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2018년시작한한국연구재단의7년장기과제도올해6월로마무리된다.그동안필자는동서양을막론하고정치체제에관한최초의논쟁을기록한헤로도토스의<역사>에서출발하여2차세계대전이후본격화된좌우이념논쟁을반영한슘페터의<자본주의,사회주의그리고민주주의>에이르기까지서양의주요정치학고전에등장하는정치체제논의와민주개념을비판적으로재검토하는작업을해왔다.이런작업의첫결과물로<서양민주개념통사:고대편>을2021년에출간하였다.이저술은헤로도토스의<역사>부터아리스토텔레스의<정치학>에이르기까지다양한서양고전에등장하는민주개념을다루고있다.그리고작년에는우리가다루는2천년이넘는서양정치사상사에서민주개념이어떻게변해왔는지를여실히보여주는핵심텍스트들만고전에서골라국문과영문으로동시에편집해<민주주의고전산책>이라는제목의단행본으로출간하였다.이2권의연구결과물에이어서<서양민주개념통사:근현대편>을이번에마지막으로내놓게되었다.
개인적인연구계기에관해서는앞선저술들에서이미상세히이야기했기에여기서는생략하고다만이러한작업의의의를다시강조하고자한다.정치학만벌써40년이넘게공부하고민주개념사연구를7년이라는적지않은세월동안집중적으로연구해온필자지만,누군가민주주의가무엇이냐고묻는다면여전히명확히답하지못하고주저하게된다.소크라테스의말처럼‘모른다는것을아는것이진정으로아는것’이라는궤변을늘어놓고자하는말이아니다.민주라는용어는적지않은정치학자들이때로는의도적으로때로는무의식적으로모호한의미로사용하면서혼란이점차가중되어왔다.또한그용어는더이상정치학자들만의전유물도아니다.우리나라현실정치에서도다양한의미의민주라는용어가일상적으로사용되면서개념적혼란은더욱심화된상태이다.예를들어민주라는용어는‘더불어민주당’처럼특정정당의이름에들어가있기도하며,‘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처럼국가재정으로운영되는재단의이름에도나온다.또한‘5.18민주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이나작년에논란이된‘민주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안’등에도등장한다.이결과적지않은국민이현실적으로민주주의와관련하여금전적이해관계나다른형태의이해관계를가지고있다.이렇게사적인이해관계가개입된만큼민주주의의의미를객관적으로규정하기가더어렵게되어버렸을뿐만아니라,특정법률안에담긴민주주의처럼우리역사의특정시점에박제된개념으로전락해버렸다.
이러한정치학이론의혼란과우리역사속의박제작업은우리가오늘날민주정치에실망해새로운정치모형을모색하는데에전혀도움이되지않는다.미래사회에알맞은정치모형의설계는민주개념이가진현재의특수성을제거할때비로소가능하다.이러한특수성을제거하려면우선그특수성이무엇인지부터파악해야하고,이를위해서는다시현재이전민주정치의특성을살펴보고오늘날과비교해봐야한다.이러한작업의일환으로<서양민주개념통사:고대편>에이어,필자는홉스부터슘페터까지서양근현대정치사상가들의민주개념을되돌아보는기회를가져보고자한다.
구체적으로필자는제1장에서서양민주개념근현대사의출발점을홉스에게서찾고있다.그이유는오늘날민주개념의핵심구성요소중하나인대의개념을현대적의미로재정립한인물이홉스이기때문이다.홉스이전의대표내지대의개념은상징의의미에가까웠다.이런의미의예로는‘우리마을을대표하는볼거리는무엇이다’라는표현에서찾아볼수있다.이러한의미에서대표는행위자의위임이필요없다.하지만홉스는작자(author)와행위자또는연기자(actor)개념을통하여대의는작자의위임을통하여연기자가행하는것으로정의하였다.이러한개념을바탕으로그는공동체를구성하려는자연인들이각자작자로서자신의권한을공동체전체에게위임하면그것이민주정부(혹은국가)라고규정한다.이것은그러한권한을공동체의일부나1인에게위임하는귀족정부(혹은국가)나군주정부(혹은국가)와대비된다.결과적으로홉스는민주정부만이아니라다른모든정부를대의정부로간주한다.
제2장에서는홉스에이어서서구의대표적자유민주주의자로칭송받는로크의민주개념을다룬다.통상적으로알려진바와달리,로크는민주정을다른정치체제보다우위에둔이론가가아니다.그는민주정보다질서정연한정치공동체(well-orderedcommonwealth)를더선호한다.로크에따르면,자연인들은다수의의결을곧공동체의의결로수용하기로합의하면서사회혹은정치공동체를구성한다.이렇게공동체의전권을위임받은다수가최고의권력인입법권을직접행사하면서행정권을별도로선발된이들에게위임할때비로소민주정이수립된다.그렇지않고이다수가입법권을소수나1인에게위임하면과두정이나군주정이들어서게된다.홉스의주권개념은로크에와서최고권력개념으로바뀌고,이최고권력에는입법권력만포함된다.그런데로크는이입법권력을행사하는자들이행정권력도동시에행사하게되면폭정이우려된다고주장한다.그래서그는입법기관과행정기관을분리한공동체가필요하다고보며,이러한공동체를질서정연한공동체라고부른다.여기서질서정연한‘정부’라고하지않고‘공동체’라고한이유는로크의시각에서보면입법권을행사하는기관은질서정연한공동체이전이든이후이든동일하기때문이다.즉,로크에게정부를구분하는기준은오로지입법권의행사주체이기때문에이주체가동일한이상정부가바뀌는것은아니다.
제3장에서는이저술에서다루고있는사상가중개념적으로가장혼란스러운사상가인몽테스키외의정치체제개념을살펴본다.특히여기서는흔히민주정과혼동되는자유로운정부(freegovernment)의의미를명확히하고있다.몽테스키외가사용하는주권의의미가모호하긴하지만,민주정은전체인민에게주권이있는공화정부이고이정부는인민의일부에게주권이있는귀족공화정과대비된다.또한,이정부는주권이1인에게있으면서법치가이루어지는군주정과무법의1인통치정부인독재정과도대비된다.그는특이하게도민주정에서행정권이나정치적자문권은정치지도자들에게얼마든지위임될수있지만,최종적인법률결정권은여전히인민에게남아있다고본다.그는이러한공화정(민주정과귀족정),군주정과독재정이라는정부외에도온건한정부(moderategovernment)와자유로운정부개념을추가로설정하고있다.온건한정부는심리적절제심에해당하는통치원칙을가지고권력의폭력적행사를예방하는정부이다.그리고자유로운정부는폭력적권력에대한통제가단순히통치자의심리적자제에서비롯되는것이아니라정치권력의인적인분리와같은제도적견제장치를통해서이루어지는정부이다.다시말하면,온건한정부와자유로운정부는둘다권력의폭력성을제어하지만,하나는통치자의내재적인혹은심리적절제에의존하고다른하나는권력간의분리와이에기반한외적인상호견제시스템에의존한다.따라서몽테스키외의자유로운정부는로크의질서정연한공동체와유사하지만,전자가후자보다더엄격한권력간의견제를보장한다.전자는단순히권력을기능적으로만분리해놓은정부가아니다.나아가그것은더욱협소한의미의권력분리,즉인민,귀족그리고군주이렇게3개의사회세력간의권력분점을전제로하는혼합정부이다.그것은인민이최종적인입법권을독점하는민주정과거리가멀다.몽테스키외의자유로운정부에서는,군주를제외하고귀족과인민이입법권을나누어가진다.
제4장에서는대의(혹은위임)개념과정부개념의관계에관해더욱엄밀한논의를진행하고있는루소의사고를다루고있다.루소역시홉스처럼자연인개개인이가진권한을공동체로위임하는것에서사회계약론을시작한다.하지만홉스와달리,그는자연인개개인이권한을위임해주는대상은공동체전체뿐이라고주장한다.홉스처럼공동체일부나개인에게권한을위임할수도없고로크처럼공동체의다수에게권한을위임할수도없다.이러한전면적인권한위임으로발생한권력이루소의주권이며이주권은공동체의일반의지와동일하다.이러한주권혹은공동체의일반의지는양도되거나위임될수없다.따라서입법권으로대표되는일반의지의권능은누구에게도양도되거나위임될수없고언제나공동체구성원전체,즉인민이행사한다.그리하여정부형태와상관없이주권은언제나공동체나인민전체에게만귀속된다.국가혹은공동체와구분되는정부는일반의지의발현인법을구체적사안에적용하는기구이며,이법집행권력은일반의지에의해위임된것이다.이렇게위임받은법집행권을행사하는시민이인민의절반이넘는다면민주정이고,과반이되지않는다면귀족정이며,1인이라면군주정이다.따라서민주정이든아니든모든정부는처음부터일반의지에기반하고법에기초하여운영되는정부이다.또한모든정부는인민으로부터법률집행권을위임받아행사하는대의정부이다.
제5장에서는사회계약론의대표적사상가인홉스,로크그리고루소이3명의정치체제론과민주개념을비교하고있다.이러한논의는제1장,제2장그리고제4장에서다룬개별이론과일부중복될수있다.그럼에도불구하고이비교연구가필요한이유는이세명의정치체제론을종합적으로비교하는기존연구를찾아볼수없기때문이다.이들에관한기존연구는대부분비교론적인시각이부족하거나비교하더라도사회계약론자체를대상으로하고있다.그리하여이들의민주개념이나정치체제론에관한본격적인비교연구를찾아보기어렵다.
세부적인내용은본문에맡기고여기서는이들의이론이분화되는근원이되는정치공동체와정치체제(혹은정부형태)의관계에관한차이점을간단히언급하고자한다.홉스의경우정치공동체가곧정부이다.정부가없다면정치공동체가존재하지않는다.자연인이상호간합의를통해만들어내는정치권력인주권의탄생은정치공동체의탄생그자체이며이주권의탄생은언제나구체적인주권체의설립을통해서만가능하다.다시말하면주권의탄생은언제나구체적인정부형태의설립을전제로한다.
이에반해로크의경우정치공동체의탄생은정부의탄생이아니다.정치공동체는시원적권력인다수의권력을공동체자체의권력으로인정하면서탄생하는것이고이다수의권력이입법권을어떻게행사하느냐에따라서다른정부가수립된다.그리하여정치공동체와정부는개념적으로나시간상으로분리된다.홉스에의해주권으로통칭되던권력이로크에이르러서는정치공동체를형성하는시원적권력과정부형태를구분하는데활용되는입법권혹은최고의권력으로분화하게된다.이러한분화로인하여,정부가없더라도정치공동체는여전히존재할수있게된다.
마지막으로루소는로크처럼정치공동체와정부개념을분리하지만이러한분리를훨씬철저하게한다.그의경우자연인이권력을정치공동체에위임함으로써정치공동체가수립된다.그리고이러한정치공동체가하나의단체로서가지는의지가일반의지이고이것이곧주권이며입법권이다.이주권을가진정치공동체가일반의지의표현인법을구체적인상황에서시행하는주체를별도로설정하게되면서비로소정부가탄생하게된다.홉스의관점에서보면주권이민주정에부여되었던과정이루소에게는공동체자체의탄생과정이된다.주권이1인군주나소수귀족집단에게부여되는과정은루소에게존재하지않는다.즉,루소의정치공동체일반의탄생은홉스의구체적주권체사례중하나인민주적주권체의탄생과동일하다.그리하여루소에게주권은언제나인민전체에게놓여있는것이며,귀족이나1인군주에게부여될수없는것이다.민주정,군주정,귀족정의문제는주권의소재문제가아니라이주권혹은주권의표현인법률을구체적인상황속에서누가(혹은어떻게)하나하나적용하여나가느냐의문제이다.
제6장에서는루소이후의사상가들을일일이하나의장에서검토하기보다는집필방식을변경해,현대민주개념의핵심구성요소들인선거를통한대의와경쟁개념이어떻게근현대에와서민주개념속으로들어오게되었는지를집중적으로다루고있다.이주제에답하기위해홉스부터루소까지대의개념을다시정리하는동시에지금까지다루지않았던루소이후의사상가들인칸트,매디슨,페인,존스튜어트밀과슘페터를대의와경쟁개념에초점을맞추어검토하고있다.이저술을마치기이전에이렇게인물보다주제를중심으로서술한이유는고대와다른근현대의민주개념이갖는특성을집중적으로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