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국제법 내 다양한 세부 분야 중에서 기본적이고 중요한 분야를 꼽으라면 무슨 대답이 많이 나올까? 현대 국제법의 법원으로서 조약이 갖는 압도적 중요성을 고려하면 조약법이 그중 하나라는 점에 이견을 가질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생각한다. 오늘날 국제관계의 상당 부분은 조약을 통해 이루어진다. 조약은 국제사회에서의 합의 중 가장 신뢰성과 실행성이 높은 약속이다. 외교 실무가들은 상대국과 교섭을 할 때 양국간 그 분야에 적용되는 조약이 있느냐 여부를 1차적으로 확인하고 시작한다.
회고해 보니 조약법은 필자가 서울대학교에서 첫 번째로 강의한 대학원 과목이었다. 이후 약 25년간의 서울대학교 교수 생활에서 국제법 개론을 제외한다면 가장 많이 강의한 과목이 조약법이었다. 법대 대학원에서 11회, 법학전문대학원에서 3회 이제까지 총 14학기를 강의해 대략 2년에 한 번씩 조약법을 개설한 셈이었다. 필자가 40대 초반 조약법 강의를 처음 시작할 무렵 이 분야에 나름 특별한 지식이나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조약법이 중요하기 때문에 강의를 개설했고, 강의를 계속하다 보니 공부가 되고 관련 자료도 축적되어 갔다. 대학원 강의는 조약법 분야에 관한 필자의 식견을 늘리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전에는 주로 영어로 쓰인 정평 있는 조약법 서적을 교재로 사용했기 때문에 강의준비를 위해 이들 책자를 정독해야 했고, 강의를 마치면 수강생들의 보고서를 통해서도 배우는 바가 있었다.
이미 국제적으로 성가가 인정된 영어권 조약법서를 기본교재로 사용하는 경우, 이론적 분석이란 측면에서는 손색이 없었으나 마음 한구석에는 늘상 아쉬움이 느껴졌다. 아무리 정평 있는 조약법서라 해도 결국은 외국책이었다. 포함된 실행과 판례는 저자의 출신국 사례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때로는 제시된 내용이 출신국의 실행에 불과한지 국제적 관행에 해당하는지가 불분명했다. 한국 특유의 사정이나 실행은 거의 소개되지 않았으며, 있다 해도 부정확할 위험이 있었다. 대학원 강의에서 영어 교재를 통한 강의는 수강생들에게 훌륭한 학술서를 직접 접하게 만들고 외국어 독해 훈련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한국의 조약법 실행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별도 자료를 준비해야 했다. 대학원 강의라도 한국의 실행이 가미된 국내 단행본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우리말로 된 조약법서가 대학원 강의나 전공자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주로 국내법만을 취급하는 일반 법조인이나 행정 실무가들이 업무상 부닥칠 확률이 가장 높은 국제법 분야가 조약법이다. 헌법 제6조 제1항이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아무리 국내법만을 다루는 실무자들도 한국이 당사국인 조약의 해석과 적용에 관한 문제에 종종 부딪치게 된다. 한국사회가 국제화될수록 그 빈도는 높아진다. 그 과정에서 때로 조약법에 관한 전문지식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국내법 문제만을 다루던 국제법 비전공자로서는 업무상 당장의 필요를 위해 외국의 정평 있는 조약법책을 급히 구하기도 쉽지 않지만, 있다 해도 이를 단시간 내 이해하고 눈앞의 사례에 적절히 적용하기는 더욱 어렵다. 국내 실무가들을 위해서도 우리말로 된 조약법서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같은 이유에서 조약법서 집필이 한국사회에서 필자에게 요구되는 임무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에 10여 년 전부터 조약법에 관한 개설서 집필을 구상했고, 그 첫 번째 결과가 2016년 발간된 「조약법강의」였다. 이 책에는 좀 더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지 못해 여러 아쉬움이 남았다. 아무래도 한 번 더 조약법서를 집필하기로 했다. 본 책자는 7년 전 「조약법강의」에 크게 바탕을 두기는 했으나, 체제나 내용 설명, 수록 자료에 있어서 적지 않은 변화와 확장을 도모했기에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심정으로 제목도 「조약법: 이론과 실행」으로 고쳐 잡았다. 설명 중간에 적지 않은 국내외 판례를 발췌 수록한 이유는 조약법 이론이 실제 적용되는 현실을 직접 맛보라는 의미이다. 정년을 하면 시간적 여유가 많으리라 기대했었는데, 예상외로 번잡스러운 생활이 계속되어 이번에도 기대만큼의 시간을 투여하지 못한 아쉬움이 여전히 남는다.
이번 「조약법: 이론과 실행」 발간은 특별한 과정을 겪었다. 필자는 이 책의 원고를 작년(2022년) 초여름 탈고해 출판사로 넘겼고 여름 끝 무렵에는 초교지를 받아 교정도 진행했다. 그때 외교부 국제법률국으로부터 한 가지 소식을 접했다. 국제법률국에서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의 번역 수정작업을 가급적 2022년 내로 완료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외교부에서 조약법 협약을 포함한 중요 조약의 기존 번역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고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나 내부적 일정은 정확히 몰랐는데, 이 책자가 발간되자마자 비엔나 협약 국문본이 수정된다면 이 또한 곤란한 일이었다. 대중적으로 널리 팔리기 어려운 책자의 성격상 쉽게 개정판을 쉽게 만들 수도 없기 때문에 아무래도 외교부 번역 수정작업을 반영한 후 간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박영사에 이러한 사정을 알리고 교정작업을 당분간 중지해도 좋다는 양해를 받았다. 그런데 외교부의 비엔나 협약 번역 수정작업이 예상보다 진척이 느렸다. 결국 금년 6월 9일에 새로운 번역본이 관보에 공고되었다. 당초 생각보다 반년 정도 작업이 더 늦어진 셈이었다. 비엔나 협약 새 번역본이 관보에 공고되자 작년 초교지를 다시 꺼내 수정된 표현을 반영하는 작업을 했다. 이 작업은 단순히 협약상 표현만을 고치는 일로 그치지 않았다. 첫 원고 탈고 이후 근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새로 수집된 내용을 반영해야 했다. 그 양도 적지 않았다. 결국 단순한 교정이라기보다 개정판 원고작성이 진행된 셈이 되었다. 내용이 보다 충실해졌고, 개인적으로는 좀 더 만족스러운 결과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또 하나의 변수가 발생했다. 전세계 외교관들이 조약법 분야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참고하는 서적의 하나가 영국인 A. Aust의 「Modern Treaty Law and Practice」이다. 필자 역시 별도로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이는 본서 각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책자로 생각된다. 마지막 3판이 10년 전 발간되어 개정판이 나오지 않으려나 궁금해 했는데, 필자가 재교까지 마친 상태에서 J. Hill이란 새 필자를 통해 「Aust’s Modern Treaty Law and Practice」 4판(2023)으로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잠시 고민에 빠졌었다. 새 판을 구입해 이를 반영한 원고를 다시 만들어야 하나? 그러면 작업이 최소 몇 개월이 지연되고, 재교까지 마친 상태에서 한번 더 개정을 하는 결과가 될 듯했다. 그러기에는 상업성 없는 이 책자를 발간해 주는 박영사에 너무 미안했다. 이에 A. Aust 자신의 책은 10년 전 3판으로 끝났고, 이번 새판은 Hill이라는 다른 사람의 작품이므로 필자는 이번에 A. Aust의 책자까지만을 반영하는 것으로 작업을 마치기로 결정했다. 언젠가 누가 그랬다. 완벽한 책을 내지 못해도 일단 결과물이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후일 다른 후학들이 이를 뛰어넘는 결과물을 내리라고. 국내 학계 후학이 조만간 이 책자를 양과 질에서 능가하는 조약법서를 내주기를 기대한다.
끝으로 유난히 습하고 더웠던 금년 여름 박영사 한두희 과장은 까다로운 이 책자 제작에 남다른 심혈을 기울여 작업을 완성할 수 있었다. 노고에 감사한다. 언제나처럼 조성호 이사는 상업성 이 의심되는 이 책자 발간에 든든한 후원 역할을 했다. 이 분들 외에도 드러나지 않는 박영사 관계자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를 표한다.
2023년 8월
정인섭
회고해 보니 조약법은 필자가 서울대학교에서 첫 번째로 강의한 대학원 과목이었다. 이후 약 25년간의 서울대학교 교수 생활에서 국제법 개론을 제외한다면 가장 많이 강의한 과목이 조약법이었다. 법대 대학원에서 11회, 법학전문대학원에서 3회 이제까지 총 14학기를 강의해 대략 2년에 한 번씩 조약법을 개설한 셈이었다. 필자가 40대 초반 조약법 강의를 처음 시작할 무렵 이 분야에 나름 특별한 지식이나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조약법이 중요하기 때문에 강의를 개설했고, 강의를 계속하다 보니 공부가 되고 관련 자료도 축적되어 갔다. 대학원 강의는 조약법 분야에 관한 필자의 식견을 늘리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전에는 주로 영어로 쓰인 정평 있는 조약법 서적을 교재로 사용했기 때문에 강의준비를 위해 이들 책자를 정독해야 했고, 강의를 마치면 수강생들의 보고서를 통해서도 배우는 바가 있었다.
이미 국제적으로 성가가 인정된 영어권 조약법서를 기본교재로 사용하는 경우, 이론적 분석이란 측면에서는 손색이 없었으나 마음 한구석에는 늘상 아쉬움이 느껴졌다. 아무리 정평 있는 조약법서라 해도 결국은 외국책이었다. 포함된 실행과 판례는 저자의 출신국 사례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때로는 제시된 내용이 출신국의 실행에 불과한지 국제적 관행에 해당하는지가 불분명했다. 한국 특유의 사정이나 실행은 거의 소개되지 않았으며, 있다 해도 부정확할 위험이 있었다. 대학원 강의에서 영어 교재를 통한 강의는 수강생들에게 훌륭한 학술서를 직접 접하게 만들고 외국어 독해 훈련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한국의 조약법 실행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별도 자료를 준비해야 했다. 대학원 강의라도 한국의 실행이 가미된 국내 단행본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우리말로 된 조약법서가 대학원 강의나 전공자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주로 국내법만을 취급하는 일반 법조인이나 행정 실무가들이 업무상 부닥칠 확률이 가장 높은 국제법 분야가 조약법이다. 헌법 제6조 제1항이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아무리 국내법만을 다루는 실무자들도 한국이 당사국인 조약의 해석과 적용에 관한 문제에 종종 부딪치게 된다. 한국사회가 국제화될수록 그 빈도는 높아진다. 그 과정에서 때로 조약법에 관한 전문지식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국내법 문제만을 다루던 국제법 비전공자로서는 업무상 당장의 필요를 위해 외국의 정평 있는 조약법책을 급히 구하기도 쉽지 않지만, 있다 해도 이를 단시간 내 이해하고 눈앞의 사례에 적절히 적용하기는 더욱 어렵다. 국내 실무가들을 위해서도 우리말로 된 조약법서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같은 이유에서 조약법서 집필이 한국사회에서 필자에게 요구되는 임무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에 10여 년 전부터 조약법에 관한 개설서 집필을 구상했고, 그 첫 번째 결과가 2016년 발간된 「조약법강의」였다. 이 책에는 좀 더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지 못해 여러 아쉬움이 남았다. 아무래도 한 번 더 조약법서를 집필하기로 했다. 본 책자는 7년 전 「조약법강의」에 크게 바탕을 두기는 했으나, 체제나 내용 설명, 수록 자료에 있어서 적지 않은 변화와 확장을 도모했기에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심정으로 제목도 「조약법: 이론과 실행」으로 고쳐 잡았다. 설명 중간에 적지 않은 국내외 판례를 발췌 수록한 이유는 조약법 이론이 실제 적용되는 현실을 직접 맛보라는 의미이다. 정년을 하면 시간적 여유가 많으리라 기대했었는데, 예상외로 번잡스러운 생활이 계속되어 이번에도 기대만큼의 시간을 투여하지 못한 아쉬움이 여전히 남는다.
이번 「조약법: 이론과 실행」 발간은 특별한 과정을 겪었다. 필자는 이 책의 원고를 작년(2022년) 초여름 탈고해 출판사로 넘겼고 여름 끝 무렵에는 초교지를 받아 교정도 진행했다. 그때 외교부 국제법률국으로부터 한 가지 소식을 접했다. 국제법률국에서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의 번역 수정작업을 가급적 2022년 내로 완료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외교부에서 조약법 협약을 포함한 중요 조약의 기존 번역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고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나 내부적 일정은 정확히 몰랐는데, 이 책자가 발간되자마자 비엔나 협약 국문본이 수정된다면 이 또한 곤란한 일이었다. 대중적으로 널리 팔리기 어려운 책자의 성격상 쉽게 개정판을 쉽게 만들 수도 없기 때문에 아무래도 외교부 번역 수정작업을 반영한 후 간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박영사에 이러한 사정을 알리고 교정작업을 당분간 중지해도 좋다는 양해를 받았다. 그런데 외교부의 비엔나 협약 번역 수정작업이 예상보다 진척이 느렸다. 결국 금년 6월 9일에 새로운 번역본이 관보에 공고되었다. 당초 생각보다 반년 정도 작업이 더 늦어진 셈이었다. 비엔나 협약 새 번역본이 관보에 공고되자 작년 초교지를 다시 꺼내 수정된 표현을 반영하는 작업을 했다. 이 작업은 단순히 협약상 표현만을 고치는 일로 그치지 않았다. 첫 원고 탈고 이후 근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새로 수집된 내용을 반영해야 했다. 그 양도 적지 않았다. 결국 단순한 교정이라기보다 개정판 원고작성이 진행된 셈이 되었다. 내용이 보다 충실해졌고, 개인적으로는 좀 더 만족스러운 결과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또 하나의 변수가 발생했다. 전세계 외교관들이 조약법 분야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참고하는 서적의 하나가 영국인 A. Aust의 「Modern Treaty Law and Practice」이다. 필자 역시 별도로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이는 본서 각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책자로 생각된다. 마지막 3판이 10년 전 발간되어 개정판이 나오지 않으려나 궁금해 했는데, 필자가 재교까지 마친 상태에서 J. Hill이란 새 필자를 통해 「Aust’s Modern Treaty Law and Practice」 4판(2023)으로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잠시 고민에 빠졌었다. 새 판을 구입해 이를 반영한 원고를 다시 만들어야 하나? 그러면 작업이 최소 몇 개월이 지연되고, 재교까지 마친 상태에서 한번 더 개정을 하는 결과가 될 듯했다. 그러기에는 상업성 없는 이 책자를 발간해 주는 박영사에 너무 미안했다. 이에 A. Aust 자신의 책은 10년 전 3판으로 끝났고, 이번 새판은 Hill이라는 다른 사람의 작품이므로 필자는 이번에 A. Aust의 책자까지만을 반영하는 것으로 작업을 마치기로 결정했다. 언젠가 누가 그랬다. 완벽한 책을 내지 못해도 일단 결과물이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후일 다른 후학들이 이를 뛰어넘는 결과물을 내리라고. 국내 학계 후학이 조만간 이 책자를 양과 질에서 능가하는 조약법서를 내주기를 기대한다.
끝으로 유난히 습하고 더웠던 금년 여름 박영사 한두희 과장은 까다로운 이 책자 제작에 남다른 심혈을 기울여 작업을 완성할 수 있었다. 노고에 감사한다. 언제나처럼 조성호 이사는 상업성 이 의심되는 이 책자 발간에 든든한 후원 역할을 했다. 이 분들 외에도 드러나지 않는 박영사 관계자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를 표한다.
2023년 8월
정인섭
조약법 : 이론과 실행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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