바있기때문이다.결국모던미국사회학의패권을잡은것은과학이었다.
마지막으로제5장은사회학이과학장이아닌미학적공론장의성격을지녀야진정으로한국사회학이발전할수있다고주장한다.우선현재고전사회학자들이전통적인공동체에서모던사회로전환하는시기에작업하였던것과매우유사한상황에놓여있다는점을밝힌다.전례없는현상들이눈앞에펼쳐지고있어혼돈은가중되고있지만,인간은이를이해하려고할수밖에없는존재이다.이러한상황을어떻게할것인가?이질문에답하기위해확실성을추구하는것은오히려사회세계를얼어붙게할것이다.거시와미시를연결하여일반이론을만들려는이론과학모델을따르게되면,사회학은실제삶으로부터추상화되어공론(空論)이되기십상이다.연구의전범을따라이미예측된결과를새로운방법으로얻으려는경험과학모델을따르게되면,사회학은방법론내지는사회공학으로협소화된다.이렇게되면,사회학이실제삶으로부터추상화되고그지평이좁아지는것에그치지않고결국인간의삶마저도추상화되고협소하게될것이다.실제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