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Ⅰ.노태우盧泰愚대한민국제13대대통령이추진한북방정책은당시공산권의양대지도국인소련및중국그리고동유럽공산국가들과는물론이고아·중동阿中東의이라크와알제리에서아시아의몽골과베트남에이르기까지수교를성사시켰고세계정치의중심무대인유엔에의가입을실현시킴으로써대한민국의‘외교영토’와‘경제영토’를엄청나게확장했을뿐만아니라북한과의관계를크게개선해「남북[북남]기본합의서」와「한[조선]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성사시켜민족의평화와통일을위한기반을마련했다.실적이그러했기에,노대통령의북방정책을김성철金聖哲박사는“한국의외교사에있어서하나의분수령을이룬것”으로평가했고,이근李根교수는“대한민국외교사에서그유례를찾기힘든매우야심적이고체계적이며,자주적이며,개혁적인대전략(grandstrategy)이다.”라고논평했다.김성철(金聖哲),「외교정책의환경·제도·효과의역동성:북방정책사례분석」,『국제정치논총』제40집제3호(2000년11월),81쪽;이근(李根),「5.노태우정부의북방외교:엘리트민족주의에기반한대전략」,강원택(康元澤)편,『노태우시대의재인식;전환기의한국사회』(경기도파주시:나남,2012),178쪽.
돌이켜보면,노태우대통령이대통령후보로북방정책의방향을제시하면서추진을처음공약했던1987년9월19일로부터어언37년이지났다.노태우대통령후보는1987년9월에들어와민정당당직자들과의회의에서나기자들과의간담에서간간이북방정책구상을말하곤했다.언론매체에처음보도된것은9월19일도쿄에서열린일본기자클럽오찬연설이었다.하루전인9월18일에나카소네야스히로(中?根康弘)일본총리와의회담에서도자신의북방정책구상에대해발언하며일본정부의협력을요청했다.최맹호(崔孟浩)특파원,「올림픽후대북관계전환:한·중관계개선일본에협력요청」,『동아일보』(1987년9월19일).
한세대가넘는이시기에,우선국내적으로그가1988년2월25일에취임과동시에시작한권위주의체제의민주주의체제로의전환은2010년대말까지는무난하게진전되어여당으로부터야당으로의정권교체가세차례나실현된선례도남겼다.국제적으로소련과소련권의해체에상징되었듯공산주의체제는붕괴되었고,중국의경우가보여주듯자본주의요소를도입한공산주의체제의부분적수정이나타났다.대조적으로,북한은1인독재체제를아들에이어손자로까지지속시키면서「남북기본합의서」와「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파기하고핵무기개발을진전시켜사실상핵무기보유국이되었을뿐만아니라이제대한민국을향해온갖모욕적언사로써조롱할뿐아니라공공연하게핵무기로공격하겠다고위협하고있다.
오는8월15일에우리는‘대한민국희수喜壽’를맞이한다.한때미국과더불어세계양대초핵강대국의지위를과시하던소련이창건74년만에무너졌음을상기할때,국내외적으로매우어려운여건속에서기적처럼탄생한대한민국이우리의전통적셈법으로77세를넘긴다는사실은고무적이다.그렇지만,대한민국이북한의핵위협뿐만아니라열강의전쟁으로말미암아거기에끌려들어가는위험에서벗어나평화를유지하며그터전위에서현재‘후퇴론’과‘위기론’에빠져있는민주화를새롭게진전시키는가운데,한민족의평화와통일그리고번영을위해서는물론이고세계화시대에한민족이국제평화와문화교류에서주도적역할을수행하기위해적극적으로추진해야할국가적과제로새로운북방정책을마련해야할필요성이절실히요청되고있다.
Ⅱ.마침2024년은노태우대통령이북방정책의추진을공식적으로밝힌대통령취임사를발표하고,동시에북방정책의실천적지침을담은7·7선언을발표한36주년의해이다.이선언은발표직후인1988년9월17일부터10월2일까지서울에서열린제24회하계올림픽을동서양대진영이모두참가해완벽한올림픽으로승화시키는촉매제가되었으며,그성공을계기로북방정책은탄력을받아헝가리와의수교→동유럽공산국가들과의수교→소련과의수교→남북한총리회담의개막과진전→남북한유엔동시가입→중국과의수교→「남북기본합의서」및「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채택→베트남과의수교등으로이어졌다.
구체적으로임기5년이라는짧은기간에무려45개국과수교를이루었는데,이나라들의면적을다합치면제1공화국으로부터제5공화국까지수교한국가들의총합보다도더넓다.그들의인구가모두약17억임을생각할때,우리나라의새친구가얼마나많이늘었는지새삼놀라게된다.오늘날194개회원국을지닌유엔에의가입을이루어이미세계를무대로활동하던한국인의국제기구에서의활동영역을넓혀주면서동시에민족적자존심을크게높였다.이로써북방정책은대한민국의외교영토와경제영토를파천황破天荒의경지로넓혔을뿐만아니라대한민국의국제적위상을크게올렸다.이러한실적은이후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노무현盧武鉉대통령그리고문재인文在寅대통령때남북정상회담이성사되는징검다리가되었다.
그렇지만노태우대통령이후역대정부의북방정책은다른한편으로는정체停滯에직면하면서북한의핵개발과그진전을막지못했고,특히일부좌파적정부들의편향된친북정책,심지어종북정책은결과적으로북한핵개발의진전을뒷받침했다는의혹을낳았다.수교가성사된당시우호적분위기가지배적이었던한·러관계와한·중관계는오늘날정반대의분위기로기울어져있다.상황이그렇게바뀐원인들가운데하나는미·중대결과미·러대결로요약되는‘신新냉전’이다.그점을인정한다고해도,남북관계를포함한오늘날의한반도대외상황은노태우대통령5년의그것과너무대조된다.
이36주년의해에,노태우대통령의정책조사보좌관으로,이어공보수석비서관겸대변인으로북방정책의입안및집행과관련해제한적인범위안에서관찰했거나발언했으며,이후이주제에관해여러저술을국내외에서출판했던저자는1차적으로노대통령이집행한북방정책을그기원으로부터시작해전개과정전체를살피면서성공요인과한계를분석하고그유산을다시음미하고자한다.이어「제8장맺음말」에서노대통령이후역대대통령이추진한북방정책의내용과결과를살피고,국제정치에서중견국으로성장한우리나라가펼쳐야할‘중견국외교’의방향과미래를향한교훈이무엇인지고민해보고자한다.
Ⅲ.노태우대통령의북방정책은이미국내외에서많은주목을받았으며,그결과여러저술이박사학위논문또는일반학술논문이나단행본또는회상록의형태로출판되었다.그저술들은이책말미의「참고문헌」에서자세히소개하기로하겠다.여기에서는우선북방정책의입안과추진에직접참여했던이들이남긴중요한몇몇1차자료에한정해미리소개하기로하겠다.
첫째,회고록이다.노태우대통령은우선언론인조갑제趙甲濟와의면담을통해『노태우육성회고록:전환기의대전략』(조갑제닷컴,2007)을남겼다.노대통령은이어전2권의회고록(조선뉴스프레스,2011)을출판했는데,상권『노태우회고록:국가민주화나의운명』이북방정책의바탕인민주화에대한신념과과정을다루었으며,하권『노태우회고록:전환기의대전략』이북방정책에직접적으로연관된다.
「제23장민주화와자율화의전면적확산」으로부터시작해「제50장따뜻한눈으로역사를보자」로끝나는이책은「제33장통일을위한원교근공遠交近攻」에서「제46장북방외교의철학」까지열네개의장章이헝가리와의수교로부터소련및중국과의수교를거쳐베트남과의수교로이어진,그리고대한민국정부가수립된이후처음으로성사된남북총리회담그리고여덟차례의남북총리회담을바탕으로「남북기본합의서」와「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의채택을낳았으며유엔이창설된이후46년만에대한민국이북한을끌고유엔에함께가입하기에이른대북·통일정책을매우상세히회고했다.많은비화를담았을뿐아니라민족문제를대하는노대통령의철학을이해하게만드는이회고록은북방정책의분석을위한기본적인자료로,훨씬더꼼꼼하게읽혀야한다.
둘째,북방정책의입안과추진에서대통령의뜻을받들어활동했던박철언朴哲彦국회의원겸정책보좌관의회고록이다.『바른역사를위한증언:5공,6공,3김시대의정치비사』(랜덤하우스중앙,2005)전2권의여러장章은전두환全斗煥대통령당시에남북정상회담의성사를위해북한을상대로추진된비공개및공개접촉그리고노태우대통령당시에성사된헝가리를비롯한동유럽공산국가들과의수교로부터시작해소련과의수교및중국과의수교에이르기까지에관한여러비사를담았다.이책은북방정책정책결정과정에서부서들사이에,그리고특히박보좌관과김영삼金泳三민주자유당(약칭민자당)대표최고위원사이에벌어졌던갈등을적나라하게드러냈다.거기에더해,이책은북한의김일성金日成주석을직접만났던저자의김일성에대한관찰그리고김일성의생각등을전하고있어김일성말기의북한국내외상황을이해하는데도움을준다.
셋째,노태우대통령때외무장관이던이상옥李相玉은『전환기의한국외교:이상옥전외무장관외교회고록』(삶과꿈,2002)이라는회고록을남겼다.방대한양의이책은노대통령의북방정책전반에관해,그리고소련과의수교로부터시작해남북한유엔동시가입·북핵문제·남북고위급회담·중국과의수교·베트남과의수교등에관해많은정보를담았다.
한·중수교협상에서이상옥외무장관의상대역이었던중화인민공화국외교부장첸지천錢其琛의회고록『외교십기外交十記』(홍콩:삼련서점유한공사2003,베이징:세계지식출판사,2003;유상철劉尙哲옮김),『열가지외교이야기:중국외교의대부첸지천의국제정치비망록』(랜덤하우스중앙,2004)은제5장에서한국과의수교를중국정부의입장에서회고했다.한국의전문가들은첸부장이중국의체면에손상되는부분은전혀말하지않고썼다고보면서,연구자들은그사실을숙지하며읽어야한다고권한다.김장환(金長煥)총영사구술,국립외교원외교안보연구소외교사연구센터편,『남북한UN동시가입』(선인,2021),289쪽.그는다음과같이말했다:“우리나라한국분들이첸지천의『외교십기』를많이얘기합니다.그걸무슨바이블처럼여기는데,그것은중국의입장에서본겁니다.중국에서는자기들에불리한내용이나한국과의관계에서체면이손상되는일은일절안씁니다.그러니까그런내용들은다뺏어요.그런점을참고하고볼필요가있습니다.”
한·중수교로중화인민공화국의초대대한민국대사로부임한장팅옌張庭延부부는옌징延靜·장팅옌,『출사한국出使韓國』(지난[濟南]:산둥대학출판사,2004)과『영원한기억』(지난[濟南]:산둥대학출판사,2007)을남겼다.
한·중수교때중화민국외교부장으로대한민국에의한단교斷交를겪어야했던첸푸錢復는『회억록』전3권(타이베이:천하문화[天下文化],2001)을출판했는데,제3권이이때의상황을회고했다.중화인민공화국과의수교및중화민국과의단교에관한대한민국외무부의일선외교관으로서의회고록겸연구서로는조희용曺喜庸의『중화민국리포트1990~1993:대만단교회고』(선인,2022)가대표적이다.훗날스웨덴대사(라트비아대사겸임)와캐나다대사로봉직한전형적직업외교관인저자의이책은중화인민공화국과중화민국쌍방의자료를모두균형있게다뤘다.
한국과중국은수교에앞서상주무역대표부를각각베이징과서울에개설했다.베이징주재무역대표부에서의근무를시작으로수교직후중화인민공화국주재대한민국대사관공사로봉직하다가훗날대사에이어통일부장관으로활동한김하중金夏中은『한국외교와외교관:한·중수교와청와대시기』(국립외교원외교안보연구소외교사연구센터,2018)에서수교과정과이후를상세히회고했다.국립외교원외교안보연구소외교사연구센터편,『한중수교』(선인,2020)는이주제에관련된윤해중尹海重대사와신정승辛正承대사및정상기丁相基대사등외교관들의회상을담았는데,윤해중대사는이책과별도로『한중수교밑뿌리이야기:윤해중의30년중국외교발자취』(이지출판,2012)를남겼다.
넷째,당시대통령경제수석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